256화. 방법
“흑룡지존, 당신들은 오늘 절대 북창령원에서 이 물건을 가져가지 못할 걸세.”
태창 원장이 무덤덤하게 하는 말에 흑룡지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흥, 과연 그럴까?”
그때, 마룡의 눈에 음산한 기운이 돌더니 몸통이 갑자기 팽창하다가 눈 속에 흐릿하게 보이던 여섯 갈래의 그림자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조심, 저들이 투영을 폭발시키려 하네!”
태창 원장이 흠칫 놀라 외쳤다.
쿵!
어느덧 만 장까지 부풀어 오른 마룡이 폭발하려는 듯 파멸의 기운을 풍겼다.
쿠쿵!
이는 영력 바다에 부딪혀 나지막한 소리를 냈지만 결국 뚫지는 못했다.
슉!
그런데 이때, 혈광 한 줄기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앞쪽 공간이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통로가 생겼다.
“절대 물건을 놓치지 말게!”
태창 원장이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용마궁에서 대서미마주를 도망치게 하려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투영이 폭발하는 힘을 빌려 한껏 부풀어 오른 대서미마주는 쏜살같이 공간 통로를 향해 날아갔다.
쿵!
그때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누군가 만 장 정도의 커다란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가 공간 통로에 들어간 대서미마주를 확 끌어당겨 곧바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다들 어리둥절하였다.
“방금 그건…….”
“날개 같았는데…….”
“설마 북창령원의 진원 신수인 북명룡곤이란 말인가?”
“날카로운 발톱에 공간이 찢어지다니, 참 대단해.”
* * *
북창령원은 순간 들끓었고 목진도 넋 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흑광 한 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다시 체내로 들어갔다.
다름 아닌 대서미마주였다!
이에 목진은 바로 기해 속의 만다라 꽃을 소환하였고 이는 암자색 사슬로 기둥을 끌어들여 다시 봉인하였다.
그제야 시름을 놓은 목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마낙인을 지우기 위해 북창령원의 최정예들이 한곳에 모였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이때, 태창 원장 등이 목진에게 다가왔다.
“북명 대인이 아니었다면 마주를 놓칠 뻔했구나.”
맥유가 히쭉 웃으며 하는 말에 촉천 장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저들이 투영을 폭발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이는 본체도 피해를 보는 건데 말이야.”
태창 원장도 이내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마주를 잃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앞으로 용마궁은 더는 대서미마주를 조종할 수 없으니 이 물건은 온전히 너의 것이란다.
“고마워요, 원장님!”
목진은 자신의 큰 우환을 해결해준 태창 원장과 장로들이 정말 고마웠다. 목진 혼자서는 절대 용마궁의 지존급 강자 여섯 명을 상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진이 말이 끝나자 태창 원장이 떠나려고 했다. 그때 목진이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령산에 가고 싶어요…….”
“성령산이라…….”
맥유 등은 흠칫하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북창령원은 북창대륙에서 막강한 존재지만 이곳의 최고 축제에 참석하지 않은 일로 여태껏 말이 많았다.
“너무 위험한 것 같구나.”
태창 원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자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역시 성령 세례는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이때, 태창 원장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뒷짐을 지며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정 가고 싶으면 한 달 내에 통천경에 이르거라.”
이에 화색이 되었던 목진은 바로 풀이 죽었다. 한 달 내에 통천경에 이르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목진은 옥탑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한 달 내에 통천경에 이르라는 태창 원장의 말에 도무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화천경 후기에 이른 목진이 통천경에 이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 수련해도 3개월은 더 걸려야 가능했다.
한 달은 턱도 없었다.
태창 원장의 조건이 비록 턱없이 보여도 성령산에 가는 사람들은 북창대륙의 최정예들이라 마룡자보다 강력한 상대가 수두룩했다. 목진이 화천경 후기의 실력으로 참석하면 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아도 영락없이 당할 것이다.
“도움을 구해야겠어.”
목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하더니 북창령원의 깊숙한 곳에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영계가 있는 곳이었다.
북창령원에서 목진과 친분이 있는 장로는 몇 명 없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영계였다. 두 사람이 비록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것은 아니지만 괜히 믿음이 갔다. 목진은 영계가 절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목진도 자신이 왜 영계를 이렇게까지 믿는지 몰랐지만 어머니와 관계가 있었다. 어머니를 그린 그림을 가진 영계는 분명 그녀와 관계가 있으리라.
그래서 영계가 자신을 도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낙리가 수련하러 떠나자 홀로 남겨진 그는 곧바로 영계한테 달려갔다.
어느덧 목진이 영계의 집에 도착하자 꼭 닫혔던 대문이 조용히 열렸다.
영계는 대나무 집 앞 계단에 앉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인기척에 고개를 들고 목진을 바라봤다.
새하얀 피부에 부드러워진 표정을 한 여인은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돌아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날 찾아온 거야? 무슨 일로 왔어?”
영계의 맑은 목소리가 더없이 듣기 좋았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몸 상태가 안 좋아 여태껏 몸을 추스르느라 못 왔어요.”
목진의 말에 영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정적이 흐르자 괜히 어색해진 목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진도는 고마웠어요. 이번에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
영계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쓸어내리더니 다시금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목진이 분명 원하는 바가 있어 자신을 찾아왔을 거라 생각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영계 때문에 괜히 부끄러워진 목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영계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내가 한 달 내에 통천경에 이를 수 있을까요?”
목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방법은 제외해줘요.”
이에 영계는 흠칫하더니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두 해가 걸려도 어려운 일을 한 달 내에 해내려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목진도 영계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지만 태창 원장이 준 시간이 한 달밖에 안 되어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목진은 자신이 통천경의 힘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바로 내쫓았을 영계는 이상하게 목진의 말은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영계 자신마저도 자신이 이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목진과 알고 지낸 지 두 달도 채 안 됐는데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설마 녀석이 대부도결을 수련해서일까? 아니면 자신한테 아주 중요한 여인이 녀석의 어머니라 그런 것일까?
이러한 생각에 영계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영계마저도 방법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난 이만 돌아갈게요.”
영계가 혼자 사는 집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실례라고 여긴 목진은 곧바로 돌아서려 했다.
“잠시만.”
그때, 영계가 입을 열었다.
“손을 줘.”
영계가 손을 내밀자 목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내주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영력 한 갈래만 방출해.”
영계가 나지막하게 하는 말에 목진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결국 그 말을 따랐다.
어느덧 흑염이 깃든 어두운 영력 한 줄기가 목진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자 영계도 자신의 영력 한 줄기를 방출했다.
영계의 영력은 비록 흑염이 깃들지는 않았지만 목진의 영력과 똑같은 색을 띠었다.
이에 목진은 흠칫 놀랐는데 영계가 자신처럼 대부도결을 수련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영력이 어우러지자 팽창하며 몇 배는 더 강력해졌다.
영계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영력 덩이가 바로 목진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부도결의 수련 통로를 따라 기해에 들어가더니 신백이 꿀꺽 삼켰고 목진은 순간 체내의 영력이 그윽해진 것을 느꼈다.
“이건…….”
목진이 화들짝 놀라 영계를 바라봤다. 왜 두 사람의 영력이 한데 모이면 이토록 신기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일전에는 영계의 영력으로 상처를 치유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영력으로 자신의 영력을 보강할 수도 있었다.
“나도 잘은 몰라.”
영계가 목진의 마음을 읽은 듯 답했다.
“우리 사이가 확실히 특별한 것 같네요.”
목진의 말에 영계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 그림 속 여인이 정녕 네 어머니라면 난 혹시 그녀가 생각해둔 네 아내가 아닐까?”
이에 목진은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전혀 웃기지 않아요.”
“그래?”
말을 마친 영계는 정원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며 목진에게 말을 건넸다.
“날 따라와. 우리 사이의 특수한 상황 덕분에 한 달 내에 통천경에 이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아.”
목진은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영계의 뒤를 따랐는데 얇은 천으로 가린 정원의 깊숙한 곳에 도착하자 영계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내가 들어오라고 할 때 들어와.”
영계가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지만 목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얇은 천 안쪽에는 맑은 못이 있었는데 영계는 담담하게 웃더니 서서히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웅장한 영력을 내뿜어 물속으로 불어넣었다.
“들어와.”
영계의 소환에 조심스럽게 들어간 목진은 물속에 앉아 있는 여인을 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력을 방출해 물은 어느새 어두운색을 띠었지만 수면 위에 노출된 상반신은 흠뻑 젖어 그대로 보였다.
안개가 은은하게 퍼졌으나 여인의 몸은 가려지지 않았다.
목진의 눈빛에 영계는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소년한테 물을 뿌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목진은 바로 눈길을 돌렸지만, 영계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물에 들어와서 내 영력을 흡수해.”
영계는 최대한 몸을 낮췄으나 물이 깊지 않아 몸을 전부 가리기는 힘들었고 그윽한 안개 때문에 차가운 얼굴이 불긋해졌다.
“눈 단속 잘해. 함부로 굴리면 당장 쫓아낼 거야.”
이에 목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속에 뛰어들었다. 그는 그 속에 깃든 순수한 영력에 흠칫 놀랐다.
영계는 체내의 영력을 물에 풀어 목진의 수련에 도움을 주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멍하니 물속을 바라보던 목진은 아름다운 여인의 몸에서 차마 눈을 뗄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영력을 희생해 목진을 돕는 영계가 걱정되었다. 이대로라면 목진의 수련은 훨씬 쉬워질 테지만 영계의 수련은 뒤처질 것이다. 이는 아무나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목진의 말에 영계도 의문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목진을 돕는지 몰랐다.
“나도 잘 몰라. 내가 해야 마땅한 일이라 돕는 거 아닐까?”
영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비록 기억은 잃었지만 느낌은 그대로 남아있어.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았어.”
어느새 수중에 들어가 자리 잡은 목진은 한참 생각하다가 웃으며 물었다.
“영계 누이라고 불러도 돼요?”
활짝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훤칠한 소년의 모습에 영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 묻힌 온정을 다시 느끼는 것 같아 어느새 미소를 지었다.
“영계 누이가 우리 어머니와 무슨 사이인지는 몰라도 내가 반드시 기억을 되찾아줄게요! 그리고 이런 몹쓸 짓을 한 사람이 누구든지 나도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목진의 확신에 가득 찬 말에 영계의 꽁꽁 얼어붙었던 심장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영계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져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그래, 동생. 대신 약속을 지키려면 아직 일러. 실력을 많이 키워야 해.”
“최선을 다할 거야.”
목진이 히쭉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그럼 수련을 시작하자.”
영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목진은 영계가 베푼 엄청난 은혜를 마음에 담고 서서히 눈을 감고 대부도결을 소환하였다. 물결이 일며 검은색 액체가 부단히 목진의 체내에 흘러들었다.
이것은 다름아닌 영계 체내의 영력이었다.
목진의 체내에 들어간 영계의 영력은 본체의 영력과 아우러져 짙은 흑망을 발산하며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목진의 영력은 순식간에 폭등하였다.
웅장한 영력이 경맥을 따라 신속히 움직이다가 결국 기해로 들어갔는데 그 속에 깃든 신백이 영력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주위에 흑광을 내뿜는 것이 아주 신비로워 보였다.
목진은 영력으로 몸이 한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만끽하며 끊임없이 영력을 흡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