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287화 (286/1,000)

287화. 첫 단계

계속해서 제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목진을 바라보던 북명룡곤은 갑자기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뇌해 속 딱지가 벗겨지며 그 속에서 늘씬한 소년이 나타나 눈을 번쩍 떴는데 검은색 뇌광이 깃든 두 눈은 더없이 또렷해 보였다.

소년이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숙여 가슴팍을 바라보자 네 갈래의 뇌문이 번쩍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뇌호인 듯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다.

목진이 드디어 사문 뇌체를 이룬 것이다.

곧이어 소년이 주먹을 꽉 쥐자 체내에서 엄청난 힘이 들끓었는데 이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힘이었다. 목진은 육신난을 건넌 강자와 싸울만한 기반을 충분히 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이 이러한 힘에 심취해 두 팔을 벌려 고함을 지르자 우레와 같은 소리가 퍼지고 소년 뒤쪽에 있는 뇌해가 요동치며 뇌명이 들려왔다. 소년은 뇌신이 강림한 것처럼 강대해 보였다.

3개월의 고된 수련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

검은색 뇌해가 요동치며 계속해서 뇌명이 들려 그곳 공간마저 파르르 떨렸다.

슉!

이때, 검은색 뇌해가 갑자기 반으로 갈라지더니 뇌광 한 갈래가 날아올라 뇌해의 위쪽에 멈춰 섰는데 두 팔을 벌려 수많은 뇌광을 맞는 느낌에 심취한 듯했다.

뇌신체가 사문 뇌체에 이르면 흑신뢰에 대한 내성이 강해져 그저 짜릿할 뿐이었다.

목진은 팔을 내리며 깊게 숨을 들이켰는데 숨결에도 뇌광이 번쩍였다. 이문 뇌체보다 훨씬 강해진 사문 뇌체를 몸소 느낀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북명룡곤한테 서둘러 날아갔다.

한편, 북명룡곤도 목진을 쓰윽 훑더니 만족한듯 웃었다. 3개월 만에 뇌신체를 이문에서 사문까지 수련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고마워요, 북명 선배.”

목진이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북명룡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짧은 시간에 성과를 이룰 수 없었다. 이에 북명룡곤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우리 북창령원을 대신해 출전할 아이를 돕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다.”

북명룡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3개월 동안, 네 뇌신체는 사문 뇌체가 되었지만 영력에는 큰 발전이 없었구나.”

목진은 3개월간 뇌신체를 수련하면서 영력이 늘긴 했지만 뇌신체에 비하면 무시할 정도로 미약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라 그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직 3개월이 남지 않았나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전력을 다해 영력을 수련하면 되죠.”

이에 북명룡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난 더 이상 너를 가르치지 않을 것이니 다른 곳을 찾아가거라.”

“다른 곳이요?”

“나머지 3개월은 영계 장로가 너한테 가르침을 줄 것이니 그녀한테 가거라. 자기 말만 잘 따르면 분명 영력이 폭등할 거라고 하더구나.”

북명룡곤이 히쭉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나보다야 영계가 낫지 않겠냐? 영계가 사내한테 이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처음이구나. 우리는 늘 차가운 얼굴로 상대했단다. 그러니 아름다운 미인과의 수련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무나.”

북명룡곤의 말에 목진은 괜히 어색해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이제 수련을 시작해야 하니 이만 가보거라.”

북명룡곤의 예리한 두 눈은 공간마저 뚫을 듯 아주 강력한 느낌을 주었다.

“설마 경지를 돌파하려는 건가요?”

목진의 말에 묵명룡곤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단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네 덕분에 뇌신단을 얻었고 그 뒤로 반년 동안 충분히 준비했으니 이제 돌파할 때가 된 것 같구나.”

만약 북명룡곤이 돌파하는 데 성공하면 진정한 지지존이 될 것이다. 이는 대천세계에서도 한쪽을 책임지는 패주에 상당하는 실력이었다. 낙신족의 낙천신도 지지존의 실력으로 삼대 신족이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도 낙신족을 지금껏 지키고 있었다.

9급 지존 바로 다음 단계가 지지존이지만 두 단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만약 북명룡곤이 지지존이었다면 용마궁에서는 절대 북창령원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을 것이고, 무량노조도 북창대륙에 발을 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미리 축하드려요, 선배님.”

목진의 말에 북명룡곤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옷깃을 휘날렸다. 그러자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북창령원으로 향하는 통로가 나타났다.

이에 목진이 바로 일그러진 공간에 들어서자 공간 파동이 무질서해지다가 어느새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목진을 바라보던 북명룡곤이 어느새 주먹을 꽉 쥐자 벼락이 번쩍이는 단약이 나타났다. 단약은 검은색을 띠었는데 벼락 세계가 깃들어있는 듯 오묘하기 그지없었다.

쿵!

뇌신단이 나타나자 뇌역의 마지막 단계에 번개가 치고 뇌명이 울렸다. 또 수많은 벼락이 요동치며 어두운 공간을 밝혔다.

크으으으!

뇌해의 깊숙한 곳에 있던 뇌령도 뇌신단의 파동을 읽은 듯 포효하였다.

북명룡곤은 뇌해의 깊숙한 곳을 힐끗 보더니 흑광을 내뿜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생물로 변했다.

물고기도, 용도 아닌 검은색 생물이 날개를 활짝 펴자 공간의 반을 가렸다.

이때, 뇌신단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북명룡곤은 입을 쩍 벌려 수많은 벼락의 힘이 깃든 단약을 꿀꺽 삼켰다.

쿠쿵!

뇌신단을 삼킨 북명룡곤은 곧장 뇌해의 깊숙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곳은 뇌해가 요동치며 만 장의 파도가 일었고 공간이 곧 부서질 것처럼 무서운 기세를 선보였다.

북명룡곤은 뇌해의 깊숙한 곳에서 경지 돌파를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 * *

공간 통로에 들어간 목진은 뇌역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안다고 한들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이는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이라 북명룡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 목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잠시 후, 북창령원의 위쪽 하늘이 일그러지더니 목진이 나타났다. 그는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수들을 바라보다가 그곳에 울려 퍼진 생기 넘치는 소리를 듣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뇌역에 다녀올 때마다 지옥에서 탈출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곳은 너무 침울했지만 수련지로는 제격이었다.

목진은 잠시 주위를 훑어보고는 바로 영계를 찾아갔다. 낙리가 북창문에서 수련하고 있으니 따로 신생 구역에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1각이 지나고 목진은 조용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영계의 집은 일반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들도 감히 오지 못하는 곳이었다. 태창 원장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는 영계인지라 다들 그녀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북창령원에서 북명룡곤과 태창 원장을 제외하고 실력이 제일인 여인을 건드렸다가 순간 잿더미가 될 수도 있었다.

목진이 조용히 정원에 들어가 주위를 쓰윽 훑더니 드디어 대나무 집 앞에 앉아있는 백의 소녀를 발견했다.

가녀린 몸에 예쁘장한 얼굴을 한 소녀는 무덤덤하게 오래된 서적을 읽고 있었다. 그림 같은 장면에 목진은 잠시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북창령원에서 세 번째로 실력이 강한 사람이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란 걸 누가 알까?

“왜 그렇게 넋 놓고 서 있어?”

맑은 목소리와 함께 영계가 고개를 들어 방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는데 어느 꽃보다 아름다웠다.

“영계 누이는 날이 갈수록 예뻐지는 것 같아요.”

목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 봐야 낙리만 할까?”

“북명 대인께서 누이에게 남은 3개월의 수련을 받으라고 하셨어요.”

목진의 말에 영계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소년의 훤칠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히 부끄러워진 소년은 소녀의 눈길을 피하느라 바빴다.

그때 영계가 차가운 손으로 소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목진은 3개월 동안 수련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수염이 잔뜩 나 진짜 사내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 순간, 영계의 손에 날카로운 칼이 나타났는데 흠칫 놀란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소녀를 바라봤다.

“영계 누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계는 칼을 휘둘러 목진의 얼굴에 지저분하게 난 수염을 다듬기 시작했다.

코앞에 놓여있는 소녀의 진지한 모습에 목진은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영계가 친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나무 집 앞, 녹음이 진 곳에 바람이 산들산들 불자 초록빛 잎사귀가 떨어져 소녀와 소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영계는 목진의 수염을 정리해주느라 정신없었는데 소녀의 진지한 모습에 목진은 괜히 마음이 따뜻했다.

수염 정리를 끝낸 소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생긋 웃었다.

“수염을 다듬지 않은 모습도 나쁘지는 않지만 난 깔끔한 것이 더 좋아.”

이에 목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무뚝뚝한 누이가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내가 반할지 모르겠네요.”

“입에 발린 말은 그만해.”

영계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거두며 말했다.

“영계 누이, 앞으로 어떻게 수련하면 좋을까요?”

3개월밖에 남지 않아 모든 정력을 수련에 쏟아부어야 했다. 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아도 막강한 영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내 영력이 네 영력의 먹이가 될 수 있잖아?”

영계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한 말에 목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건 왜요? 그 방법을 사용했다가 어머니께서 아시기라도 하면 큰일이에요.”

“사실 괜찮아. 그 종족에서 대부도결 음권을 수련한 사람은 지위가 미천한 신분으로 일정한 때에 자신을 희생해 대부도결 양권을 돕곤 해.”

목진을 바라보며 말하던 영계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는 소녀의 미세한 떨림과 함께 그녀의 망연한 정서가 느껴졌다.

“어머니께서 영계 누이더러 대부도결 음권을 수련하게 한 것이 나를 도와 살아가게 하려고 그런 것 같아요?”

목진의 질문에 영계는 당황해 고개를 번쩍 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이모가 그랬을 리 없어! 이모가 아니었으면 난 차가운 비가 내리던 날, 그곳에서 죽었을 거야. 이모가 아니었으면 난 살아남았다고 해도 시체나 다름없었을 거야!”

목진의 어머니는 영계가 살아가는 이유라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어떤 이는 원한을 갚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또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영계에게 그 이유는 생기라고는 하나 없는 곳에서 자신을 구원한 상냥한 여인이었다. 하여 그녀가 없다면 영계도 살아갈 동력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그때 목진이 차가운 소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속삭였다.

“영계 누이, 이 세상에는 두 눈으로 본 것 외에도 확정 지을 수 없는 일이 수없이 많아요. 그럴 땐 마음으로 판단하는 게 어때요? 어머니께서 당신을 속였을 거라고 여기는 건가요?”

이에 영계가 흠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비록 기억은 잃었지만 목진의 어머니와 지낸 세월이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믿기로 했다.

“그렇군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나를 질투한 거였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영계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누이한테 너무 소중한 어머니가 나를 대하는 모습에 괜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역시 아들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이에요. 어머니의 반응에 실망해 점차 주눅이 들면서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목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영계를 바라보며 웃었다.

“성령산에서 돌아온 뒤로 계속 그랬어요?”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소년을 본 영계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정말 목진의 말처럼 생각하고 있는지는 확정할 수 없었지만 성령산에서 돌아온 뒤로 우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미안…….”

영계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정 이모가 아들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했기에 질투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영계가 그리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에 목진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동안, 영계는 어머니한테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레 두 사람이 가장 가깝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목진이 나타나 당황했을 것이다.

영계의 질투에도 목진은 어머니에 대한 영계의 마음이 예뻐서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