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264화 (263/1,000)

264화. 준비

한편, 일그러진 공간에 갇힌 마형천은 그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상대방의 공격을 바라봤는데 전혀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감히 용마궁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주름 가득한 메마른 손이 나타나 공간을 부순 뒤 손가락으로 빛줄기마저 튕겨냈다.

잇따라 마형천 옆에 누군가 나타났는데 바로 용마궁의 흑룡지존이었다. 그는 음산한 눈빛으로 영계를 바라보며 지존급 위압감을 형성하였다. 이에 젊은 강자들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져 뒤로 물러났다.

이에 영계가 바로 목진 앞에 나섰는데 영광이 반짝이며 주위의 공기가 들끓는 것처럼 아주 강력한 파동이 일었다.

“네가 북창령원에서 영진에 능하다는 그 장로냐?”

영계 주위에 비등하는 것 같은 공기에서 느껴지는 특수한 파동에 흑룡지존이 흠칫하여 말했다.

“북창령원의 장로였군…….”

“나이는 우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저 정도 실력이면 우리와 나이가 비슷하게 얼굴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왠지 아닌 것 같은데…….”

흑룡지존의 말에 사람들은 시름을 놓듯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지존이 되었단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네가 북창령원의 장로라면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미 경고했는데 녀석이 굳이 나서서…….”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괜히 아쉬웠다. 마형천이 선공을 하게 하려고 꾀를 썼던 것이었다. 만약 상대방이 먼저 공격하면 이곳에서 영계의 손을 빌려 녀석을 죽여도 아무도 나무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린 것이 감히 우리 대화에 끼어들어?”

흑룡지존은 용마궁의 보물을 쥐고 있는 목진이 너무 싫었다.

“우리 북창령원 학생들과도 다투다니, 흑룡지존도 참 대단하군.”

은은한 웃음소리와 함께 목진 옆쪽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태창 원장이 나타나 흑룡지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태창, 북창령원에서 올해 성령산에 올 줄 몰랐네. 그해, 죽은 학생들이 교훈이 되지 않았었나 보지?”

흑룡지존이 태창 원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성령산은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거두지 못할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네.”

“과연 그럴지 내 지켜보겠네.”

흑룡지존이 콧방귀를 뀌며 목진을 쓰윽 훑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룡자를 이기면 녀석이 엄청난 천재라도 된다던가? 그런데 이렇게 왔으니 용마궁에서 책임지고 몇 년 전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 되풀이해주겠네.”

흑룡지존은 말을 마치자마자 떠났고, 그 뒤를 따르던 마형천은 피식 웃으며 목진을 힐끗 봤다. 녀석의 눈빛이 괜히 불쾌했다.

목진은 북창령원 현상방 1위를 상대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에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 * *

성령성은 점차 떠들썩해졌다. 수많은 실력자가 모여 도성은 어느덧 북창대륙에서 가장 인기 많은 곳이 되었다.

목진은 우뚝 솟은 한 건물에 서서 성령성으로 미친 듯이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이내 혀를 내둘렀다. 사흘 동안 성령산의 인기를 실감한 그는 북창대륙에서 실력을 조금이라도 갖춘 젊은이라면 전부 이곳으로 모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네.”

성령산에 비하면 백룡성, 서황성 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북령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융천경에만 이르면 땅 한 덩어리를 책임질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더없이 흔한 것이 바로 융천경이었다.

엄청난 차이에 목진은 웃음밖에 안 나왔다. 북령경은 수련에 필요한 자원이 적고 3급 취영진조차 칠 수 없는 아주 작은 곳이라 평생 노력해도 큰 성과를 이루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목진은 집의 따뜻함만은 다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지금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면 다들 깜짝 놀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통천경의 실력은 북령경은 물론이고 북령대륙에서도 일류 강자로 꼽혀 한 구역의 주인이 되겠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겠다고 아버지와 약속한 이상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험난하지만 어떻게든 노력할 것이다.

목진은 고개를 들어 아버지가 못한 일을 반드시 자신이 해낼 것이라 다짐하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내일이면 성령산이 열리겠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낙리가 다가와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 천지 영기가 점차 난폭해져 파도가 일 듯 출렁거렸고 우뚝 솟아오른 산맥도 점차 또렷해졌다.

성령산이 곧 열릴 거란 징조였다.

“하 선배를 찾아가 수소문한 결과, 네가 주의해야 할 사람은 모두 여섯 명이야. 그들은 북창대륙 젊은이 중 최정예로 마룡자는 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낙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들 누구야?”

“첫 번째는 당연히 용마궁의 마형천이고 가장 위험한 상대야. 용마궁의 보물이 네 손에 있으니 어떻게든 빼앗으려고 할 거야. 일단 성령산에 들어가면 누군가 죽어도 전혀 책임을 묻지 않으니까 녀석은 분명 널 노릴 거야.”

낙리는 안색이 잔뜩 어두워지며 말했다.

“하 선배의 말로는 마형천은 적어도 육신난은 건넜다고 했어.”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는 암영상회의 차기 주인 유영, 천원상회의 동연, 현음산의 주선, 서극전의 서청해야. 그중 서청해는 서황성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가 마룡자와 싸우는 걸 봤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천정성종의 소불후야. 다들 삼난 중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고, 각자 세력에서 전력을 다해 길러낸 인재들이야. 미래에 상회 주인이 될 이들과 파벌의 우두머리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낙리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 선배의 실력도 그들에 비해 뒤처지지는 않지만 다행히 너를 적대시하지는 않는 것 같아.”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한 명도 없네.”

“괜찮겠어?”

낙리가 걱정되어 물었다.

“나도 함께 참가할 걸 그랬어.”

성령산은 여태껏 했던 대결과는 달라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목진을 믿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라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너를 이렇게 위험한 곳에 뛰어들게 할 수는 없지.”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나 또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성령 세례가 뭔지 알아보고 챙겨올 수 있으면 너한테도 줄게.”

“하 선배 말로는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던데 챙겨오다니. 그러다 사람들이 너만 집중공격할 수도 있어.”

낙리가 자신을 힐끗 쳐다보며 한 말에 목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참.”

낙리가 뭔가 생각난 듯 손을 휘두르자 손바닥만 한 투명한 옥병 다섯 개가 나타났다. 그 속에는 화염이 잔뜩 들어있었는데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옥병 덕분에 조금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네가 선배한테 부탁한 물건이야. 열염작(烈焰雀)이란 새가 지심의 암장을 삼켜 이룬 화염이라는데 파괴력이 상당하다고 했어. 눈앞에 있는 자그마한 옥병에 든 화염은 수백 마리의 열염작이 겨우 모은 거야.”

낙리가 어리둥절하여 목진을 바라봤다. 갑자기 이 물건이 왜 필요한지 궁금했다.

“각각 용도가 있지.”

목진은 낙리의 마음을 읽은 듯 답하고는 조심스럽게 옥병들을 거두었다.

“하 선배한테 신세를 졌네.”

가격도 엄청나고 수집하기도 어려운 물건이었는데 구하상회의 차기 주인인 하유연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모을 수 있었다.

“영계 언니 덕분이라고 해야지.”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계와 사이가 좋은 하유연은 그녀가 목진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는 덩달아 녀석을 잘 보살피기로 정한 듯했다.

이에 목진은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물건만 있으면 마형천을 상대할 때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제 준비는 끝났으니…….”

목진은 기지개를 켜고는 엄청난 영력 속에 자취를 감춘 산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성령산이 열리기만 기다리면 되겠네.”

* * *

이튿날, 아침 해가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벌레떼처럼 성령성에 몰려들었다.

아무리 실력이 막강한 세력이라도 성령산을 독차지할 수는 없었다. 북창령원이나 난폭하기로 소문난 용마궁에서도 그러지는 못했으니, 나머지 세력이 힘을 합친다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여 북창대륙에서 실력만 갖추고 나이만 부합되면 성령 세례를 받으려고 다들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것이다.

목진 등도 태창 원장과 함께 웅장한 영력 바다 앞으로 왔다.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북창대륙의 상위 세력만 설 수 있는 앞쪽 자리만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도착하자 잔뜩 경계했다. 북창대륙에서 명성이 자자한 세력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태창 원장은 개의치 않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엄청난 영력에 가려진 산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멀지 않은 곳에는 용마궁이 있었는데 흑룡지존이 제일 앞에 서 있었고 바로 뒤에는 마형천이 서 있었다. 외모가 너무 평범해 무리에 섞이면 쉽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야말로 상대하기가 가장 어렵다.

그때 마형천도 고개를 돌려 무덤덤하게 웃었다. 녀석의 눈빛에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목진은 녀석이 반드시 자신을 죽일 거란 걸 알았다.

“현상방 2위도 때려눕혔으니, 이젠 너만 남았군.”

목진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자 웅장한 영력 바다가 격렬하게 움직이며 그 속에 숨었던 산맥이 점차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받으며 성령산은 곧 열릴 것 같았다.

꽈르릉.

천지의 영기가 솟구치며 그들이 있는 공간이 일그러졌고 저 멀리 커다란 산맥은 점차 또렷해졌다.

이와 동시에 원고 때부터 전해 내려온 위압감이 주위에 퍼졌는데 이는 태창 원장처럼 지존경에 이른 이들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위압감이 많이 줄었지만 천지존이 별세하며 남긴 거라 그 위력이 상당했다.

천지존은 지존 중 제왕으로 태창 원장이 상대하기에도 버거운 존재였다. 위면이 전부 모인 대천세계에서도 최강자라 다른 지존들마저 우러러보았다.

천지존은 위면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엄청난 존재였다.

그러나 아직 지존경에 이르지 않은 목진 등에게는 기껏해야 조금 불편한 느낌만 들었다. 그들은 일그러진 공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성령산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불어오는 향긋한 바람에 고개를 돌려보니 하유연이 다가왔다. 불같은 미녀의 도래에 자연스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성령산에 들어가면 항상 긴장해야 해. 공간 홍류(空間洪流)와 공간 강풍(空間罡風)은 특히 주의해야 하고.”

하유연이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목진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물었다.

“공간 홍류와 공간 강풍은 뭔가요?”

“성령산에는 조각난 공간에 있는데 그 주위에는 아주 무서운 공간 홍류가 있어. 이에 휘말리면 즉사야.”

하유연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공간 강풍은 성령산 전체에 분포되어 있고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그 위력이 더 강해져. 만약 휩쓸려 공간 강풍에 빨려 들어가면 바로 죽음이야. 공간 강풍과 공간 홍류는 성령산에서 가장 위험한 것으로 이것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엄청 많아.”

“알려줘서 고마워요, 하 선배.”

“그리고 사람들도 쉽게 믿지 마. 올해, 성령산에 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인원수는 제한되어 있어. 그러니 기회만 되면 너를 죽이려 들 거야. 그러니까 넌 나와 함께 다녀. 나와 함께 있으면 마형천도 무턱대고 너를 공격하지는 않을 거야. 대신 세례를 받는 건 너한테 달렸어.”

하유연이 잔뜩 경계하고 마형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하유연이라도 녀석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텐데 이리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걱정 마요, 선배.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물러날 거예요. 절대 선배한테 짐이 되지 않을 거예요.”

목진의 대답이 마음에 든 하유연은 소년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나를 구해준 영계 언니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사내를 잘 지켜야지.”

그 말에 목진은 별다른 해명 없이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