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자격
“멈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린 푸른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몸에서 금속이 빛을 발했다. 그것은 아주 단단해 보였고 휘두른 주먹에 앞쪽 공기가 폭발하자 사람들은 흠칫 놀라며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호(青虎)라 불리는 사내는 북창대륙의 아주 강대한 세력의 소속으로 삼대상회와 서극전에 비하면 뒤처지지만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또한, 오동에 못지않은 실력을 소유한 사내가 내뿜는 영력 파동에 사람들은 목진이 과연 그를 이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목진이 청호와의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인다면 세 번째 층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설 것이다. 그러면 두 번째 층에 올라가 가장 완벽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두 번째 층에서 이를 바라보던 하유연은 잔뜩 긴장해 주먹을 꽉 쥐었다. 목진이 두 번째 층에 오르려면 반드시 청호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데 통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녀석이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쳇.”
유영이 피식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쿵!
그때 강력한 영력을 실은 무서운 권풍이 목진에게 향했는데 이는 통천경 후기의 실력자를 죽이고도 남을만한 힘이었다.
청호가 바로 살수를 뒀다.
이에 흑염이 깃든 영력을 끌어올린 목진의 피부에 검은색 뇌광이 번쩍이더니 몸이 팽창해 가슴팍에 뇌문 두 갈래가 나타났다.
이문 뇌체였다!
이와 동시에 목진 주위의 공기가 강력한 힘에 못 이겨 폭발하였고 지면에는 커다란 균열이 일었는데 정작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앞으로 나아가 흑뢰가 요동치는 주먹을 휘둘렀다.
쿵!
놀라운 힘이 깃든 두 사람의 권풍이 허공에서 힘차게 부딪치자 주위 백 장이 진공으로 변했고 청호는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목진의 권풍은 구천의 벼락의 힘을 실은 듯 청호의 권풍을 무산시키고 결국 녀석의 몸에 파고들어 영력 방어벽까지 무너뜨렸다.
풉.
청호가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가 바닥에 내리꽂히자 단단한 지면이 그로 인해 깊숙하게 파였다.
사람들은 순간 조용해졌다.
목진이 오동을 물리쳤단 소리에 놀랐던 이들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는 녀석이 구천제의 최상층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에 하유연은 놀라긴 했지만 이내 화색이 되었다. 목진의 일격에 청호 같은 실력자가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나다니, 이는 통천경 초기의 실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하유연은 그제야 목진이 북창령원을 대표해 성령산에 올 만했단 생각이 들었다. 녀석의 실력은 보기보다 좋았다.
한편, 유영은 음침한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는데 정작 목진의 권풍에 맞은 청호는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더는 목진의 앞길을 막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또 나설 사람이 있을까요?”
목진이 태연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자 사람들은 안색이 어두워져 고개를 숙였다. 그가 통천경 초기의 실력으로 이렇게까지 한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목진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문 뇌체의 위력이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는지 목진도 조금 놀랐다.
목진은 다시 고개를 들어 두 번째 층을 바라봤다. 수많은 강자가 탐내는 그곳에 서려면 필경 혈투를 벌여야 할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를 두려워할 목진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주시하에 목진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두 번째 층으로 향했다.
“또 누군가 두 번째 층에 오르려 하는군.”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 * *
성령산 밖에 있는 사람들은 광막을 통해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살폈다. 현재, 광막은 구천제의 두 번째 층을 비추고 있었다. 아무도 그 외의 싸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곳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최종의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태창 원장은 뒷짐을 쥐고 무덤덤하게 광막을 바라봤는데 구천제의 두 번째 층에 서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 중에 목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에 사람들은 북창령원 쪽을 힐끗거렸는데 특히 용마궁의 흑룡지존은 히쭉 웃으며 태창 원장을 바라봤다. 목진이 구천제에 오르지도 못한 것을 보고 북창령원의 체면이 이번에는 바닥을 치겠다고 생각했다.
북창령원의 모든 희망을 안고 성령산에 들어간 청년은 다른 최정예들과 싸울 자격조차 없었으니, 이보다 슬픈 일은 없었다.
이리 생각하던 흑룡지존은 주위를 쓰윽 살피며 속으로 외쳤다.
‘태창, 넌 곧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 거야. 북창령원도 이젠 끝이야!’
그러나 태창 원장은 사람들의 눈길을 완벽히 무시하고 영력 광막에만 집중했다.
그때, 태창 원장의 뒤에 서 있던 영계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목진의 실력으로 저곳에 오르지 못할 리가 없는데…….”
“걱정 마요, 언니. 목진은 반드시 나타날 거예요.”
낙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목진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무조건적이었다. 이에 영계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광막을 바라봤다.
한편, 북창령원의 영력 광막에도 똑같이 구천제를 비춰주고 있었다.
주위에 모인 학생들은 잔뜩 긴장하며 영력 광막을 바라봤는데 선두에는 심창생, 이현통, 소훤, 학요 등 북창령원의 최정예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구천제의 두 번째 층에 서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한테서 풍기는 엄청난 위압감에 흠칫 놀랐다. 북창대륙에서 최정예로 꼽히는 젊은이들은 역시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목진은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그때, 광막 속 사람들의 눈길이 닿은 곳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번개같이 솟아올라 두 번째 층으로 향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날카로운 기운은 북창령원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퍽!
구천제의 두 번째 층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소년은 더없이 빛났다.
목진이 나타나자 북창령원이 들끓으며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목진이 나타나자 두 번째 층에 서 있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소년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들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목진도 두 번째 층에 내려앉아 주위를 훑었는데 하유연을 포함해 모두 일곱 명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북창대륙 젊은이들의 최정예였다. 아직 힘을 겨뤄보지는 않았지만 목진은 이들한테서 오동이나 청호보다 훨씬 강력한 영력 파동을 느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고수였다. 그중에는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었으니, 목진은 고개를 돌려 평범하기 그지없는 마형천을 바라봤다. 그러나 상대방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처럼 서 있었다.
숨 막히는 두 번째 층의 정적을 깨고 하유연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왜 이제야 왔어?”
하유연이 나지막하게 묻는 말에 목진이 방긋 웃으며 답하더니 어풍령주를 돌려줬다.
“보물을 찾다가 난 상처를 치유하느라고 늦었어요. 고마웠어요, 선배.”
하유연은 어풍령주를 돌려받으며 생긋 웃었다.
“녀석, 제법이네. 홀로 이곳까지 오다니. 내가 너를 너무 쉽게 생각했어.”
“다들 뭘 하는 거예요?”
목진은 더는 올라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상에 오르려고 싸우지도 않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령 세례는 저쪽에서 내릴 거야.”
하유연이 가리킨 곳은 구천제의 정상으로 그곳에 태양 같은 커다란 빛덩이가 엄청난 빛을 발하며 아주 무서운 파동을 발산했다.
“저기서요?”
“구천제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받는 세례의 힘이 더 강하고 위쪽에서 더는 흡수하지 못한 부분만 아래쪽으로 내려가.”
하유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누가 정상에 설 것인가 지켜보는 거야. 세례의 힘은 제한돼 있어서 정상에 서면 당연히 흡수하는 힘이 가장 강해.”
목진은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층에 있는 7명이 전부 정상에 설 수는 없었다. 아무도 제한된 세례의 힘을 다른 여섯 명과 똑같이 나누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 중에 실력이 월등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테지만, 마형천이라도 다른 여섯 명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기에 여태껏 두 번째 층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목진까지 끼어들었으니 일은 더 복잡해졌다.
“두 번째 층은 이미 차고 넘쳐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군.”
유영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들려오자 사람들은 바로 목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목진을 상대로 한 말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적어지면 자신이 흡수할 수 있는 세례의 힘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실력을 잘 아는 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목진이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통천경 초기의 실력자가 아무리 실력이 막강해 청호 등을 이겼다 해도 두 번째 층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힘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기에 통천경 초기밖에 안 되면 그에 걸맞은 곳에 서서 위쪽에서 흡수하고 남은 세례의 힘을 받아야 했다. 또 세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는 하늘만 아는 일이었다.
“유영!”
하유연은 유영이 목진한테 한 말임을 알아채고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유연, 이곳 규칙은 너도 잘 알잖아. 더 많은 사람과 세례의 힘을 나누려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이곳에 머무르고 싶으면 인정을 받아야 해.”
유영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을 노려봤다.
“그런데 너를 제외하고 과연 누가 녀석을 인정할까?”
“나도 유영의 말에 동의해. 아무나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세례의 힘을 나눌 수 있다고 하면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만이 많겠어?”
천원상회의 동연이 옆에서 거드는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목진과 세례의 힘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마형천만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그의 임무는 목진을 죽이고 용마궁의 보물을 되찾는 것이지만, 먼저 나선 유영한테 맡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유영마저 이길 수 없는 사람은 마형천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무덤덤하긴 목진도 마찬가지였다. 목진이 두 번째 층에 머무르겠단 말에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너!”
하유연이 이를 갈며 유영을 노려봤다.
“유연, 우리 사이에 혼약이 있는 것을 봐서 충고하는데 더는 나서지 마. 그러다 나머지 사람들이 화가 나 너까지 쫓아내려 하면 어떡할 거야?”
유영이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어디 해 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유연이 씩씩거리며 나서려는데 목진이 막아 나섰다.
“선배, 고마워요. 그런데 내 일에 여인을 대신 내세울 수는 없어요.”
목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두 번째 층에 있는 다른 젊은이들도 유영의 의견에 동의했는데 하유연이 나섰다가 불똥이 튈 수도 있었다. 목진은 자기 일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이 싫었다.
하유연도 목진의 마음을 잘 알았지만 유영이 너무 얄미워 차마 물러날 수 없었다.
“난 또 네가 여인을 앞세울 줄 알았지.”
유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성령각에서 마형천이 목진을 상대할 때도 한 여인이 대신 나섰는데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목진은 이미 시체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유영의 말에도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이곳에서 세례의 힘을 흡수하는 데 다른 조건이 필요한가요?”
이에 유영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이곳에 서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어떻게 증명해야 하죠?”
목진은 피식 웃으며 묻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때, 유영이 다가와 살기를 품은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내 손에서 살아남으면 돼. 내가 쉽게 실력 발휘를 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싸우면 상대방은 적어도 중상이야.”
유영이 구천제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내려가. 여긴 네가 설 곳이 아니야.”
쿵!
그때, 갑자기 터진 웅장한 영력과 함께 목진이 귀신같이 유영의 앞에 나타나 녀석의 머리를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퍽!
유영은 곧바로 팔로 막았는데 영력 여파에 두 사람이 서 있던 바닥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네가 한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지.”
유영이 씨익 웃더니 살기 가득한 눈으로 목진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