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정보
목진은 앞으로 나아가 황령원 학생들을 쓰윽 훑었는데 대전을 치른 이들은 안색이 안 좋았지만 실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육신난을 건넌 사람이 두 명 있었고 나머지는 통천경 후기의 실력자로 구북해 등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역시 16위권에서 버티고 있을 만했다.
그때 황령원 무리에서 튼실한 청년이 걸어 나와 목진에게 말을 건넸다.
“난 황령원의 임주(林州)이고 이 소조의 조장이야.”
“난 북창령원의 목진이고 우리 소조의 조장이야.”
목진도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저들을 물리쳐줘서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언젠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대신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어.”
임주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하고는 떠나려 하자 낙리가 서황 등과 함께 막아섰다.
“임주 조장, 초면이지만 너무 친근하게 느껴져 그러는데 우리와 함께 갈래? 주위에 너희를 노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또 봉변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목진이 다가가 임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하루를 들여 이곳에 찾아와 청천령원까지 물리쳐줬는데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이에 임주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이 이끈 소조와 실력이 비슷한 구북해 등을 손쉽게 물리친 목진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하여 그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목진 등을 따라나섰다. 겨우 살아남았는데 또 다른 맹수의 손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황령원을 호시탐탐 노리던 사람들은 목진 등과 함께 떠나는 그들을 막아 나설 수 없었다. 청천령원마저 손쉽게 짓밟아버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싸울 마음이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목진 등이 황령원 사람들과 함께 이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멀리 떠나자 사람들은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구북해와 심준을 쓰러뜨린 것이 사람들한테는 큰 충격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황령원 사람들을 이토록 쉽게 데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느덧 적당한 곳을 찾은 목진이 낙리 등과 함께 외진 산봉우리에 내려앉자 임주도 한숨을 쉬며 조원들과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일단 숨부터 돌려.”
목진이 건넨 말에 안색이 창백해진 임주 등은 흠칫하였다. 실력이 돌아오면 상황이 난처해질 텐데도 숨을 돌리라고 말한 목진에게 조금 놀란 눈치였다.
“네가 그 정도로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닐 거라고 믿어.”
목진이 씨익 웃으며 옆에 있는 거대한 암석을 가볍게 때리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암석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목진의 위협적인 말에 임주 등은 어색하게 웃더니 바로 눈을 감고 체력을 회복을 서둘렀다.
이때, 낙리가 다가와 목진한테 물었다.
“뭘 하려고 그러는 거야?”
저들의 점수를 빼앗으려는 것이었다면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서황 등도 목진의 생각이 궁금해 눈길을 돌렸다.
“우리한테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야.”
목진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갔다.
“원장님께서 하셨던 말씀 기억나? 이곳 부서진 유적 대륙은 원고의 보물과 계승으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가 그중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면 실력이 부쩍 늘 거야. 현재, 16위권이 계속 변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지? 그중 극소수만 진정한 실력자이고 나머지는 마지막까지 16위권에 남아있을 자격이 없어.
진정한 실력자들은 점수를 따기보다는 대륙을 누비며 유적을 찾아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어. 점수에만 연연하다가 누군가의 손에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 실력이야말로 이곳에서 승패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니까.”
목진의 말에 서황 등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실력이 부족하면 지금 1위를 한들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고 누군가한테 쉽게 점수를 내줄 수밖에 없다.
“우리 소조는 현재 1, 2위에 비해 어느 정도 실력 차이가 나.”
목진이 서황 등을 바라보며 한 말에 그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지만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들 중 1, 2위에 오른 실력자들과 엇비슷한 실력을 보유한 것은 목진과 낙리 뿐이고 나머지는 두 사람의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조원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려고 해. 적어도 전부 육신난은 건너야지.”
이에 서황 등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육신난은 말이 쉽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넌 유적을 찾아 조원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려고 이러는 거야?”
낙리가 눈을 감고 수련 중인 임주 등을 힐끗 보고 말을 이어갔다.
“저들한테서 상고의 유적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려는 거지?”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임주 등을 바라봤다.
“저들은 이곳에 온 지 하루도 안 돼서 상고의 유적에 관한 정보를 얻었지만 바로 들켰을 뿐만 아니라 16위권에 들어 위치까지 노출되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에 낙리가 피식 웃었고 서황 등은 가여운 듯 임주 등을 바라봤다.
“그런데 저들이 우리한테 정보를 공유할까? 중요한 정보이니만큼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서황의 말에 목진이 히쭉 웃으며 답했다.
“우리가 저들을 구하고 원기를 회복하게까지 했는데 배은망덕하게 나오지는 않겠죠. 난 친구한테 우호적인 편이지만 배신자는 절대 가만두지 않아요. 규칙대로라면 한 소조의 점수는 하루에 한 번씩밖에 빼앗을 수 없으니까 일단 저들이 우리를 배신하면 난 탈락할 때까지 저들을 칠 거예요.”
목진이 상냥하게 웃으며 한 말에 서황 등은 소름이 쫙 끼쳤다. 녀석이 이렇게 독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 낙리는 임주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들 잠시 쉽시다. 저들이 기력을 회복하면 다시 보죠.”
목진이 나긋하게 말하자 서황 등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왜 그렇게 무서운 말만 하는 거야? 다들 놀란 거 못 봤어?”
낙리가 옆에 다가와 앉아 조용히 건넨 말에 목진은 이내 웃으며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임주를 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학원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따내려면 조원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리고 원고의 유적이 우리한테도 유익하잖아? 지금쯤 실력파들은 유적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을 테니 우리도 빨리 찾아 나서야지.”
목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조장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이에 낙리가 목진을 째려보며 물었다.
“그게 네 손이랑 뭔 상관일까?”
낙리의 말에도 목진은 멈출 줄 모르고 낙리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이에 낙리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소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서황 등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지만 낙리를 품에 안은 목진이 자못 부러웠다.
“우리가 북창령원에 온 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가네?”
목진의 말에 낙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생각난 듯 시무룩해졌다.
“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이제 얼마 없어.”
이에 목진은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2년은 낙천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양보라 시간이 되면 낙리는 바로 낙신족으로 돌아가 차기 황이 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때가 되면 낙리는 낙신족의 수많은 백성을 지켜내야 하는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져야 했다.
여린 소녀가 그 무거운 짐을 홀로 감당할 거란 생각에 목진은 마음이 아팠지만 자신은 아직 그녀를 도와줄 만한 능력이 안 되었다.
“낙리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날 꼭 기다려줘. 언젠가 내가 낙신족으로 찾아가 너를 괴롭힌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릴 거야!”
목진이 고개를 숙여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알겠어.”
의지가 확고한 목진의 말에 낙리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낙신족에 있는 자신은 할아버지한테라도 기댈 수 있는데 목진은 홀로 대천세계를 누비며 강자가 되어야 하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그러나 낙리는 이러한 생각은 드러내지 않고 그저 목진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에 목진이 입을 맞추려고 서서히 눈을 감으며 낙리한테 다가갔는데 부끄럼 많은 낙리도 소년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들려 낙리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목진을 밀어내고 도망갔다.
목진은 아쉬운 나머지 눈을 부릅뜨고 어색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임주를 쏘아봤다. 그 눈빛은 당장에라도 임주를 찢어 죽일 것만 같았다.
이러한 그의 눈빛에 화들짝 놀란 임주는 소년이 했던 말이 생각나 두 손을 번쩍 들며 입을 열었다.
“목진 조장, 정보를 공유할게.”
“그래?”
정보 공유란 말에 목진은 다시 상냥하게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역시 임주 조장은 도량이 남달라. 고마워.”
임주는 이러는 목진이 구북해 등보다 훨씬 무섭단 생각이 들었다.
목진이 사람들을 불러모으자 낙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다가왔다. 임주는 소녀의 미모에 잠시 푹 빠졌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임주 조장, 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줘. 만약 가치 있는 정보라면 협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목진이 정중히 물었다. 협박보다는 협력하는 것이 임주나 목진한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이에 임주는 흠칫 놀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러나 정보를 독점하고 싶은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목진의 반응에 조금 시름이 놓였다. 적어도 목진은 정보만 얻고 정보 공유인을 내치려는 사람들과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우리가 전송점에 도착했을 때 얻은 정보야.”
임주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날, 다른 소조와 싸우다가 산암을 부쉈는데 그 속에서 옥책이 나왔어. 옥책에 상고의 유적에 관한 정보가 적혀있었어.”
목진 등은 상대방의 행운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옥책에 노선도 있었는데 아마 서북쪽일 거야.”
“원고의 유적에 뭐가 있어?”
“그건 잘 몰라.”
목진의 질문에 임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옥책에는 내가 말한 정보들만 적혀있었어. 구체적인 건 찾아가 봐야 알 수 있고 이 유적에 대해 아는 게 우리뿐만이 아니야. 유적을 발견한 소조가 꽤 있다고 들었는데 그중에는 엄청난 실력파도 있을 거야.”
임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성령원에서도 한 소조가 그 유적을 찾아 나섰다고 들었어.”
“성령원이라…….”
성령원이란 말에 목진의 눈에 순간 한기가 서렸다.
“누가 이끄는 소조인지 알아?”
그 조장이 만약 희현이라면 목진은 생각보다 빨리 그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령원의 네 소조 중 호락호락한 소조는 아무도 없어. 그런데 희현의 소조가 실력이 제일이라고 들었어. 만약 유적을 찾으러 간 이들이 그들이라면 우리가 원고의 유적을 따내기란 거의 불가능해.”
임주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거야 만나봐야 알지.”
목진 또한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아는 임주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넌 우리와 함께 원고의 유적을 찾으러 가려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전리품은 어떻게 나눌 생각이야?”
“일단 함께 유적에 들어가면 각자 알아서 찾자. 대신 배신하지 말고 누군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면 최대한 돕고 서로의 성과에 질투하지 말자. 어때?”
임주가 이끄는 소조도 실력이 괜찮아 함께하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임주 등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