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만목지계(萬木之界)
한편, 조원들의 부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주원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상대방의 진정한 실력을 확인하고 나니 정면 승부를 펼쳐도 자신은 절대 상대가 안 될 거라는 걸 깨달았다.
이에 분위기가 순간 어색해졌다.
“난 목령원의 견청(甄青)이야.”
검은색 도포를 입은 청년이 히쭉 웃으며 주위를 쓰윽 훑더니 목진한테서 멈춰 고개를 끄덕였다.
“하후, 너희는 처음부터 저들과 손을 잡았던 거였어? 저들과 함께 우리를 꺾을 작정이었나 보지?”
당미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너희 두 소조가 힘을 합쳤다고 해도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만 수백 명이야.”
목진과 당미아의 연합으로 열세에 처했던 하후는 목령원과 손을 잡아 형세를 바로 되돌렸다.
영력난을 건넌 고수 두 명의 연합은 엄청났다!
하후는 당미아가 얼굴만 빼어났지 말은 참 독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 몇 마디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을 경계할 것이다. 성령원과 목령원의 연합이 강하긴 했다.
“허허, 당 조장은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어.”
하후가 입을 열기도 전에 견청이 음산하게 웃으며 주위를 살폈다.
“난 너희 모두를 쓰러뜨려 그 점수를 가질 생각이야. 이곳에 있는 보물도 전부 수중에 넣을 거고.”
이에 사람들은 금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곳에 있는 모든 소조를 쓰러트리겠다니.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하후와 동맹을 맺었다고 하지만 열 명이서 수백 명을 상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목진도 갸우뚱거리며 견청을 바라봤다. 녀석은 분명 믿는 구석이 있는 게 분명했다. 목진은 비록 견청에 대해 잘 모르지만 목령원을 대표해 학원 대회에 참석하고 한 소조의 조장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왜 이렇게 자신만만한 걸까?
“견청 조장은 엄청난 야심가였어. 그런데 우리를 전부 쓰러뜨릴 자신은 있을까 모르겠네.”
당미아가 다른 소조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피식 웃었다.
“너희는 안중에도 없나 봐.”
이에 사람들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져 견청을 바라봤다.
견청은 순간 모든 사람의 표적이 되었다.
“우리를 전부 쓰러뜨리려 하다니, 네가 그만큼의 실력이 있을까?”
누군가의 말에 다들 호응하며 견청 등을 포위했다.
그런데 정작 견청은 무덤덤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손바닥이 푸른빛을 발하다가 오래된 나뭇잎처럼 생긴 부적이 나타났다. 그것은 녀석들이 청목 조각상의 머리를 부수고 가져간 바로 그 물건이었다.
슉!
견청이 한 손으로 결인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푸른빛은 놀라운 속도로 거대한 궁전의 끝자락에 있는 거대한 청목 조각상의 머리를 맞혔다. 그러자 몸 전체에 광문이 일더니 녀석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를 어떻게 쓰러뜨리는지 알려주지.”
견청이 씨익 웃더니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인법을 바꾸자 눈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청목 조각상도 인법을 그리며 놀라운 영력 파동을 발산했다.
“저 녀석을 막아!”
목진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낙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늦었어.”
견청이 씨익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법을 굳혔다.
“만목지계!”
음침한 청년의 소리에 궁전 전체가 흔들리더니 경천의 기둥에서 만 장 크기의 청광이 일었고 수많은 덩굴이 나타나 궁전 전체를 감쌌다.
이에 사람들이 서둘러 도망치려 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덩굴 천지가 된 이곳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쿵! 쿵!
사람들은 미친 듯이 영력을 끌어올려 덩굴을 끊이려 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덩굴은 끄떡없었고 체내의 영력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떠들썩했던 대전은 순간 조용해졌다. 견청과 하후 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덩굴에 휩싸여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목지계에 빠져들면 뚫고 나오기 어려워. 덩굴이 영력을 흡수해 목신위(木神衛)를 깨우게 되어있거든…….”
견청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후 조장, 이곳 유적의 보물은 내가 전부 가져갈게. 그리고 점수는 반으로 나누는 것이 어때?”
“견청 조장의 말대로 합시다.”
하후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견청이 보물을 전부 갖겠다는 것이 조금은 언짢았지만 그에 맞설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견청 등은 성령원의 실력이 좋지 않았다면 이들까지 쓰러뜨렸을 것이다.
이에 견청은 하후의 답변이 마음에 든다는 듯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 시진 뒤면 끝나겠군. 이곳에 온 삼대원 소조들은 곧 탈락하겠어.”
견청이 제자리에 앉아 웃으며 말하다가 이상한 낌새에 뒤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아주 무섭고 날카로운 검기가 느껴졌다.
퍽.
보라색 화염이 번쩍이더니 꿈틀거리던 덩굴이 순간 잿더미가 되었다.
슉!
또다시 눈부신 검광이 휘몰아치자 덩굴은 바로 산산이 부서졌다.
견청과 하후는 안색이 어두워져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고 덩굴에 몸이 묶인 사람들도 이변이 생긴 곳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소녀와 훤칠한 소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목진과 낙리를 보던 견청은 흠칫 놀라다가 이내 웃으며 손뼉을 쳤다.
“만목지계마저 너희를 가둘 수 없다니, 대단하군.”
견청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곳의 덩굴은 사람의 영력을 흡수해 육신난을 건넌 고수마저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게다가 발버둥 칠수록 영력 소모가 더 빨라져 언젠가 영력이 다하면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기에 견청은 목진과 낙리가 빠져나온 것이 의외였다.
두 사람에게 특수한 수단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현장을 접수한 상태로 덩굴에서 빠져나온들 그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하후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견청을 바라보며 손에 검은색 뇌호가 번쩍이는 목진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너희가 뭘 할 수 있을까? 대신 너희 두 사람이 지금 이곳에서 떠나면 살려는 줄게.”
만약 목진이 하후의 말대로 이곳을 떠나면 북창령원의 체면은 바닥을 칠 것이고, 구북해와 같은 처지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릴 것이다.
“하후, 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목진이 자신을 힐끗 보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하후는 견청한테 눈길을 돌렸다.
“참 귀찮은 녀석이야. 영력난이 얼마나 대단한지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동의하는 바야.”
견청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사람들의 영력을 흡수해 목신위를 소환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그사이에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는 목진이 자신이나 하후의 상대가 아니라 여겼다. 비록 소년이 보여준 전투력은 엄청났지만 결국 통천경 후기일 뿐이었고 영력난을 건넌 사람을 절대 이기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아름다운 소녀, 내가 널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함부로 움직이지 마. 넌 내가 여태껏 본 여인 중에서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사람이지만 대세를 위해서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견청이 히쭉 웃으며 하는 말에 낙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째려보더니 다시 목진한테 고개를 돌려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모습에 시름을 놓았다.
뒤로 물러나 자리에 앉은 낙리는 낙신검을 앞쪽 바닥에 꽂았는데 순간 검음이 들리며 날카로운 검광이 주위에 퍼져 공간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고 주위의 덩굴은 산산조각이 났다. 검광의 기이한 파동에 이곳의 특수한 만목지계마저 가까이 가지 못했다.
“너희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니 나도 끝까지 상대해주지. 대신 이건 목진과 하후의 싸움이니까 누군가 끼어들려고 하면 내 검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러다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난 책임 안 져.”
낙리가 견청 등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편, 견청은 낙리의 앞쪽에 꽂힌 검을 보더니 흠칫하였다. 그 속에서 아주 무서운 파동이 느껴졌다.
“신기였어!”
하후도 자못 놀란 표정이었다. 이들은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한테 신기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육신난을 건넜을 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는데, 신기까지 있으니 영력난을 건넌 이들이라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목진보다는 소녀가 더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대천세계에서 신기란 존재 자체만으로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하는 물건이었다. 목령족에도 신기가 있긴 하지만 절대 견청 따위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목진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견청이 가까스로 진정하고 낙리를 바라봤다.
낙리의 행동은 목진을 위해서라면 하후 이외의 모든 장애물은 제거하겠다는 뜻이었는데, 이는 목진이 이길 거라는 확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후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성령원의 4대 성자 중 한 명인 하후는 학원 대회에 참가한 자들 중에도 최정예에 속하는 실력을 지녔고, 견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하후를 이길 자신이 없는데 통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 목진이 이길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낙리는 견청의 반응 따위에 관심 없다는 듯 낙신검만 쥐고 있었다.
이에 견청은 담담하게 웃으며 어느덧 살기를 품었다. 자신의 계획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변수가 생겨 조금은 언짢았다. 다만, 낙리가 신기를 쥐고 있어도 자신과 하후 두 사람을 이기지는 못할 거라고 여겼다.
이때, 하후도 사악하게 웃으며 낙리와 목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낙리는 목진이 이길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자신이 목진을 처절하게 짓밟는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당미아, 주원 등은 덩굴에서 나오려고 애를 써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목진과 낙리를 믿는 것 외에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과연 두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물론 목진의 실제 실력이 보이는 것처럼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영력난을 건넌 하후를 상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는 주원이나 당미아라도 싸워 이길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목진이 하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면 낙리가 어렵게 형성한 위압감은 와르르 무너질 것이고 그러면 낙리 혼자서 하후와 견청 등을 상대해야 할 텐데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앞으로의 일은 모두 목진한테 달렸다.
목진은 천천히 하얀기를 내뱉더니 사악하게 웃는 하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낙리한테 실망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널 이겨야겠어.”
그 말에 하후가 정색하며 기다란 두 손이 영롱한 빛으로 빛났는데 한없이 차가워 보이는 것이 꼭 저승사자의 손 같았다.
“어둠의 숲에 들어오긴 전, 나와 잠시 힘을 겨룬 것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후가 웅장한 영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아가자 놀라운 영력 위압감이 대전에 가득 찼다.
하후는 영력난의 실력을 있는 그대로 선보였다. 목진이 멋도 모르고 우쭐대는 꼴을 더는 볼 수 없었기에 소년을 철저히 짓밟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영력난 앞에서 제아무리 전투력이 뛰어나도 별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지금부터 난 너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모조리 없애줄 거야.”
하후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편, 강력한 위압감에 숨을 깊게 들이쉰 목진은 주먹을 꽉 쥐었는데 피부색이 어두워지면서 표면에 검은색 뇌광이 번쩍였고 가슴팍에는 뇌문 네 갈래가 서서히 나타났다.
쿵!
뇌신체를 완전히 소환한 목진은 체내의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싸울 준비를 했다.
“과연 누가 누굴 쓰러뜨릴지는 두고 봐야 알지!”
목진은 씨익 웃더니 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퍽!
그때 하후도 피식 웃더니 공기마저 으깨어버릴 만큼 엄청난 영력을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분위기가 삭막해진 대전에 서서 조용히 이를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