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4대원이 한 자리에
“그럼 바로 떠날까?”
구북해 등만 아니었어도 바로 유적을 찾아 나섰을 거라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가기 전에 일단 16위권에서 물러나. 지금 순위권에 오르는 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야.”
목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우리도 원패에 적힌 정보로 너희를 찾았어.”
“괜찮아. 이미 떨어졌어.”
임주가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불긋해져 한 말에 목진이 원패를 확인하자 그들은 정말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순위는 계속해서 바뀌어. 우리가 여태껏 점수를 얻지 못했으니까 바로 순위권에서 밀려났겠지.”
임주의 말에 목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순위권의 변동은 점차 적어질 것이고, 그때까지도 16위권에 남아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고수일 것이다.
“그럼 갑시다.”
목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임주 등도 바로 준비하고 뒤를 따랐다.
이렇게 이들은 열 갈래의 빛줄기가 되어 서북쪽을 향해 돌진했다.
한편, 영력의 빛을 감싼 목진은 잠시 사색에 잠겼다. 그가 반년 전에 얻은 대일불멸신의 위력은 막강한데 수련 조건이 유달리 까다로웠다. 이는 천부적 재능에 대한 요구가 아주 높을뿐더러 세 가지 보물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는데 북창령원의 영치전에는 단 한 가지도 없어 태창 원장에게까지 찾아갔었다.
그런데 태창 원장마저도 구해줄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세 가지 보물은 너무 진귀하고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구양신지(九陽神芝)로 아주 보기 힘든 지양지물(至陽之物)이었다. 무한한 광명을 선사하고 그 속에 신불이 깃들어있어 지존경의 강자도 감히 삼키지 못하지만 일단 제련하면 영력에 그 힘이 깃들어 아주 강해지게 되어있었다.
영력의 속성을 바꿀 수 있는 보물은 지존경의 강자마저 탐내는 물건이라 일단 나타나면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 것이고, 그 가격도 엄청 비쌀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보물은 허공대일과(虛空大日果)로 허무한 공간에서 태어나 천지의 제일가는 양기를 머금고 자라는데 허공대일과 한 알은 한 공간에서 천 년간 연소할 수 있어 이를 제련하면 대일신의 수련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대일신은 99가지 지존 법신 중 95위로 순위가 많이 뒤처지지만 그 위력만은 대단했다.
마지막 보물은 불멸신엽(不滅神葉)으로 가장 신비롭다 이는 불멸신수의 잎인데 신수는 식물이긴 하나 인간 못지않은 지능이 있어 생령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하여 지존급 실력자라도 완전히 자란 불멸신수를 건드리지 못해 그 잎을 따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태창 원장은 유적 대륙에서 기회가 닿으면 해당 보물들을 얻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가볍게 숨을 내뱉더니 입을 삐쭉 내밀었다. 대일불멸신은 역시 아무나 수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세 가지 보물을 모두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토록 수련하기 어려운 대일불멸신의 위력이 얼마나 강할지 더욱 궁금해졌다.
만약 대일불멸신의 수련에 성공한다면 실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록 목진이 지존경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기회가 닿을 때 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대일불멸신의 수련방법을 보면서 애간장만 태울 것이다.
“이 유적에서 세 가지 보물에 대한 단서를 찾았으면 좋겠군.”
목진이 이내 생각을 접고 속도를 끌어올려 서북쪽으로 향했다.
* * *
유적은 조금 외진 곳에 있어 목진 등은 반나절이 지나서야 그 구역에 도착했다.
어느덧 노을이 하늘을 빨갛게 물들자 목진 등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어두운색을 띤 원시림으로 잎이 우거진 나무가 잔뜩 있었는데 생기는커녕 음산한 기운만 물씬 풍겼다.
목진은 물끄러미 주위를 훑더니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곳은 이미 드러났군.”
목진의 눈길이 향한 곳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저 멀리서 부단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구북해 등만 아니었어도 이미 이곳에 도착했을 거란 생각에 임주 등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과 유적을 빼앗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편, 사람들도 목진 등의 도래에 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슉!
그때 그들은 정색하며 북쪽을 바라봤는데 그곳에서 지극히 웅장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잠시 후, 빛줄기 여러 갈래가 쏜살같이 이곳으로 향했다.
“성령원 사람들이야.”
누군가 잔뜩 경계하며 외치자 목진은 이내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성령원 사람 중에 과연 희현이 있을까?
슉!
웅장한 영력 파동에 사람들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고 잔뜩 긴장하여 성령원 쪽을 바라봤다. 성령원은 학원 대회에서 여러 차례 1위를 한 학원이라 그런지 실력이 남달랐다.
한편,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져 성령원 쪽을 바라봤고 낙리 등도 잔뜩 경계하였다. 북창령원과 성령원은 사이가 좋지 않아 만남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빛이 가시고 사람들 앞에 성령원 학생들이 나타났는데 하얀색 옷을 입은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주위를 쓰윽 훑었다.
다섯 명 중 가장 앞에 선 이는 누가 봐도 조장으로 보였다. 그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기다란 손은 아주 특이해 새하얀 손에서 옥석처럼 광택이 일었다.
“희현이 아니군.”
안색이 조금 밝아진 목진은 옥수를 지닌 사내한테 눈길을 멈췄다. 녀석한테서 아주 강력한 영력 파동을 느꼈는데 이는 마형천보다도 강력했다!
“영력난을 건넌 고수란 말인가?”
역시 원수의 자리를 탐내는 학원이라 그런지 학생들의 실력도 대단했다. 조장은 영력난을 건너고 조원 세 명은 육신난, 나머지 한 명은 육신난에 실패라…….
보이는 실력만으로 비교하면 목진 등은 전혀 상대가 안 되었다.
서황 등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약 목진과 낙리가 같은 조가 아니었다면 아마 상대방의 공격을 단 1회도 받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북창령원도 학생 배양에 열중하고 있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성령원에 비하면 많이 뒤처졌다.
“저 사람은 성령원 4대 성자 중 한 명인 하후(夏侯)로 이미 영력난을 건넜어. 저렇게 강력한 상대가 오다니 일이 많이 복잡해졌어.”
옆에 서 있던 임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성령원이 나타나자 대부분은 임주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자신은 감히 성령원한테 덤빌 실력이 아니란 것을 잘 알았다.
“하후라…….”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후가 희현과 힘을 겨뤘던 적이 있다고 들었어.”
임주의 말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 누가 이겼어?”
“승패가 갈리지 않았어. 다만, 이건 희현이 성령원에 든지 반년도 안 돼서 생긴 일이야. 희현은 참 대단해. 어떻게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4대 성자 중 한 명인 하후를 꼼짝 못 하게 해? 현재 4대 성자 중 최강자는 아마 희현일 거야. 물론 나머지 세 사람은 절대 이를 쉽게 인정 못 하지만.”
이에 목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희현의 천부적 재능에 영로 관정까지 더해졌으니 수련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하여 목진은 녀석이 성령원에 든지 반년 만에 하후와 싸워 무승부가 난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한편, 이곳에 도착한 성령원 학생들은 조용히 서서 어두운 원시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도 그곳이 괴이하다고 생각했는지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들의 반응에 다른 사람들도 감히 나서지 못해 이곳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하하, 유적이 있단 소식에 성령원에서도 왔네?”
이때 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다들 고개를 들어보니 여인 다섯 명이 주위에 내려앉았다.
“만봉령원이야!”
만봉령원은 여인만 받아들이는 특수한 학원으로 수많은 사내가 그곳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제아무리 천부적 재능이 뛰어나도 남자는 모두 거절했다.
그래서 학원 교류회를 핑계로 출전해야만 잠시나마 만봉령원의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내와는 달리 목진은 영로에서 1위를 따냈던 온청선을 볼 수 있나 해서 만봉령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여인은 늘씬한 몸에 빨간색 치마를 입었고 기다란 다리에 잘록한 허리, 하얀 피부, 예쁘장하게 생기 얼굴에 여우 같은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사내의 마음을 사라잡고도 남을 외모였다.
“온청선은 아닌 것 같네?”
목진은 온청선을 본 적은 없지만 저 요염하게 생긴 여인은 절대 영로에서 1위를 따낸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녀의 실력도 강했지만 영력 파동으로 보면 아마 영력난을 건너는 데 실패했을 거라 짐작되었다.
“저 여인은 만봉령원의 당미아야. 비록 온청선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절대 무시할 수는 없는 상대지.”
임주도 여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히쭉 웃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만봉령원 사람들도 목진 등 북창령원 소조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났다. 당미아를 제외하고도 육신난을 건넌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만봉령원에서도 왔으니 볼거리가 생겼네.”
임주는 당미아한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무령원에서도 왔어.”
목진이 입을 삐쭉거리며 임주한테 한마디 하려다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는 말을 바꿨다.
다른 쪽에서 영력 파동이 느껴지더니 빛줄기들이 날아오며 누군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주위에 퍼졌다.
“하하, 떠들썩하네. 오대원 중 네 곳이 모였으니 미리 결승전이라도 펼치려는 건가?”
슉!
커다란 나무에 내려앉은 다섯 명의 흑의 청년 중 유달리 튼실한 한 사내가 있었는데 강철처럼 단단한 근육은 침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았고 어깨에는 검은색 쇠막대기를 메고 있었다.
“무령원의 주원(周猿)이야. 저 녀석은 싸움에 진심인 편이야.”
쇠막대기를 멘 튼실한 사내를 본 임주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미친놈은 절대 건드리지 마. 일단 눈에 띄면 널 죽을 때까지 때릴 거야.”
이에 목진은 당미아와 실력이 비슷한 주원을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 엄청난 실력을 갖춘 소조가 또 하나 늘었다.
유적 하나 때문에 오대원 중 네 군데에서 왔다는 사실에 목진은 헛웃음만 나왔다. 목진이 물리친 청천령원까지 더하면 오대원이 한자리에 모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보물을 얻기가 많이 어려워졌군.”
임주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빨리 왔어도 유적을 얻을 가능성이 훨씬 컸겠지만, 정보가 샌 지금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이다. 사대 령원 중 누구 하나 호락호락한 상대가 없었다.
성령원은 말할 나위 없이 강력했고 만봉령원과 무령원도 막강한 실력자들이 모여 있었다. 목진 등은 보기에 최약체지만 임주는 목진이 얼마나 독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소년은 통천경 후기의 실력으로 육신난을 건넌 고수를 손쉽게 해결한 미친놈이었다.
이렇게 사대원이 한곳에 모였으니 아마 피 튀기는 전쟁이 곧 일어날 것이다.
우거진 산맥 주위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는데 아무도 감히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어둠의 숲에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한쪽은 미지의 구역이고 다른 한쪽은 실력이 막강한 4대원 사람들이라 이때 먼저 나서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목진도 낙리 등과 함께 어둠의 숲에서 적당하게 떨어진 곳에 서서 다른 3대원을 쓰윽 훑었다.
이곳에 모인 4대원 중 성령원의 실력이 제일이고 2,800점으로 현재 7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일단 꺾으면 얻을 수 있는 점수는 엄청났으나 감히 이들을 노릴 사람은 없었다.
한편, 분위기가 갑갑해지자 사람들은 대부분 성령원의 하후을 바라봤다.
비록 4대원이 한데 모이기는 했지만 역시나 성령원의 실력이 제일이란 생각에 하후는 씨익 웃었다.
“다들 왜 이렇게 조용할까? 원고의 유적이 여기 숲속 깊숙한 곳에 있다지? 이곳 부서진 유적 대륙에는 보물이 수두룩한데 전부 주인 없는 물건이라 누구 손에 들어갈지는 운에 맡겨야지, 실력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지 않나?”
이때, 만봉령원의 당미아가 꺄르륵 웃으며 입을 열자 목진은 자연스레 당천아가 떠올랐다.
당미아는 분명 성령원을 놓고 한 말이었는데, 만봉령원에서 성령원을 많이 경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원 조장,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해?”
당미아가 생긋 웃으며 무령원 쪽을 바라봤다.
“하하하, 난 미아 조장의 말에 동의하는 바야. 유적 대륙에 있는 원고의 유적은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누군가 보물을 독점하려고 한다면 내 수중의 쇄악곤(碎嶽棍)을 부수고 가야 할 거야.”
주원이 호탕하게 웃으며 답하자 사람들은 두 사람이 성령원에게 경고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