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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76화 (275/1,000)

276화. 무량노조(無量老祖)

영계가 나서려다 갑자기 굳은 얼굴로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 누구죠? 왜 숨어있는 거죠!”

영계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앞쪽 공간을 찌르자 웅장한 영력이 천 장 정도의 영력 소용돌이가 되어 날아갔다.

“정말 사나운 여인이네.”

그때, 텅 비어 있는 공간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누군가 걸어 나와 옷깃을 휘날리자 뒤쪽에 수많은 그림자가 생겨 상대방의 공격을 전부 막았다.

그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로 우람한 체격에 검은색 장발을 풀어헤친 것이 기품이 남달랐다.

“당신은 누군가요?”

영계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 말에 상대방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유암(柳暗)이다.”

“암영상회의 회장 유암이요? 암영상회에서 용마궁과 같은 짓거리를 하다니, 참 실망이네요. 감히 북창령원을 상대로 이런 일을 벌이다니, 큰 화를 부를까 걱정되지도 않나요?”

“우리 암영상회는 북창령원을 상대할 생각이 전혀 없어. 용마궁에서 내 마음에 쏙 들 만큼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너를 막아 나선 것뿐이야.”

유암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오해는 말아다오.”

“당신이 과연 나를 막을 수 있을까요?”

영계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네가 영진 대가란 건 잘 알지만 삼급 지존인 내 실력으로 너 하나쯤 막는 건 큰일도 아니지.”

“북창령원의 북명 대인께서 오면 어쩌려고 그래요?”

북명 대인이란 말에 유암도 흠칫하였다. 북명룡곤은 북창대륙에서 무적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있기에 여태껏 북창령원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용마궁에서 당연히 북명룡곤을 상대할 방법을 찾아냈지.”

유암이 히쭉거리며 한 말에 영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북창대륙에서 구급 지존인 북명룡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용마궁에서 무슨 수로 그를 막는단 말인가? 하지만 빈말을 할 용마궁도 아니라 영계는 그들이 도대체 무슨 수로 북명룡곤을 막으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당신이 과연 날 막을 수 있을지 보죠.”

영계는 간신히 마음을 다스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유암을 바라봤다.

“그럼 실례할게.”

말을 마친 유암이 한숨을 내쉬자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 *

성령산에 오르지 않은 맥유와 촉천 장로는 성령성에 남아 한가하게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여러 갈래의 빛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 것을 보고는 바로 정색했다. 이에 맥유가 바둑알을 바둑판에 집어 던지며 손가락을 튕기자 옥으로 만들어진 바둑판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잔뜩 놀란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 성령산에 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두 분은 나와 바둑이나 둡시다.”

이에 맥유와 촉천 장로가 뒤돌아보니 백의를 입은 사내가 씨익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천원상회의 회장 동명(董冥)이군.”

사내의 정체를 알아챈 맥유와 촉천 장로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 * *

북창령원의 학생들이 잔뜩 흥분해 영력 광막을 바라보고 있는데 학원 중심에 있는 대전에서 붉은색 빛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종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에 다들 안색이 어두워져 하늘을 바라봤다.

“이건 혈혼종(血魂鐘) 소리야!”

혈혼종은 북창령원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울리는 것으로 심창생 등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북창령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선생들도 화들짝 놀라 하늘을 바라봤다.

슈슉!

북창령원에 남아있던 두 명의 천석 장로도 어느새 나타나 혈혼종을 바라봤다.

“원장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런데 이때, 종소리가 갑자기 멈추더니 삐쩍 마른 노인이 나타나 움직이는 종을 멈추고 대전에 들어섰다.

옷차림이 남루한 대머리 노인은 행색은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강력한 위압감으로 현장을 제압했다.

“북명 대인!”

천석 장로 두 사람은 바로 대머리 노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조수(曹修), 너희 둘은 당장 호원 영진을 연 뒤 성령산으로 가고 다른 선생들은 북창령원에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잘 단속해!”

평소 느긋하던 모습과 달리 대머리 노인은 진지하게 말했다.

“네!”

그 말을 듣고 있던 천석 장로 둘은 신속하게 답했다. 이에 대머리 노인은 성령산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용마궁을 없앨 때가 된 것 같군.”

대머리 노인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주위가 어두워지며 하늘을 뒤덮을 만큼 커다란 흑조가 나타났다.

크기가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큰 흑조가 하늘을 날아오르며 포효하자 한쪽 공간이 부서지며 방대한 몸짓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건…….”

학생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하늘을 바라봤다.

“저분은 북명룡곤 대인이야!”

북창대륙의 하늘에 갑자기 검은색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공간을 뛰어넘을 듯한 빠른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만 리 밖에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지존급 강자라도 놀랄만한 엄청난 속도였다.

그는 다름 아닌 북창령원의 북명룡곤이었다. 그가 성령산에 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각밖에 되지 않았다.

바람과 벼락을 싣고 나타난 거대한 검은색 그림자의 앞쪽 공간이 갑자기 찢어지더니 그 속에서 검은색 바닷물이 쏟아져 내렸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조금 놀란 북명룡곤은 신기와 다름없는 날개로 공간을 가르며 검은색 바닷물과 맞섰다.

쿠쿵!

공간이 부서지며 바닥에서 십만 장도 넘게 떨어진 구천에 갑자기 무서운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누구냐, 당장 나오지 못할까!”

거대한 검은색 그림자가 신속하게 작아지며 다시 사람 형태로 돌아온 북명룡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쪽 공간을 노려보며 물었다.

“하하, 북명, 오랜만이야. 성격은 여전하구나.”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공간이 빠르게 부서지며 검은색 바닷물이 쏟아져 나와 구름 위에 검은색 바다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물기둥이 하나 생기더니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파란색 도포를 입은 노인으로 옷에 수놓은 검은색 물결에서 은은한 빛이 발했다.

“무량노조? 넌 무량대륙에 있을 것이지. 북창대륙에는 왜 왔어?”

히쭉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을 발견한 북명룡곤은 이내 정색하며 물었다.

파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무량노조로 구급 지존의 실력을 지녔다. 그는 북창대륙보다 훨씬 넓은 무량대륙과 다른 작은 대륙의 주인으로 대천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존재였다.

그런데 북창대륙과는 한참 떨어진 무량대륙에 있어야 할 무량노조가 이곳에는 왜 나타났단 말인가?

“오랜만에 회포나 풀까 하여 찾아왔지.”

무량노조가 미소를 지은 채 한 말에 북명룡곤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용마궁에서 너를 믿고 감히 북창령원을 건드릴 생각을 했구나.”

“북창대륙에 성령산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 난 그곳에 관심이 있어서 왔어. 그런데 넌 여태껏 이곳에 있으면서 아직도 북창대륙의 주인이 되지 못한 거야? 나와 힘을 합쳐 이곳을 수중에 넣고 함께 성령산에 가보자. 천지존이 별세한 곳은 아무리 너라도 모른척할 수는 없을 거야.”

“넌 네 영지로 돌아가. 그리고 북창대륙 일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마.”

이에 무량노조가 정색하며 말했다.

“북명, 내 말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구나.”

“내 앞에서는 위선좀 그만 떨지. 무조가 대천세계에 막 왔을 때, 그의 여인이 탐나 건드리려다가 하마터면 그 손에 죽을 뻔하고, 다시 잡힐까 봐 집도 버린 채 도망쳤으면서 우습게 여기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원한을 갚으려면 무조가 있는 무경에나 갈 것이지 북창대륙에는 왜 왔어!”

북명룡곤의 말에 무량노조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살기 가득한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북명, 죽고 싶어 환장했어?”

무량노조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북명룡곤을 노려봤다. 그 일로 체면이 바닥난 그는 미친 듯이 수련해 복수하려고 했지만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무조는 어느덧 대천세계의 한쪽을 책임지는 패주가 되었고, 그가 만든 무경에서는 수많은 강자가 배출되었다.

게다가 역사가 깊고 실력이 뛰어난 빙령족(冰靈族)에서는 족장의 자리마저 그 아내한테 넘겨줬고, 덕분에 생기를 잃었던 빙령족은 점차 강대해졌다.

하여 무량노조는 무경 근처도 얼씬거리지 못해 복수는 불가능했고, 혹시나 무경에서 사람을 보내 자신을 해할까 봐 여태껏 조심해왔다.

쿵!

잔뜩 화가 난 무량노조가 손을 휘두르자 검은색 바다가 상대방에게 향했다. 검은색 바다는 그가 저승에서 애써 받아온 명하(冥河)의 물로 웅장한 영력으로 키워낸 것인데 명해(冥海)는 만 리의 땅에 난 모든 생물을 없앨 만큼 엄청난 힘을 지녔다.

이에 북명룡곤도 기합을 넣으며 메마른 손을 휘두르자 만 장 크기의 날개로 변해 깃털을 발사하였다. 깃털은 검은색 바다를 완벽히 통제했지만 점차 부식되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내 앞에서 이따위 짓거리를 할 수는 없지.”

북명룡곤이 정색하며 옷깃을 휘날리자 깃털은 물고기와 용을 닮은 생물로 변해 검은색 바다에 뛰어들어 엄청난 힘을 싣고 무량노조에게로 향했다.

무량노조의 명해의 위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북명의 바다에서 살아왔던 북명룡곤한테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오히려 이를 빌어 더 강한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쿵!

이때, 무량노조가 발을 구르자 검은색 바다에 파도가 일며 수천 장 크기의 검은색 장창으로 변해 검은색 바다를 헤엄치는 생물을 찔렀다.

쿵!

무서운 충격파가 주위 수만 리에 퍼져 광풍이 일고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성령산에 서 있던 사람들도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구천에서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감지한 이들은 무서운 파동에 잔뜩 경계했다.

“도대체 누가 싸우기에 이토록 무서운 파동이 느껴진단 말인가?”

“분명 북창령원의 북명 대인일 걸세!”

“그럼 그 상대는 누구란 말인가? 북창대륙에서 그와 상대할만한 존재가 있단 말인가?”

“그건 용마궁에서 제일 잘 알지 않지 않겠나?”

갑작스러운 변고에 수군대던 사람들은 용마궁에서 철저히 계획하고 움직였기 때문에 감히 북창령원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태창 원장도 무서운 파동을 감지하고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하, 태창. 무량노조가 북명룡곤의 발목을 잡았으니 아무도 당신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네.”

흑룡지존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용마궁에서 북창령원을 상대하느라고 큰 대가를 치렀겠군.”

태창 원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용마궁에서 북창령원을 상대하려고 무량노조뿐만 아니라 암영상회, 천원상회까지 끌어들였으니 분명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북창령원을 없앨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네!”

흑룡지존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하더니 주위를 쓰윽 훑었다.

“여러분, 이는 용마궁과 북창령원의 싸움이니 다들 끼어들지 말길 바라네.”

그 말에 그곳에 있는 이들이 모두 흠칫 놀랐다. 용마궁에서 무턱대고 덤빈다고 생각했는데 무량노조까지 나타나 북명룡곤의 발목을 잡다니. 태창 원장만 죽으면 북창령원은 이대로 끝이었다.

지금 나서는 것은 그야말로 멍청한 짓으로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한편, 태창 원장도 오늘 이곳에서 끝장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했다.

“결진, 움직여!”

흑룡지존이 손을 휘두르자 여섯 갈래의 빛줄기가 주위에 퍼져 용마궁의 지존 여섯 명과 태창 원장을 감쌌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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