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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63화 (262/1,000)

263화. 성령각

태창 원장은 맥유, 촉천 장로와 함께 최상층으로 올라갔고 태창 원장과 실력이 비슷한 수비들은 기꺼이 자리를 내주며 몸을 낮춰 인사를 올렸다.

“우리도 자리를 찾아 앉죠.”

목진이 낙리와 영계를 보며 방긋 웃더니 창가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곳은 이곳에 모인 세력과 실력자들을 관찰하기에 좋은 자리였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다른 이들도 부단히 목진 일행을 훑었다. 절세의 미모에 남다른 기품이 흐르는 낙리와 냉미인 영계의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두 여인을 농락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것이기 때문에 다들 목진 등의 신분을 짐작만 했다.

그러나 낙리와 영계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웃으며 목진과 담소를 나눴다. 이로 인해 목진을 질투하는 사람들만 늘어났다.

반면, 목진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때 갑자기 문 쪽에서 소동이 일었고 고개를 돌리자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색 갑옷을 입은 소녀는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몸매를 가진 불같은 여인이었다.

목진마저도 소녀한테 눈길이 갔는데 옆에 앉은 낙리를 힐끗 보고는 바로 눈길을 거뒀다.

이에 낙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정작 옆에 앉아있던 영계가 멍하니 소녀를 바라봤다.

곧 여인의 정체를 알아챈 사람들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실력과 뒷배가 얼마나 엄청난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주위를 쓰윽 훑고 떠나려다가 누군가를 보고 이내 화색이 되었다.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눈길에 목진은 흠칫 놀랐는데, 그녀는 성큼 뛰어와 입을 열었다.

“영계 언니, 여긴 왜 왔어요?”

“영계 언니?”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불같은 미녀의 모습에 흠칫 놀란 목진은 소녀가 영계를 부르는 소리에 다시금 놀랐다. 소녀가 영계와 친분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에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영계를 바라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소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는 구하상회 주인의 큰 딸, 하유연(夏悠然)이야.”

목진은 그제야 두 눈이 휘둥그레져 소녀를 바라봤다. 북창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소녀의 실력은 절대 마룡자에 뒤지지 않았다.

“영계 언니, 오랜만이에요. 언니가 올 줄은 몰랐네요. 북창령원에서도 올해는 성령산에 참석하나 보네요?”

소녀는 영계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 신기한 듯 활짝 웃으며 물었다.

“얘가 참석하는데 함께 왔어.”

영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목진을 가리키자 하유연은 고개를 돌려 녀석을 쓰윽 훑더니 통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소년의 실력에 놀랐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이 성령산에 오다니 도무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안녕, 난 하유연이라고 해. 네 선배라고 해도 될걸?”

그러나 소녀는 이런 생각은 드러내지 않고 생긋 웃으며 말했다.

“선배요?”

하유연이 북창령원의 학생이라도 되나 싶어 목진은 소녀를 빤히 바라봤다.

“여러 해 전에 북창령원에 잠시 머물렀는데 상회 일 때문에 다시 돌아갔어. 엄격히 말하면 네 선배야.”

영계의 말에 목진은 방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하 선배, 안녕하세요? 목진이라고 해요.”

“낙리에요.”

옆에 있던 낙리도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목진이라고?”

하유연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목진을 보더니 조금은 놀란 듯 물었다.

“설마 서황성에서 마룡자와 싸워 이긴 그 목진이야?”

이에 목진은 머쓱하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일이 벌써 이렇게 널리 퍼졌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하유연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창대륙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세력에 속하는 구하상회의 정보력은 엄청 났기에 하유연이 서황성에서의 일을 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화천경 후기의 실력으로 통천경 후기의 마룡자와 싸워 이겼다는 걸 알고 구하상회의 장로들도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엄청난데도 목진이 도대체 어떻게 이겼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눈앞에 서 있는 목진은 그때보다 실력이 더 늘었으니, 녀석의 비범한 수법까지 더하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또한, 북창령원에서 수련한 적이 있는 하유연은 북창령원이 드디어 성령산에 온 것이 진심으로 기뻤다.

“드디어 실물을 보는구나.”

하유연이 목진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성령산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날 찾아. 내가 널 지켜줄게.”

이에 목진도 가볍게 웃으며 소녀와 손을 잡았다.

“영계 언니, 이번에 언니까지 올 줄은 몰랐네요. 여태껏 북창령원 일에는 나서지 않았잖아요.”

하유연의 쾌활한 성격 덕분에 그들은 곧바로 친해져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영계도 차가운 얼굴을 거두고 흐뭇하게 소녀를 바라봤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는 곳은 자연스레 이목을 끌었는데 다들 금세 하유연을 알아보고 눈길을 거뒀다. 북창대륙의 젊은이 중 하유연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구하상회 주인의 딸이란 신분만으로도 그녀를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유연 덕분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옆에 앉아있는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서황성 사건으로 북창대륙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그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 사람들 북창령원 사람들이지?”

“여태껏 얼굴을 비추지 않던 북창령원에서 감히 성령산에 오다니, 학생이 또 죽을까 봐 걱정도 안 되나?”

“저 소년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목진이라고 서황성에서 용마궁의 마룡자를 때려눕혔다고 들었어.”

“그럴만한 실력을 갖추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마룡자는 통천경 후기에 이르지 않았나?”

“그러니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거야. 북창령원에서 저 녀석을 내세운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학생들을 지극하게 생각하는 북창령원에서 무턱대고 사람을 이곳에 보냈을까?”

“진정한 실력은 성령산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

* * *

사람들이 수군댈 때, 병풍에 가려진 곳에서도 누군가 목진 일행을 지켜봤다. 그는 하유연이 나타났음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저 녀석이 마룡자와 싸워 이겼단 말인가?”

회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수중의 찻잔을 돌리며 담담하게 웃었다.

“그렇다고 들었네.”

회색 도포를 입은 사내 옆에 앉은 노란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소년이 마땅치 않은 건가? 참, 당신이 하유연의 명의상 약혼남인데 저 녀석이 감히 그 옆에 앉다니. 언짢을 만하겠군.”

“언짢은 건 확실하네.”

회색 도포의 사내가 담담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북창대륙의 삼대 상회 중 하나인 암영상회(暗影商會)의 차기 주인으로 하유연과 혼약을 맺었다. 비록 하유연은 혼약을 승낙하지 않았지만 소유욕이 엄청난 사내는 자기 여인이 이름 모를 소년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내키지 않으면 혼내주면 되지 않나? 통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녀석이니 상대하기 쉬울 걸세.”

노란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동연(董淵), 내가 당신 꾀에 넘어갈 것 같소?”

회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무덤덤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녀석의 실력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북창령원의 학생인 이상 함부로 건드릴 수야 없지. 암영상회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북창령원의 상대는 아니라네.”

사람들이 북창령원에서 성령산에 참석하지 않은 일로 아무리 수군대도 북창 대륙에서 어마어마한 세력을 지닌 학원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이와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은 용마궁 뿐이라 이런 상황에서 목진을 건드리는 것은 더없이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성령산에 들어가면 달라진다. 그곳에서 녀석이 죽어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는데, 올해 이곳에 모인 사람은 훨씬 많아진 것 같군.”

유영(柳影)이 씁쓸하게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용마궁의 마형천, 서극전의 서청해, 현음산(玄陰山)의 주선(周宣), 천정성종의 소불후, 하유연과 천원 상회의 차기 주인인 당신까지 있으니 성령 세례를 받기란 절대 쉽지 않을 걸세.”

“그래도 난 절대 포기하지 않겠네.”

삼대 상회 중 하나인 천원상회의 차기 주인인 동연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육신난마저도 힘든데 아무런 보장도 없이 영력난에 뛰어들고 싶지 않네. 그러니까 난 어떻게든 성령 세례를 받을 걸세.”

이에 유영이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몰려드는 위험한 파동에 흠칫 놀랐다.

“뭐지?”

동연도 순간 정색하며 대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녀석이 왔군.”

음산한 기운이 물결처럼 퍼져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흠칫하며 대문 쪽을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 귀신처럼 나타났다.

아무도 녀석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는지 알지 못했다.

특별할 것 없는 옷차림에 평범한 얼굴을 한 녀석은 생기 없이 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더없이 평범해 보이는 녀석을 사람들은 잔뜩 경계하였고 두려워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녀석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듯 주위를 쓰윽 훑더니 목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목진 일행 앞에 멈춰서서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이에 목진도 잔뜩 긴장하며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다. 상대방에게서 아주 위험한 느낌을 받았는데 마룡자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대충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낙리도 장검을 꼭 쥔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바로 검을 뺄 작정이었다.

“마형천, 뭘 하려는 거야!”

옆에 있던 하유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한 사람들은 하유연의 입에서 직접 들은 이름에 흠칫 놀랐다. 북창대륙 젊은이 중 하유연, 유영 등은 최정예로 꼽히지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곧 용마궁의 마형천이었다.

마형천은 북창대륙에서 쉽게 얼굴을 비추지 않지만 그 명성은 여전했다. 동년배의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북창대륙 젊은이 중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유연, 유영, 소불후 등도 충분히 뛰어나지만, 이들 중 어느 하나 마형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하유연의 말에도 마형천은 끄떡없이 목진만을 노려봤다.

“내가 맡은 임무는 널 죽이는 거야.”

그 말에 낙리가 바로 정색하더니 검을 휘둘러 녀석에게 향했다. 그러나 검기가 마형천의 몸에 닿자 영력 광권이 나타나 손쉽게 막았다.

“이것밖에 안 돼?”

“그럴 리가.”

마형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말에 낙리가 다시 공격하려 하자 목진이 나서서 말렸다.

“이곳에서 나를 죽이려 하다니, 멍청한 것 아니야?”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당장 꺼져.”

목진의 반응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아무도 통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녀석이 감히 마형천한테 이리 말할 줄은 몰랐다. 몰래 이들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흥미롭게 바라봤다.

끄떡없던 마형천의 눈가도 파르르 떨렸는데 이곳에서 녀석을 죽일까 고민하는 듯했다.

탁.

그러다 마형천은 뭔가 결심한 듯 앞으로 한 발 나아갔는데, 목진 옆에서 위험한 파동을 느끼고는 곧바로 멈춰 섰다.

“꺼지라는 말 못 들었어?”

하얀색 치마를 입은 예쁘장한 여인이 고개를 들고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자 마형천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빛줄기가 그물을 형성해 녀석을 감쌌다. 빛줄기가 스친 공간은 검은색 흔적을 남겼다.

위험을 감지한 마형천은 바로 뒤로 물러났다. 육신이 허상이 된 듯 흐릿해졌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를 지켜보던 목진은 영계의 공격을 피한 마형천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마형천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영계의 일격을 막은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나섰음에도 마형천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한 것에 언짢아진 영계는 탁자를 힘껏 두드렸다. 그러자 천지의 영기가 미친 듯이 움직이더니 마형천이 있는 공간이 순간 감옥이 된 듯 주변과 완벽히 격리되었다.

“공간을 감옥으로 만들다니, 설마 지존경의 강자란 말인가?”

누군가의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 영계를 바라봤다. 이렇게 젊은 소녀가 지존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북창령원에 이렇게까지 대단한 학생이 있었단 말인가?

그때, 영계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극히 압축된 빛줄기가 공간을 뚫으며 마형천의 미간으로 향했다. 녀석의 목숨을 노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영계의 잔혹함에 다시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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