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못 할 건 없죠
“예쁜 아가씨…….”
잠시 후, 간신히 진정한 청년은 우희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요문에서 짓밟아버릴 테니까 네 오라버니 이름이 뭔지 알려줄 수 있을까?”
담청산은 황급히 소녀를 말렸다. 노참을 건드려봐야 좋을 것이 없단 걸 알고 있는 그는 이런 일로 목진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북령원에서 수련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담청산 등과 실력이 엇비슷해진 소녀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우리 오라버니 이름은 목진이에요!”
소녀의 맑은 목소리에 그 구역이 순간 조용해졌고, 주위에 있던 노참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져 이쪽을 바라봤다.
담청산도 노참들의 반응에 놀랐지만 곧바로 소녀 앞에 나섰고,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유양 등도 어느덧 우희 앞을 막아섰다. 낯선 곳인 만큼 같은 학원 출신끼리 똘똘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 미안해요. 애가 아직은 너무 어려서……. 방금 말했던 건 그렇게 할게요.”
담청산이 경직된 노참들한테 사죄하자 상대방은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물었다.
“저기…… 그쪽 형님이 목진이라고 했나?”
이에 담청산 등이 어리둥절해 고개를 끄덕이자 주위에서 같은 휘장을 착용한 무리가 이곳을 향해 다가왔다.
담청산 등은 너무 놀라 어쩔 바를 몰랐고 우희는 어느새 사색이 되었다.
한편, 같은 휘장을 착용한 무리는 낙신회 회원들로 이들이 다가오자 요문은 조용히 물러났다.
낙신회가 요문보다 더 강한 조직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때 낙신회 회원 중 한 명이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혹시 목 형을 알아?”
“목 형이요?”
청년의 말에 담청산 등은 흠칫 놀랐고 우희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록 목진이 북령원에서는 최정예였지만 북창령원에는 수많은 인재가 있었고,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청년이 말한 목 형이 자신이 아는 목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오라버니 이름이 목진이긴 한데, 당신이 말한 목 형은 아닐 수도 있어요.”
우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목 형 이름도 목진이야.”
낙신회의 청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혹시 북령원에서 왔어?”
청년은 낙신회 회원이라 목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럼 틀림없어. 목 형도 북령원 출신이야.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 맞아.”
담청산 등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이에 담청산 등은 북창령원에서 이름을 날린 목진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진수, 너희 요문에서 감히 목 형 친구들에게 시비를 거는 거야?”
청년이 뒤돌아서서 정색하며 말하자 요문 사람들은 금세 기가 죽었다. 목진은 진정한 북창령원의 최강자로 요문의 우두머리인 학요는 물론이고 심창생과 이현통보다도 인기가 많았다.
요문은 여전히 북창령원의 강대한 세력이지만 절대 낙신회에 덤비지 못했다. 목진이 속한 낙신회를 감히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허, 오해야, 오해.”
진수는 머쓱하게 웃더니 담청산 등에게 사죄하였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다시 사죄하러 갈 테니 내 무례는 제발 용서해줘.”
진수가 말이 끝나기 바쁘게 부하들과 함께 떠나자 주위에 있던 신생들은 몰래 혀를 끌끌 찼다.
“목진이 북창령원에서 이렇게까지 대단하단 말인가요?”
담청산 등은 이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하하, 우리 낙신회는 목 형과 낙리 누이가 만든 것이고, 목 형은 현재 북창령원의 최강자야.”
낙신회 청년이 생긋 웃더니 북창령원에 우뚝 솟은 비석을 가리키며 으쓱해서 말했다.
“보여? 저건 북창령원의 천방인데 실력으로 순위를 나누는 거야. 목 형의 이름은 바로 세 번째에 있어. 목형은 사실 천방 1위나 마찬가지인데 순위에 연연하지 않아 3위에 이름이 적혀있는 거야.”
이에 담청산 등이 고개를 들어 석비를 훑었는데 눈에 익은 이름이 보여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때, 북령원에서 함께 놀았던 친구가 어느새 훌쩍 성장해 엄청난 강자가 되었다.
“목진 오라버니는 역시 대단해요!”
우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북령원에 있을 때부터 목진에 관해 적잖은 소문을 들었던 그녀는 목진을 숭배했다.
그런데 유양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유양의 가문과 목진의 가문은 사이가 안 좋았고 그 할아버지도 목진의 손에 죽었다. 또한, 목진이 떠난 뒤로 북령경에 큰 변화가 있어 유양의 가문은 더 이상 전처럼 강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목진의 아버지가 북령경을 통일해 가문에서는 유양과 유모백한테 모든 희망을 걸었는데 두 사람은 절대 목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목 형의 친구면 우리 낙신회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앞으로 아무도 너희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청년의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담청산 등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문과의 만남을 통해 북창령원에서 뒷배가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북령경에서 온 이들은 다른 신생과 비교했을 때 아무런 우세도 없었는데 목진 덕분에 귀찮은 일이 많이 줄었다.
쿵!
그때 엄청난 뇌명이 들려 다들 고개를 들어보니 북창령원의 깊숙한 곳에서 웅장한 영력이 깃든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신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입을 쩍 벌리고 이를 바라봤다.
“북창문이 다시 열렸군!”
잠시 넋 놓고 보고 있던 노참들은 정신을 차리고 흥분해서 외쳤다.
“심창생, 이현통 등이 드디어 수련을 마치고 나왔어!”
사람들의 외침에 신생들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빛기둥을 바라봤다. 심창생과 이현통은 천방 1, 2위인 유명인사인데 북창령원에 들어온 첫날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한편, 다른 곳에 있던 학생들도 빛의 기둥을 발견하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드디어 반년의 수련을 마쳤군.”
정원에서 미소를 지으며 빛의 기둥을 바라보던 목진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북창문에 들어간 이들의 수련 결과가 궁금했다.
위잉!
천 장 정도 되는 빛의 기둥에 거대한 청동 대문이 나타나 서서히 열리자 엄청난 영력 폭풍이 휘몰아쳤다.
슈슉!
어느덧 대문이 활짝 열리자 빛줄기가 유성처럼 솟아올라 북창령원 위쪽 하늘에 내려앉았다.
허공에는 영광을 온몸에 휘감은 이들이 나타났는데 북창령원 외곽에 서 있는 신생들마저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대단해…….”
담청산 등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위압감이었다. 북령원의 원장이나 다른 스승들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자신도 북창령원에서 이 정도로 강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 영광이 가시고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은 바로 심창생으로 이현통보다는 못생겼지만 기품이 남달랐다.
그리고 그 옆에는 훤칠하게 생긴 이현통이 검은색 도포를 입은 채 나타났다. 그 모습에 신생 소녀들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낙리는 9명 중에서 가장 가장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녀야말로 가장 눈부셨다. 정교한 얼굴에 유리알 같은 눈망울은 맑고 투명해 수많은 신생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생색내기는…….”
목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그때, 심창생 등이 고개를 휙 돌려 목진을 바라봤다. 이어 심창생이 이현통과 눈을 마주치더니 앞으로 나아가 말을 건넸다.
“목진, 나와 싸우자.”
반년의 고된 수련을 끝낸 심창생과 이현통은 다시 자신감이 생겼고 다시 목진과 힘을 겨뤄보고 싶었다.
두 사람의 말에 신생들은 물론이고 노참들마저 흥미진진하게 그들을 바라봤다. 목진은 명성이 자자했지만 여태껏 심창생, 이현통과 진지하게 힘을 겨뤄본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진귀한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 같아 자못 기뻤다.
한편, 이를 지켜보던 담청산 등은 천방 1, 2위가 목진한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하, 못 할 것도 없죠!”
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빛 한 줄기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북창령원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소년이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늘씬한 몸매에 훤칠한 얼굴로 씨익 웃는 것이 심창생과 이현통 못지않게 멋있었다.
“목 형!”
목진이 나타나자 북창령원은 순간 들끓었다. 어느새 명성이 자자해진 목진을 신생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북창령원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한 일은 심창생, 이현통 등 노참들도 절대 해내지 못한 일들이었다.
“목진이 확실하군!”
담청산 등은 낯익은 소년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1년 사이에 많이 성숙해지긴 했지만 훤칠한 외모는 변함없었다.
우희 역시 소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심창생처럼 강력한 상대를 마주하면서도 태연한 소년의 모습에 설레어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북창령원의 중심에 있는 대전에서 태창 원장과 장로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젊은이들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북창령원이 떠들썩해지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한편, 목진은 상대방을 쓰윽 훑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반년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네요.”
심창생 등의 실력을 확인한 목진은 흠칫 놀랐다.
북창문에 들어간 9명 중 반년 전까지만 해도 겨우 통천경이었던 학요, 소훤, 서황, 조청삼 등 6명은 이미 통천경 후기에 이르렀고 심창생, 이현통과 낙리는 이미 육신난을 건넌 듯했다.
이는 정말 놀라운 성장 속도였다.
“실력이 이만큼도 안 되었으면 학원 대회에 참석할 자격이 있을까?”
심창생이 히쭉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심창생은 문득 처음 목진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녀석은 백헌과도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1년 동안 실력이 부쩍 늘어 마룡자를 쓰러뜨리고 마형천까지 죽였다. 이는 북창대륙마저도 뒤흔들만한 엄청난 업적이었다.
한때 융천경에도 이르지 못했던 소년은 이제 심창생의 천방 패주의 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다. 비록 목진이 그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심창생은 타인의 선심으로 얻은 자리는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육신난을 건너 이젠 마형천도 두렵지 않았다.
비록 목진의 상대는 안 돼도 전처럼 무기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목진, 내 공격을 받아라!”
심창생이 이내 앞으로 나아가며 외치자 목진은 뭔가를 알아차린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려요, 선배!”
이에 심창생이 호탕하게 웃으며 주먹을 쥐자 엄청난 영력이 휘몰아쳐 강력한 영력 위압감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목진은 태연하게 서 있기만 했다.
그때, 심창생이 결인하여 인법을 바꾸자 영력이 들끓더니 뒤쪽 하늘에 거대한 광인을 형성하며 놀라운 파동을 발산했다.
심창생이 바로 최강수를 뒀다.
“심판 신결을 이 정도까지 수련했다니…….”
심창생을 바라보던 태창 원장이 중얼거렸다.
쿵!
하늘에 갑자기 우렛소리가 들리더니 심창생이 쏜살같이 목진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뒤로 수많은 광인이 움직이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심판신결, 창생인(蒼生印)!”
심창생이 귀신같이 목진 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두르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균열이 일었고 수만 갈래의 광인이 권인과 어우러져 목진을 공격했다.
이는 심창생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공격으로 그 상대가 마형천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맞서야 할 정도였다.
심창생은 반년 전보다 실력이 훨씬 늘었다.
이때, 목진도 주먹을 쥐었는데 나지막한 뇌명이 체내에서 울려 퍼지며 검은색 뇌호가 온몸을 덮었고 뇌문 네 갈래가 가슴팍에 그 형태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