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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65화 (264/1,000)

265화.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의 떨림

그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암영상회의 차기 주인, 유영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방긋 웃으며 목진과 담소를 나누는 하유연을 보고는 화가 났는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옆에 서 있던 천원상회의 차기 주인인 동연이 담담하게 웃었다.

소유욕이 강한 유영은 2년 동안 하유연의 뒤를 쫓아다녔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목진과는 저렇게 편하게 대화를 나누다니 목진은 천만번 죽어 마땅했다.

“서두르지 마. 성령산에만 들어가면 녀석은 절대 도망가지 못할 거야.”

동연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엇 하러 저따위 녀석한테 시간을 낭비할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영은 목진을 계속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성령 세례였다. 아무리 목진이 미워도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치면 당연히 없앨 거야.”

유영이 사악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동연은 활짝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녀석의 실력은 통천경 초기밖에 안 돼 보이지만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고, 두 사람의 대결에서 유영이 승리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동연이 바라는 바였다.

쿵!

그때 웅장한 영력의 바다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공간이 점차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드디어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끝없이 뻗어 있는 커다란 산맥이 나타났는데 균열을 통해 보이는 산맥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와 동시에, 갑자기 공간 강풍이 균열 사이로 불어왔다. 공간 강풍은 날카로운 힘을 지녀 천지의 영력마저 찢어질 것 같았지만 다들 성령산에 정신이 팔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분리된 공간에 숨은 산맥은 자그마한 틈 사이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엄청났는데 크기가 적어도 성령역 정도만큼 컸다.

드디어 성령산이 나타났다!

이에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정신 차린 사람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미친 듯이 균열을 향해 달려갔다.

“가자!”

“성령산이 드디어 열렸다!”

“성령 세례는 내 것이야!”

“네가 뭔가 감히 성령 세례를 입에 올려!”

* * *

그곳은 순간 떠들썩해졌다.

“목진아, 우리도 들어가자.”

벌떼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본 하유연이 잔뜩 흥분해서 목진을 재촉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낙리, 영계, 태창 원장 등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럼 이만 들어갈게요.”

“조심해.”

낙리와 영계가 걱정되어 말했다.

“만약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면 바로 내가 준 옥부적을 부수거라. 바로 구하러 가겠다.”

태창 원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성령산에 들어가면 일정한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목진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는 북창령원에 엄청난 타격이었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태창 원장이 함부로 성령산에 들어올 수 없고 들어오더라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구하겠다는 말이 정말 고마웠다.

그때, 하유연이 먼저 한 갈래의 빛줄기 되어 공간 균열로 향했고 목진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두 갈래의 빛줄기는 함께 공간 균열에 들어가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위잉.

성령 산맥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공간도 점차 투명해져 거울처럼 맑아졌는데 점차 그 속에 뛰어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부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유심히 그 속의 젊은이들을 지켜봤다.

성령 세례 때문에 이제 곧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산맥이 끝없이 뻗어 고요하면서도 황량했던 그곳은 벌레떼처럼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떠들썩해졌다.

슉! 슉!

수많은 이들이 이곳 대지에 내려앉아 산맥을 탐욕스럽게 바라봤다.

성령 산맥은 천지존이 별세하면서 생긴 것으로 가장 진귀한 것은 성령 세례지만 그곳은 상고 때부터 전해진 보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를 얻는 것만으로도 이들한테는 더 없는 경사였다.

어느새 성령 산맥에 도착한 목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없이 큰 산맥에 비하면 이들은 개미보다 못한 존재 같았다. 또 우뚝 솟아오른 나무들은 하나같이 크기가 천 장을 넘어 돌풍이 불어와도 끄떡없어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한쪽이 어두운 빛을 띠었는데 밤하늘이 아니라 부서진 공간으로 모든 물건을 삼켜버릴 것 같아 무서웠다.

그리고 하늘에 떠다니는 커다란 빛덩이에서 눈부신 빛을 발했는데 그 속에서 상당히 무서운 파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이곳에서 별세한 천지존이 남긴 물건으로 목진은 차마 가까이할 수조차 없었다.

“이곳이 바로 성령 산맥인가?”

신비로운 물질이 깃들어있는 것 같은 천지 영기를 흡수하자 몸에서 더 많은 영기를 구걸하는 신호를 보냈다.

“이곳의 천지 영기에는 별세하신 천지존의 피가 섞여 있어 육신의 수련에 큰 도움을 준다고 들었어.”

옆에 있던 하유연이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천지존의 남은 피만으로도 이곳 천지의 영력을 바꿀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성령산이 며칠밖에 열리지 않아 얼마나 아쉬운지 몰라. 이곳에서 살면서 수련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유연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구하상회가 아무리 실력이 막강해도 천지존의 피가 섞인 영력을 제공할 수는 없었다.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일정 시간 수련할 수만 있다면 뇌신체도 크게 늘 것이다.

“이곳 땅이 특별하긴 하네요.”

목진이 고개를 숙여 암홍색을 띤 대지를 바라보더니 영력을 끌어올려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산 전체를 흔들고도 남을 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면에 자그마한 균열밖에 일지 않았다.

“천지존의 뼈와 살이 성령 산맥에 녹아들어 모든 것이 달라.”

“그렇군요.”

“그리고 성령 산맥도 천지존의 힘을 빌려 신기한 보물을 많이 배출했어. 성령산에 있는 보물들은 천지존의 피가 섞인 영력을 많이 흡수해서 육신을 단련하는데 엄청난 효과가 있어.”

하유연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성령산에 들어온 사람 중 대부분은 성령 세례를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야. 그게 최종 목표이긴 하지만 얻기가 너무 어려우니까 보물을 찾아 육신을 단련해 육신난을 준비하려는 거야.”

목진도 이에 동의하는 바였으나 그는 성령 세례가 목표라 보물을 찾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그럼 이제 떠날까? 세례받는 곳은 성령 산맥의 중심에 있는데 가는 길에 보물을 수확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유연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움직였고 목진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지면에서 멀어질수록 부서진 공간에 접근하기 쉬워 위험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낮게 날았다. 자칫 잘못하면 무서운 공간 홍류에 휩싸여 즉시 사망이었다.

벌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부단히 주위를 훑으며 보물을 찾아다녔다. 얼마 되지 않아 영광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는데 누군가 보물을 찾아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목진과 하유연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솟아오른 영광을 보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광의 세기로 봤을 때, 보물은 그렇게까지 좋은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빼앗으러 가는 사람은 엄청날 것이다. 목진은 그런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두 사람은 속도를 한껏 끌어올려 앞으로 나아갔다.

한편, 목진과 하유연이 가는 길에 사람을 적잖게 만났는데 다들 인상을 찌푸리며 이들을 바라봤지만 싸우지는 않았다. 구하상회의 하유연이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걸 알고 있기에 감히 덤비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목진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다.

“조심!”

이때, 하유연이 갑자기 목진의 손을 잡고 정색하며 앞쪽을 바라봤다.

“공간 강풍이 곧 닥칠 거야.”

이에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멀지 않은 곳의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돌풍이 미친 듯이 돌진하였다. 돌풍 속에 검은색 파문이 일었는데 이는 난폭한 공간 파동 때문에 생겨난 바람의 날이었다.

공간 강풍의 위력에 천 장도 넘는 나무마저 맥없이 쓰러졌고 나무의 단면도 더없이 깔끔했다. 마치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만 같았다.

“일단 피하자.”

하유연이 목진의 손을 잡고 동굴을 찾아 들어가 손을 휘두르자 웅장한 영력이 순식간에 영력 광막을 형성해 주위를 감쌌다.

휘익!

영력 광막이 형성되자마자 검은색 강풍이 휘몰아치며 상당한 파괴력을 선보였다.

하유연이 친 영력 광막도 돌풍으로 인해 부단히 떨려 목진은 체내의 영력을 한껏 끌어올린 채 잔뜩 긴장하며 이를 지켜봤다.

다행히 영력 광막은 부서지지 않았는데 멀리서 비명이 들려와 바라보니 십수 명이 친 영력 광막이 부서져 공간 강풍에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바람에 휘날리는 몸통을 본 순간 목진은 소름이 끼쳤다. 그중에는 자신과 실력이 비슷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공간 강풍에는 아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번 공간 강풍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네.”

하유연이 입을 삐쭉 내밀며 하는 말에 연민의 뜻은 딱히 없었다. 이곳에 들어왔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공간 강풍이 완전히 사라지면 다시 움직이자.”

이에 목진이 잠시 쉬려고 자리를 잡아 앉았는데 공간 강풍이 있는 곳에서 눈부신 영광을 본 것 같았다.

슉.

그때 그곳에서 갑자기 강력한 빛을 발하며 어두워진 이곳 천지를 아주 잠깐 밝혔는데, 그 빛에 목진은 뼈와 비슷하게 생긴 물체를 보았다.

“저건 뭐지…….”

목진은 기해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느끼고 깜짝 놀랐는데 그 원천을 알고는 순간 흥미진진해졌다.

그것은 기해 속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가 주는 신호였고 떨림은 여느 때보다 더 강력했다!

위잉.

체내의 검은색 종이가 점차 격렬하게 떨리자 목진의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는 돌풍 속에 숨겨진 보물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하유연도 눈부신 빛을 보고 이내 화색이 되어 말했다.

“보물이 돌풍 속에 숨어있을 줄은 몰랐네.”

빛의 세기로 보아 절대 보통 보물이 아니었지만 돌풍 속에 숨어있어 아쉬웠다. 보물을 찾으려다가 돌풍에 휘말려 공간 홍류에 닿으면 바로 죽음이었다.

이때, 목진이 돌풍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하유연이 화들짝 놀라 녀석을 말렸다.

“목진아, 저곳은 너무 위험해. 저기 숨은 보물을 얻는 건 무리야.”

이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체내의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를 유달리 아끼는 그는 어렵게 느낀 격렬한 파동 때문이라도 돌풍 속 보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대서미마주를 진압할 수 있다는 것으로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의 비범함을 충분히 느꼈으니, 이 속에 깃든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도 보물을 취해야 했다. 그는 하유연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배, 저 보물은 나한테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 반드시 얻어야 해요.”

목진의 말에 하유연은 어쩔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물러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곳에서 기다려주세요.”

목진이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하유연은 부들부들 이를 갈았다.

“그럼 같이 가. 사람이 많을수록 위험 부담이 적잖아? 너를 혼자 보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영계 언니한테 뭐라고 말해?”

목진은 하유연의 마음이 고마워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하 선배.”

이에 하유연이 손을 휘두르자 용안 정도 크기의 푸른색 구슬이 나타났는데 강력한 영력 파동을 발산하는 구슬 표면에 신비로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물건이 나타나자 주위가 순간 조용해졌다.

보통 영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어풍령주(禦風靈珠)로 상품 영기야. 비록 공격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돌풍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만은 막강하지. 이 물건만 있으면 공간 강풍이 있는 구역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거야.”

하유연이 푸른색 구슬을 쥔 채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이토록 특이한 상품 영기도 손쉽게 내놓다니, 구하상회의 차기 주인은 역시 대단했다.

목진은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영기를 지녀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대서미마주를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유연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것 같았다.

이때, 하유연이 손을 휘두르자 이곳을 감싼 영력 광막이 바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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