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학원 대회
“원장님, 올해 학원 대회에 총 몇 개의 조가 참가하나요? 그리고 사대원에서는 각각 몇 개의 조를 파견했나요?”
목진의 질문에 태창 원장이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학원 대회에 참석한 령원은 만 개가 넘을 것이고 각자 적어도 한 개의 조를 파견할 거란다.”
이에 목진 등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들이 상대해야 할 소조는 적어도 만 개란 말인데 전부 각 학원의 정예들로 그 속에서 좋은 성적을 따내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대원은…….”
태창 원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성령원에서는 네 개 조를 파견했는데 전부 원내의 최정예들로 조장들도 심혈을 기울여 배양한 천재들이란다. 그중 희현도 있지.”
희현에 대해 잘 아는 목진은 그가 조장을 맡게 된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아무리 천재가 많은 성령원이라 해도 희현이라면 분명 이들을 꺾고 정상에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원에서 소조를 네 조나 파견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줄은 몰랐다. 이것만으로도 북창령원은 훨씬 뒤처졌다.
“성령원에서는 지난 기 학원 대회에도 네 조를 파견했는데 조원의 실력이 올해처럼 강하지는 않았다. 이번 기회에 다른 학원들을 완전히 억누르고 수위의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란다. 그 자리는 비워둔 지 10년도 넘어 성령원에서 여태껏 호시탐탐 노렸는데 무령원, 만봉령원과 청천령원만 아니었다면 벌써 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다만, 성령원이 점차 기세등등해져 올해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면 아마 원수의 자리는 그쪽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에 옆에 서 있던 촉천 장로 등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원수는 모든 학원의 수장으로 다른 학원을 폐지할 권리는 없지만, 그들이 하는 말의 무게가 엄청났다. 북창령원은 오대원에 들기 전 성령원과 불쾌한 일이 있었는데 그쪽에서 원수가 되면 분명 불리해질 것이다.
“성령원에서 네 조를 파견한 것 외에 다른 삼대 령원에서도 각각 세 조를 파견했고 전부 정예들이란다. 이번에 제대로 싸워보려는 속셈이지. 그리고 오대원 외에도 실력이 뛰어난 령원은 적잖게 존재하는데 일부는 북창령원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단다. 북창령원의 자리를 노리는 그들은 올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분명 최선을 다할 것이다.”
태창 원장의 말에 심창생 등은 씁쓸하게 웃었다. 북창령원이 이렇게까지 난처한 처지일 줄은 몰랐다.
“학원 대회는 부서진 유적 대륙(遺跡大陸)에서 진행할 거란다.”
“유적 대륙이요?”
“오래전, 유적 대륙은 대천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 중 하나였는데 원고의 재난으로 인해 부서져 크고 작은 몇 개의 대륙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 수많은 상고의 유적이 있어 인연이 닿으면 상고의 보물과 상고의 계승까지 받을 수 있다.”
태창 원장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유적 대륙은 오대원이 찾아낸 것인데 너무 많이 부서지고 상고의 봉인까지 남아있어 무턱대고 탐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너희한테 기회를 주고자 이곳을 학원 대회의 전장으로 정한 거란다. 누군가 그곳에서 상고의 계승을 받으면 앞으로의 수련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목진 등은 흥미진진하게 태창 원장의 말을 듣고는 유적 대륙에 들어가면 보물이나 계승을 찾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학생들이 전부 부서진 유적 대륙에 들어가면 그곳은 도살장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곳에서는 같은 학원 학생들 외에는 다들 적인 데다가 상고의 유적까지 있으니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피를 봐야지만 싸움이 끝날 것이다.
“경쟁이란 항상 잔인한 법이지.”
태창 원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만 개의 소조 중 결승전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이 몇 개 조인 줄 아느냐?”
목진 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태창 원장이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8개 조란다. 이외의 모든 소조는 탈락이지.”
태창 원장의 말에 목진 등은 흠칫 놀랐다. 결승전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얼마나 물고 뜯고 죽여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결승전에 오른 소조는 분명 올해 유적 대륙에 모인 학생 중 최정예일 것이다.
“지난해, 북창령원에서는 겨우 8위권에 들었는데 결승전 첫 단계에서 바로 탈락했단다.”
태창 원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도 지난 기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이룬 성적이었다.
목진 등은 벌써 유적 대륙에서 나는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때, 태창 원장이 옷깃을 휘날리자 열 갈래의 빛이 목진 등을 향해 날아가 투명한 영패(令牌)로 변했는데 신기한 파동을 내뿜는 영패에 원패(院牌) 두 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학원 대회의 원패로 1인당 한 개씩 갖는다. 대회가 열리면 각 소조에 일정한 점수를 부여하는데 다른 소조와 싸워 패배하면 승자한테 점수를 절반 빼앗길 것이고 그러다 원패의 점수가 0이 되면 자연스레 탈락하는 것이다.”
태창 원장의 말에 목진 등은 물끄러미 원패를 바라봤다.
“원패의 점수가 16위권에 들면 너희 소조 정보가 모든 사람의 원패에 나타날 것이고 현재 있는 곳까지 노출된다. 이는 적을 불러 모으는 거나 마찬가지지.”
태창 원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16위권에 들면 일종의 특권도 생긴단다. 그것은 곧 학원 대회의 종식권인데 16위권에 든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원패를 불태우면 더는 탈락은 없고 그중 8위권만이 결승전에 오르게 되는 거란다!”
목진 등은 16위권의 권리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줄은 몰랐다.
태창 원장이 말을 마치자 대전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학원 대회의 잔혹함에 다들 놀란 눈치였다. 학원 대회는 북창 대륙의 곳곳에서 온 천재들의 힘겨루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한편, 태창 원장은 서서히 숨을 내뱉으며 일어나더니 목진 등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학원 대회의 규칙에 대해 다 알려줬으니 나머지는 너희한테 맡기겠다. 결승전에서 너희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때가 되면 북창령원 전체가 너희를 응원할 거란다!”
목진 등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고 동시에 외쳤다.
“북창령원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 * *
어느덧 세 번째 날의 해가 밝자 방대한 북창령원은 순간 떠들썩해졌다. 학생들은 대천세계의 학원들의 정예가 모이는 학원 대회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다.
이는 영원들 사이에 펼쳐진 가장 큰 규모의 대회로 수많은 천재가 모이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이야말로 학생들 중 최강일 것이다.
학원 대회만으로 대천세계의 모든 젊은이의 실력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아무도 이곳에서 1위의 영예를 따낸 사람의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학생 중에서 대천세계의 유명인사로 거듭난 사람들이 적잖게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학생들을 비롯해 북창령원의 장로들마저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배웅하러 나섰다. 이번 학원 대회가 북창령원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목진은 낙신회 본부에서 북창령원의 원복인 푸른색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는 북창령원의 휘장이 새겨져 있었다. 휘장에는 소나무가 산봉우리에 우뚝 솟아올라 용곤의 모양을 한 산이 그려져 있었는데 곧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목진의 늘씬한 몸과 별을 수놓은 것 같은 눈망울, 푸른색 도포를 입어 드러난 소년미 넘치는 모습은 수많은 소녀의 마음을 울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흐뭇하게 웃으며 방에서 나왔다.
낙신회 본부는 어느새 회원들로 꽉 차 있었는데 목진이 드디어 밖으로 나오자 순식간에 들끓었다. 그들은 그와 낙리가 만든 낙신회 덕분에 노참들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고, 낙신회가 지금 누리고 있는 지위도 목진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이룬 성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에 목진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다른 쪽 방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소녀가 걸어 나왔다.
목진을 비롯해 낙신회 회원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소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다름 아닌 낙리로 평소에 입던 검은색 치마가 아닌 푸른색 원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옷은 소녀의 가녀린 몸매를 숨김없이 드러내 주었고 기다란 목선은 한없이 우아해 보였으며 잘록한 허리와 길쭉한 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머리를 한데 묶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낸 낙리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목진도 멍하니 낙리를 바라봤다. 평소의 차갑던 인상이 아닌 소녀의 생기 넘치는 모습이 너무 눈부셨다.
“뭘 그렇게 봐?”
사람들의 반응에 낙리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특히 목진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는 모습에 소녀는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물었다.
“예뻐? 언제까지 입을 그렇게 벌리고 있을 거야?”
낙리의 말에 목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가가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의 여황님, 당신의 기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낙리는 낙신족의 여황이기도 했지만 목진의 마음속에서도 영원한 여황이었다.
“낙신족에서 너처럼 담대한 기사는 벌써 중벌을 받았어.”
낙리가 히쭉 웃으며 목진의 손을 살포시 잡자 현장은 다시 끓어올랐다.
“가자.”
목진과 낙리는 한 줄기의 빛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수많은 낙신회 회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북창령원의 중심에는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목진 등이 도착하자 인산인해로 북적이던 곳이 바로 반으로 갈라졌다.
심창생, 이현통, 소훤 등은 이미 와 있었는데 원복을 입은 소년, 소녀들의 모습은 북창령원의 가장 빛나는 별처럼 보였다.
“미안, 조금 늦었죠?”
목진이 웃으며 말을 건네자 심창생 등도 미소 지으며 목진 옆에 있는 낙리에게 눈길을 돌렸다. 소훤마저도 소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였다. 낙신족의 차기 여황은 조금씩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때 태창 원장과 장로 다섯이 나타나 목진 등을 보고는 이내 정색하자 북창령원도 금세 조용해졌다.
“저들은 우리 북창령원에서 가장 훌륭한 학생들로 곧 잔혹한 전장에 들어가 오대원 중 하나인 학원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태창 원장의 목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지자 학생들은 격동되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열 명의 소년, 소녀를 바라봤다.
“승패와 관계없이 저들은 우리 북창령원을 위해 싸우는 영웅이다!”
말을 마친 태창 원장이 목진 등을 향해 인사를 건네자 뒤에 서 있던 장로들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북창령원을 위해 싸울 아이들한테 축복을 보냈다.
이에 주위에 모인 수많은 학생도 고개를 숙여 목진 등에게 인사를 하며, 자신들도 언젠가 이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 북창령원을 위해 싸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에 목진 등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고는 사람들한테 인사를 했다.
“나눈 소조대로 서거라.”
태창 원장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이에 목진과 심창생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나머지 여덟 명이 각각 조장한테로 다가갔다.
목진과 심창생이 이끈 두 소조는 북창령원에서 제일가는 실력자들이었다.
“전송 영진을 준비하거라.”
태창 원장의 말에 영계가 앞으로 나아가 손을 휘익 젓자 앞쪽에 천 장 크기의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는데 그 속에서 영력의 빛이 요동치며 거대한 전송 영진이 나타났다.
어느덧 전송 영진을 다 친 영계는 목진한테 다가갔다.
“몸조심해.”
“걱정 마요, 누이.”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영계는 씨익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다.
“전송 영진은 다 되었으니 떠날 준비나 해.”
이에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심창생이 앞장서며 말을 건넸다.
“목진아, 우리가 먼저 갈 테니 대회에서 보자. 우리 꼭 결승전에서 만나자!”
말을 마친 심창생은 이현통 등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올라 거대한 전송 영진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도 이만 가자!”
목진의 말에 낙리, 서황, 조청삼과 모풍양도 전송 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태창 원장은 떠들썩해진 북창령원을 보다가 길게 숨을 내뱉고는 점차 사라지는 전송 영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너희한테 달렸구나. 결승전에 북창령원이 나타났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