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고난
목진이 육신난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있을 때, 옆 동굴에서 한 소녀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오른쪽을 힐끗 쳐다봤다. 엄청난 두께의 산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낙리는 미세한 진동과 목진의 나지막한 고함으로부터 소년이 육신난을 건너고 있음을 알아챘다.
이미 육신난을 건넌 낙리는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았다. 더구나 목진의 육신은 단단해 보통 사람이 겪어야 할 육신난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육신난을 건너기 전에 단체 신결을 수련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강한 육신은 그에 걸맞는 힘을 가져다주지만 육신난을 건널 때 배로 힘들고 일단 건너지 못하면 큰 손해였다.
하여 다들 일단 영력 수련에 집중하였고 육신난을 건넌 뒤에 다시 단체 신결을 수련했지만 목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험난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그만큼 막강한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었다.
“목진아, 난 절대 너 혼자서 고생하게 하지 않을 거야.”
낙리는 더는 오른쪽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두꺼운 벽을 사이 두고 있지만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소년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가 육신난을 건널 때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소녀는 마음을 추스르고 신속하게 결인하였고 체내의 웅장한 영력이 비등할 기세를 보였다.
이는 영력난이 나타날 징조였다!
낙리는 곧 영력난을 건너게 될 것이다!
커다란 동굴 속 열기는 엄청났고 자욱한 안개 속에 한 사람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이어진 바닥은 바짝 말랐고 균열이 생겼다.
퍽!
목진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지면에 균열이 일면서 소년의 팔뚝에 암홍색 딱지가 앉았는데 처음보다 한껏 짙어진 색상이 섬뜩하였다.
열흘 동안 체내에 불타오르는 혈화의 고통을 견디느라 목진의 허리는 어느새 굽었고 숨소리 또한 거칠어졌다.
목진은 육신이 점차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고통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육신난은 보통 7일 정도면 건널 수 있었는데 목진은 열흘이 지났는데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예상한 바였다. 그의 육신이 워낙 강해 육신난도 오래 걸릴 거라고 여겼고 지금으로서는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 고비만 넘으면 실력에 분명 엄청난 비약이 있을 것이다.
치직.
딱지 사이로 또 피가 스며져 나오더니 바로 증발하였다.
목진은 애써 눈을 뜨고 있는 힘껏 고개를 흔들었지만 어느새 시야도 흐릿해졌다. 그러다 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체내의 혈화가 더 강해진 것이 느껴졌다. 꼭 혈화가 피와 살을 뚫고 나와 자신을 잿더미로 만들 것 같았다.
“내가 이대로 질 수는 없지!”
목진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쥔 채 또다시 포효하였다.
여태껏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긴 목진은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세의 강자가 되어 소녀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육신난 따위가 목진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때 목진은 드디어 선령과를 전부 삼켰다. 체내에 청량하고 순수한 힘이 신속하게 퍼져 흐릿했던 정신이 되돌아왔다.
활활.
이와 동시에 혈화도 더 크게 타올라 청량한 힘을 모조리 없애버리려 하였다.
“육신난 따위가 감히 내 앞길을 막아?”
목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는 반드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했다!
그 후로 또 닷새가 흘러 서황, 조청삼, 모풍양이 수련을 마치고 한데 모였다.
“목진과 낙리는 아직도 겁난을 다 못 건넌 것 같아.”
서황 등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이들은 선령과 덕분에 닷새 만에 육신난을 건너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목진도 우리처럼 육신난을 건너는 것일 텐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조청삼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우리와 같을 리가…….”
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목진은 일반 통천경 후기였을 때도 육신이 다른 육신난 고수보다 강했으니 당연히 우리보다 더 오래 걸리지.”
한때 평범했던 신생이 북창령원의 일인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소년의 엄청난 성장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이 세상에는 보통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럼 낙리는 뭘 하는 거지? 왜 아직도 나오지 않는 거야?”
모풍양이 꼭 닫힌 반대편 동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낙리도 여태껏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서황과 조청삼을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낙리가 지금 영력난을 건너고 있다는 생각에 흠칫 놀랐다. 만약 낙리가 무사히 영력난을 건너면 이들 소조는 최정예들과 힘을 겨룰 진정한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우리가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잠자코 기다리자. 목진과 낙리는 분명 성공할 거야.”
서황의 말에 조청삼과 모풍양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의 육신난과 낙리의 영력난은 보통 사람에 비해 어렵겠지만 그들은 두 사람이 반드시 해낼 것이다.
게다가 목진은 지난 2년 사이에 북창령원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뤄 이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고 낙리는 명예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녀는 학원 대회를 개최하기 전까지 천방 10위권에 속해 있을 뿐이었지만 그녀의 실력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낙리가 북창령원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아무도 그녀가 전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었다. 이는 목진도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소녀는 그저 목진 옆에 서서 소년이 눈부신 성과를 내는 것을 묵묵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소녀의 실력을 잊곤 했다.
* * *
서황 등이 목진과 낙리가 겁난을 건너고 동굴에서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때, 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이들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력 파동으로 볼 때 어느 하나 호락호락한 상대가 없었다.
그중 한 산봉우리에 빛이 번쩍이더니 소녀 다섯 명이 나타났는데 그 우두머리는 아름답고 고귀한 봉황처럼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온청선이었다.
“조장, 우리와 목표가 같은 소조가 적지 않아요.”
온청선 뒤에 서 있던 쌍둥이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뽐내며 말했다.
“목진 소조의 점수에 변동이 없고 16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니 위치가 드러난 건 당연한 거야. 게다가 목진이 목신전의 신전첩을 얻었으니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을 수 없지.”
온청선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목진 등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조장, 목진은 자신이 언제 공격당할지도 모르는데 왜 보름 동안 움직이지 않는 걸까?”
온청선 옆에 있던 늘씬한 몸매의 금발 소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보름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니…….”
온청선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수련 중이겠지. 흥미롭군, 위치가 폭로된 마당에 수련할 생각을 하다니, 목진은 참 담대한 녀석이야.”
“조장, 다른 소조를 내쫓을까요?”
쌍둥이 소녀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럴 필요 없어.”
온청선이 손을 휘익 젓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이번 기회에 영로 혈화자의 실력을 확인해야겠어. 만약 능력이 없다면 바로 그의 여인을 빼앗을 거야.”
온청선은 손으로 낙리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낙리, 내가 드디어 너를 찾았어.”
허허벌판에 산들이 겹겹이 쌓여있었고 광풍이 고요함을 깨고 천지를 휩쓸었다.
그중 한 산봉우리에 서황, 조청삼과 모풍양이 조용히 앉아 꼭 닫힌 두 동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리와 목진이 수련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20일 가까이 되었다.
두 사람이 진정 영력난과 육신난을 건너고 있다면 그 고통을 20일 동안 견디고 있다는 말인데 서황 등은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이미 육신난을 경험해본 이들은 더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5일 동안 겪으면서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목진과 낙리는 20일 가까이 버티고 있었다. 시시각각 온몸이 불타오르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데 얼마나 무서운 인내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일까?
서황 등은 두 사람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다들 목진과 낙리가 어린 나이에도 실력이 뛰어나다고만 생각했지 두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큼 노력하는 건 알지 못했다. 이 세상에 그저 얻는 힘은 없었다.
“우리 순위가 떨어질 것 같아.”
조청삼이 원패를 보더니 걱정스럽게 말했다. 20일 가까이 수련에만 집중하느라 점수를 따지 못해 이들은 곧 16위권에서 밀려날 기세였다.
“그럼 좀 어때?”
서황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순위를 따지기에 아직 일러. 순위권에 들면 위치가 알려지는 데 뭐가 좋아? 난 감시당하는 게 그렇게 싫더라.”
이에 모풍양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대회가 이제야 무르익어 가는 단계에서 점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목진 말처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점수에만 연연하다가는 결국 실력자의 먹잇감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목진과 낙리가 나오면 진짜 목신전 유적지를 찾아가자. 그럼 우리 소조는 누구한테도 뒤처지지 않을 거야!”
서황이 흥분해서 말했다. 목신전의 유적을 한 군데만 찾아갔을 뿐인데 육신난을 건넜으니 진정한 목신전의 유적을 찾아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정말 기대가 되었다. 잘만 하면 이들 모두 영력난을 건널 수도 있을지 모르고, 그러면 진정한 최강자로 등극해 학원 대회에서 1위도 노려볼 수 있다.
서황의 말에 조청삼과 모풍양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원고의 계승이 있는 진정한 목신전에서 뭐라도 얻으면 이들의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목진과 낙리 없이 이들 셋이서 유적을 얻는 건 불가능했다. 일전에 들어갔던 유적지만 해도 하후, 견청 등을 만났는데 진정한 목신전에 가면 또 얼마나 무서운 상대가 나타날까?
“뭐지?”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강력한 영력 파동에 서황 등은 깜짝 놀라 저 멀리 하늘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적잖게 몰려들고 있었다.
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영력을 소환하고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들은 16위권에 들어가 있어 위치가 알려진 데다가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공격받기 딱 좋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목진과 낙리가 아직 수련 중이라 아무도 그들을 방해해선 안 되었다.
“싸울 준비나 합시다. 우리가 목숨 걸고 목진과 낙리를 지켜야 해.”
서황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조청삼과 모풍양이 살기를 품고 고개를 끄덕였다.
슉! 슉!
이때, 빛줄기 수십 갈래가 빠르게 날아왔는데 대충 여섯 소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고 그중 절반 이상은 실력이 육신난에 버금갔다.
유적 대륙의 수많은 유적 덕분에 학생들은 엄청난 비약을 이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 소조에 육신난을 건넌 사람이 한 명 있는 것도 신기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학원 대회에 참석한 학생 중 대부분이 육신난을 건넜다.
한편, 서황 등은 상대편의 강력한 위압감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여섯 개의 소조가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각각의 학원이 서로 적인 학원 대회에서 이런 조직이 있다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하후와 견청도 잠시 손을 잡긴 했지만 서로를 이용하느라 최대의 전력을 뽐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은 같은 학원 학생들처럼 합이 잘 맞았다.
보아하니 정예 학원 출신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