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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62화 (261/1,000)

262화. 출발

어두운 대전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던 흑룡지존이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들어 대전의 가장 음침한 곳을 바라봤다.

“올해는 북창령원에서도 성령산에 갈 것이네. 참가자는 바로 대서미마주를 지닌 목진이라네.”

“북창령원에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을 보내기로 했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

어둠 속에서 음산한 빛을 발산하며 누군가 나타나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야 좋지 않은가? 대신 계획을 잘 세워야 할 걸세. 여태껏 참았으니 분풀이할 때도 되지 않았나?”

흑룡지존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북창령원를 지키고 있는 새가 가장 큰 문젯거리니 제대로 준비해야 할 걸세.”

다른 한구석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말게. 녀석을 상대할 사람은 따로 있다네.”

흑룡지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북창 대륙의 최강자는 역시 용마궁이란 걸 제대로 보여줄 걸세!”

“이번 기회에 반드시 용마궁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대서미마주를 빼앗아야 한다네.”

누군가의 말에 흑룡지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녀석이 제 발로 성령산에 간다니 정말 다행이 아닌가…….”

흑룡지존이 말을 마치자마자 옷깃을 휘날렸는데, 대전의 한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공간 통로를 만들었다. 그 속에서 수많은 악귀가 고함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서서히 걸어 나왔다.

생기가 돌지 않는 회흑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은 등에 검은색 장창을 메고 있었는데 그 속에서 귀청을 찢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형천아, 사흘 뒤에 성령산에 가거라. 이번 임무는 북창령원의 목진을 죽이고 녀석한테서 빼앗긴 대서미마주를 돌려받는 것이다!”

흑룡지존이 소년에게 말을 건네자 녀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그곳을 떠났다.

무뚝뚝한 소년한테서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파동이 퍼져 나왔다.

* * *

사흘이 지나서야 떠들썩했던 북창령원은 다시 조용해졌는데 원내 분위기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파벌 문제 때문에 눈치 싸움이 잦았던 학생들은 반년 뒤에 있을 학원 대회를 앞두고 각자 수련하기 바빴고, 태창 원장에게 북창령원의 형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로는 오대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천방 10위에 근접한 학생들은 북창문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북창문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잘 알면서도 두려워 물러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목진은 북창대륙의 최대 관심사인 성령산에 갈 때가 되었다.

“가자.”

목진이 준비를 마치고 옆에 있던 낙리에게 말을 건넸다. 성령산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목진 한 명뿐이지만 낙리가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그러기로 하였다. 좀 더 오래 낙리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목진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이에 낙리도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진과 함께 북창령원의 중심에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대전에 도착한 목진은 태창 원장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여인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하얀색 치마를 입은 냉미녀는 다름 아닌 영계였다.

영계는 북창령원의 장로이긴 하나 이곳 일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나타난 것이 무척 놀라웠다.

목진의 놀란 표정에 영계가 씨익 웃었는데 한기가 가신 여인의 모습을 보고 장로들은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과 말도 잘 섞지 않는 영계가 목진을 보고 웃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나도 너희와 함께 성령산에 갈 거야.”

“영계 장로의 실력이 엄청나니 안전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영계의 말에 태창 원장은 담담히 웃었지만 그녀의 말이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북창령원이 없어진다고 해도 표정 하나 변치 않을 영계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분명 목진을 보호하려는 뜻이 분명했다.

이에 원장은 두 사람의 관계가 분명 특별할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묵묵히 목진만을 바라봤다. 실력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따르면 학생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으니 나쁠 건 없었다.

태창 원장의 기괴한 눈빛에 목진은 조금 언짢아 낙리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영계를 보며 웃던 소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인기가 상당한걸.”

괜히 머쓱해진 목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누이는 단순히 걱정돼서 저러는 거야.”

“이제 떠나자꾸나.”

그때, 태창 원장이 두 사람의 대화를 끊고 출발하자 맥유와 촉천 장로가 뒤를 따랐다. 성령산에 가는 일은 북창령원의 거사 중 하나라 원장 외에 천석 장로 두 분도 동행하기로 했다.

“너희는 나와 함께 가자. 안 그럼 저들을 따라가기 어려울 거야.”

영계가 생긋 웃으며 목진과 낙리에게 다가가더니 나침반처럼 생긴 물체를 소환했다.

“그럼 잘 부탁해요, 영계 장로.”

낙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으면 나를 영계 언니라고 불러. 언젠가 내가 이모를 만나면 너에 대해서도 잘 말해줄게.”

낙리를 쓰윽 훑은 영계는 외모와 실력을 갖춘 소녀를 보고는 목진이 마음을 준 것이 금세 이해가 되었다.

이에 낙리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목진에게서 영계와의 일을 전해 들은 낙리는 그녀가 말하는 이모가 목진의 어머니를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계 언니.”

낙리는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목진을 보호하려는 영계의 마음을 알자 괜히 가까이하고 싶었다.

영계도 그제야 활짝 웃으며 낙리의 손을 잡고 나침반처럼 생긴 광권에 올라탔고, 목진도 바로 뛰어올랐다.

학생들도 목진이 오늘 북창령원을 떠나 성령산에 가는 것을 알고 주위에 모여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심창생과 이현통이 날아와 웃으며 말했다.

“목진, 북창령원을 잘 부탁해!”

목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북창령원의 천방 1, 2위인 심창생과 이현통이 성령산에 가야 마땅하지만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북창대륙의 다른 젊은이들과 실력 차이가 나는 목진에게 짐을 떠넘길 수밖에 없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진심으로 목진이 좋은 성적을 따내길 바랐다.

이는 북창령원의 체면이 걸린 일이었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 성령산에서 일어나는 일은 북창령원에서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 이곳에 남은 학생들은 너를 위해 응원할 것이다.”

태창 원장의 말에 목진은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북창령원 학생들 앞에서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 갈까?”

태창 원장이 말을 마치고 옷깃을 휘날리자 천지의 영기가 들끓었고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커다란 공간 통로가 만들어졌다.

태창 원장 등이 먼저 통로로 들어서자 파동이 사라지며 하늘은 다시금 고요해졌다.

“목진이 이번에는 우리를 어떻게 놀라게 할지 궁금하군.”

“북창대륙 젊은이 중 최정예들은 곧 지존경에 이른다고 들었는데…….”

심창생이 웃으며 말하자 이현통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목진이 상대하기에 확실히 어렵긴 하겠군.”

“그렇다고 바로 포기할 녀석이 아니지.”

이현통이 갑자기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 공격도 겨우 받아내던 녀석이 1년도 안 된 사이에 벌써 우리를 뛰어넘으려 하다니.”

녀석의 말에 심창생도 피식 웃으며 목진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목진, 네가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보자꾸나! 네가 다시 돌아오면 천방의 패주는 너의 것이겠구나.’

북창대륙의 중심에 있는 성령산은 명성이 자자한 성령역에 속해있었다.

상고 때부터 존재한 성령산은 처음부터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천지존 한 분이 이곳에서 별세한 뒤로 특수하고 강력한 힘으로 외부와 단절되었고 무서운 천지의 영기가 주위를 휘감아 아무나 감히 뛰어들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그런데 그 힘이 몇 년 만에 한 번씩 약해질 때가 있었다. 그때가 바로 북창대륙의 젊은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였다.

게다가 곧 지존경에 이를 사람들이 성령 세례란 엄청난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지존경이 되어야만 비로소 강자라 불리는 곳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이는 없었다.

하여 북창대륙의 수많은 세력에서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모여들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는 곧 북창대륙 젊은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최고의 대결이었다.

* * *

어느덧 반나절이 지나 목진 등은 성령역에 도착해 성령성으로 향했는데 빠른 속도에 소년은 깜짝 놀랐다. 이는 지존경인 태창 원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목진이었다면 적어도 하루는 걸려야 했을 것이다.

성령산 아래쪽에 있는 성령성은 오래된 곳으로 어떠한 세력에도 의지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곳이었다. 성령 세례 때문에 다른 세력들이 불만을 가지면 성령성을 부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성령성은 어느 때보다 떠들썩했다. 이곳에 모인 수많은 세력과 강자들 중에는 홀로 대천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강대한 세력과 성령 세례를 다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 걸 알았지만 그 유혹에 못 이겨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썼다.

지존경에 이르기 위해 거처야 하는 육신난, 영력난, 신백난 등 삼난을 해결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목숨까지 잃고 신백까지 사라지는데 이에 비하면 다른 세력과 다투는 일은 훨씬 수월했다.

수많은 실력자가 지존경 바로 전 단계에서 숨졌는지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목진 등이 성령성에 도착하자 도성 뒤쪽에 그윽한 영무에 가려진 우뚝 솟아오른 산맥이 어렴풋이 보였다. 영력이 소름 끼칠 정도로 많아 뇌명이 계속 울리는 것만 같았다.

목진은 영무 속에 모습을 감춘 산맥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저곳이 바로 성령산이란다.”

태창 원장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지존경에 이른 사람은 저 구역을 가까이하지조차 못한다. 이는 천지존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영력 위압감 때문인데 지존경부터 감지할 수 있어 너희만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천지존의 위력일 지도 모르겠구나.”

태창 원장이 감탄하며 말했다. 자신도 비록 지존경에 이르렀지만 지존 중 최강인 천지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에 목진도 자못 놀랐다. 죽으면서 남긴 위압감만으로도 태창 원장 같은 실력자를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다니, 천지존이란 역시 엄청난 존재였다.

“성령산이 가까워 보여도 이곳과 차단된 공간에 있어 일정한 시간이 되어야 조금이나마 균열을 이뤄 그 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올해 성령산에 들어갈 수 있는 시일은 사흘 뒤라 우리는 그저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

태창 원장의 말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성령각(聖靈閣)부터 가자꾸나. 북창대륙의 제일가는 세력이 모이는 곳이니 실력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태창 원장이 말을 마치고 도성에서 가장 높게 지은 곳으로 향하자 목진 등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부단히 성령성으로 몰려들었다. 그중 절대다수는 실력이 상당했고 이를 확인한 목진은 흠칫 놀랐다. 이곳에 비하면 백룡성과 서황성은 새 발의 피였다.

성령각에 도착한 태창 원장은 최상층에서 익숙한 파동을 읽고 고개를 들었다. 북창대륙 각지에 있던 노인네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목진, 난 잠시 지인을 만나고 올 테니 너희 셋은 이곳에서 잠시 쉬고 있거라.”

목진 등과 함께 성령각에 들어온 태창 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가장 위층을 바라봤다. 북창대륙의 한쪽을 책임진 패주들이 자리한 것으로 보아 목진 등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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