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무역진
온청선이 혈천도를 쓰윽 훑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혈천도는 낙리 앞쪽에 멈춰서서 목진과 온청선한테 잠시 눈길을 멈췄다. 두 사람한테서 비범한 영력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1년 전, 네가 북창령원에 나타났다고 혈시가 소식을 전해서 큰 소란이 있었어. 넌 낙신족의 차기 황이고 낙신족의 유일한 희망이야. 그러니 너를 포획하면 낙신족은 이대로 멸망할 수밖에 없어. 그럼 낙천신은 크게 타격을 받겠지?”
혈천도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내가 왔어.”
“혈신족에서 너한테 참 중요한 임무를 맡겼네.”
낙리가 언짢은 듯 말했다.
“낙리야, 나와 함께 돌아가자. 서천계의 전쟁은 그칠 기미가 없고 낙신족은 계속 패하고만 있어. 네가 나와 혈신족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난 너와 혼인하겠다고 청을 올릴 거야. 그럼 우리 혈신족과 낙신족은 하나가 되어 다른 두 신족까지 우리 손에 넣을 수 있어. 그럼 서천계는 우리 세상이 될 거고 낙신족도 무사할 거야.”
혈천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낙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낙신족 백성도 살고 얼마나 좋아?”
이에 낙리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목진이 먼저 나서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죄송한데 낙리의 옆자리는 이미 주인이 있어. 그리고 너 따위가 혈신족의 공신이 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은데…….”
“넌 누군데 감히 대화 중에 끼어들어?”
혈천도가 목진을 쏘아보며 물었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
낙리의 말에 혈천도는 흠칫하더니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낙리야, 서천계에 너를 좋아하는 훌륭한 사내가 얼마나 많은데 보는 척도 안 하더니 겨우 저따위 녀석을 좋아하는 거야? 이 소식이 알려지면 낙신족에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올지 알아? 서천계 세력들은 낙신족 차기 여황인 너만 노리고 있어.”
혈천도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낙리가 목진과의 관계를 인정한 것이 못마땅했고 질투가 난 모양이었다.
“그게 너희와 무슨 상관일까? 여태껏 너희가 한 비열한 짓은 입에 담고도 싶지 않으니까 낙신족이 탐나면 정정당당하게 싸우자고 해. 그리고 낙신족이 멸망하면 내가 반드시 혈신족도 똑같이 만들어 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낙리의 말에 혈천도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럼 너를 강제로 서천계로 데려갈 수밖에 없겠네.”
이에 목진이 피식 웃더니 살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뇌신체를 소환했다.
“네가 고민할 건 사람을 어떻게 데려갈지가 아니라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혈천도는 눈이 조금 상기되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겁도 없는 녀석, 육신난 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감히 나한테 까불어?”
그 말에 목진은 바로 하늘 높이 날아올라 혈천도를 공격했다. 감히 낙리에게 낙신족으로 협박하다니 잔뜩 화가 난 목진은 바로 살수를 두기로 했다.
“겁도 없이 감히!”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서려 하자 혈천도는 바로 막아 나섰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끼어들 때가 아니었다.
혈신족 황자의 위엄을 짓밟는 짓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이에 혈천도의 체내에서 혈기가 솟구치더니 한 갈래의 혈광으로 변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쿵!
순식간에 혈광이 주위에 퍼져 하늘은 선홍빛으로 물들였고 혈천도는 혈안이 되어 목진을 노려보며 인법을 바꿨다.
“혈신장(血神掌)!”
혈기가 들끓으며 백 장 정도의 혈장이 목진을 감쌌는데 그 무서운 힘에 공간마저 일그러졌다.
뒤쪽에 서 있던 서황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혈천도가 얄밉긴 해도 그는 실력이 무척 강했다. 이 공격은 일반 영력난 고수도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녀석의 실력이 확실히 강해.”
빈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목진이 저걸 막아낼 수 있을까?”
낙아도 목진이 걱정되었다.
“혈천도가 좀 하네.”
온청선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목진은 절대 이대로 당할 사람이 아니야. 숨긴 게 많은 녀석이거든.”
혈장으로 둘러싸여 물러날 곳이 하나 없는 목진은 멈춰서서 결인했는데 피부 표면의 검은색 뇌광이 급격하게 요동치더니 가슴팍에 순간 뇌문 네 개가 나타났고 강력한 힘이 온몸에 퍼졌다.
그런데 뇌광은 이대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고 네 번째 뇌문 위쪽에 또 하나의 뇌문이 형태를 갖췄다.
다섯 번째 뇌문이었다!
목진의 뇌신체는 어느덧 오문 뇌체의 경지에 이르렀다!
쿵!
다섯 번째 뇌문이 나타나자 목진의 체내에서 검은색 뇌광이 솟구치며 체구가 커졌고 소년의 눈에서 벼락이 번쩍이는 것이 꼭 벼락을 가슴에 품은 것 같았다.
지극히 놀라운 힘이 목진의 체내에서 폭발하였다.
목진은 고개를 들고 서서히 손을 들어 혈장에 맞섰는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뇌광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엄청난 영력이 깃든 혈장을 뚫고 백 리를 밝혔다!
혈장이 빠르게 흩어져 선홍빛 광점이 되어 사라지자 목진은 고개를 들어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혈천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혈신족 황자도 별거 없네.”
검은색 뇌광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혈장은 서서히 사라졌다. 목진은 번쩍이는 검은색 뇌광을 온몸에 휘감고 허공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혈천도를 노려보고는 손에 빠르게 웅장한 힘을 모았다.
목진은 육신난을 건너면서 뇌신체도 5문 뇌체가 되어 신백난을 건넌 고수만 아니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혈천도는 비록 일반 영력난 고수보다 뛰어났지만 신백난을 건넌 것은 아니라서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근본도 없는 녀석이 감히 혈신족을 우습게 봐!”
목진의 말에 잔뜩 화가 난 혈천도의 몸에 그윽한 피비린내와 함께 혈광이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그의 손에 혈광이 번쩍이며 위험한 파동이 일었고 뒤쪽에 서 있던 혈신족 사람들도 몸에 혈광이 이글거렸다.
상대방이 전부 나서려 하자 낙리도 바로 정색하며 낙신검을 꽉 쥐었는데 맑은 검음과 함께 날카로운 검의가 주위에 퍼졌다.
“싸우고 싶으면 우리도 끼워 줘야지. 혈신족은 들어봤지만 여긴 서천계가 아니니 너희가 함부로 까불도록 놔둘 수는 없지.”
온청선도 생긋 웃으며 앞으로 나아가 화려한 금창을 소환했고 연이어 서황, 빈아, 낙아 등도 바로 싸울 준비를 마치고 혈천도 등을 노려봤다.
분위기가 갑자기 살벌해졌다.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았다.
“온청선?”
혈천도가 미간을 찌푸리며 온청선을 바라봤다. 그들 역시 현재 1위인 소조를 모를 리가 없었는데 이들이 목진과 함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
온청선이 태연하게 웃으며 혈천도를 바라봤다.
“흥.”
온청선 등이 낙리와 함께 있으면 아무리 혈천도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싸워 이길지라도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 뻔한데 혈천도는 그러길 원치 않았다.
“일단 봐준다. 너희도 목신전에 가나 본데 거기서 제대로 혼내주지!”
혈천도는 목진을 노려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때 가서 내가 진정한 강자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겠어.”
혈천도가 떠나려 하자 목진은 흑백이 섞인 영력으로 상대방을 공격했다. 녀석을 이대로 풀어줄 수는 없었다.
“내가 너희를 쉽게 죽일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어.”
혈천도가 씨익 웃으며 결인하더니 서서히 혈광이 퍼졌다.
퍽!
목진의 영력이 닿으려는 순간, 녀석들의 몸이 폭발해 사라졌다.
혈광이 폭발할 때 목진은 여러 갈래의 혈광이 번쩍이는 것을 본 것 같았는데 이건 혈신족의 특수한 수단으로 아무리 목진 등이라도 막을 수 없었다. 혈천도는 얄밉긴 해도 혈신족의 황자였고 실력과 수단이 보통이 아니었다.
“저들도 목신전 유적지에 간단 말인가…….”
목진은 혈천도를 죽이려고 했다. 녀석이 혈신족인 것만으로도 언젠가 낙리한테 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기회가 되면 그를 이곳 부서진 유적 대륙에 영원히 잠들게 하고 싶었다.
목진은 결국 검은색 뇌광을 거두고 낙리한테 돌아갔다.
“이건 혈신족의 혈둔법으로 도망가는 데 제일이야. 그런데 지금 저들과 크게 싸워서 좋을 건 없어. 앞으로도 기회는 많아.”
낙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혈천도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이 널 잡으러 왔다는데 이대로 돌려보내면 안 되지.”
그 말에 낙리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목진 오라버니, 멋져요.”
옆에 있던 빈아와 낙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멋있긴, 목신산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 하나 늘었어.”
온청선이 목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자기 여인이 괴롭힘을 당하는데 뒤에 숨어있는 건 사내도 아니지.”
목진은 혈천도보다는 온청선을 상대하기가 더 싫었다.
“혈천도는 상대하기 쉽지는 않지만 진짜로 싸우면 절대 우리 상대가 아니야.”
낙리가 목진의 편을 들자 온청선은 입을 삐쭉 내밀며 손을 휘익 저었다.
“곧 무역진에 도착할 테니 서두르자. 목신산에 사람이 가득 모일 것 같은데 그중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실력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 원고의 유적지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질 테니까 철저하게 준비합시다.”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온청선의 말처럼 목신산에 이르기도 전에 적이 한 명 늘었으니 그곳에 가면 또 얼마나 많은 상대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다들 목신전 유적지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 여태껏 숨어 지내며 실력을 키워왔던 사람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학원 대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목진 등은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무역진을 향해 길을 재촉했는데 수많은 빛줄기가 계속해서 그곳에 내리꽂혔다.
어느덧 무역진 밖에 도착한 목진 등은 그 인기에 자못 놀랐다. 유적 대륙에 들어온 뒤로 사람들이 평화롭게 한곳에 모여있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치열한 점수 쟁탈전이 벌어질 거란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갑시다.”
온청선은 이곳을 잘 아는 듯 앞장서서 나아갔고 목진 등은 그 뒤를 따랐다.
무역진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석 거리가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이 많아 떠들썩하였다.
사람들은 목진 등이 지나가자 두 눈이 휘둥그레져 이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길은 다들 온청선과 낙리에게 향해 있었다.
학원 대회의 1위로 이름을 날린 온청선은 실력과 미모를 겸비했다고 이미 소문나 있었고, 낙신검을 쥔 채 조용히 서 있는 낙리의 모습은 온청선과는 색다른 매력을 풍겼다.
온청선은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도도하게 주위에 있는 청년을 살피고 별 볼 일 없다는 듯 눈길을 거두었는데 그 모습에 상대방은 기가 확 죽곤 하였다. 절대 길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온청선의 모습에 남자들은 더욱 끌리곤 하였다.
한편, 주위 사람들이 조용히 낙리를 훑는 것이 언짢아진 목진이 입을 삐쭉 내밀자 소녀는 담담하게 웃으며 소년의 손을 꼭 잡았다.
이에 다들 질투 어린 시선으로 목진을 쏘아봤고 목진도 깜짝 놀랐다. 낙리는 절대 밖에서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너한테 주는 상이야.”
자신을 힐끗 보더니 불긋해진 얼굴로 낙리가 한 말에 목진은 히쭉 웃었다. 목진이 혈천도를 상대한 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앞에서 먼저 걸어가던 온청선은 사람들의 반응에 뒤를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마침 그 모습을 발견한 목진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그런데 그때, 온청선이 활짝 웃으며 다가와 목진의 다른 쪽 손을 잡는 것이었다.
수군대던 무역진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목진은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낙리와 손을 잡았을 때, 사람들의 눈빛이 질투였다면 지금은 확실히 살기였다.
“당했어.”
목진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온청선은 그야말로 악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