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온청선과 손을 잡다?
“목진 조장의 실력이 보이는 것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아. 그런데 내가 작정하고 공격하면 너라도 날 막을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낙리를 나한테 넘겨, 그럼 너희 소조를 결승전에 들게 해줄게.”
온청선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생긋 웃었다.
“온청선 조장이 영로의 영관을 따냈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았을 때 제대로 싸워보지?”
목진도 황금색 갑옷을 입고 황금색 장창을 든 소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정색하며 뇌신체를 한껏 끌어올리자 가슴팍에 뇌문 네 갈래가 나타났는데 무서운 힘의 파동이 퍼지며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육신난을 건넌 목진의 육신은 유달리 강했다.
소년은 온청선을 노려보며 힘차게 발을 구르더니 곧바로 소녀의 위쪽에 나타났다.
온청선은 흥미진진하게 목진을 바라보았다. 영로에서 명성이 자자한 혈화자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낙리의 마음을 빼앗은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 실력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때, 목진이 한껏 차가워진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자신을 끌어안자 무서운 살기와 함께 머리에서 검은색 마주가 튀어나왔다.
검은색 마주의 엄청난 살기에 온청선도 흠칫 놀랐다.
“온청선 조장, 내 공격을 받아봐!”
목진이 검은색 뇌광이 요동치는 몸으로 살기 가득한 거대한 마주를 끌어안고 내리찍자 대지에 순간 어둠이 드리웠고 천지의 영기는 도망가기 바빴다.
어느덧 혈안이 된 목진은 대서미마주의 살기에 조종당한 듯했다.
목진은 학원 대회가 시작된 뒤로 한 번도 대서미마주를 사용한 적 없었는데 온청선처럼 무서운 상대에게는 바로 살수를 두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퍽! 퍽!
공기가 계속 폭발하였고 아래쪽 산들도 그 충격에 무너졌다.
대서미마주의 힘을 확인한 온청선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목진이 육신난의 실력으로 이 정도의 전투력을 선보일 줄은 몰랐다.
“기꺼이 받아주지!”
온청선은 비록 여인이지만 자존심은 그 누구보다 강했기에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구천을 날아다니는 봉황처럼 고개를 숙이는 법을 몰랐고 이 세상에서 그녀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황영(天凰影)!”
온청선은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황금색 장창을 꽉 쥐고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봉황이 날개를 펼친 듯 화려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하늘을 가르며 대서미마주로 향했는데 금광을 온몸에 휘감은 것이 꼭 봉황 같았고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쿵!
한 때, 영로의 혈화자였던 목진과 영관자 온청선이 이곳에서 제대로 힘을 겨루게 되었다.
쿵!
무서운 영력이 돌풍처럼 휘몰아쳐 구름마저 갈기갈기 찢어졌고 기랑이 일며 뇌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무서운 충격파에 아래쪽에서 싸우던 서황 등마저도 피하기 바빴다. 그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고개를 들어 목진과 온청선을 바라봤다. 이는 목진이 영력난을 지난 고수를 상대했을 때도 나타난 적 없던 모습이었다. 서황 등은 목진을 이렇게까지 만든 온청선이 역시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슉!
그때 영력 돌풍이 휘몰아치는 곳에서 두 사람이 튕겨 나갔다.
쿵!
허공을 디디며 뒤로 물러난 두 사람의 아래쪽 지면은 발이 닿은 곳마다 커다랗게 구멍이 났다.
목진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겨우 무서운 힘을 떨쳐냈다. 그는 뒤쪽에 대서미마주를 둔 채 엄청난 살기를 풍기며 멀리 떨어져 있는 온청선을 노려봤다.
그러나 온청선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여전히 싸우려는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비록 대서미마주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육신난의 실력으로 자신과 이 정도까지 싸운 사람은 목진이 처음이었다.
“영로의 혈화자, 듣던 대로야.”
온청선이 황금색 장창으로 목진을 가리키며 생긋 웃었다.
“영로의 영관자도 대단한걸.”
목진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검은색 뇌광은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었다. 목진이 여태껏 만난 동년배 상대 중 천부적인 재능과 실력, 관계를 막론하고 오직 희현과 낙리만을 상대로 꼽았는데, 오늘부터 세 번째가 생겼다.
“너와 희현이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온청선이 황금색 장창을 꽉 쥐고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건 싸워봐야 알지 않을까?”
목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하자 온청선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소년은 희현과 엄청난 원한이 맺혀있는 듯했다.
“그럼 계속해볼까?”
온청선은 자신이 사내들보다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동년배 중에서 자기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천황창(天凰槍)!”
온청선의 체내에서 다시 눈부신 빛이 폭발하더니 황금색 장창이 백 장 정도로 커져 날카롭고 난폭한 영기를 싣고 쏜살같이 목진에게로 향했다.
이에 목진도 바로 몸을 끌어안았는데 뒤에 있던 대서미마주가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주위에 살기를 퍼뜨렸다.
선홍빛 무늬가 번쩍이는 대서미마주는 부단히 살기를 방출하며 목진한테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이때, 맑은 검음과 함께 백 장 정도의 검영이 하늘을 가르며 황금색 전창에 맞섰다.
탕!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창망과 검기가 주위를 휩쓸었다.
잇따라 낙리가 검영의 위쪽에 나타나 손을 들자 검기가 흘러나와 황금색 전창을 공격했는데 그 엄청난 힘에 장창은 바로 튕겨 나갔다.
이에 온청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장창을 거두었다.
“온청선 조장, 계속 싸우고 싶으면 내가 상대해줄게.”
낙리가 한껏 차가워진 얼굴로 온청선을 바라보며 낙신검을 겨눴다.
“낙리야, 아까는 목진이 먼저 싸워보자고 한 거였어. 너도 들었잖아?”
낙리가 나서자 온청선은 억울하다는 듯 말하며 영력을 거뒀다. 이에 낙리도 낙신검을 거두고 말했다.
“온청선 조장, 우리는 그쪽을 적으로 만들 생각이 없으니까 더는 이런 장난치지 마.”
“좋아.”
온청선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낙리한테 다가가 말했다.
“대신 날 청선이라고 불러줘. 내가 널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알아?”
온청선은 목진한테 고개를 돌리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했다.
“난 목진 조장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괜찮지?”
목진은 온청선이 참 골치 아픈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은 친구로 둬도 피곤할 텐데, 적이 되면 얼마나 괴로울까?
이때, 아래쪽에 있던 서황 등도 시무룩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보아하니 상대편 두 소녀한테 제대로 제압당한 듯했다.
“너흰 아직 안 돼. 너희 조장을 따라가려면 멀었어.”
뒤따라 온청선의 조원들도 왔는데 그중 금발 소녀가 어깨에 거대한 도끼를 메고 서황 등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연약해 보이는 소녀는 수줍게 웃기만 했는데 서황 등은 이 소녀에게 호되게 당한 터라 그 웃음이 괜히 섬뜩하게 느껴졌다.
서황 등은 육신난만 건너면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리여리한 여인 두 명도 이기지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들은 현재 1위인데 실력이 우리보다 좋은 것은 당연해요.”
목진의 위로의 말에 서황 등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청선 등이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을 갖추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온청선 조장, 도대체 여긴 왜 찾아온 거야?”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온청선은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첫째, 낙리를 만나러 왔어. 그때 날 도운 일로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했거든. 그리고 두 번째는 너희와 협력할까 해. 그래서 먼저 실력을 확인했던 거야.”
“뭐?”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당연히 목신전을 말하는 거지.”
온청선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너희도 목신첩 때문에 온 거였어?”
목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목신전은 원고 시기, 유적 대륙의 패주였는데 그런 걸 네가 혼자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온청선이 목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리고 신첩은 총 6개로 너희만 얻은 것이 아니야. 참, 방금 너를 잡으러 왔던 사람들은 중원맹 출신이라고 했던 거 너도 들었지?”
“응. 그런데 그건 뭐야?”
“한마디로 연맹이야.”
온청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중원맹은 여러 학원으로 구성된 연맹으로 따로 움직이면 상대도 안 되지만 연맹 재구성을 통해 실력이 상당히 강해졌지.”
“재구성이라…….”
“그래, 여러 소조의 고수만 모아 새로운 소조를 만드는 거지.”
목진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그래도 돼? 규칙에 어긋나지 않아?”
“그런 건 없어. 다만, 재구성 소조는 결승전에 들지는 못하고 직전에 다시 원래 소조로 돌아가야 해. 하지만 유적 대륙에서 유적을 발견해 실력을 키운 이들은 전보다 훨씬 강해지겠지. 그러니까 너희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한 연맹을 상대할 수는 없다는 거야.”
목진은 숨어 수련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형세가 이렇게까지 변했을 줄은 몰랐다.
“중원맹도 신첩을 얻었다고 들었으니 목신전에 들어가면 분명 만날 거야. 그러니까 나와 손을 잡는 것이 너희한테 유리해.”
온청선이 자신만만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어때?”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학원 대회에 진정한 실력자가 속속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중 오대원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지닌 소조가 적잖게 있었다.
견청만 봐도 하후 못지않았으니 온청선의 말처럼 목진이 아무리 자신만만해도 한 소조의 힘으로 여러 소조로 구성된 연맹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이곳 유적 대륙에는 크고 작은 유적이 너무 많아 실력이 평범했던 소조도 엄청난 기회를 잡고 실력이 폭등하곤 했다.
또한, 목진 등은 아직 실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단계였다. 학원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 중 대부분은 통천경에 이르렀고 통천경 다음 단계는 삼난인데 이는 일종의 겁난으로 건너기만 하면 실력이 급격히 향상돼 다들 유적 대륙의 원고의 유적의 힘을 빌려 삼난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하여 기회를 잡는 자만이 소조의 실력을 한껏 끌어올려 결승전에 들고 최종 승리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목진이 목신전의 원고의 유적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원고의 유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목신전과 비교할만한 것은 얼마 없었기에 목진 등이 목신전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도 사실이라 견청 등과 상대했을 때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러니 목진한테는 온청선과 손을 잡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었다.
“왜 우리와 협력하려는 거지?”
목진은 온청선 정도라면 자신보다 훨씬 좋은 상대와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낙리를 믿으니까.”
온청선이 생글생글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설마 내가 널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아?”
그 말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었다. 목진은 그렇게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온청선 같은 여인은 절대 남자 때문에 의견을 굽힐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리는 날 도와준 적 있어. 도우려고 도운 건 아닐 테지만 은혜를 입고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낙리의 실력은 내가 잘 아는데 넌…….”
온청선은 목진을 쓰윽 훑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와 잠시 힘을 겨룬 것을 보니 나쁘지는 않은 거 같아. 그러니까 너희와 손을 잡는 것이 그렇게까지 나쁜 선택은 아니야.”
“그럼 우리가 오히려 영광이네?”
목진이 투덜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온청선은 역시 귀찮은 여인이었다.
“사내와 함께 하는 걸 싫어하는 내가 이러는데 너희가 영광이지 그럼.”
온청선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