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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58화 (257/1,000)

258화. 영기를 훔치다

생각을 정리한 목진은 다시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통천경 따위는 혼자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목진이 원래 모습을 되찾자 낙리도 흐뭇하게 웃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좋아하던 목진의 모습이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소년의 모습 말이다.

“낙리야.”

목진이 고개를 들어 낙신족의 차기 여황을 바라봤다.

검은색 치마를 입은 소녀의 옷깃에는 금색 꽃무늬가 수 놓아져 있었는데 더 존귀해 보이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왜 그래?”

“고마워, 그런데 더는 못 참겠어.”

목진은 씨익 웃더니 낙리를 덮쳤다.

“목진! 목진!”

그런데 이때, 누군가 집에 찾아와 목진을 애타게 불렀다.

이에 낙리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목진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정리하며 목진을 흘겨봤다.

“무슨 일이야?”

목진이 이를 갈며 문밖에 있는 주령을 노려봤는데 다짜고짜 들어오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방금 자신이 본 낙리의 모습을 주령이 봤다면 목진은 녀석을 죽였을지도 몰랐다.

“순아가 장로 한 분과 함께 널 찾아왔어.”

목진의 잔뜩 언짢아하는 표정에 주령은 괜히 억울했다.

이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순아와 함께 온 장로라면 영계밖에 없는데 이곳에는 왜 온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방금 말한 영계 누이야?”

어느새 안정을 되찾은 낙리가 목진을 흘겨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럼 나와 함께 가자. 사람이 왔다는데 보러 가야지?”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낙리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신생 구역의 광장으로 갔다. 광장 중심에 서 있는 영계를 몰래 바라보며 낙신회 회원들이 수군댔다.

“저렇게 젊은 여인이 북창령원의 장로라니, 거짓이 아닐까?”

“나이가 우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설마 촉천 장로처럼 얼굴을 바꾼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런데 목 형은 왜 찾아왔지? 설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너. 그러다 낙리 누이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 * *

사람들의 수군대는 말에 목진은 무안하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낙리와 함께 영계와 순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영계 누이, 신생 구역에는 왜 왔어요?”

그들이 다가가자 영계는 낙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왜 수련하러 오지 않는 거야?”

“누이,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여태껏 고마웠어요.”

목진이 진지하게 하는 말에 영계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너 혼자서는 어려울 거야. 내가 도와준다는데 왜 거절해? 혹시 나한테 피해가 갈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면 전혀 그럴 필요 없어. 수련이 한 달 정도 늦춰지는 것뿐이야.”

“이제 난 나 자신을 믿기로 했어요.”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말에 영계는 흠칫했다. 목진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그날 자신을 찾아왔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영계 누이, 나를 돕고 싶은 마음은 고마워요. 어머니 때문에 날 돕는다는 것도 잘 알아…….”

매사에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잔뜩 경계하는 영계가 자신을 돕는 이유가 어머니 때문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목진은 그녀가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까지 돕는 것을 절대 원치 않았다.

“내 의견을 무조건 따르지는 마. 어머니께서 내가 이런 방법으로 힘을 얻은 걸 알면 분명 실망하실 거야. 그리고…….”

목진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누이가 허약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럼 안 예쁘잖아…….”

이에 영계는 흠칫하며 훤칠하게 생긴 소년을 바라봤다. 활짝 웃는 소년의 얼굴에 꽁꽁 얼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영계는 한참 생각하더니 결국 웃음을 보였는데 학생들은 그 모습에 멍하니 소녀 장로를 바라봤다. 낙리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그때, 영계가 다가가 목진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역시 이모의 아들이라 그런지 대단해. 오늘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는 온전히 너란 사람 때문이야.”

이에 목진은 괜히 어색해하며 웃었다.

“강요는 하지 않을게. 나도 네가 할 수 있을 거라 믿어. 대신 나한테 와서 수련해. 내가 다른 방식으로 도울게.”

그제야 시름을 놓은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 *

북창령원의 중심에 있는 대전에서 태창 원장과 천석 장로 다섯 명이 영력 광막을 통하여 신생 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지켜봤다.

태창 원장 등은 숨죽여 영력 광막을 지켜봤다. 그는 신생 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부 꿰뚫고 있었다.

“녀석…….”

영력 광막 속 목진을 지켜보던 태창 원창은 한시름 놓은 듯 가볍게 웃었다.

목진과 거래를 한 뒤로 태창 원장은 몰래 녀석을 관찰하고 있었다. 다만, 목진의 현재 실력으로는 한 달 내에 통천경에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여 애간장이 탈 수밖에 없었는데 태창 원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녀석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그는 목진이 영계를 찾아갈 줄은 몰랐고 그녀가 제시한 수련 방식에 가슴이 철렁했다.

진정한 강자가 되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고 끝까지 간 사람 중 어느 하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영계의 영력을 빌려 수련하는 방법은 기로에 이른 거나 마찬가지로 짧은 시간 내에 실력이 폭등하기는 하겠지만 결국 목진이 진정한 강자에 이르는 길에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맥유 등이 나서서 목진을 타이르려 했지만 태창 원장이 막아섰다. 만약 목진 스스로 잘못을 깨달으면 녀석한테 큰 도움이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목진이 이 엄청난 유혹을 물리치고 이러한 수련 방식을 끝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는 너무 쉽고 빠르게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길이라 유혹이 엄청났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나 목진의 실력은 폭등했지만 태창 원장과 천석 장로들의 실망은 점차 커졌다.

만약 목진이 보통의 학생이었으면 이들도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심창생을 뛰어넘고 북창령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여태껏 천방 1위를 했던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녀석이었다. 그래서 올바른 길로만 들어선다면 분명 더 좋은 성과를 거둘 거라 여겼다.

이에 목진에게 거는 기대가 엄청났는데 녀석의 수련 방식 때문에 그 기대감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이틀 전, 목진이 갑자기 수련을 멈췄으니……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려울 텐데 예상 밖이네요.”

맥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목진이 원래 방식대로 며칠만 더 수련하면 분명 통천경에 이르렀을 것인데 가장 중요한 시기에 수련을 멈출 줄은 아무도 몰랐다.

“영계도 참, 어찌 그런 방식을 사용할 생각을 했을까요? 목진과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촉천 장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계의 방식은 목진의 수련에 안 좋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한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 일에는 참견하지 않고 북창령원의 일에도 태창 원장이 직접 나서야 겨우 들어주던 영계가 왜 이러는지 다들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태창 원장은 영계의 출신이 신비롭긴 하나 북창령원에 해로운 것은 아니란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영계는 실력이 막강하나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 경험이 부족한 것 같네. 그러니 이번 일은 그냥 넘기고 목진을 계속 그쪽에 보냅시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네.”

“그러다 목진이 정말 통천경에 이르면 성령산에 보내실 건가요?”

맥유의 질문에 촉천 장로가 걱정되어 말했다.

“통천경 초기의 실력은 북창대륙의 최정예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커요. 비록 목진한테 여러 수단과 방법이 있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해요. 반년 뒤, 학원 대회가 열릴 텐데 목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북창령원에 큰 손해이지 않을까요?”

촉천 장로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최근 두 번 열린 학원 대회에서 북창령원의 탈락률이 8할도 넘는데 올해까지 계속되면 우리는 오대원에서 방출될지도 몰라요. 우리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학원은 성령원 뿐만이 아니지 않나요?”

이에 다른 장로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오대원 중 가장 늦게 설립된 북창령원은 북명룡곤이 아니었으면 그 속에 들지도 못 했을 거라 학생들의 실력 미달로 오대원의 호칭을 빼앗겨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원에서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난 학생을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영로에까지 발을 뻗었다고 들었어요. 그해, 기현을 들이고 싶어 녀석을 몰래 도운 탓에 낙리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고 목진도 영로에서 쫓겨났죠.”

맥유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성령원에 불만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심창생 등도 앞길이 창창한데 마룡자 때문에 입은 타격이 큰 것 같네요.”

이에 태창 원장이 손을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심창생 등은 따로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목진이 남은 시간 내에 통천경에 이를 수 있는지부터 지켜봅시다. 이 아이들한테 조금만 시간을 주면 분명 대성할 거예요.”

태창 원장의 말에 맥유 등은 동의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목진을 기다리던 영계는 녀석의 방문에 이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오지 않을 줄 알았어.”

“미안. 이번 일은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목진이 고개를 긁적이며 하는 말에 영계도 미안한 듯 말했다.

“내가 비록 경험이 부족하긴 해도 오랜 시간 수련한 북창령원의 천석 장로와 실력이 비슷한데 그런 방법으로 수련하면 너한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거란 걸 뒤늦게 발견해서 미안해.”

이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북창령원에 온 뒤로 실력이 너무 빨리 늘었고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 이기며 조금은 오만해졌는데 이번 일로 다시 본심을 되찾은 것 같아 오히려 좋았다.

“내가 최선을 다해 도울게. 대신 다시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거야.”

영계가 웃으며 하는 말에 목진도 이내 미소를 지었다.

“영력 융합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방식도 꽤 괜찮았던 것 같아요.”

목진의 말에 흠칫 놀란 영계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감히 누이를 놀리는 거야?”

“미안, 농담이야.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목진의 말에 영계는 녀석을 흘겨보더니 뒷산으로 향했고 일각이 지나 텅 빈 곳에 멈춰 섰다.

은은하게 일그러진 하늘에 광선들이 얽혀있었는데 그 속에서 영진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곳 영기는…….”

목진이 흠칫 놀라 영계를 바라봤다.

“북창령원에 8급 취영진이 있는 건 알지?”

영계가 미소를 지으며 묻는 말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8급 취영진은 북창대륙에서 한 개만 있을 정도로 아주 무서운 존재라 북창령원에서 학생들이 접할 수 없게 숨겨뒀다.

“북창령원의 천지 영기는 이 8급 취영진이 공급하고 있어. 이는 북창령원의 근본으로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지. 일반적인 상황에서 절대 사람들한테 개방하지 않아.”

영계의 말에 목진은 그제야 북창령원에 들어온 뒤로 8급 취영진에 대해 한 번도 들은 적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여긴…….”

목진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영계를 바라봤다. 영계가 갑자기 왜 8급 취영진을 언급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외로 개방하지는 않지만…… 내가 손을 써서 영기를 일부 훔쳐 올 수는 있어.”

영계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목진이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창령원에 있으면서 지금껏 8급 취영진에 대해 연구했는데 완벽히 꿰뚫을 수는 없지만, 영기를 일부 훔치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야.”

영계가 뒷짐을 쥐고 목진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이 방법까지 반대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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