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북창문
목진의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현장을 바라봤다. 살기가 가득하고 무서운 파동을 발산하는 마주 밑에 깔린 세 영우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대결은 예상외로 너무 빨리 끝났다.
치열한 싸움을 예상한 사람들은 목진이 마주로 바로 영우들을 제압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멍하니 균열이 생긴 대지를 바라봤다.
통천경 후기에 이르는 실력자 세 명을 이토록 손쉽게 해결하다니, 다들 아직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엄청난 실력자야!”
마주의 가장 위쪽에 서 있는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들의 눈빛이 자못 달라졌다.
“목 형은 역시 대단해.”
낙신회 회원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환호했다. 한순간에 영우 3구를 진압하는 것은 절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낙리 역시 흐뭇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고 소령아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제야 남녀 사이에 대해 조금 깨우친 소령아한테 오늘 일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목진을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옆에 서 있던 소훤이 피식 웃으며 묻자 소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낙리를 보더니 입을 삐쭉 내밀었다. 낙리와 비교하면 자신은 전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백헌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웠던 녀석이 지금은 통천경 후기의 실력을 갖춘 영우 3구를 손쉽게 해결하다니, 대단하긴 해.”
소훤마저도 실력이 폭등한 목진을 보며 감탄했다.
“지금의 목진은 천방 패주가 될 자격이 충분한 것 같은데 왜 제일의 자리에 오르지 않는 걸까요? 그럼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제일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소령아가 어리둥절하여 한 질문에 소훤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목진은 천방 패주 따위에는 관심 없어. 그리고 심창생의 자리를 빼앗고도 싶지 않을 거야. 목진이나 심창생 같은 훌륭한 남자들에게는 서로를 아끼는 미묘한 감정이 존재하니까.”
소령아는 소훤의 말에 동의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심창생과 이현통의 안색은 조금 복잡해졌다.
“이번에 확실히 우리를 뛰어넘은 것 같군.”
심창생이 길게 숨을 내뱉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이현통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었다면 형령전우 3구를 상대로 처참하게 패배했을 것이다. 이제 천방 패주의 자리를 양보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현통 역시 신생한테 자리를 빼앗길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라질 줄은 몰랐기에 마음이 복잡미묘했다.
“난 절대 이렇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심창생이 담담하게 웃더니 멀리 떨어진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천방 패주의 자리를 내주는 것은 절대 심창생 답지 않았다.
이에 이현통도 심창생의 말에 동의하듯 미소를 지었다.
한편, 태창 원장 등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목진을 바라봤다. 이들 중 아무도 녀석이 이렇게 쉽게 시험을 통과할 줄은 몰랐다.
“축하한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을 통화했으니 넌 우리 북창령원을 대표해 성령산에 가서 북창대륙의 훌륭한 젊은이들과 대결을 펼치게 될 것이다.”
태창 원장이 목진을 한참 노려보다 끝내 웃으며 건넨 말에 주위가 순간 들끓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북창령원은 드디어 성령산에 참가하게 되었다.
“목형, 힘내요. 당신은 분명 모든 사람을 꺾고 북창령원을 위해 명예를 떨칠 수 있을 거예요!”
“목진아, 선배들은 네 편이야!”
“북창령원의 명성은 너한테 달렸어!”
* * *
학생들이 흥분해 건넨 말에 태창 원장은 미소 짓다가 안색이 썩 좋지 않은 학요 등에게 눈길을 돌렸다. 한때 북창령원의 유명인사였던 이들은 목진 때문에 점차 희망의 빛을 잃었으니, 심창생과 이현통 외에 나머지는 타격이 큰 모양이었다.
그때, 태창 원장은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뒷짐을 쥔 채 말했다.
“북창령원이 어떤 상황인지 아는 사람이 있느냐?”
태창 원장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학생들은 어리둥절하였다.
“북창령원은 여러 차례의 학원 대회에서 오대원 중 최하위였고 기타 우수한 령원보다도 못하다. 올해까지 성적이 그대로라면 아마 오대원에서 제명될 것이다.”
태창 원장의 말에 학생들은 화들짝 놀랐다. 언젠가 오대원 중 하나인 북창령원의 학생이라고 으쓱했던 이들은 자신의 실력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너희가 훌륭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절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느라 다른 학생들을 홀대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북창령원의 학생이 된 이상, 전부 평등한 위치에서 대접받는데 이 또한 우리가 다른 학원보다 뒤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창 원장의 말에 학생들은 자연스레 숙연해졌다.
“북창령원은 분명 너희 정착지가 아닐 것이다. 너희는 이곳에 잠시 머물러 수련하다가 언젠가 떠날 테지만, 누구든 북창령원의 학생이었음에 부끄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을 겪든 북창령원은 영원히 너희 편이라는 점을 잊지 말거라.”
북창령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학생과 선생, 심지어 장로들도 허공에 떠 있는 태창 원장을 우러러봤으니, 원장은 그야말로 북창령원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였다.
소녀들은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져 위대한 수장을 우러러봤고 목진도 멍하니 태창 원장을 바라보고 씨익 웃었다. 그는 북창령원에 든 것이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당신의 뒷배가 되어주겠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북창령원은 너희에게 힘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정신을 가르쳐주고자 한다는 걸 명심하거라. 올해를 계기로 북창령원이 더는 오대원 중 하나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절대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을 쓰윽 훑은 태창 원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학요 등 북창령원 정예들의 어두워졌던 안색이 다시금 밝아졌다.
잇따라 뇌명 같은 박수 소리가 들리며 학생들은 잔뜩 흥분해 태창 원장을 바라봤다.
평소 엄숙하던 원장의 예상 밖의 발언에 심창생과 이현통도 씨익 웃더니 앞으로 나아가 말을 건넸다.
“원장님…….”
심창생이 웃으며 태창 원장을 바라봤다.
“우리도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대신 원장님께서도 우리를 믿어주세요. 우리는 북창령원을 사랑하고 이를 위해 싸우고 싶은 거라 도움이 필요해요.”
“어떤 도움을 말하는 것이냐?”
태창 원장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다시 북창문을 여는 건 어떨까요?”
덩치가 큰 심창생은 오늘따라 더 우람차고 방대해 보였다.
“북창문이라…….”
심창생의 말에 태창 원장과 장로들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심창생이 이런 요구할 줄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북창문은 북창령원의 최후의 수련지이긴 하나 사망률이 너무 높아 폐쇄했던 곳이었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수련을 하지 못한 학생들은 수련 속도가 느려졌고 그 탓에 오대원에서 방출될 수도 있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다른 학원에서 최고의 인재를 빼앗기 위해 특수한 조치를 한 것과 북창문의 폐쇄가 북창령원의 하락세를 부추긴 원인이었다.
사실 북창대륙에 이름을 알린 학원이라면 최종 수련지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최정예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아주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목진도 심창생의 말에 흠칫 놀랐다. 북창령원에 들어온 지 1년이나 지났지만, 그는 북창문에 대해 처음 들었다. 게다가 태창 원장 등의 표정에서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북창문은 너무 위험한 것 같구나.”
태창 원장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원장님, 그럼…….”
심창생이 담담하게 웃으며 태창 원장을 바라봤다.
“강자가 되는 길은 평탄하던가요?”
이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고 학생들은 심창생을 우러러봤다. 실력으로만 보면 목진이 곧 심창생을 뛰어넘을지도 모르지만 학생들 마음속 패주는 역시 심창생이었다.
그때 목진이 심창생을 향해 엄지를 척 내밀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한테 한 수 배웠구나.”
태창 원장이 무안한 듯 웃으며 건넨 말에 촉천 장로 등도 가볍게 웃었다.
“북창문을 폐쇄한 뒤로 고칠 곳이 많아 우리가 최선을 다해 손보긴 했다만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란다.”
태창 원장은 심창생을 보고 웃으며 손을 저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북창문은 다시 열겠다. 대신 그곳에는 천방 10위권만 들일 것이고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태창 원장의 말에 심창생은 한시름 놓은 듯 호탕하게 웃었다.
“북창문에 들어갈 것을 신청합니다.”
“나도 들어갈 거예요.”
이현통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갈게요!”
멀지 않은 곳에서 심창생과 이현통을 지켜보던 학요도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섰다. 소훤도 잠시 녀석한테 눈길을 돌렸지만 수렵전에서 있었던 일로 더는 학요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학요도 그날 일을 더없이 후회하였다. 그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인을 다치게 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목진을 이기고 싶은 마음에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자신이 미웠다.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은 감명 깊게 들었어요. 저도 북창령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워보고 싶어요. 북창문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른 학원의 천재들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학요가 씁쓸하게 웃으며 소훤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나 소훤은 신경 쓰지 않았고 대신 학요를 좋아하는 다른 여인들이 화색이 되어 학요를 바라봤다.
“형님, 멋져요!”
요문 회원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음산한 기운을 풍기던 것과 달리 의기양양한 학요의 말에 덩달아 흥분한 이들은 그제야 기가 사는 것 같았다.
“어쩌다 올바른 선택을 했네요.”
소령아도 조금 놀란 듯 소훤에게 속삭였다.
이에 소훤이 학요를 쓰윽 훑었는데 음산한 기운이 가신 것이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소훤의 눈길에 학요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심창생, 이현통, 학요의 선택으로 북창령원 학생들은 흥분으로 들끓었고, 하루라도 빨리 천방 10위권에 들어 북창문에 들어가고 싶었다.
서황도 피식 웃더니 북창령원의 일원으로서 잠자코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서청청 등의 주시하에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쪽에 서 있던 조청삼과 모풍양도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묵묵히 앞으로 나섰다.
천방 10위권에서 목진, 낙리와 소훤을 제외한 7명이 전부 나선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피가 끓어올랐다.
평소 원내에서 서로 관계가 썩 좋진 않았지만 북창령원의 명성이 걸린 문제에 똘똘 뭉친 모습을 보니 다들 기분이 좋았다.
이에 태창 원장과 장로들은 서로 마주 보며 씁쓸하게 웃었는데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학생들이 스스로 북창령원을 위해 싸우겠다고 나선 것은 이들이 스승으로서 성공했다는 말과 같았다.
“사흘 뒤, 우리는 목진과 함께 성령산에 갈 것이고 이번 일만 제대로 마무리하면 다시 북창문을 열겠다!”
태창 원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말하자 학생들은 하늘이 떠나가라 환호했다. 북창령원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누구 하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광경에 목진은 묵묵히 주먹을 쥐며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그 시작은 다름 아닌 성령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