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다시 나타난 혈신족
목진의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에 낙리가 옆에서 피식 웃었다.
“그래, 네 제안을 받아들일게.”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서황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긴 내 조원 서황, 조청삼, 모풍양이고 금방 육신난을 건넜어.”
이에 온청선은 세 사람을 대충 훑더니 바로 눈길을 거뒀다. 관심 없다는 듯한 온청선의 태도에 그들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여긴 쌍둥이 낙아, 빈아야. 영력난을 건넌 고수들도 이들의 상대가 아니야.”
온청선이 똑같이 생긴 소녀 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수령(秀靈)이야. 대력신결(大力神訣)과 단체 신결을 수련했으니 절대 여인이라고 무시하면 안 돼. 전에 영력난을 건넌 고수와 싸운 적 있었는데 한 주먹에 바로 녀석을 산에 꽂아버렸지 뭐야? 너희 중 너와 낙리 외에 이 아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온청선이 금발 소녀를 가리키며 생긋 웃자 소녀는 목진과 낙리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서황 등을 힐끗 쳐다봤다.
“이 아이는 안아(安雅)야. 부자라 영기가 엄청 많아. 그러니까 얘를 쓰러뜨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온청선이 조원 중 마지막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녀가 수줍게 웃으며 목진 등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들은 곧 영력난을 건널 거야.”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깜짝 놀랐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소조가 1위를 따내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했다. 하나같이 연약해 보이지만 모두 영력난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었다.
이런 실력자들을 상대로 싸운다면 목진 등의 승산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목진과 낙리 외에는 실력 차이가 현저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목진은 반드시 원고의 유적을 수중에 넣어 조원들의 실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북창령원을 대표해 출전한 이상,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럼 넌?”
목진이 온청선한테 물었다.
온청선의 실력은 영력난을 건넌 것 같은데 왠지 더 위험한 파동이 느껴졌다. 온청선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
온청선이 씨익 웃더니 말했다.
“네 비밀을 말해주면 내 것도 알려줄게.”
“나한테 무슨 비밀이 있다고 그래?”
“너한테서 특이한 냄새가 나. 아주 강력하긴 한데 잠든 것 같아.”
온청선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잠들었다니, 설마 구유작을 말하는 건가? 목진은 첫 만남에 진화 중인 구유를 알아본 동년배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온청선은 역시 대단했다.
“알려주고 싶지 않은가 보네? 네가 나한테 알려줬다고 해도 내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을 거니까 됐어.”
이에 낙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마다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지.”
“목진이 너한테는 다 알려줘?”
온청선이 툭 던진 말에 낙리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답했다.
“말하고 싶으면 하겠지. 그리고 난 목진을 믿어.”
이에 목진은 온청선을 째려봤다.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온청선이 얄미웠으나 목진과 낙리는 서로를 워낙 굳게 믿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낙리야, 넌 참 착해. 난 이런 네가 너무 좋아.”
온청선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낙리한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남자 따위는 그만 차버리고 나와 함께 학원 대회의 1위나 따자!”
두 절세 미녀의 모습은 무척 예뻤으나 목진은 온청선의 눈빛이 왠지 거슬렸다. 농담 같아 보였지만 뭔가 수상했다.
온청선은 목진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낙리는 보지 못하게 목진한테 고개를 돌리고는 씨익 웃으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너한테서 반드시 낙리를 빼앗을 거야!”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분명 낙리한테 특별한 감정이 있었으니, 이건 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온청선은 오히려 생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고는 낙리 옆에 꼭 붙어 손을 잡았다.
낙리도 온청선의 과한 친절이 수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실력이 뛰어나고 성격도 활달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진은 바로 낙리를 끌어당기며 상대방에게 말을 건넸다.
“온청선 조장, 언제 떠날까?”
“최대한 빨리 떠나자. 신첩이 전부 퍼졌으니 다들 목신전의 위치를 알고 움직였을 거야. 목신전 유적은 일반 유적과 달리 계승이 많아 하나라도 얻으면 소조의 실력이 폭등하는지라 아무도 이토록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거야.”
온청선은 자신과 낙리를 갈라놓은 목진을 째려보며 답했다.
“그럼 나머지 신첩들은 누구한테 있어?”
“듣기로는 중원맹, 성령원, 무령원에서 각각 하나씩 얻었다고 했는데 나머지 2개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신첩을 얻은 데다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은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와 목신전 유적을 빼앗을 사람들은 전부 막강한 실력자들일 거야.”
온청선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학원 대회가 절정에 이르면서 어둠 속에 숨어있던 실력 좋은 소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올해 학원 대회에 실력자가 유난히 많아 나마저도 자신이 없어 너희와 손을 잡으려 한 거야. 중원맹에는 우두머리가 네 명이나 있어. 그중 세 명은 내가 만나봐서 아는데 전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그리고 모두 영력난을 건넌 고수를 쓰러뜨린 전적도 있지.”
이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중원맹의 세 우두머리도 꽤 실력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력난을 건넌 이들을 쓰러트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어때?”
“내가 유일하게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바로 중원맹을 만든 사람이야. 네 우두머리 중에서 실력으로 따지면 1위야. 그러니까 더 말할 나위 없겠지?”
온청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목진은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신전 유적을 찾으러 가는 일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온청선마저도 이렇게 조심스러워했으니 말이다.
“그럼 성령원 쪽은 혹시 희현이 이끄는 소조야?”
목진이 괜히 딴청을 피우며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성령원의 네 소조는 사대 성자가 이끄는데 그중 두 사람만 주의하면 돼.”
“그래?”
목진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온청선이 성령원의 사대 성자에 대해 자세히 알 줄은 몰랐다.
“사대 성자는 보기에는 실력이 막상막하인 것 같지만 네 사람 중 대성자 왕종이 제일이고 그다음은 희현이야. 희현은 네 명 중에서 경험이 가장 적지만 헤아리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지. 이건 네가 제일 잘 알 거야.”
“대성자 왕종이라…….”
사대 성자 중 하후와 싸운 적 있는 목진은 희현을 제외하고 전부 실력이 비슷할 거라고 예상했다. 앞으로 왕종은 특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목신전에 나타날 성령원 소조가 왕종이 아니면 희현이 이끄는 소조일 가능성이 커.”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종이든 희현이든 상대하기 쉽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얼른 신첩이나 내. 우리도 이제 떠나자.”
목진이 바로 물건을 꺼내 영력을 불어넣자 신목비에서 푸른빛을 발하니 살짝 기울며 서북쪽을 가리켰다.
“서북쪽이네?”
온청선이 서북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갑시다.”
목진이 신목비를 거두고 먼저 떠나자 낙리 등이 바로 뒤를 따랐다.
“우리도 이만 떠나자.”
온청선이 씨익 웃더니 예쁘장한 네 소녀와 함께 목진의 뒤를 따랐다.
* * *
이곳은 유적 대륙 중 한 조각이지만 아주 드넓어 북창 대륙보다도 컸다. 하여 목진 등은 닷새 동안 달렸는데도 신목비가 가리키는 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들은 가는 내내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목격했는데 이는 학원 대회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중 가장 큰 싸움은 수백 개의 소조가 개입되어 수천 리 범위를 휩쓸며 난폭한 영력 파동이 일어 천지마저 흔들렸다.
그러나 목진 등은 싸움에 단 한 번도 간섭하지 않았다. 아직은 점수에 욕심낼 때가 아니었다.
상대편도 목진 등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 옆에 순위권 1위인 온청선 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또 사흘이 지나 목진 등은 드디어 목적지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목진은 신목비의 빛이 점차 밝아지며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는 숨겨진 진정한 목신전 유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 * *
“목신전 유적지는 이천리 밖 오래된 산맥에 있는 것 같아.”
목진이 한 산봉우리에 서서 신목비를 쥐고 서북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이면 도착할 수 있어.”
“이곳이 바로 유적 대륙의 중심이겠지?”
낙리가 주위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이곳을 지난 소조의 실력은 전부 강해. 아마 목신전 유적지가 있는 곳에 사람이 잔뜩 모여있을 거야.”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 이들과 방향이 똑같은 소조를 적잖게 봤다. 그 말은 목신전의 위치가 알려졌다는 뜻이었고 유적지의 보물을 얻는 일이 더 복잡하고 어려워질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앞쪽 오백 리에 무역진이 있는데 거기 가자. 이 무역진은 주위 만 리에서 가장 큰 곳으로 다들 그곳으로 찾아오곤 해. 좋은 물건이 많거든, 특히 전투령단(戰鬥靈丹)은 사야 할 것 같아.”
온청선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투령단이라……. 그건 사치야.”
목진이 콧등을 쓰윽 쓸며 말했다. 전투력을 올려주고 영력을 빠르게 회복해주는 영단은 가격이 엄청 비싸 목진도 생각은 해봤지만 사지는 못했다.
“누가 너더러 돈 내래?”
온청선이 목진을 흘겨보며 말하더니 앞으로 나아갔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어깨를 들썩이고는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영력 파동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서 수많은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곳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절대 작은 곳은 아니었다. 수많은 빛줄기가 향하는 곳은 바로 온청선이 말한 무역진이었다.
목진은 번화한 무역진이 궁금해 바로 들어가려 했는데 생긋 웃던 낙리가 갑자기 정색하며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이에 목진도 낙리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10명 조금 넘는 사람들이 전부 빨간색 옷을 입고 불편한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왜 그래?”
온청선도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저들을 발견하고 물었다.
“혈신족이야.”
낙리가 낙신검을 꽉 쥐고 목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천계 사대 신족 중 하나인 혈신족에서도 학원 대회에 사람을 파견했단 말인가? 설마 낙리 때문에…….
혈신족은 서천계 사대 신족 중 하나로 북창령원 교류대회 때, 혈신족 혈시가 나타나 목진이 크게 다쳤고 그로 인해 낙리가 북창령원에 있다는 소식이 혈신족에 알려졌다. 하여 혈신족에서 낙리를 데려가기 위해 분명 조치를 할 거라 여겼는데, 이곳에서 저들을 만나니 안색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서천계는 이곳과 거리가 멀어 지존급 강자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야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저들은 분명 낙리 때문에 학원 대회에 왔을 것이다.
목진은 산봉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다가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 똑같이 빨간색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옷깃에 금색 무늬가 수놓아 있는 것이 다른 사람과 신분이 달라 보였다.
그는 유난히 빨간 입술에 제법 준수하게 생겼다. 그 또한 이쪽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낙리, 드디어 널 찾았군.”
이에 낙리도 준수한 청년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혈천도, 혈신족 사황자가 여기 나타나다니…….”
“날 기억해? 너무 기쁜걸?”
혈천도라 불리는 청년은 방긋 웃더니 옷깃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그러자 발아래에 혈기가 요동치며 주위에 은은한 피비린내가 퍼져 체내의 영기가 무질서해질 기미가 보였다.
목진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서황 등은 바로 영력을 끌어올려 상대방을 경계하였다.
“혈신족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