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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23화 (322/1,000)

323화. 무영영(武盈盈)

왕종 등이 떠나가자 온청선은 생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너한테 적이 또 한 명 늘었네? 폐 끼쳐서 미안.”

목진은 온청선의 얼굴에서 미안함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좋은 구경났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것을 보았다.

“북창령원과 성령원 사이가 워낙 안 좋아. 네가 아니어도 우리는 결국 목신전 유적지에서 싸웠을 거야.”

목진은 비록 왕종과 맺힌 원한은 없지만, 녀석의 성격으로 보니 평화롭게 지낼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기회만 생기면 분명 목진을 죽이려 할 것이다.

목진의 말에 조금 놀란 온청선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대범한 척하니까 괜히 내가 속 좁은 사람 같잖아.”

“내가 감히…….”

목진은 소녀를 흘겨보더니 낙리의 손을 잡고 흐뭇하게 말했다.

“아무나 우리 낙리처럼 대범한 건 아니지.”

이에 온청선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낙리의 다른 쪽 손을 잡고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그래서 나도 낙리를 좋아하나 봐. 네가 무슨 조건을 제시하든 다 들어줄 테니까 넌 우리 둘 사이에서 빠져.”

“무슨 조건이든 상관없어?”

목진이 씨익 웃더니 온청선을 쓰윽 훑으며 물었다.

“어디 한번 말해봐. 네가 말해야 내가 들어줄 수 있을지 알지.”

소년의 눈빛에 온청선은 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목진은 바로 웃으며 거절했다. 온청선은 교활한 여우나 다름없어 항상 조심해야 했다.

“겁쟁이.”

목진이 꼼수에 걸려들지 않자 온청선은 입을 삐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한편, 낙리는 입만 열면 다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목진은 더는 온청선과 말을 섞지 않고 주위를 살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차 많이 몰려들었다. 호호탕탕한 모습이 퍽이나 장관이었다.

“저들 셋이 신목비를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 같아.”

목진은 혈천도, 중원맹과 왕종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에게서 익숙한 파동이 느껴졌다.

이에 온청선도 바로 진지해져 주위를 훑었다.

“너한테 있는 것까지 더하면 네 개인데 목신산 밖에 있는 영진을 열려면 두 개가 더 필요해.”

“나머지 두 개는 누가 갖고 있을까?”

목진이 중얼거렸다. 신목비를 얻은 자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것이었다.

“곧 알게 될 거야. 신목비를 얻었으면 분명 목신산에 올 거야. 안 그럼 신목비는 무용지물이 되잖아?”

낙리의 말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서서 나머지 두 목신첩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주위는 점차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은 거대한 목신산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그 후로 1각 정도가 지나자 나무 위에 눈을 감고 서 있던 목진은 익숙한 파동을 읽고 두 눈을 번쩍 떴는데 서쪽과 동쪽에서 각각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슉!

두 무리는 신속하게 날아와 목신산 주위에 멈춰 섰다.

왼쪽에는 네 조가 한 번에 나타났는데 가슴팍 휘장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보아 각자 다른 학원 출신이었고 아주 놀라운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사해령원(四海靈院) 사람들이야.”

온청선도 조금은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사해령원이라…….”

목진이 깜짝 놀라며 그들을 바라봤다. 사해령원은 한 학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해, 서해, 남해, 북해의 네 학원의 총칭으로 사해라고 지은 것이었다.

사해령원의 네 학원을 하나씩 놓고 보면 아주 평범하지만 한데 모으면 오대원과 실력이 비슷했다.

그건 사해령원을 설립한 사람이 똑같은 사람이라 네 학원의 수련법에 공통점이 있어 서로 협력했을 때 위력이 폭등하는 것이었다.

다만, 내부적인 이유로 사해령원에서는 여태껏 학원 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올해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역시 학원 대회에 숨은 실력자가 많군.”

목진이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 숨어있던 실력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결승전 때에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실력자가 나타날지 궁금했다.

“올해 학원 대회는 역대급인 것 같아.”

온청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원 대회가 아무리 어렵다고 한들 오대원이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했는데 올해는 그런 우세를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번 결승전에 오대원만 자리를 꿰차는 일은 없겠어.”

낙리가 속삭였다.

지난해 학원 대회 때, 북창령원을 제외한 다른 사대원은 결승전에 적어도 한 소조씩 들어갔는데 올해 대회에 참석한 소조의 실력으로 보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쪽을 바라보고 흠칫 놀랐다.

서쪽 소조에서 앞장선 사람은 빨간색 치마를 입은 소녀로 새하얀 피부에 뾰족한 턱을 갖고 있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소녀는 자기보다 훨씬 큰 거대한 언월도를 들고 있었는데 선홍빛 언월도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저 사람은…….”

온청선과 낙리가 동시에 소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낯익은 사람이었다.

“저건…….”

목진도 소녀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았으나 단순히 놀란 두 여인과 달리 소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저 아이를 알아?”

낙리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낙리는 영로의 종점에서 빨간 치마를 입은 소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는 목진이 쫓겨난 후라 그가 그녀를 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목진은 입가를 파르르 떨며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너를 만나기 전에 봤었는데, 내가 영로에 들어가서 마주친 첫 번째 사람이야.”

목진은 괜히 딴청을 피우며 소녀의 눈길을 피했다.

목진이 영로에 들어가자마자 만난 첫 상대가 바로 무영영인데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가 도착한 곳은 시냇물 앞이었는데 그 시냇물에는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목욕하고 있는 무영영만 들어있었다.

비록 바로 뒤돌아서 도망쳤지만 소녀는 목진을 죽이겠다며 옷을 입자마자 칼을 들고 하루 가까이 그를 쫓아다녔다. 목진은 결국 칼을 두 번이나 맞고 싸움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대로 소녀를 풀어주지 않고 그녀의 엉덩이를 힘껏 때린 뒤, 옷을 벗겨 다시 물속에 내던졌다.

그 뒤로 더는 무영영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일단 마주치면 분명 자신을 죽이려 들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목진은 그 일을 낙리한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무영영한테 발견되지 않도록 몸을 숨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무영영이 마침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목진과 눈을 마주치더니 순간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소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목진, 널 죽여버릴 거야!”

소녀의 포효가 주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소녀의 포효에 사람들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는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곧장 불을 뿜어 그를 잿더미로 만들 것만 같았다.

다들 소녀의 시선을 따라 어색하게 서 있는 목진을 바라봤고 낙리, 온청선 등도 어리둥절하여 소년을 쳐다봤다. 이들도 무영영이 왜 목진한테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왜 저러는 거죠?”

온청선 뒤에 서 있던 쌍둥이 자매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어디 아픈가 봐.”

목진이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쿵!

그때 무영영이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달려가 선홍빛 언월도를 휘둘렀는데 날카롭기 그지없는 한 갈래의 빛이 목진에게 향했다.

“이 변태야, 난 널 죽이고야 말 거야.”

무영영은 당장 목진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변태…….”

온청선 등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을 바라봤다.

“낙리 몰래 다른 여인과 이상한 짓을 했나 보네.”

온청선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괜히 식은땀이 났다.

“일단 저 아이부터 해결하고 보자.”

보아하니 낙리와 온청선은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목진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쿵!

목진은 곧바로 뇌신체를 소환해 검은색 뇌광을 온몸에 휘감고 검은색 장창으로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다.

탕!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난폭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도광과 창망이 퍼지며 목진의 몸이 조금 휘청였고 서룡마창을 쥔 손도 저릿했다. 무영영의 실력은 목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아마 중원맹의 세 우두머리 못지않을 것이다.

“젠장.”

목진이 영로에서 마주쳤던 첫 상대마저 오늘의 강적이 될 줄은 몰랐다.

“흥!”

무영영도 조금 놀란 것 같았으나 다시 기합을 넣으며 칼을 휘둘렀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무영영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자 목진은 황급히 도망가며 물었다.

“널 죽이면 그만둘 거야.”

무영영이 이를 꽉 악물며 답하더니 목진을 노려보며 공기마저 가를 듯 칼을 휘둘렀다.

이에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수중의 장창으로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상대방의 공격을 완벽하게 받아냈다.

쿵! 쿵!

다들 하늘에 휘몰아친 영력 폭풍 속에서 싸우는 두 사람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여려 보이는 소녀의 실력이 이렇게 강한 줄 몰랐다.

“허허, 저 녀석은 적도 참 많아. 목신산 유적지에 들어가서도 한참 고생하겠어.”

중원맹의 셋째 우두머리 진풍이 피식 웃으며 말했고, 둘째 우두머리 묵어도 담담하게 웃으며 이를 지켜보았다.

아무도 목진과 무영영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다. 차라리 목신산에 들어가기 전에 죽기 살기로 싸우기를 바랐다.

탕!

칼과 창이 다시 부딪쳐 돌풍이 휘몰아쳤고 공간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 목진이 뒤로 물러나 자신을 쏘아보는 무영영한테 말을 건넸다.

“다들 좋은 구경났다고 생각할 텐데 여기서 이렇게까지 싸워야겠어?”

이에 무영영은 목진을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

“왜, 겁나?”

“그때 그 일은 오해였어…….”

슉!

목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영영이 또 칼을 휘둘렀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목진은 바로 창으로 무영영의 공격을 막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

“널 죽일 거야!”

무영영이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미워? 영로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래? 그때, 난 널 죽여도 됐었는데 살려줬잖아.”

“그게 살려준 거야!”

목진의 변명에 무영영은 더 화가 났다. 홀딱 벗겨 물속에 내던진 것은 여인한테 죽는 것보다 못한 짓이었다.

그때 그 일은 칼을 두 대나 맞아 피투성이가 된 목진이 복수 겸 장난으로 한 짓이었다.

“지금 당장 자살하면 용서해줄게.”

무영영의 말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

“그럼 내가 직접 죽이는 수밖에…….”

무영영이 다시 칼을 들고 공격하려는데 갑자기 튼실한 사내 한 명이 달려와 그녀의 앞에 막아서고는 소녀한테 말을 건넸다.

“우리는 지금 유적 때문에 이곳에 왔는데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그런데 무영영은 못 들은 척 목진만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이때, 온청선과 낙리 등도 목진의 옆으로 다가왔는데 온청선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목진과 무영영을 번갈아 봤다.

“이쪽은 북창령원의 목진 조장이지?”

튼실하게 생긴 사내가 목진을 바라보더니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무령원의 등통(鄧通)이야.”

목진은 깜짝 놀라며 등통과 무영영을 바라봤다. 등통이 무령원에서 왔다는 것은 무영영도 무령원 출신이란 뜻이었다.

“등통 조장이군.”

목진도 이내 웃으며 인사했다.

“영영아, 목진 조장과 아는 사이야? 너한테 잘못을 저질렀어? 오해라면 풀고 화해하자.”

등통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무영영이 평소에 차분한 성격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저 녀석한테 직접 물어봐!”

무영영이 손으로 목진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목진은 콧등을 쓰윽 만지며 물었다.

“그럼 진짜 말해?”

“하기만 해!”

소녀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기만 했고 등통 등은 어쩔 바를 몰랐다.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사람들의 반응에 부끄러워진 무영영은 목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 변태 같은 자식,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계속 들려오는 변태란 말에 낙리, 온청선 등은 소년의 행동이 의심스러웠고 목진도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영영 때문에 체면이 한껏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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