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마수(魔樹)
한편, 주원은 입맛을 다시며 목진을 노려보다가 수중의 무기를 쓰다듬었다. 목진과 한 번쯤 싸워 보고 싶었다.
“제법이군.”
하후가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자 목진은 수중의 장창을 거두며 방긋 웃었다.
“하후 조장은 못 따라가지.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이에 하후는 목진을 한참 노려보더니 씨익 웃으며 답했다.
“목진 조장이 자격이 없으면 이곳에 그 자격을 갖춘 사람은 몇 명 없을 거야.”
목진의 실력을 직접 확인한 하후는 소년을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상대하기 쉽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아무리 그라도 목진 등을 쓰러뜨리고 만황령원과 무령원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유적을 찾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하후의 말에 목진은 이내 웃었다. 자신이 이 정도의 힘을 선보이지 않았으면 상대방은 분명 살수를 뒀을 것이다.
하후의 실력은 마형천보다 훨씬 뛰어났다. 비록 목진도 마형천과 싸울 때보다 실력이 좋아졌지만 승패를 가리려면 마형천을 상대했을 때처럼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할 거란 느낌이 들었다.
목진은 하후 쪽에서 또다시 자신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들을 학원 대회에서 탈락시킬 것이다.
그렇게 목진은 낙리와 함께 물러났는데 서황 등은 으쓱하며 목진한테 엄지를 척 내밀었다. 하후 같은 사람마저 꼬리를 내리게 하다니, 북창령원의 일인자인 목진은 역시 대단했다.
그 옆에 서 있던 황령원 사람들도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목진 혼자서 육신난 고수를 물리치는 것을 봤지만 영력난 고수를 직접 상대하는 것을 보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목진은 웃으며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더는 그들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북창령원을 다시 오대원 중 하나로 중시하기 시작했다.
위잉.
그때, 어두운 원시림의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은은한 향기가 주위에 퍼졌다. 이에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원시림을 노려봤다. 역시나 이곳은 원고의 유적지였고 은은한 향기는 진귀한 보물이 발산하는 냄새였다.
목진도 특이한 향기에 체내의 영력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 역시 원시림에 엄청난 보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곧 미친 듯이 뛰어들 거야.”
임주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어 이제는 하후 등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고, 그들이 이성을 잃고 뛰어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목진도 임주의 말에 동의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이 적으면 몰라도 그게 아닌 이상 이토록 많은 사람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준비해. 대신 다들 조심해. 이곳은 뭔가 수상해.”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어두운 원시림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이곳은 뭔가 거슬렸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다.
“유적이 열렸다. 주인이 없는 물건은 찾아내는 사람이 임자이니 다들 들어갑시다!”
향기가 점차 짙어지자 누군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원시림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수백 명이 어두운 원시림으로 향했는데 하늘에 날아오른 이들은 바로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이 구역에서 비행은 금지인 것 같았다.
“날 수 없다면 뛰면 되지!”
흠칫 놀란 사람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어두운 원시림을 향해 돌진했다.
“우리도 이만 갈까?”
서황 등이 잔뜩 흥분해서 물었다.
“너무 조용해.”
인상을 한껏 찌푸린 목진을 바라보던 낙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백 명이 들어갔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이 꼭 원시림에 들어가자마자 모두 죽은 것처럼 수상했다.
“이곳은 뭔가 수상해.”
“그럼 이대로 포기해?”
목진의 말에 서황 등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렵게 유적을 찾았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하후, 당미아, 주원 등도 저렇게 기다리고 있잖아?”
하후, 당미아, 주원 등뿐만 아니라 실력을 꽤 갖춘 소조들은 조용히 서서 앞장서 뛰쳐나간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에 과연 뭐가 들어있을까?”
목진이 어두운 원시림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무도 뒤쪽 밀림에서 원시림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중 한 사람이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가 제대로 찾아왔어. 이곳이 바로 독림(毒林)일 거야. 상고 시기, 유적 대륙의 패주 세력인 목신전(木神殿) 중 하나가 이곳에 있었지.”
슉!
사람들은 미친 듯이 어두운 원시림으로 몰려들었는데 마치 이곳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처럼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인기척이 들려오지 않았다.
이에 낙리와 목진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들어갈 준비를 합시다. 다들 조심해.”
그는 상고의 유적에서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더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서황 등은 고개를 끄덕이고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고 임주 등도 바로 뒤를 따랐다. 목진의 실력을 확인한 후, 그만 잘 따르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시다!”
다른 3대원 사람들도 더는 참지 못하고 원시림으로 향했는데 마치 악마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한편,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바로 원시림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낙리 등이 따라붙었다.
순간 어둠에 파묻힌 목진은 바람 소리마저 사라져, 한없이 고요한 공간에 홀로 남겨진 느낌에 흠칫 놀랐는데 낙리 등이 바로 따라 들어와 그나마 시름을 놓았다.
“이곳은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을뿐더러 외부의 소리도 완벽히 차단하는 것 같아.”
임주의 말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폈다. 어두운색을 띤 나무들은 하늘 높이 뻗어 빛마저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빼곡하게 자라 있었다.
목진 등은 습격을 대비해 체내의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잔뜩 경계하며 전진했는데 1각이 지났는데도 주위가 조용했다. 나무가 촘촘하게 자란 원시림은 괴이하리만큼 생기가 없었다.
“잠시만!”
목진은 갑자기 멈춰서서 앞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열 구도 넘는 백골이 누워있었다.
“전에도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네.”
서황 등이 흠칫 놀라 말했다.
“아니야. 이건 방금 앞장서 들어왔던 이들의 시체야.”
“뭐?!”
낙리의 말에 서황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사람이 죽어 백골만 남는다는 말인가?
목진도 낙리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폈다.
“조심해, 원시림이 이상해.”
원시림엔 생물은 없어 보였는데 눈앞의 백골을 보면 분명 무언가가 존재하긴 했다.
이때, 대지가 미세하게 떨리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나뭇잎들이 날아오르며 흑광이 서황 등의 허리를 감싸 이들을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변고로 다들 화들짝 놀랐는데 흑광은 다름 아닌 검은색 덩굴로 이들의 피를 흡입하고 있었다.
이에 서황 등이 바로 영력을 끌어올려 덩굴을 끊으려 했지만 산을 부수고도 남을 힘으로 내리찍어도 덩굴은 은은한 자국만 생길 뿐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덩굴의 한쪽에 검은색 가시가 자라더니 사정없이 서황과 임주를 향해 다가왔다.
서황과 임주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
슉!
그때 날카로운 검광이 날아와 검은색 덩굴을 끓어내자 두 사람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고마워.”
서황과 임주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낙리에게 말했다. 이에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덩굴이 아무리 질기고 단단해도 낙신검을 당해낼 정도는 아니었다.
“나무가 수상해!”
목진이 주위를 훑다가 검은색 나무로 고개를 돌렸는데 뭔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외쳤다. 그때 나무들이 미친 듯이 떨며 검은색 덩굴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에 다들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고 영기를 소환해 덩굴에 맞섰다.
목진의 서룡마창에 검은색 덩굴은 바로 부서졌고 낙리의 낙신검에 베인 덩굴은 흑혈을 흘렸다. 흑혈은 지면을 녹여 구멍을 낼 정도로 강력했다.
목진 등은 최선을 다해 공격을 막았지만 덩굴은 끝도 없이 자라났다.
“이러다 우린 언젠가 죽을 거야.”
조성삼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낙신검 같은 신기가 아니면 덩굴을 베기가 너무 어려웠고 영력이 고갈되면 이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백골이 될 것이다.
“뚫고 지나갑시다.”
말을 마친 목진이 낙리와 함께 미친 듯이 몰려오는 덩굴을 가르고 뛰쳐나가자 임주 등도 바로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때, 주위의 검은색 나무가 갑자기 파르르 떨리더니 그윽한 검은색 연기를 내뿜었다.
“조심!”
이를 먼저 발견한 낙리가 검을 휘둘렀지만 검광은 검은색 연기를 뚫고 지나갈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두르자 웅장한 영력을 실은 장풍에 안개가 조금 뒤로 물러났다.
“으악!”
그때 황령원 조원 한 명의 손이 독기에 닿아 비명을 질렀다. 다들 뒤돌아보니 독기에 닿은 팔이 빠르게 마르며 뼈가 드러났다.
이에 임주는 바로 그자의 팔을 베고 함께 뒤로 물러났다.
“젠장, 이건 독이야.”
임주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 독은 영력을 뚫을 수 있어. 손에 닿으면 끝이야!”
“우리가 독무에 휩싸였군.”
모풍양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방이 독기로 가득 차 있어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후퇴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역시 원고의 유적지는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목숨을 빼앗길 수 있었다.
“어떡하지?”
낙리도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도 독기를 물리칠 방법은 없었다.
이때 목진은 뭔가 생각난 듯 오른손을 내밀어 중지를 독무에 가까이했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낙리가 목진을 막아서려 했는데 목진의 중지가 무서운 독무를 전부 흡수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낙리가 황급히 소년의 손을 잡으며 묻자 목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청난 보물을 찾은 것처럼 씨익 웃으며 독무를 바라봤다.
독무의 위력이 엄청나 마형천을 상대하느라 고갈되었던 독지에 다시 독기를 보충할 수 있게 되었다.
검은색 독무는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어 조금만 닿아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서황, 임주 등은 잔뜩 정색하며 영기로 자신을 감쌌다.
그런데 그때 목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들 움직이지 마.”
낙리는 독기로 향하는 목진이 걱정되었지만 막아 나서지는 않았다. 목진은 절대 무턱대고 독기를 가까이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에 서황 등은 멍하니 목진을 바라봤다. 녀석이 도대체 뭔 속셈인지 궁금했다.
한편, 목진이 중지를 내밀자 순간 어두워진 손가락은 은은한 향기를 발산했다. 북명룡곤의 봉인과 흑신뢰독지로 인해 목진의 손가락은 엄청난 항독력을 지녔다.
이는 목진의 숨겨둔 필살기로 마형천과의 싸움에서도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일격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스스로 독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에 외부에서 독을 흡수해 독지의 힘을 비축해야만 했다.
목진은 흑신뢰독보다 강한 독을 찾기가 어려워 독이 고갈된 독지가 여태껏 안타까웠는데 그 아쉬움을 원시림에서 달래게 되었다.
독무의 독은 흑신뢰독처럼 난폭하지는 않아도 영력을 부식시켜 일단 상대방에게 닿으면 싸움은 그대로 끝날 것이다.
이때, 목진이 깊게 숨을 내쉬더니 중지에 영력을 불어넣자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독무가 미친 듯이 목진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흑광을 발하는 목진의 중지는 탐욕스럽게 독무를 흡수하며 점차 색이 짙어졌는데 꼭 검은색 액체로 이뤄진 것 같았다.
이렇게 1각 정도가 지나자 검은색 독무는 어느새 희박해지다가 드디어 완전히 사라졌고 목진도 만족한 듯 히쭉 웃었다. 독무로 피해를 보기는커녕, 독지에 독기를 보충하게 되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잇따라 목진이 손을 가볍게 튕기자 까맣게 그을렸던 중지는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이는 북명룡곤의 봉인이 다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소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임주 등에게 다가가 방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제 됐으니 이만 가죠.”
“뭘 어떻게 한 거야?”
임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는 목진의 실력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별거 아니야.”
목진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임주 등과 협력 관계이긴 하지만 모든 걸 알려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얼른 떠납시다.”
목진이 독기를 전부 흡수하자 마수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들이 떠난 뒤 이곳에 찾아올 사람들이 백골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목진이라도 마수를 뿌리째 뽑아버릴 능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