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뇌신지수(雷神之手)
슉!
웅장하고 날카로운 검기가 어느덧 하천을 이뤘는데 그 중심에 낙리가 장검을 들고 주위에 모인 다섯 사람을 공격했다.
이에 상대방은 체내의 영력을 한껏 끌어올리고 각자 강대한 신결을 소환해 검기의 하천에 맞섰는데 결국 맥없이 튕겨 나갔다.
낙리의 검기가 한순간에 상대방의 공격을 무산시켰다.
이에 대정령원 사람들이 도망치려 했는데 뒤쪽에서 갑자기 격렬한 파동이 느껴지며 들끓는 검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이들의 몸을 감쌌던 영기가 순식간에 무질서해졌다. 잇따라 대정령원 학생 중 조장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검기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고 부단히 피를 토하며 멀리 튕겨 나갔다.
어느덧 홀로 남겨진 대정령원의 조장은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두 눈이 휘둥그레져 태연하게 서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자신과 실력이 비슷해 보이는 소녀를 왜 이렇게 상대하기 어려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 혼자서 다섯 명을 상대하겠다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잘 못 걸려든 것이었다.
그때 낙리가 상대방을 힐끗 보고는 장검을 들었는데 대정령원의 조장은 순간 움찔해 뒤로 물러났다.
한편, 사람들은 예쁘게 생긴 낙리의 실력에 잔뜩 놀랐다. 실력이 비슷한 상대도 그녀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1위도 만봉령원의 온청선이 차지하고 있는데 또 이렇게 어마어마한 여인이 나타나다니, 이번 기 학원 대회에 참석한 여인들은 왜들 이렇게 강해?”
“온청선과 비교하면 과연 누가 더 강할까?”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 * *
서황, 조청삼, 모풍양도 청천령원의 세 조원을 막으러 나섰다. 이들 여섯 명은 전부 통천경 후기지만 서황 등이 우세를 차지하였다. 다들 북창령원의 유명인사인데 목진 때문에 빛이 가려졌을 뿐,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절대 실력이 뒤처지는 것은 아니었다.
목진과 낙리의 실력을 확인한 이들은 노참인 자신이 신생인 목진과 낙리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정말 답답했는데 그 울적한 마음을 풀기에 청천령원의 사람들은 제격이었다.
다른 편에서 싸우던 구북해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목진을 노려봤다.
“목진, 너…….”
쿵!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진은 수중의 서룡마창을 휘둘렀는데 경천의 살기와 함께 백 장 크기의 창망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쏜살같이 구북해에게 향했다.
이에 구북해가 부랴부랴 뒤로 물러났고 수중의 선홍빛 장검에서도 검망이 폭발하여 창망을 막았지만 결국 이기지 못하고 뒤로 수십 보나 물러났다. 영로에서도 목진의 상대가 아니었던 그는 희현이 아니었다면 이미 소년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그해, 목진이 희현의 꼼수에 넘어가 영로에서 쫓겨난 뒤로 구북해는 목진을 만나면 더는 두렵지 않을 거라고 여겨왔다. 영로 관정을 받은 그는 목진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났고 통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 목진을 보고 한없이 기뻤다. 그는 드디어 목진을 짓밟을 기회가 온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통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 목진의 실제 전투력은 육신난을 건넌 실력자 두 명과 상대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고 그중 한 명을 손쉽게 쓰러뜨릴 만큼 강했다.
“목진은 왜 이렇게 강한 걸까? 나 구북해는 영원히 녀석을 이기지 못하는 걸까.”
구북해는 이리 생각하며 목진을 노려봤다.
“목진, 오늘 난 반드시 너를 이길 거야!”
구북해의 손끝에서 갑자기 피가 뭉쳐지며 피비린내가 진동했는데 그 속에서 엄청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그가 열 손가락을 움직여 손끝에서 선명한 혈선을 내뿜자 자그마한 선혈의 검영을 이뤘는데 그 모습이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목진은 구북해를 막아 나서지 않고 조용히 서서 보기만 했다. 녀석이 최후의 필살기를 선보였을 때 때려눕혀야 자신감마저 사라질 거라 여겼다. 목진은 구북해한테 자신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쿵!
선홍빛 검영에서 엄청난 피비린내가 나더니 금세 주위로 퍼졌다.
“혈해검마결(血海劍魔訣), 혈마지검(血魔之劍)!”
안색이 창백해진 구북해는 살기 가득한 얼굴로 목진을 바라봤는데 그 앞쪽에 생긴 선홍빛 검영은 어느덧 백 장 정도로 커졌고 피가 흐르는 검영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러다 피비린내가 한계치에 이르자 구북해는 선홍빛 검영에 체내의 영력을 전부 쏟아부었다.
위잉!
검기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혈해를 형성하며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목진을 향해 내리꽂혔다.
구북해는 목진이 분명 자신의 필살기를 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씨익 웃었다. 이는 육신난을 건넌 고수를 죽이고도 남을 힘이 깃든 엄청난 공격이었다.
“죽어!”
구북해의 포효에 목진이 고개를 들어 주먹을 쥐었는데 가슴팍에 뇌문 네 갈래가 나타나며 피부 표면에 검은색 뇌호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쿵!
목진의 체내에서 전해진 나지막한 뇌명이 어느덧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때, 그가 손을 펼치자 검은색 벼락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벼락의 세계를 방불케 했고 그의 손바닥도 점차 까맣게 물들었다.
그때 목진은 손바닥을 내밀며 외쳤다.
“뇌신지수.”
이와 동시에 목진의 눈동자에서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소년의 체내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그 앞쪽에 수백 장 크기의 검은 거수로 변했다. 그리고 표면에 검은색 뇌호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한데 모였다.
그것은 난폭하기 그지없는 뇌신의 손 같았다.
뇌신체가 사문 뇌체가 되면 뇌신지수를 소환할 수 있는데 목진은 이제야 비로소 강력한 공격수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쿵!
목진이 손을 휘두르자 뇌명과 함께 검은색 뇌신지수가 하늘을 가르며 혈마검영과 부딪쳤다.
쿵!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며 무서운 파동이 돌풍을 형성해 주위에 휘몰아쳤고, 구북해의 하얗게 질린 얼굴은 완전히 혈색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선홍빛 검영에 미세한 균열이 인 것을 발견했다.
미세한 균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방대한 선홍빛 검영 전체로 퍼졌고 그 뒤에 생긴 혈해도 검은색 뇌호에 의해 증발했다.
“이게 너의 마지막 필살기야?”
목진이 무덤덤하게 사색이 된 구북해를 바라보며 실망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넌 역시 희현의 털끝만큼도 안 돼.”
그때 목진이 주먹을 쥐자 방대한 뇌신지수가 한데 뭉쳐 선홍빛 검영을 부숴버렸다.
풉.
이와 동시에 구북해가 피를 토하더니 영력 파동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주위에 떠 있던 사람들은 흠칫 놀라 목진을 바라봤다. 육신난을 건넌 고수 두 명마저도 목진의 상대가 되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목진은 분명 통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데 왜 이렇게 강하지? 전투력으로 보면 분명 영력난을 건넌 고수랑 똑같아.”
“무서운 소년이야.”
“구북해 등은 이대로 끝이겠군.”
“올해 학원 대회에서 북창령원이 좋은 성적을 따내겠어.”
* * *
양대 령원의 피 튀기는 싸움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보아하니 목진은 아직 진정한 힘을 선보이지 않은 것 같은데 구북해와 심준은 이미 중상을 입었다.
한편, 피를 토하고 있는 구북해는 목진과 눈을 마주치더니 부랴부랴 도망치려 하였다. 더 싸워봐야 아무런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조장!”
청천령원의 다른 세 조원이 구북해의 도주에 당황해 순간 머뭇거리자 서황 등은 바로 틈새를 노리고 공격했고 녀석들도 피를 토하며 멀리 튕겨 나갔다.
그런데 이때, 목진이 구북해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광선 한 줄기가 날아가 녀석의 열 손가락을 전부 잘랐는데 구북해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아픔마저 잊고 도주하기에 바빴다.
목진은 구북해를 풀어줬다. 싸울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구북해의 마음에 공포심까지 심어준 목진은 녀석을 쫓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녀석이 도망쳤으니 다시 돌아와도 청천령원에서는 더는 그에게 조장을 맡기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는 청천령원 학생들의 비난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녀석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잔인한 방법이었다.
목진은 구북해를 이리 만든 것이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영로에서 희현을 도와 목진을 내쫓았고 낙리까지 노렸으니 오늘 일은 스스로 자처한 일이었다.
탕!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검영 한 갈래가 영력의 빛줄기를 뚫고 대정령원 조장의 가슴팍을 겨눴는데 날카로운 검기에 청년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두 손을 들었다.
“우리가 졌어, 그만해!”
이에 낙리가 묵묵히 손을 내밀자 대정령원의 조장은 한숨을 쉬며 속으로 구북해 조장을 한바탕 욕했다. 그가 이토록 강한 상대를 건드렸을 줄 알았으면 절대 손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구북해 때문에 정보는커녕 열심히 모은 점수까지 내주게 되었다.
그가 원패를 소환해 낙리한테 건네자 소녀는 바로 목진한테 다가갔다.
“제법이네.”
대정령원의 점수는 700점도 넘었다. 목진은 이들이 여태껏 수많은 소조를 꺾고 얻은 점수인 것을 알면서도 바로 점수의 절반을 앗아갔다.
“청천령원의 점수까지 얻었으면 16위권에 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낙리는 구북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장이 가지고 있는 원패로만 점수를 빼앗기거나 빼앗을 수 있었고 일반 조원의 것은 그저 점수만 확인 가능했다. 구북해가 도주한 이상 청천령원의 점수를 빼앗을 방법은 없었다.
“아직은 16위권에 들 때가 아니야.”
목진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미 1,100점을 넘었으니 청천령원의 점수까지 빼앗고 16위권에 들면 모든 사람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그리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귀찮은 일이 많아질 것이 분명했고 학원 대회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여겼다.
온청선, 희현 등이 1, 2위를 차지한 것은 본인의 실력이 뛰어난 것뿐만 아니라 조원들도 최정예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목진이 이끈 소조는 훨씬 뒤처졌다.
이러한 목진의 생각을 읽어낸 낙리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심창생과 이현통이 조원이었다면 그들은 스스럼없이 치고 나갔을 텐데 그리되면 두 번째 소조의 실력이 많이 뒤처졌을 것이다.
“고마워.”
목진이 대정령원의 조장한테 원패를 돌려주며 방긋 웃자 상대방은 반이나 깎인 점수를 확인하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애써 모은 점수가 한순간에 반이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잇따라 목진은 시선을 황령원에 돌렸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변고를 확인한 나머지 두 소조는 안색이 한껏 어두워져 황령원에 대한 공격을 멈췄다. 이에 황령원은 한시름 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때, 목진이 낙리 등과 함께 다가가 씨익 웃으며 말을 건넸다.
“너희도 구북해와 같은 편이야?”
“그럴 리가. 우린 그저 서로 이용하는 사이일 뿐이야. 그런데 구북해가 도망갔으니 지금은 그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
두 소조의 조장이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대정령원과 청천령원의 꼴을 봤으니 목진 등을 상대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럼 비켜줄래?”
목진이 웃으며 묻자 상대방은 흠칫 놀랐다. 목진 등도 역시 황령원을 노리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들은 곧 황령원을 잡고 그들의 정보를 쉽게 캐낼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목진 등 때문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러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목진이 이들의 점수까지 빼앗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