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감히 내 아이를 괴롭히다니!
황룡지존이 공격에 점차 박차를 가하자 목진의 몸에 난 상처가 점차 많아졌다. 이에 낙리는 눈가가 촉촉해져 낙신검을 쥔 채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더는 피할 수 없을 거야.”
황룡지존이 히쭉 웃더니 손을 벌려 내리 휘둘렀다.
슈슉!
그때 수십 갈래의 무서운 빛줄기가 공간을 부수며 목진의 주위를 둘러쌌다.
도무지 피할 길 없었던 목진은 어쩔 수 없이 구급부도탑을 소환해 낙리와 함께 그 속에 숨어들었다.
퍽! 퍽!
그러나 아무리 부도탑이라도 지존급 실력자의 무서운 공격에는 견디기가 버거웠다. 부도탑은 점차 균열이 일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였다.
“이젠 죽어!”
황룡지존이 소리치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손을 휘두르자 방대한 영력 거수가 나타나 목진과 낙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더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던 황룡지존은 이대로 무의미한 싸움을 종결하려 했다.
한편, 구급부도탑이 부서지며 목진은 다시 피를 토했는데 그 피가 낙신검에 떨어지자 다시금 오래되고 난해한 선홍빛 부적이 나타났다. 이에 낙리도 다시 움직일 준비를 했다.
한없이 허약해진 목진은 위쪽에서 느껴지는 무서운 파동에 씁쓸하게 웃더니 낙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마지막 수단인 구유를 소환할 생각이었다.
위잉.
그런데 그때, 황룡지존이 부순 구급부도탑이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하며 목진과 낙리를 감싸 안았고 그 속에서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잇따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 속에는 천지를 순간 얼어붙게 할 만큼 소름 끼치는 힘이 깃들어있었다.
“일급 지존 따위가 감히 내 아이를 다치게 하다니!”
부드러운 목소리에 깃든 무서운 힘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특히 갑자기 난폭해진 천지의 영력에 실력이 상당한 사람들도 안색이 어두워져 그녀를 바라봤다.
여인한테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구유작을 소환하려 했던 목진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여인은 오래전, 자신의 곁을 떠난 어머니의 모습과 흡사했다. 목진은 단 한 번도 그녀를 본 적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혈맥의 힘에 여인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어머니…….”
여태껏 애타게 찾아 헤매던 그녀가 이곳에서 나타날 줄 몰랐던 목진은 목이 메어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 목진이 수련에 집중하라던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놀다가 혼날 때마다 꿈에 나타나 자신을 위로하던 상냥한 그녀가 지금,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던 목진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엄청난 영력의 파동에 저 멀리 유암과 싸우던 영계도 잠시 공격을 멈추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 낯익은 여인을 바라보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정 이모…….”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영계는 그녀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바로 알아챘다. 그날, 자신을 지옥 같은 곳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부터 여인은 이미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했다.
한편, 공격을 멈춘 영계의 모습에 유암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계의 마음이 불안한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영계와 별다른 원한 관계가 없는 그는 소녀의 앞을 막기만 하면 된다는 용마궁의 약속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곧 그 역시 갑자기 나타난 여인한테 고개를 돌렸다. 여인은 영체일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무서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이때, 여인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천 장 정도 되는 방대한 영력 손바닥이 바로 움직임을 멈추고 조금씩 붕괴하다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였다.
일급 지존의 공격을 이토록 쉽게 무산시키다니, 이는 하천염의 실력으로도 절대 불가능했다.
“당신은 누군가?”
황룡지존은 잔뜩 화가 나 물었다.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이토록 쉽게 없어질 정도로 보잘것없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라니, 설마 소년이 갑자기 나타난 여인의 아들이란 말인가?
“저 녀…… 아이가 용마궁의 보물을 훔쳤네. 만약 자네 아들이라면 물건만 내놓고 데려가게.”
황룡지존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엄청난 영력 파동을 내뿜는 여인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는 용마궁에 아주 큰 타격이 될 것이었다.
“용마궁 전체를 바쳐도 내 아이를 다치게 한 분노를 잠재우지 못할 걸세!”
여인이 대노하여 손을 들자 무궁무진한 흑광이 손바닥에 모여 정교한 흑탑을 형성하였는데 그 모습이 목진의 구급부도탑과 똑같았다. 잇따라 흑탑이 팽창하더니 나중에는 하늘을 가릴 만큼 커졌다.
이와 동시에 천지의 영력이 폭동을 일으키며 그 주위에 커다란 폭풍이 일었다.
이에 황룡지존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흑탑에서 지극히 무서운 파동을 읽은 그는 바로 천 장 정도 되는 지존 법신을 소환했는데 노란색을 띤 법신은 금속으로 만든 것처럼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황룡지존의 천금 법신(天金法身)으로 구름이 낳은 천금으로 영력을 제련하고 특이한 법신 신술로 겨우 만들어내 자부심이 엄청났다. 비록 99가지 지존법신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일반 지존 법신에 비하면 훨씬 강력해 그 힘을 빌려 이급 지존과 싸워 이긴 적도 있었다.
하여 생명의 위협을 느낀 황룡지존은 법신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쿵!
그런데 흑탑이 은은한 흑망을 발산하며 전속력으로 내리꽂혀 황룡지존과 그 법신을 감싸더니 용 울음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에 사람들이 흑탑을 바라보니 수백 마리의 거대한 황금색 용이 흑탑에서 날아오르며 황금빛 화염으로 변해 지존법신을 공격했는데 이급 지존마저도 깰 수 없는 천금 법신이 놀라운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퍽! 퍽!
화들짝 놀란 황룡지존이 천금 법신에 영력을 불어넣어 탑신을 공격했지만 정작 흑탑은 끄떡없었다. 이는 목진이 소환했던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천금 법신은 황금빛 화염에 완전히 와해되었고 황룡지존의 본체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잇따라 황금빛 화염은 금룡 백 마리로 둔갑해 이글거리는 눈으로 황룡지존을 노려보며 돌진하였다.
으악!
황룡지존이 고함을 지르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수중의 영기를 전부 휘둘러봤지만 무서운 영력을 싣고 다가온 금룡의 화염에 순간 녹아내렸다.
으악!
이는 황금빛 화염에 황룡지존의 육신이 활활 타올라 내는 비명이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하천염 등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망치지 못하는 황룡지존의 모습에 등골이 오싹하였다. 지존 법신을 없애고 본체까지 없애려는 여인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멈추게. 실례가 되었다면 용마궁에서 사례를 할 테니 황룡만은 놔주게.”
황룡지존이 점차 처참하게 울부짖자 태창 원장을 지키던 흑룡지존이 빠르게 달려오며 외쳤다. 태창 원장이 곧 무너지려는 때에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황룡지존을 죽이려 하자 흑룡지존은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다.
그런데 여인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불타오르는 황금빛 화염에 황룡지존의 목소리가 점차 사라졌다.
“너무 하네!”
흑룡지존이 포효하며 순식간에 여인 앞으로 다가가 공격하자 주위가 어두워지며 백 갈래의 용영이 나타났다.
역시 5급 지존이라 그런지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도 천지를 가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때, 눈부신 빛을 발하던 여인이 손을 가볍게 휘둘러 난폭하기 그지없는 흑룡지존의 장풍에 맞섰다.
퍽!
두 사람의 장풍이 부딪치자 주위의 공간에 균열이 일었다.
쿵!
영력 여파로 인해 주위에 퍼진 무서운 바람과 함께 황룡지존이 멀리 튕겨 나가자 사람들은 아찔했다. 여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으악!
누군가의 비명에 사람들이 흑탑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황룡지존의 몸이 폭발하며 황금빛 화염에 육신 파편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황룡지존이 영원히 사라졌다!
하천염, 서극지존 등 북창대륙의 거장들은 순간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때 눈부신 빛이 사라진 곳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고개를 들어 한기 어린 눈빛으로 흑룡지존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아들의 몸에 상처를 냈으면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지.”
“당신들이 내 아이를 괴롭혀 내가 본때를 보여주려는 것인데 뭐 문제라도 있는가?”
한때, 북창대륙의 패주였던 용마궁은 그녀한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여인의 실력을 직접 확인한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비웃지 못했다. 그녀라면 용마궁마저도 벌레 죽이듯 바로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갑자기 나타난 신비로운 여인의 정체를 몰랐다.
여인의 말소리에 주위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흑룡지존도 더는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영체일 뿐인데도 실력이 이 정도라면 본체는 얼마나 무서울까?
“실력이 상당하군.”
하천염과 서극지존 등도 두 눈이 휘둥그레져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의 실력은 너무 강했다.
“목진한테 이렇게 대단한 어머니가 있었어?”
하천염이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신비로운 여인은 북명룡곤보다도 실력이 좋아 보였는데 목진이 왜 북창령원에 수련하러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한테 배우면 더 빨리 실력이 늘 텐데 말이다. 그러나 하유연도 아는 바가 없어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용마궁의 계획이 틀어질 것 같군.”
하천염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용마궁의 계획에는 이 여인이 없었으니 엄청난 변수에 대처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여인은 더는 공격하지 않고 서서히 돌아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한테 눈길을 멈추었다. 그녀의 눈은 금세 살기가 가시고 촉촉해졌다.
한편, 하얀색 치마에 온화한 느낌을 주는 여인한테서 묘한 감정을 느낀 목진도 코끝이 찡했다.
목진은 어머니와 첫 만남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고 혈맥이 연결된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어머니?”
목진이 가까스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 말에 여인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자식의 안전을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영원히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영체를 빌려 십수 년간의 그리움을 달랠 수 있어 기뻤다.
“그래, 아들!”
여인은 눈시울을 붉힌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다가와 파르르 떨리는 차가운 손으로 목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걷지도 못하던 내 아들이 벌써 이렇게 컸구나.”
품에 안겨 울기만 했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훌쩍 커버렸고, 젊은 시절 아버지보다 더 훤칠해진 것 같아 흐뭇했다.
지금까지 이날만을 기다렸던 목진 역시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비록 어머니가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났지만, 그는 전혀 원망하지 않았다. 곁에는 없었지만, 가슴 속에서는 늘 함께였기 때문이다.
목진이 우는 모습에 스스럼없이 황룡지존을 죽이고 흑룡지존을 물리친 여인은 어쩔 바를 몰라 망설였다.
“곁에서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들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본 여인은 문득 마음이 아팠다. 통천경 초기는 절대 북령경 같은 곳에서 수련한다고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이의 아버지가 줄 수 있는 도움도 한정적이라 그곳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이 갔다.
이에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묵묵히 눈물을 닦아냈다.
“어머니, 아버지께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는데 드디어 찾았네요.”
목진이 여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피를 나눠 가진 느낌은 미묘하고도 아름다웠다.
“이건 부도탑이 부서질 때만 생기는 영체라 오래 머무를 수는 없어. 그렇지만 널 이렇게 보게 되어 너무 기쁘구나. 목진아!”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이내 정색하며 물었다.
“그럼 어머니는 도대체 어디 계신 건가요?”
이에 여인은 복잡미묘해진 표정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나도 너와 네 아버지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단다. 그러니 절대 섣불리 행동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네, 어머니. 앞으로 더 강해져서 꼭 어머니를 구해낼게요. 이건 아버지와 한 약속이기도 해요!”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여인은 흐뭇하게 웃었다.
“난 너와 네 아버지가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랐어…….”
“그럼 우리 가족은 영원히 떨어져 살아야 하잖아요.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무척 그리워해요. 자신이 재능이 부족하다 여기시고 모든 희망을 저한테 거셨어요. 전 아버지께서 해내지 못한 일을 반드시 할 거예요!”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자 여인은 그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