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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86화 (285/1,000)

286화. 사문 뇌체

“수련은 이제 시작이야.”

이현통이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힘을 얻기 위해서는 괴로운 과정을 견뎌야 하는데, 그것을 견디지 못할 것 같으면 당장 옥부(玉符)를 부숴. 그럼 촉천 장로와 맥유 전주께서 데리러 오실 거야.”

“포기하다니, 잠시 쉬려는 것뿐이야. 이렇게 계속 걷다가 엄청난 위압감에 몸이 터질 것 같아.”

조청삼이 씁쓸하게 웃으며 한 말에 심창생은 이현통과 눈을 마주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걷고 있던 낙리가 조용히 이들을 넘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 역시 비처럼 흐르는 땀에 장검마저 흠뻑 젖었다.

이현통은 소녀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잠시 넋 놓고 바라보다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그녀의 끈기에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갑시다.”

이에 조청삼 등은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 여인마저도 견디는데 남자가 되어 멈춘다는 것은 너무 창피한 일이었다.

이렇게 이들은 무서운 영력 위압감을 견디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 * *

뇌역의 마지막 단계에는 늘 어두운 빛이 드리웠고 검은색 뇌하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으며 나지막한 뇌명이 이곳 전체에 퍼졌다.

끝없이 뻗은 뇌해에 메마른 소년이 자리를 잡고 앉아 부단히 흑신뢰를 맞고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피부는 점차 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전처럼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를 본 북명룡곤도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십수 일간의 폭격으로 목진 체내의 고통은 여전했지만 점차 적응하였고 그은 피부가 벗겨질 때마다 녀석의 육신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려 흑신뢰의 힘과 영력이 깃든 흑신뢰를 빌려 수련하는데 이 정도 성과밖에 안될 리가 없었다.

“설마 녀석이 체내에 힘을 쌓고 있단 말인가?”

북명룡곤이 흥미진진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똑똑한 녀석일세. 단번에 질적인 비약을 이루려는 것이군.”

북명룡곤은 목진이 계속 흑신뢰의 힘을 빌려 육신을 단련할 줄 알았는데 사실은 체내에 이를 전부 저장했다가 한 방을 노리려는 것이었다.

뇌신체의 수련은 상당히 힘들어 뇌역의 마지막 단계에서 수련한다고 해도 이문 뇌체에서 4문 뇌체가 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 방법으로 반년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목진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것은 꼭 비슷한 물을 가득 넣은 찻잔 덮개를 막은 것과 같아 그 속에 수증기가 꽉 차면 엄청난 힘이 생길 것이다.

그 힘을 빌리면 목진은 보다 쉽게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무척 위험했다. 현재 목진의 체내는 폭탄이 깃든 것과 같았고, 자칫 잘못하면 육신이 폭발할 수도 있었다.

이에 북명룡곤은 유심히 목진을 지켜봤다. 변고라도 생기면 바로 뛰어가 녀석을 구해야 했다.

쿵!

목진은 계속해서 흑신뢰를 맞으며 그 속에 깃든 힘을 모았다.

* * *

북창령원은 여느 때와 달리 아주 조용했다. 천방 10위권은 전부 수련하러 떠났고 나머지 학생들도 최선을 다해 수련에 임했다.

반년 뒤에 있을 학원 대회에 참석할 자격이 있든 없든 북창령원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창령원의 성적이 늘 안 좋아 오대원에 속하지 않는 령원에서도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고, 학생들도 평생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속한 종족과 세력으로 돌아가야 하고 또 누군가는 더 크고 좋은 곳으로 수련하러 떠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북창령원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을 것이다.

대천세계에 령원이 많기는 해도 북창령원처럼 소속감 있는 곳은 아주 드물었는데, 이는 태창 원장이 큰 몫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언제든지 받아줄 거란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천방 10위권에 든 이들이 학원 대회 때문에 열심히 수련하는데 나머지 학생들이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북창령원에 천재는 많고 화천경 후기에 머물러있는 노참도 적잖게 존재하여 다들 통천경에 이르기 위해 미친 듯이 수련했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북창령원에서는 북창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천방 10위권에서 통천경으로 낮췄고, 뇌역이나 취영진에 들어가 수련하는 사람도 점차 많아졌다.

* * *

뇌역의 마지막 단계는 여전히 어두웠고 뇌명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한편, 뇌해에 조용히 앉아있던 목진의 몸 표면에 검은색 뇌호가 미친 듯이 번쩍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난폭한 힘이 발산돼 주위의 뇌장마저 들끓었다.

목진의 체내에 엄청난 힘이 들어있단 뜻이었다.

쿵!

흑신뢰가 계속 목진의 육신을 때려 뇌광이 빗발치자 소년은 미친 듯이 흑신뢰의 힘과 그 속에 깃든 영력을 흡수했지만, 아직도 때가 아니란 생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은 부족해.”

검은색 뇌광에 침몰당할 것 같은 목진을 바라보는 북명룡곤도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목진은 3개월 동안 체내에 힘을 모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지금 이것을 폭발시키면 절대 사문 뇌체가 될 수 없었다.

3개월 동안 흑신뢰에 대해 익숙해진 목진에게 신선한 충격이 필요했다.

“그럼 더 강한 힘을 보여주지.”

북명룡곤이 씨익 웃으며 옷깃을 휘날리자 뇌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지막한 고함과 함께 뇌장이 들끓더니 온몸에 뇌광을 감싼 커다란 흑룡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 뇌령으로 북명룡곤이 봉인해 그가 원하는 형태를 이룬 것이었다. 흑룡은 뇌해에 앉아있는 목진을 노려보며 커다란 입을 벌려 포효했다.

쿵!

뇌장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빛기둥이 뇌령의 입에서 나와 뇌해를 가르며 목진을 가격했다.

온몸을 파르르 떠는 목진의 몸 표면에 검은색 뇌광이 미친 듯이 번쩍였고 피부는 갈기갈기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육신이 체내의 엄청난 힘을 견디지 못해 나타난 증상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지금 체내에 흑신뢰에 깃든 힘과 영력을 많이 모을수록 방출할 때의 효과가 더 좋기 때문이었다.

그때, 녀석의 몸 전체에 퍼지는 혈문에 북명룡곤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이러다 녀석의 몸이 폭발할까 봐 두려웠지만 절대 생각 없이 덤빌 녀석이 아니었기에 최선을 다해 돕기로 했다.

북명룡곤이 손을 튕기자 뇌령은 다시 포효하며 웅장한 영력을 실은 뇌광을 내뿜었다.

어느새 온몸에 혈문이 퍼진 목진은 곧 부서질 도자기 인형처럼 섬뜩해 보였다.

틱.

갑자기 들려온 미세한 소리에 북명룡곤은 이내 정색하였다.

틱.

소리가 너무 미세해 뇌명으로 가득 찬 뇌해에서 이를 알아채기란 거의 불가능했는데, 북명룡곤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져 뇌해에 앉아있는 소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쿵!

그곳에서 갑자기 웅장하고 난폭한 파동이 일더니 혈문으로 온몸이 덮인 소년의 몸에서 흑망이 서서히 스며져 나왔다.

그것은 곧 육신이 폭발할 거라는 징조였다.

슉!

이때, 목진은 눈을 번쩍 뜨고 결인하더니 기합과 함께 주위의 뇌장이 찢어지며 천 장 정도 되는 진공 지역을 만들었다.

한편, 목진의 몸 표면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던 뇌호는 한데 모여 소년의 뒤쪽에 거대한 벼락 폭풍을 만들었다.

“체내에 저장한 흑신뢰의 힘이 너무 강한 건가?”

잔뜩 긴장해 이를 지켜보던 북명룡곤은 목진의 육신이 곧 버티지 못하고 터질 것 같았다.

목진도 이를 잘 알았는데, 바로 정색하며 결인하였다. 이에 목진의 피부 표면에 검은색 뇌광이 은은하게 요동치더니 가슴팍에 뇌문 두 갈래가 나타났고 그 위에 또 하나의 뇌문이 생길 기미가 보였다.

목진은 드디어 여태껏 모았던 힘을 전부 방출하여 질적인 비약을 노리려 했다.

목진의 피부에서 난폭하게 움직이던 검은색 뇌호는 뇌광으로 변해 목진의 가슴팍에 꽂혀 삼문 뇌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소년의 피부색은 다시 어두워졌는데 아무도 녀석의 육신에 상처를 입히지 못할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목진의 몸이 조금씩 웅장해지더니 드디어 세 번째 뇌문을 완성했다. 3개월 동안 모은 흑신뢰의 힘 덕분에 세 번째 뇌문은 벼락으로부터 비롯되어 그 무늬가 생생하였다.

1각 정도 지나자 목진의 몸 표면에서 요동치던 마지막 한 갈래의 검은색 뇌호가 사라지자 가슴팍의 세 번째 뇌문이 완벽히 자리를 잡았고 혈문도 완전히 사라졌으며 아주 강력한 힘의 파동이 주위에 퍼졌다.

목진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천지를 부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삼문 뇌체를 이뤘군.”

북명룡곤이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3개월 동안 이러한 성적을 거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목진에게 말했던 반년 사이에 사문 뇌체에 이르게 할 거라는 말에는 과장이 섞여 있었다.

단체 신결 중에서도 뇌신체 수련은 보통의 단체 신결이 아니라 더 어려웠다.

“뭐지?”

그런데 목진은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입을 꼭 다물고 의지가 확고하여 다시 인법을 바꿨는데 이는 역시나 뇌신체의 법인이었다.

나지막한 고함과 함께 목진의 뒤쪽에 다시 벼락 폭풍이 일어 엄청난 뇌광이 계속 몸속으로 들어갔는데 세 번째 뇌문의 위쪽에 새로운 뇌문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단번에 네 번째 뇌문도 형성할 작정이었다!

“역시 그럴 작정이었군.”

북명룡곤이 중얼거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쿵!

검은색 벼락의 힘이 목진의 체내에서 미친 듯이 회오리치며 뇌해 속에 깃든 벼락의 힘을 흡수했는데, 목진이 3개월 동안 흑신뢰를 맞아 어느 정도 습관이 되지 않았다면 절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목진은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육신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점점 주위에 몰려드는 흑신뢰의 수가 많아졌는데 4문 뇌체를 이루는 것은 삼문 뇌체보다 훨씬 어려워 뇌문은 절반 정도밖에 형성되지 않았다.

이에 목진은 조금 당황했다. 3개월 동안 벼락의 힘을 모았는데도 네 번째 뇌문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역시 뇌신체는 수련하기 어려운 단체 신결이란 생각이 들었다.

“녀석, 참 막무가내군.”

북명룡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네 어머니가 북창령원을 도운 것을 봐서 내 한 번만 더 도와주지.”

그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손가락을 튕기자 뇌해의 깊숙한 곳에 있던 뇌령이 갑자기 포효하며 구속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북명룡곤의 명을 따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에 북명룡곤이 기합을 넣자 뇌령의 방대한 몸에 검은색 깃털이 나타났는데 깊숙이 박혀 정말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잠시 후, 드디어 진정한 뇌령이 포효하자 진득한 액체처럼 생긴 검은색 뇌광 한 방울이 머리에서 나왔는데, 그 속에 마치 벼락 세계가 담긴 듯 특이해 보였다.

슉!

그때 뇌광 한 방울이 빠르게 뇌해를 지나 목진의 몸을 감싼 벼락 폭풍을 뚫고 녀석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목진의 몸은 순간 경직되었고 검은색 뇌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몸 전체로 퍼졌는데 멀리서 보면 꼭 검은색 덩굴을 휘감은 듯 이상해 보였다.

퍽! 퍽!

이때, 목진의 몸이 갑자기 폭발하며 혈무를 생성하자 소년의 표정도 점차 일그러졌다. 엄청난 고통을 참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편, 온몸에 퍼진 뇌광은 미친 듯이 네 번째 뇌문에 모이고 있었다. 그 속에 지극히 무서운 흑신뢰의 힘이 깃들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네 번째 뇌문이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나 목진의 몸은 계속해서 폭발해 혈무가 점차 짙어졌고 결국 두꺼운 딱지를 형성해 몸 전체를 휘감았다. 이어 벼락 폭풍이 점차 사라졌다.

목진은 딱지를 온몸에 둘러싼 채 뇌해 속에 앉아있었다. 소년의 숨소리가 미약했으나 북명룡곤은 나서서 도우려 하지 않았다.

목진은 꼭 죽은 것처럼 닷새 동안 끄떡없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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