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선령수(仙靈樹)
어느덧 해독을 마친 당미아 등이 바로 눈을 감고 영력 회복에 집중하자 목진은 한시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질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서황 등을 노려봤다.
“인기가 엄청난걸.”
낙리가 낙신검을 만지작거리며 목진을 노려봤다.
“질투하는 거야?”
목진이 히쭉 웃으며 물었다. 소년은 늘 조용하기만 한 낙리의 이런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런 목진의 속내를 꿰뚫어 본 낙리는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목진을 못 본 척했다.
“역시 우리 낙리가 제일이야.”
소년이 손을 꼭 잡으며 속삭이자 낙리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져 목진을 째려봤지만 결국 손은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때 다시 웅장하고 강력한 영력을 되찾은 당미아 등이 목진한테 말을 건넸다.
“목진아, 이제부터 우리 협력하자.”
당미아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적을 찾다가 하후 등과 마주치면 우리 함께 그들을 없애자. 점수는 너희가 다 가져. 그리고 우리를 습격했던 소조도 언젠가 나타날 텐데 힘을 합치면 서로 도움이 되고 더는 그들의 습격을 당하지 않고 좋잖아? 너희도 우리 같은 실력자가 필요하지 않아?”
목진은 당미아가 복수를 위해 점수까지 포기하며 자신과 협력하려 할 줄 몰랐다. 이리되면 앞으로 하후 등을 만나도 더는 꺼릴 것 없이 바로 상대하면 그만이었다.
역시 여인은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일단 화가 나면 이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인이었다.
“좋아.”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 상대방과 손을 잡기로 했다. 당미아 소조 없이 하후 등과 마주친다면 서황 등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뿐더러 목진과 낙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것이 목진이 여태껏 하후 등을 상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였다.
“당미아 조장이 우리한테 큰 선물을 줬군.”
목진의 말에 당미아는 생긋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다.
“오는 게 있으니 가는 것도 있어야지. 그리고 날 미아 누이라고 불러.”
“그래, 미아 누이. 그럼 어디 잘해봅시다.”
언젠가 목진 등은 만봉령원과 싸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서로 도우며 유적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그럼 이만 떠납시다. 곧 이 숲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목진의 말에 다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서황 등은 엄청난 실력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세등등해졌고 하후 등과 마주칠 날을 기다렸다.
“갑시다!”
당미아 소조와 목진 소조는 함께 저 멀리 있는 빛을 향해 신속하게 나아갔다.
“하후, 넌 언젠가 내 손에 죽을 거야!”
목진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목진 등은 거대한 마수를 뒤로하고 부단히 달려 어느덧 어둠의 숲에서 나왔다. 그들은 익숙한 빛의 세례를 받자 그제야 시름을 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어둠의 숲에서 가장 깊숙한 곳은 녹음이 우거진 곳이었고, 이들 앞쪽 대지는 백 리 밖에서도 잘 보일 만큼 거대한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목진 등이 어둠의 숲에 있을 때 본 빛이 바로 이것이었다.
빛의 기둥 속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었는데 빛을 잔뜩 휘감고 생기를 내뿜듯 하늘하늘 움직이며 특이한 향을 발산하였다. 나무는 사람 체내의 영력을 더 빨리 움직이게 하는 데다 푸른색 열매가 열려 있었고 열매 주위에는 광권이 맴돌았다.
“저건…….”
목진 등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빛 속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나무를 바라봤다.
“설마 선령수란 말인가?”
당미아가 뭔가 알아챈 듯 말했다.
선령수는 무궁무진한 천지의 영기을 머금고 태어난 보물로 그 열매에 육신을 단련하고 뼈와 살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원고의 시기에 강대한 종족과 오래된 파벌에서는 제자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령수의 열매를 얻었는데 그 덕분에 제자들의 실력이 유달리 뛰어났다.
다만, 지금은 선령수가 거의 없어 실력이 뛰어난 세력에서만 간신히 확보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오대원에서도 선령수나 그 열매가 없으니 당미아 등이 열매가 가득 열린 선령수에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었다.
한편, 서황 등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선령수를 바라봤다. 곧 육신난을 건너야 하는 이들은 목숨을 잃을까 봐 여태껏 시도하지 못했는데 만약 선령수의 열매가 있다면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육신난을 건너는 데 실패한다고 해도 목숨은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로 정신을 차린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선령수를 바라봤다. 성령 세례를 받아 걱정이 없는 그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때, 서황 등이 더는 참지 못하고 선령수를 향해 돌진하자 목진은 깜짝 놀라 영력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조심, 선령수가 수상해!”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서황 등은 멍하니 목진을 바라봤다. 서황 등이 아무리 선령수의 열매가 욕심나도 절대 무턱대고 덮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방금 그들의 행동은 조종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곳은 역시 수상했다.
“다들 최대한 향기를 마시지 마.”
낙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 향기로 영력의 움직임이 빨라져 개운해지긴 했지만 오래 맡으면 정신을 잃고 조종당할 수 있어. 이 나무는 선령수가 아닌 것 같아.”
이에 서황 등은 식은땀을 흘리고 잔뜩 경계하며 선령수를 바라봤고 목진, 당미아 등도 눈빛이 달라졌다. 이 나무는 서책에서 본 선령수과 똑같게 생겼지만 진정한 선령수는 사람의 정신력을 흐리게 하는 효과는 없었다.
슈슉!
이때, 주위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쪽 어두운 숲에서 사람들이 가득 나타났다.
그들도 어둠의 숲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일부 조원을 잃은 소조도 있었는데, 이곳에 오기 위해 큰 대가를 치른 듯했다.
슉.
잠시 후, 또 누군가 나타났는데 익숙한 영력 파동에 목진은 바로 정색하였고 당미아 등은 이를 갈며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들은 다름 아닌 성령원의 하후가 이끄는 소조였다.
하후도 목진 등을 발견했는데 당미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조장, 당미아가 역시 목진과 손을 잡았어. 우리를 노릴 수도 있어.”
하후 옆에 서 있던 조원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에 하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록 당미아와 목진 등이 두렵지는 않지만 이들이 힘을 합치면 상대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자신이 당미아한테 한 짓이 목진에게 좋은 기회가 될 줄은 몰랐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하후가 아니었다.
“괜찮아. 우리한테 필살기가 있잖아?”
하후가 씨익 웃으며 뒤쪽에 있는 어둠의 숲을 바라봤다.
“무령원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슉.
이때, 어둠의 숲에서 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져 모습을 드러낸 이들을 바라봤다.
목진과 당미아도 흠칫 놀랐다.
그들은 바로 무령원 학생들이었는데 방금 혈투를 벌이고 온 것처럼 조원 한 사람을 잃은 이들은 전부 부상을 입었고, 주원은 창백한 얼굴로 철곤을 쥔 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다들 주원 소조가 이렇게 될 줄 몰라 식겁했다. 하지만 그중 일부 소조는 조용히 무령원을 칠 준비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덤비지 못했겠지만, 이번 기회에 무령원을 쓰러뜨리면 수확이 엄청날 것이라 여긴 것이다.
이에 주원은 조원들을 휴식시키고 혼자 정색하며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 기세에 다들 바로 생각을 접었다.
한편, 하후 등은 나서지 않고 씨익 웃으며 어둠의 숲을 힐끗 보더니 바로 눈길을 거뒀다.
“주원 등을 저렇게 만들다니, 도대체 누구 짓이지?”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져 주원 등을 바라봤다. 실력이 막강한 무령원 소조를 저렇게 만들고 그중 한 사람은 죽이다니…….
“설마 하후가…….”
낙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닐 거야. 만약 하후의 짓이었다면 주원은 이미 저들을 덮쳤을 거야.”
주원을 잘 아는 당미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럼…….”
목진이 정색하며 물었다.
“너희를 공격했던 그 소조가 아닐까?”
이에 당미아가 흠칫하여 답했다.
“그럴 수 있지. 그들은 숨어다니며 작전을 펼치고 수단까지 괴이하니 주원 등을 저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해. 그런데 저들은 왜 우리 같은 실력자들만 공격하는 걸까?”
“우리가 가장 위협적이라 그렇겠지.”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어둠 속에 숨어든 독사가 보통 인물은 아닌 듯하니 다들 조심해.”
이에 낙리 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당미아 등이 중독되고 주원 등이 조원을 잃게 할만한 능력이면 어둠 속에 숨어든 소조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은 어느새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했지만 그곳에는 선령수 한 그루밖에 없었고 유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뭐지?”
목진이 중얼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저건 선령수잖아?”
그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선령수를 발견하더니 선령과(仙靈果)를 얻고자 혈안이 되어 동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목진 등은 조용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슉!
수백 명이 한순간에 선령수로 뛰어들었는데 전부 서황 등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들 혈안이 되어 헐떡이며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선령수를 바라봤다. 선령과의 유혹은 역시 엄청났다.
그러나 목진 등은 조용히 서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선령수에 접근한 사람들은 손쉽게 선령과를 땄다.
“하하, 선령과만 있으면 나도 육신난을 건널 수 있어!”
선령과를 얻은 사람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바로 열매를 먹었다. 그러자 웅장한 영력이 체내에 퍼지더니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르며 그 사이사이로 흑혈이 스며져 나왔는데 그 피에는 검은색 불씨가 들어 있었다.
“으악!”
그때 흑혈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체내에서 검은색 화염을 내뿜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해 혈무가 되었다. 그리고 그 혈무는 다시 선령수에 돌아가 또 하나의 선령과로 변했다.
너무도 괴이한 광경에 차마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은 소름이 쫙 끼쳤다.
퍽! 퍽!
그때 선령과를 먹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검은색 화염으로 인해 몸이 폭발해 혈무로 변하더니 결국 선령수로 돌아가 선령과로 변했다.
이렇게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수십 명이 선령과로 변해 사라졌다.
꿀꺽.
서황 등은 어느새 안색이 창백해졌다. 목진이 아니었으면 이들도 선령과가 되었을 것이다.
“이건 진짜 선령수가 아니야!”
목진이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내 정색하며 선령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주위에 순간 정적이 흘렀고 하후마저도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나무를 바라봤다. 어렵게 마수가 가득한 어둠의 숲에서 이곳까지 왔는데 또 다른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선령수가 이상해졌어!”
누군가의 말에 다들 눈길을 돌리자 푸른 빛을 발하던 나무는 순식간에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어두워졌고 선령과들도 한껏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흑혈이 떨어졌다.
“저건…….”
당미아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마수를 바라보더니 식겁하며 말했다.
“저건 선령수가 아니라 마령수(魔靈樹)였어!”
선령수와 마령수는 한 글자밖에 차이 나진 않지만 완전히 다른 나무로 사람의 정신력을 흐리게 하고 그 향기를 널리 퍼트려 사람을 유인했다. 사람들이 다가와 열매를 따 먹으면 검은색 화염 때문에 혈무가 되고 이를 마령수가 흡수하는 것이었다.
목진은 이제야 자신이 왜 지금껏 불안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선령수가 아닌 괴이하기 그지없는 마령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