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왕종
“이만 떠납시다. 앞쪽이 바로 목신산이니까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왔는지 구경하러 가봅시다.”
목진이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역외 사족이든 뭐든 지금의 그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리고 관여하고 싶어도 아직은 실력이 너무 부족해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먼저 앞으로 날아가다가 1각 정도 지나 백 장 정도 되는 커다란 나무 위에 멈춰 섰다. 겹겹이 싸인 산맥에 커다란 푸른 산 하나가 우뚝 솟아올랐는데 잠든 원고의 영수처럼 오래된 냄새를 풍겼다.
“저곳이 목신산이란 말인가?”
산이 너무 커서 사람이 개미처럼 하찮아 보였다. 한편, 커다란 산은 그윽한 생기를 발산하였고 푸른색은 영원히 지지 않을 것처럼 짙었다.
“수상해.”
목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산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영원히 닿지 못할 것 같은 괴상한 느낌이 들었다.
“특수한 수단 없이는 절대 목신산에 들어갈 수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어.”
옆에 서 있던 온청선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에 목진은 원고의 산맥을 뚫어져라 바라봤는데 그 주위에 지극히 은은하고 소름 끼치는 파동이 느껴졌다. 이건 다름 아닌 영진의 파동이었다.
“목신산은 아주 무서운 영진으로 포위되어 있어.”
목진의 말에 온청선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영진사가 아니라 영진 특유의 파동을 읽지 못했다.
“그래?”
“오래된 영진은 위력이 상당해. 지존급 강자도 감히 뛰어들 수 없어. 세월이 흐르면서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면 난 절대 알아채지 못했을 거야.”
“네가 진짜 영진사이긴 한가 보네.”
목진이 웃으며 한 말에 온청선도 생긋 웃었다. 그 모습이 남자를 홀릴 만큼 아름다웠으나 이미 마음에 한 여인을 품고 있는 목진은 끄떡없었다.
온청선은 친구로서는 썩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큰 대가를 치르고 진도를 구매한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스스럼없는 결정에 정말 고마웠다.
사실 온청선은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처럼 보이지만 목진이 큰 빚을 지게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람은 친구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적이 되면 최악이었다. 목진은 절대 이런 사람을 적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온청선은 경국지색의 미모와 품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위 산봉우리에 사람이 잔뜩 내려앉아 푸른 숲은 순식간에 사람으로 가득 찼다.
이곳에 온다는 것 자체가 실력을 어느 정도 갖췄다는 뜻인데 목진이 주위를 쓰윽 훑어보니 다들 대회를 시작했을 때보다 실력이 훨씬 좋아졌다.
다들 학원 대회에서 보물을 찾아 실력을 키운 것이다.
목진은 그중에서 유난히 위험한 파동도 느꼈는데 진정한 실력자들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목신산을 열려면 신목비 여섯 개를 한데 모아야 해.”
낙리가 주위를 쓰윽 훑어보며 말했다.
“아마 신목비가 목신산을 여는 열쇠일 거야.”
이에 목진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목비를 소환하였다. 자기 수중의 신목비에는 신술이 있는데 다른 신목비들에도 신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신목비를 들고 있는 사람을 조심해야 했다. 신술의 위력은 엄청나 목진의 육신으로도 중상을 입을 것이다.
“뭐지?”
이때, 멀리서 갑자기 혈광이 번쩍이더니 사람 10명이 멀지 않은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다름 아닌 혈천도 일행이었다.
“저들도 역시 목신산을 노리고 있어.”
목진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혈천도도 바로 눈치채고 음침한 눈빛을 보냈다.
슉!
잇따라 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가 나타나 나무 위에 내려앉았는데 앞장선 세 사람은 바로 어제 만났던 중원맹의 세 우두머리였다.
“허허, 학원 대회가 드디어 흥미진진해졌군. 그런데 이렇게 흥미로운 일에 우리 성령원이 빠지면 될까?”
이때, 시원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놀라운 영력 파동이 퍼지며 십수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령원…….”
목진은 녀석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성령원이 드디어 나타났다. 이번 목신산 유적지에는 세력들이 골고루 모였다.
사람들의 주시하에 십수 명이 날아와 이곳 허공에 멈춰 섰다.
목진도 덩달아 고개를 들었는데 가장 앞쪽에 선 사람한테 눈길을 멈췄다. 하얀 도포를 입은 청년은 훤칠한 얼굴에 장발을 드리운 채 활짝 웃었는데 유난히 상냥해 보였다.
“저 사람이 성령원 사대 성자 중 제일이라는 대성자 왕종이지?”
목진은 그에게서 상당한 영력 파동을 느꼈는데 영력난을 건넌 고수보다 훨씬 강했다. 녀석은 엄청난 실력자였다.
이에 옆에 서 있던 온청선이 녀석을 힐끗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왕종이야. 성령원 사대 성자 중에서 왕종이 가장 유명하고 최고참이야. 난 왕종과 잠시 협력한 적도 있어.”
“그래?”
목진이 흠칫 놀라며 온청선을 바라봤다. 온청선이 왕종 같은 사람과 손을 잡았을 줄은 몰랐다.
“그럼 지금도 너와 협력 관계인 거야?”
목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각자 원하는 것을 위해서 잠시 손을 잡았던 것뿐이야.”
온청선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왜, 불편해? 지금은 우리가 협력 관계야. 그러니까 네가 저쪽과 문제가 생기면 난 너를 도울 거야.”
이에 목진은 코를 쓰윽 쓸어내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더 불안한걸. 그럼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 그쪽한테도 이렇게 말할 거야?”
목진의 말에 온청선은 바로 인상을 찌푸리더니 금세 화가 풀린 듯 생글생글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거야 당연하지. 이용할 가치가 없으면 당연히 버려야지. 난 그렇게 말할뿐더러 널 죽일 거야. 어때, 무섭지?”
“그냥 결승전까지 함께 가자.”
목진은 온청선의 살기 어린 눈빛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때 왕종 쪽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왕종 뒤에 일전에 목신전에서 목진과 싸우다 크게 다쳤던 하후와 그 조원들이 있었다.
“녀석, 명줄이 참 길어.”
목진은 하후의 음침한 눈빛에 피식 웃었다. 만약 육신난을 건너지 않았다면 녀석을 꺼렸겠지만 지금 다시 싸우면 한 방에 바로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한편, 성령원에서는 희현이 이끈 소조를 제외한 세 소조가 모두 모였는데 실력이 상당해 보였다.
그때 왕종이 목진 옆에 서 있는 온청선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하후 등과 함께 다가왔다.
“하하, 청선아, 너도 여기 왔구나.”
왕종은 온청선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 이에 온청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목신전 유적 때문에 왔어? 고수가 잔뜩 모였던데 보물을 얻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다시 내 손을 잡는 건 어때?”
왕종이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이는 이토록 많은 고수 중에서도 자신은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떳떳한 질문이었다.
옆에 서 있던 목진은 무시당한 것 같아 무안했지만 왕종이 온청선한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종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 온청선이 목진 등과 함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목진 앞에서 말한 것이었다. 목진 등에 비하면 왕종을 선택해야 유적지의 보물을 얻을 확률이 더 높긴 했다.
이에 온청선도 잠시 고민이 되었다. 실력으로만 보면 왕종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나은데 그는 목진과 낙리한테 마음이 갔다. 목진은 육신난 밖에 건너지 못했지만 믿음이 가는 사람으로 이익을 위해 배신할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온청선은 목신전 유적지에 탐나는 보물이 아주 많아 이것 때문에 협력 관계가 찢어지는 것을 자주 봐왔었다. 그래서 그런 걱정까지 하면서 왕종 등과 협력하고 싶지 않았다.
반면, 목진 등과 함께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왕종의 제의에 조금 주저했던 온청선은 목진을 힐끗 봤는데 소년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낙리와 담소를 나누기에 바빴다.
“이런 젠장!”
온청선은 이를 악물고 목진을 쏘아보더니 바로 수줍게 웃으며 손으로 목진을 가리켰다.
“미안, 난 목진과 먼저 협력 관계를 맺어서 그러는데 너도 함께하고 싶으면 목진한테 말해.”
이에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낙리와의 대화를 멈추고 온청선을 바라봤고 활짝 웃던 왕종도 금세 정색하였다. 온청선은 아무리 다른 사람과 협력해도 주도권을 장악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왜 이번에는 목진한테 결정권을 넘겼는지 궁금했다.
왕종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 목진을 바라보며 다시 활짝 웃었다.
“이분이 목진 조장인가? 허허, 유명인사를 이제야 보는군.”
목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자신을 앞세운 온청선을 쏘아봤다.
“목진 조장, 내 제안이 어때? 우리 오대원 중 세 학원이 손을 잡으면 좋지 않을까?”
이에 목진은 왕종을 힐끗 보고는 뒤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하후를 바라봤다. 성령원과 북창령원의 관계가 워낙 안 좋고 하후가 목진한테 그렇게 처참하게 당했는데 왕종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협력하려는 것은 절대 뒤를 맡길 만큼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목진은 적을 상대하면서 아군의 습격을 당할까 봐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왕종 조장이 이끄는 사람들은 실력이 너무 뛰어나 눈에 띄기 쉬워. 우리는 유적지에 들어가 대충 구경만 할 생각인데 너희와 함께라면 오히려 불편할 것 같아.”
전혀 신빙성 없는 목진의 핑곗거리에 왕종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거절이 너무 성의 없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하후의 말에 성령원 조원들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자 소년은 무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널 더 세게 때려줄 걸 그랬나?”
이에 하후는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목진 조장은 우리 성령원이 성에 차지 않나 보지?”
왕종이 하후 앞을 막아서며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물었다.
“난 그쪽과 협력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온청선을 데려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가, 난 괜찮으니까.”
목진이 한숨을 쉬며 진지하게 답하자 왕종은 한기 어린 눈빛을 노려보며 체내에서 은은한 살기를 내뿜었고 성령원 조원들도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낙리, 서황 등도 바로 정색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사람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여겼는지 이쪽을 힐끗거리기 시작했다. 두 소조 모두 실력이 뛰어나 싸우면 볼만한 것이다.
이때, 목진을 노려보던 왕종이 갑자기 웃으며 소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목진 조장이 우리와 협력하고 싶지 않다니 강요하지는 않을게. 그럼 잘 다녀와. 들어가면 아주 위험할 텐데 조심해.”
“고마워, 왕종 조장.”
목진이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왕종은 괜찮다며 떠났다. 그는 돌아서자마자 바로 정색하며 살기를 품었다.
왕종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목진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던 혈천도, 중원맹 등을 힐끗 보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이제 그들과 전부 적이 되었으니 목신전 유적지에서 절대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