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목표가 생긴 온청선
표정이 쉽게 읽히지 않던 희현의 처음 보는 모습에 조원들은 흠칫 놀랐다.
“낙리, 네가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는 목진을 반드시 네가 보는 앞에서 짓밟아주겠어.”
희현이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한 말에 조원들은 흠칫 놀랐다. 그때 갑자기 그들 수중의 원패가 눈부신 빛을 발했다.
“하후가 이끄는 소조가 갑자기 사라졌어!”
“북창령원에서 순위권에 들었어…….”
북창령원이란 말에 희현은 바로 원패를 소환해 쓰윽 훑다가 새로 순위권에 진입한 소조의 조장 이름에 눈길을 멈췄다.
학원 대회 9위, 북창령원, 조장 목진.
분위기는 순간 삭막해졌다.
희현은 원패에 나타난 눈에 거슬리는 이름을 만지작거리며 무서운 살기를 내뿜었다.
“드디어 네 상대가 나타났나 보네.”
모풍은 희현과 목진 사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지금의 그가 내 상대가 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네.”
희현이 무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후의 소조가 16위권에서 사라졌어.”
금발 청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때마침 북창령원에서 치고 올라왔지. 설마 하후가 북창령원한테 진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하후가 이끄는 소조도 실력이 막강하잖아. 아무리 학원 대회에 알려지지 않은 실력자가 많다고 해도 영력난을 건넌 하후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곰처럼 튼실한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야기하자 희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후는 목진의 손에 당한 거야. 원패에 위치가 둘 다 안 나오잖아. 이건 이들이 함께 유적지에 들어갔단 뜻이야.”
이에 모풍 등이 원패를 확인해보니 목진과 하후 등의 위치 정보가 역시나 없었다.
“북창령원에 패배하다니, 운도 참 없지. 인제 더는 우리 앞에서 우쭐거릴 수 없을 거야.”
금발 청년이 입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이들은 비록 같은 성령원 출신이지만 원내에서 사이가 안 좋아 하후 등이 전혀 가엾지 않았다.
“지금 당장 찾아갈까? 언제까지 유적지에 있지는 못할 거야. 그들이 나오기만 하면 우린 바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모풍의 말에 희현은 원패를 보며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필요 없어. 녀석이 진짜 실력이 된다면 언젠가 만나게 되어있어. 대신 결승전에도 못 들면 나를 상대할 자격이 없다는 거야.”
그 말에 모풍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목진 따위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대충 된 것 같으니 슬슬 시작해볼까? 한 명도 빠짐없이 잡아야 해.”
희현이 산속 깊숙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의 난폭한 영력 파동이 줄어든 것으로 보아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았다.
슉!
희현은 곧바로 조원들과 함께 산속 깊은 곳으로 향했는데, 이들이 지나간 곳마다 난폭하기 그지없는 돌풍이 일었다.
“목진, 열심히 해봐. 언젠가 네가 내 앞에 서게 되는 날 진정한 지옥의 맛을 보여주겠어. 네가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지 제대로 자각하게 해주지.”
희현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북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발을 굴러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날아갔다.
희현 등이 떠난 후, 산봉우리는 격렬하게 움직이더니 커다란 균열이 일다가 결국 무너져 연기로 자욱해졌다.
* * *
희현 등과 아주 멀리 떨어진 구역의 산골짜기에 수많은 소조가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싸움이 금지되어 다들 거래를 하며 위쪽 벼랑 끝에 서 있는 눈부신 여인을 힐끗거렸다.
그녀는 몸에 찰싹 들러붙는 황금 갑옷을 입은 미녀로 치마 사이로 기다란 다리가 어렴풋이 보였는데 다들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영롱한 몸매의 여인을 감히 탐내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 두려운 기색을 보였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온청선이었다. 현재 학원 대회 순위권 1위를 차지한 만봉령원 소조의 조장이었다.
다들 아름다운 소녀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기에 감히 덤비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순위가 뒤바뀐 원패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북창령원…… 목진…….”
온청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목진이면 영로의 혈화자인가?”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웃으며 원패를 바라봤다. 비록 영로에서 목진을 만난 적은 없지만 혈화에 관해 들은 적 있었고 낙리와 함께 있었던 것도 기억났다.
“목진이 조장이면 낙리가 조원이겠지?”
“조장, 그럼 우리 다음 목표는 북창령원인가요?”
온청선 뒤에 서 있던 두 소녀가 물었다.
이들은 암녹색 치마를 입은 똑같게 생긴 소녀로 쌍둥이였는데 온청선이 흥분한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빈아(顰兒), 낙아(樂兒), 이들을 잘 살펴. 일단 위치 정보가 나타나면 바로 이들한테 간다!”
온청선이 생긋 웃으며 말하자 두 소녀는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럼 계획은 어떡해요?”
한 소조를 위해 계획을 바꾸는 것이 온청선 답지 않았다.
“그녀와 비교하면 계획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온청선이 턱을 가볍게 쓸며 방긋 웃자 빈아와 낙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온청선이 고개를 살짝 들고 먼 곳을 바라보며 생긋 웃자 사람들은 그 절세의 미모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비록 그녀를 품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지만 해내기 어려운 일일수록 탐나는 법이었다.
한편, 드디어 사람들의 눈빛이 느껴진 온청선은 바로 정색하며 아래쪽을 쓰윽 훑었는데 다들 눈을 피하느라 바빴다. 잘못 걸려들었다가는 이대로 학원 대회에서 탈락이었다.
“절세의 미인일세.”
하지만 다들 그녀의 눈길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 산골짜기 변두리 쪽에 있는 한 소조처럼 말이다. 그들의 대장은 영력난을 건너지는 못했지만 당미아 소조와 실력이 비슷했고 조원 중 육신난을 건넌 고수가 두 명이나 있어 오대원과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가엽다는 듯 그 조장을 쳐다보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산골짜기 위쪽에 서 있던 온청선도 이를 발견하고 씨익 웃으며 물었다.
“정말?”
이에 청년은 흠칫하며 조원들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온청선이 자신이 중얼거리는 말까지 들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때, 온청선이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자 뒤쪽에 화려하고 커다란 빛의 날개가 나타났다.
슉!
그녀가 날개를 파르르 떨더니 순간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퍽!
이와 동시에, 먼 곳에서 갑자기 무서운 영력 파동이 휘몰아치더니 도망가던 다섯 사람이 전부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이어 온청선은 입을 함부로 놀린 조장 앞에 나타나 화들짝 놀란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씨익 웃더니 있는 힘껏 가슴팍을 내리쳤다.
“녀석의 점수는 너희가 가져.”
그녀는 맑은 목소리만 남긴 채 그곳을 떠났고, 나머지 조원들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온청선이 한방에 중상을 입힌 멍청한 조장을 덮쳤다.
* * *
치열한 전쟁으로 어느새 아수라장이 된 대전에 서서히 내려앉은 목진은 안색이 조금 창백해진 채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견청마저 잔뜩 경계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진은 아무리 견청이라도 하후한테 날린 일격은 받아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반면, 성령원의 나머지 조원들은 중상을 입고 혼절한 하후를 보며 어쩔 바를 몰라 당황했다. 그들은 하후를 위해 복수하고 싶었지만 차마 발을 뗄 수 없었다.
그들은 목진이 너무 무서웠다.
영력난을 건넌 하후가 통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 목진한테 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덩굴에 갇힌 당미아, 주원 등도 두 눈이 휘둥그레져 멍하니 지켜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정말 아무도 상상치 못한 결과였다.
비록 이들이 목진을 대놓고 무시한 적은 없었지만 영력난을 건넌 하후를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거라 여겼는데 목진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선보였다.
한편, 주위를 훑던 목진은 드디어 낙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소녀의 미소에 시름이 놓였다. 하후가 중상을 입었으니 이제 이들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여겼다.
“허허, 대단하군.”
견청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지자 목진이 고개를 돌려 인상을 찌푸리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하후가 저리되었는데도 견청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네가 조장이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 내가 널 너무 쉽게 생각했어.”
견청이 무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때, 낙리가 장검을 들고 서서히 일어나 한기 어린 눈빛으로 견청을 노려봤다. 지금으로서 견청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목진 뿐이었지만 낙리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후를 쓰러뜨렸다고 전세가 너희 쪽으로 기울기라도 할 줄 안 거야?”
견청이 히쭉 웃으며 목진과 낙리를 번갈아 봤다.
“신검이 대단하단 걸 잘 알겠어. 그런데 내가 멍청하지 않고서야 너희가 하후를 처리할 때까지 왜 떠나지 않고 여기 있었을까?”
“그래?”
목진도 담담하게 웃으며 체내에 영력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하후와의 싸움으로 영력 소모가 상당해 어뢰술을 더는 소환할 수 없었으나 영력난을 건넌 고수는 이제 견청 한 명뿐이라 상대하기 그렇게까지 힘든 것도 아니었다.
낙리와 목진은 나란히 서서 표정이 점차 괴이해지는 견청을 노려봤고 당미아 등도 숨죽여 지켜봤다. 그들은 목진과 낙리를 상대하는 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만한 견청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꼭 두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필승의 한 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걱정해봐야 당미아 등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목진과 낙리가 견청까지 해결하고 덩굴을 없앨 방법을 찾기만 기다려야했다.
슉!
그때 낙리가 목진과 눈을 마주치더니 앞으로 나아가며 낙신검을 휘두르자 맹렬한 검기가 공기마저 가르며 견청에게 향했다.
이에 견청이 손으로 바닥을 때리자 흑광 한 갈래가 솟아올라 거대한 검은색 고목을 만들어 낙리의 공격에 맞섰다.
퍽!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고목이 부서졌지만 흑망이 요동치며 검기를 전부 막아냈다.
견청은 곧바로 뒤로 물러났고 뒤쪽에 있던 조원들은 목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싸울 준비를 하였다.
“급하기는.”
어느덧 흑광이 사라지자 견청은 목진과 낙리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하후가 저리되었는데도 내가 왜 태연한지 궁금하지? 지금 그 이유를 알려줄게. 나한테 시간이 필요했거든!”
녀석은 점차 사악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인제 너흰 다 죽었어!”
말을 마친 견청이 복잡한 인법을 그리자 다른 조원들도 함께 인법을 그렸다. 그러자 암녹색 영력이 한데 모여 대전 끝자락에 있는 청목 조각상을 가격했다.
쿵!
이때, 거대한 청목 조각상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더니 몸 표면에 복잡한 무늬가 새겨지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지극히 무서운 파동이 일자 낙리는 깜짝 놀라며 견청 등을 향해 낙신검을 휘둘렀는데 녀석이 피식 웃으며 발을 구르자 수많은 덩굴이 날아와 이들 앞에 방패를 만들었다.
“하하, 너희가 아무리 대단해도 내가 소환한 목신위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견청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청목 조각상을 바라보며 웃었다.
“목진, 너희는 하후를 쓰러뜨리면 될 줄 알았겠지만 결국 나를 위해 시간을 벌어준 거였어. 역시 내가 너희보다 한 수 위야!”
쿵!
어느새 완전히 일어선 목신위는 수십 장 정도의 거구로 고목 같은 몸에 광문이 잔뜩 나 있었고 지극히 무서운 힘의 파동을 발산했는데 앞으로 성큼 내딛자 대전 전체가 휘청거렸다.
덩굴 속에 있던 당미아 등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드디어 견청이 왜 하후의 패배에도 아무렇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녀석은 처음부터 목진 등을 직접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덩굴이 사람들 체내의 영력을 충분히 흡수해 목신위를 소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던 것뿐이었다.
목신위가 깨어났으니 목진과 낙리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