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다시 이별
“귀하…….”
태창 원장은 북명룡곤이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머뭇거렸다. 여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비록 무량노조가 북명룡곤을 이길 것 같진 않지만 변고가 생기면 북창령원에 큰 타격이었다.
이에 여인은 태창 원장을 힐끗 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북명룡곤은 조금만 더 수련하면 지지존에 이를 것이니 무량노조쯤은 해결할 수 있다네. 다만……”
여인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목진이 북창령원에서 수련하면서 당신의 보살핌을 받는데 어미로서 성의 표시는 해야하지 않겠나?”
영체는 아들과 함께할 수 없으니 북창령원에서 목진을 잘 보살펴달라는 의미에서 나서려는 것이었다.
“고맙네.”
태창 원장이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시했다. 여인은 목진 때문에 북창령원을 돕는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나쁠 게 없었다.
“영체에 남은 힘으로 무량노조를 쫓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네.”
여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한 줄기의 빛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다.
이에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여인이 뭘 하러 가는지 짐작하였기에 이내 혀를 내둘렀다.
여인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천에서 웅장한 파동이 퍼지며 광풍이 일었고 천지의 영기가 폭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구천에서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쿵!
우렛소리와 함께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 난 무량대륙의 무량노조…….”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천지의 영력 파동이 점차 난폭해졌고 무량노조의 고함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무량노조는 어느새 절대적인 열세에 처하였다.
“난 절대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네!”
1각 정도 지나자 무량노조는 드디어 포기하고 앞쪽 공간을 찢어 도망갔다.
이렇게 여인은 무량대륙에서 온 무량노조를 물리쳤다.
한편, 어머니의 실력에 놀란 목진은 자신도 언젠가 그리될 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러한 실력자도 자신과 아버지를 떠나야만 했다니, 어머니가 피하고자 하는 세력이 도대체 얼마나 강대한지 궁금했다.
목진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어머니를 구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 꼭 해내리라!
슉!
그때 하늘에서 두 갈래의 빛줄기가 내리꽂히더니 여인과 북명룡곤이 함께 나타났다. 후자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여인을 바라봤다.
“당신이 목진의 어머니인가?”
이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북명룡곤은 뭔가 짐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의 9급부도탑을 보고 그 종족과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은 했는데 그 어머니를 보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당신은…….”
북명룡곤이 인사를 올리려 하자 여인은 뒤쪽에 있는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진한테는 알리지 말게.”
목진이 여인의 혈맥을 계승 받은 것은 자랑스러운 일인데 왜 감추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복잡한 종족인 것만은 사실이라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여인은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서둘러 목진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는데 몸에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목진은 여인의 손을 꼭 잡은 채 간절하게 외쳤지만 곧 사라질 어머니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태창 원장, 아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게 해주게.”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태창 원장 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리 물러났다.
여인은 목진과 함께 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아 자신과 그 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머니, 인제 떠나실 건가요?”
어느새 눈치챈 목진은 괴로워하며 물었다.
“이건 내 영체일 뿐이지만 오래 머무르면 너한테 피해가 갈 거란다.”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머니의 진정한 신분은 무엇이고 지금 어디 갇혀 계신 건가요? 절대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테니 제발 가르쳐 주세요.”
목진이 이를 악물며 한 말에 여인은 한숨을 내쉬며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난 네가 북령경에서 생활하길 바랐다. 비록 평범하게 살아가겠지만 적어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느냐? 이는 나의 가장 큰 바람이기도 하단다.”
“그럼 전 영원히 어머니를 뵐 수 없잖아요. 어머니가 곁에 없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아버지께서도 힘든 걸 알아 여태껏 괜찮은 척한 거예요.”
목진의 말에 여인은 이내 코끝이 찡했다.
“이게 다 내 탓이야.”
그녀는 자신한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목진을 지키려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버리고 떠났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이런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까?
“어머니 탓이 아니에요.”
목진은 여인의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어머니 대신 아버지께서 제 곁을 지켜주셨잖아요. 어머니야말로 외로우셨죠. 우리를 위해 하신 선택이란 걸 잘 알아요. 저와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어요.”
방금 무서운 실력으로 북창 대륙의 실력자들을 잔뜩 놀라게 한 여인은 아들의 말에 눈물을 훔쳤다. 아들과 남편이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 충분히 강해져서 어머니를 구해낼 거예요. 이건 아버지와 한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어머니께서 이렇게 대단하신데 그 아들인 저도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의연한 목진의 모습에 여인은 피식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난 널 믿는단다. 앞으로 네가 충분히 강해지면 나에 대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란다.”
목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여인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영계와 낙리를 부르자 두 사람은 빠르게 다가왔다.
“영계야, 앞으로 목진을 잘 부탁한다. 이제부터 넌 이 아이의 누이나 마찬가지이니 네 말을 안 들으면 마음껏 혼내거라. 아직은 네 상대가 안 되니까.”
여인이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머쓱하여 머리를 긁적였다.
“걱정 마세요, 이모. 내가 있는 한 목진은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영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목진아, 넌 절대 영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부도영결은 음, 양으로 나뉘는데 네가 수련한 것은 양권, 영계는 음권을 수련하였단다. 그런데 해당 영결은 특수해 양을 위주로 음이 보조 작용을 하여 부도결 음권을 수련한 사람을 시(侍)라 부른단다. 이는 부도결 양권을 수련한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는데 난 너희가 그런 방법으로 수련하는 것을 원치 않는단다. 알겠느냐?”
여인이 한껏 정색하며 말하자 목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영계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라도 빨리 통천경에 이르기 위해 잠시나마 사용했던 그 방법이 어머니가 말한 바로 그 방법이었다.
이에 여인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 아버지가 실력은 보잘것없지만 아이는 제대로 가르쳤구나.”
말을 마친 여인은 영계한테 고개를 돌려 가여운 눈빛으로 영계를 바라보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네 기억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봉인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봉인을 풀어줄 수는 없구나.”
“왜요?”
“네 성격을 내가 모를까?”
영계가 다급하게 묻는 말에 여인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봉인한 너의 기억은 나와 그곳에서 지내던 기억뿐인데 너한테 절대 유쾌한 추억은 아니었단다. 또한, 네가 기억을 떠올리면 그곳을 알게 될 텐데 난 네가 다시 그곳을 찾아오지 않았으면 한다. 넌 그곳을 좋아하지 않았거든.”
“그래도 난 정 이모를 구하고 싶어요!”
영계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날 돕고 싶은 마음을 목진한테 쓰거라.”
여인이 미소를 짓자 영계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여인을 구하려는 생각을 접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를 잘 아는 여인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영계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을 찾아오는 시간을 뒤로 미룰 수는 있다고 여겼다.
“낙리라고 했던가?”
여인이 목진 옆에 서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웃었다.
“네.”
낙리가 목진을 힐끗 보더니 수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의 안목이 아버지보다 낫구나.”
소녀의 기품은 남달랐고 어디서든 이목을 끌 거라 여겼다. 낙리에 대한 첫인상은 괜찮은 편이었다.
“별말씀을요. 저도 언젠가 이모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낙리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홀로 용마궁의 사람들을 물리치는 모습에 소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도 언젠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낙신족을 잘 지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녀의 손을 잡으려던 여인은 낙리가 손에 쥔 낙신검을 보고 흠칫하였다.
“낙신족 사람이냐? 낙창궁(洛蒼穹)과는 무슨 사이냐?”
낙창궁이란 말에 낙리는 흠칫 놀랐다.
“그분은 내 증조부시고 이미 별세하셨어요. 혹시 만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건 아니고. 내가 있는 곳에는 대천세계의 정예들에 대한 정보가 있는데 낙창궁에 관해 본 기억이 있구나. 이 검을 보니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본 거란다.”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낙창궁은 천지존에 이를 실력자로 역대 낙황 중 순위가 앞쪽에 있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목진이 낙신족의 공주를 벗으로 삼았구나. 역시 우리 아들의 안목은 엄청나네.”
여인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하자 낙리는 부끄러워 얼굴이 터질 것 같았고, 그 옆에 있던 목진은 머쓱해 웃기만 하였다.
“인제 그만 떠나야 할 것 같구나.”
여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앞으로 또 언제 아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한편, 목진은 점차 흐릿해지는 어머니를 보더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갇혀있는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든 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진정한 강자가 되면 바로 어머니를 데리러 갈게요.”
“그래.”
여인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아, 부디 이 험악한 세상 속에서 잘 살아남거라!”
여인은 아들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영체가 사라지고 있어 손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녀는 미련 가득한 얼굴로 목진을 바라보다가 끝내 사라졌다.
목진은 여인이 사라진 곳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날 날이 분명 올 거예요.”
소년의 모습에 영계와 낙리의 코끝도 찡했다.
바람이 하늘하늘 불어 이들의 옷깃을 스쳤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애절한 이별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 * *
이곳은 신비로운 곳으로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흑탑에서 부단히 흑광을 발산해 더없이 신비롭고 괴이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곳의 깊숙한 곳에는 만 장 정도의 거대한 탑이 구름마저 가르며 우뚝 솟아올라 있었다. 그 정상에는 하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온몸을 파르르 떨며 서서히 눈을 떴다.
“목진…… 아들…….”
여인은 주먹을 꽉 쥔 채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다가 금세 눈물을 닦아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자세를 바로 했다.
그때 주위의 어두운 공간에 파문이 일더니 피부가 고목처럼 거친 한 노인이 나타나 흑망이 깃든 눈으로 여인을 노려봤다.
“방금 내가 느낀 파동은 네 영체냐? 그 녀석을 언제까지 숨길 작정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