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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88화 (287/1,000)

288화. 좋아하는 마음

“영계 누이, 난 누이한테서 뭔가를 빼앗을 생각도 없고 어머니께서 날 찾아냈다고 해서 누이를 밀어낼 거라고 여기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영원히 내 누이에요. 누군가 누이를 괴롭히려고 하면 난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누이는 누군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누이를 지켜줄 사람이 한 명 더 생긴 거예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영계의 맞은편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소녀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다. 유년 시절에 겪은 일로 사람을 한껏 경계하는 영계는 어렵게 손에 쥔 따스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 이모가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영계는 그녀를 생모라고 여겼고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봐 겁이 나 여태껏 우울했다. 목진의 말에 그녀는 그제야 기분이 풀린 듯 미소를 지었다.

영계는 자신보다 어리고 실력도 한참 뒤처진 이 소년만 나타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깟 실력으로 날 어떻게 지켜?”

영계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목진의 이마를 가볍게 누르며 방긋 웃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분명 누이보다 강해질 거예요. 그때가 되면 내가 누이를 지켜줄게요.”

목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하더니 히쭉 웃었다.

“영계 누이도 앳된 모습이 있었네요, 귀여워요.”

영계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라 목진을 노려보며 화난 척했다.

“수련하고 싶지 않나 보지?”

영계가 부끄러워 한 말임을 잘 아는 목진은 더는 농담을 하지 않았다. 도가 지나치면 그녀의 실력으로 자신을 쓰러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 일은 여기에서 마무리 지어요. 그리고 누이가 했던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할게요. 난 누이가 대부도결 음권을 수련했다고 해서 내 수련을 도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한 번만 더 얘기하면 그땐 정말 화낼 거예요.”

목진이 정색하며 말하자 영계는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지금의 영계를 보면 절대 그녀가 북창령원에서 세 번째로 실력이 강한 사람이란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럼 수련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단해. 내가 대부도결 음권을 가르쳐줄게. 그럼 넌 완전한 대부도결을 얻게 될 거야. 이건 정 이모가 알려준 방법인데 그녀가 못한 일을 내가 대신해줄게.”

영계가 잠시 생각하다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완전한 대부도결이란 말인가?

“대부도결 음권을 나한테 가르쳐줘도 영계 누이한테는 아무런 피해도 안 가죠?”

완전한 대부도결이 목진에겐 엄청난 유혹이긴 했지만 조심스러웠다. 영계가 또 목진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런 방법으로 얻는 힘은 절대 원치 않았다.

이에 영계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걱정 마. 이모께서 나한테 부탁하신 일이야. 나는 못 믿어도 이모는 믿어야지?”

목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대부도결 양권을 가르쳐줄까요?”

목진은 영계가 대부도결 음권을 배운 것이 괜히 찝찝했다. 비록 어머니께서 그녀를 자신의 조력자로 만들려고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도결 양권이 음권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목진은 영계가 이런 이유로 불편을 겪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더는 멍청한 생각을 하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대부도결 양권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혈맥이 필요해서 아무나 수련할 수 없어. 그리고 대부도결 양권을 수련하는 게 나한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그렇군요…….”

목진은 그제야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바로 수련을 시작할까요?”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 3개월 동안 열심히 수련했으니 하루 정도는 푹 쉬고 내일 시작하자.”

“그럼 전 일단 신생 구역으로 돌아갈 테니 내일 봐요!”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영계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낙리도 신생 구역에 없는데 돌아가 봐야 널 돌봐줄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서 쉬어. 순아한테 방을 내주라고 할게.”

영계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워낙 누군가와 가까이하는 것을 꺼려 평소 태창 원장 등이 와도 집에 들이지 않았고 먼저 집에 머무르게 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여태껏 영계의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내는 목진 한 명뿐이었다.

“진짜 괜찮을까요?”

목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자신은 괜찮지만 영계는 여자인 데다 북창령원에서 신비롭기로 유명해서 괜히 폐를 끼칠까 봐 두려웠다.

그녀의 마음을 사려는 사내들이 수두룩했는데 그녀가 전부 거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북창령원의 장로가 되어 태창 원장마저도 그녀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학생에게 마음이 갈 리가 없었다.

“누이가 동생을 보살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영계가 목진을 힐끗 보며 물었다.

이에 목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계가 여태껏 혼자라 외로웠을 거라고 여긴 그는 이번 기회에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의 대답에 그제야 활짝 웃는 영계의 모습이 꽃처럼 아름다웠다.

* * *

영기로 가득 찬 이 세계는 바람마저 무서운 영력의 위압감 때문에 무거워 공간 전체가 단조롭고 묵직한 느낌을 줬다.

그곳의 한 산골짜기에서 영액이 흘러내려 커다란 영액 호수를 형성하였고 그 위로 영무가 은은하게 퍼지며 무서운 영력 파동을 발산했다.

순수한 영력으로 만들어진 호수에 깃든 영액은 천근에 달하는 무게로 산 한 채를 부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지녔다.

쏴아아.

호숫가에서 청량한 물소리가 나며 영액 속에서 영롱한 몸매의 한 소녀가 머리카락을 드리운 채 나타났다. 아쉽게도 그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는 사내는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소녀는 다름 아닌 낙리로 새하얀 피부가 영액의 압박으로 붉어져 있었다.

“낙리야, 넌 이번에 무려 사흘이나 버텼어.”

그때 갑자기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 소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낙리를 바라보더니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동안 낙리와 함께 수련한 소훤은 소녀의 완벽한 몸매를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낙리는 외모, 몸매, 기품 할 것 없이 모두 일품이었다.

“소훤 선배도 꽤 버텼네요.”

낙리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기껏해야 하루밖에 버티지 못했고 다른 곳에서 수련 중인 심창생과 이현통 등도 이틀 정도 버텼다고 들었어. 너만큼 오래 버틴 사람은 없어.”

소훤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곳의 호수는 영액으로 만들어져 아주 무거운 데다가 호수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수련해야 하는지라 일정한 간격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쉬어야 했다. 산 한 채를 등에 업은 것 같은 압박감을 견디며 오랜 시간 수련하기란 불가능했고, 일단 한계치에 다다르면 호수 안에서 머무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연약해 보이는 낙리가 이렇게까지 잘 참는 것이 놀라운 따름이었다.

사흘이란 시간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른 영액의 호수에서 수련 중인 심창생마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낙리는 호수 밑바닥에서 엄청난 압력으로 빨개진 피부를 영액으로 적시면서 목진을 떠올렸다. 북창문에서 하는 수련도 힘들지만 목진이 하는 수련도 쉽지 않을 것이다. 3개월 동안 소년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을지 궁금했다.

잠시 그를 떠올렸던 낙리는 입술을 깨물며 소훤한테 말했다.

“소훤 선배, 난 조금만 더 수련할게요.”

“벌써 가게?”

소훤이 화들짝 놀라 낙리한테 말했다.

“이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들어가다니, 그러다 실력이 늘기도 전에 쓰러지겠어. 예전에도 한 선배가 쉬지 않고 수련하다가 폐인이 될뻔했다고 들었어.”

“걱정 마요, 선배. 정도껏 할게요.”

“이렇게까지 수련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을까?”

낙리가 수련에 이렇게까지 열중할 줄 몰랐다. 그녀의 모습에 심창생도 크게 자극을 받아 수련에 더 집중했지만, 소훤은 낙리가 왜 이렇게까지 수련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에 낙리는 담담하게 웃으며 낙신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낙리가 짊어져야 할 짐은 너무 무거웠다. 낙신족의 수많은 백성이 미래의 낙황인 낙리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의 가슴속에도 한 소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낙리는 언젠가 절세의 강자가 되어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목진을 의심치 않았지만 이를 이루려면 간난신고(*艱難辛苦:몹시 힘들고 어려우며 고생스러움)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낙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목진이 수련에 지쳐 웃음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자신이 충분히 강해지면 목진의 짐을 덜어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녀는 절대 모든 걸 남자에게 의지하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낙리는 목진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도 힘든 수련을 버틸 힘이 생겨났다.

* * *

이튿날, 목진은 푹신한 침대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천지의 영기를 부단히 흡수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3개월 동안 뇌역에서 수련하며 받은 우울감마저 떨쳐냈다.

이때, 방문이 열리더니 순아가 귀여운 얼굴을 들이밀며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목진 오라버니, 얼른 일어나요. 영계 언니가 불러요.”

목진은 문 앞에 서 있는 소녀를 보며 방긋 웃더니 다가가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잘 쉬었나 보네.”

한결 가벼워진 목진의 발걸음에 영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번에 수련했던 곳으로 갈 거니까 따라와. 그곳은 북창령원에 있는 유일한 8급 취영진과 연결되어 있어 효과가 다른 7급 취영진보다 훨씬 좋을 거야.”

이에 목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계와 함께 영무가 그윽한 산봉우리로 갔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한 영계는 진지하게 말했다.

“목진아, 대부도결은 정 이모 종족의 가장 기본적인 수련 법결로 수련하기가 절대 쉽지 않을 거야. 네가 아무리 이모의 아들이라고 해도 음, 양 두 권을 전부 수련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또한, 수련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잘 몰라. 그러니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당장 멈춰.”

목진도 이내 진지해져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영계가 합장하여 인법을 바꾸자 손바닥에서 달빛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는 은은한 백광을 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광이 번쩍이는 하얀색 광탑이 나타났다.

목진은 부도탑과 똑같게 생긴 광탑을 보고 흠칫 놀랐지만 색깔과 파동이 전혀 달랐다. 목진 체내의 부도탑이 거침없고 패기 넘친다면 영계의 백색 광탑은 보다 부드러웠다.

“집중해!”

영계의 말에 목진은 바로 제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두 눈을 감았다.

그때 영계가 갑자기 손을 휘두르자 백색 광탑이 한 줄기 빛이 되어 목진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쿵!

순간, 목진의 머리가 울리며 난해한 정보가 눈앞에 아른거리다가 오묘한 수련 구결로 변하였다.

부도는 음, 양으로 나뉘는데 음과 양을 합쳐 대부도라고 한다…….

오래된 범음이 뇌리에 퍼지자 목진은 점차 마음을 진정시키고 복잡하고 난해한 구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범음이 사라지자 목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복잡한 구결을 한참 되뇌다가 서서히 합장하며 결인하였다.

이는 대부도결을 수련할 때와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인법이었다.

퍽!

그때 목진 체내의 백색 광탑이 파르르 떨다가 폭발해 수많은 백광을 이뤄 경맥으로 흘러들었다.

이것은 한 줄기 청령한 영력으로 목진의 경맥을 따라 온몸에 퍼졌다.

위잉!

이와 동시에 목진 체내의 영력이 폭동을 일으키며 백색 영력을 삼키려 하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구결로 음종(陰種)을 만들어!”

흠칫 놀란 목진은 황급히 체내의 영력을 가라앉히고 백색 영력이 경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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