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드디어 열린 목신산
무영영이 언월도를 들고 떠나자 등통 등은 한시름 놓고 목진한테 인사한 뒤, 그 뒤를 따랐고 목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뒤돌아섰다. 그런데 온청선의 장난기 가득 섞인 눈빛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낙리야, 무영영의 표정을 보니 엄청 억울한 일을 당한 것 같던데 제대로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야?”
온청선이 생긋 웃으며 묻자 목진은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그런데 낙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불편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목진이 말하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가 위태로워질 것 같았다.
“전에 말했잖아? 무영영은 내가 영로에 들어가서 마주친 첫 번째 사람이야…….”
목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그날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대신, 소녀를 단단히 혼내줬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했다. 그날, 목진이 한 일이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다야?”
온청선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저 아이는 왜 너만 보면 꼭 바람난 남자 보듯 죽이지 못해 안달이야?”
“내가 왜 너한테 말해줘야 해? 네가 뭔데?”
“아직 더 맞아야겠어!”
온청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하자 이번에는 낙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만해. 그리고 앞으로 조심해. 무영영은 이대로 그만두지 않을 거야. 이건 네가 저지른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해. 난 절대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
목진은 이때다 싶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칫!”
온청선은 입을 삐쭉 내밀며 목진을 흘겨봤다. 목진이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긴 것이 아쉬웠다.
위잉!
그때 천지의 영기에 파동이 일었고 웅장한 목신산 주위에 빛 무늬가 퍼지며 커다란 영진이 형태를 드러냈다.
거대하고 오래된 영진이 나타나자 목진은 바로 신목비를 소환했는데 신목비에서 계속 뜨거운 열기가 발산되었다.
위잉!
신목비에서 내뿜은 푸른빛이 빛덩이를 형성하였다.
이와 동시에 중원맹, 성령원, 혈천도, 무영영, 사해령원에서 빛덩이 다섯 개가 나타나더니 목진의 것까지 더해져 목신산 주위의 방대하고 오래된 영진에 내리꽂혔다.
쿵!
천지의 영기가 들끓으며 영진 속에 숨어있던 원고의 유적이 열릴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위잉!
여섯 갈래의 웅장한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목신산을 둘러싼 거대하고 오래된 영진을 가격하자 영진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다들 거대하고 오래된 영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영진은 원고 시기, 목신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위력이 상당해 지존급 강자라도 절대 뚫지 못할 것이다. 이에 목진은 신목비가 효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안 그럼 이곳에 있는 모두 유적지를 눈앞에 두고 바라만 봐야 한다.
위잉!
빛의 기둥 여섯 갈래가 내리꽂히자 오래된 영진에 미세한 균열이 일더니 어느덧 수백 장 정도로 커졌고 그 속에서 세찬 바람이 비집고 나와 주위에 휘몰아쳤다.
그러다 균열이 점차 안정을 되찾더니 거대한 문처럼 서서히 열렸다.
꿀꺽!
다들 몰래 침을 삼키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목신산을 바라봤다.
“목신전 유적지가 드디어 열렸다!”
누군가의 말소리에 조용히 서 있던 사람들은 바로 영력을 끌어올려 거대한 균열을 향해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갑시다!”
목진은 균열이 안정되자마자 바로 앞장섰고 낙리 등도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오래된 영진에 생긴 거대한 균열은 원고의 커다란 입처럼 벌레떼처럼 몰려드는 사람을 전부 삼켜버렸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사람으로 가득 찼던 목신산 주위는 어느새 텅 비었다.
학원 대회 전체를 뒤흔들 유적 쟁탈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목신산 유적지에서 누가 가장 좋은 성과를 따낼지는 그 실력과 정비례할 것이다.
* * *
거대한 균열에 들어선 목진 앞에 태고의 산이 나타났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컸다.
산의 크기에 화들짝 놀란 목진 일행은 바로 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그곳은 온통 푸른색으로 생기가 가득하였고 영기마저 유난히 활발했지만 목진 등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천지의 영기가 활발할수록 사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건 목신전의 특수한 수련 방식 중 하나일 거야. 이런 곳에서 수련하면 외부의 천지의 영기를 사용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거야.”
온청선이 손을 휘익 젓자 기의 회오리가 날아가 먼 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부숴버렸다.
“대신 싸움이 일어나면 영력 소모도 많아지겠지.”
낙리가 정색하며 말했다.
“전투령단을 준비하기 잘했어.”
목진이 히쭉 웃으며 온청선을 바라봤다. 소녀가 괜히 그걸 준비하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온청선은 으쓱했고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며칠간 목진과 지내다 보니 상냥해 보이는 소년은 자존심이 아주 강해 그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인정하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낙리의 질문에 목진은 고개를 들어 먼 곳 하늘을 바라봤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사람들은 계속 태고의 산맥에 내려앉았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이고, 그들은 보물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목진이 가장 얻고 싶은 것은 계승을 제외하면 구양신지였다. 그것은 그가 대일불멸신을 수련하는 데 꼭 필요한 재료로 너무 희귀해 지존급 강자마저도 탐내는 보물이었다.
지금 실력으로는 밖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이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수중에 넣을 수밖에 없다.
“목신전 유적지에 영보산(靈寶山)이 있는데 거기 진귀한 보물이 아주 많아. 그중 나한테 필요한 영물도 있어. 난 먼저 그곳에 가고 싶어.”
목진은 온청선의 동의부터 구했다. 그녀와는 협력 관계일 뿐이라도 이런 일에는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았다.
“영보산이라…….”
온청선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다들 유적지에 들어오면 계승부터 찾으려 하는데 넌 산에 오르려 하네?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에 목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목진이 구양신지가 필요 없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계승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먼저 영보산에 가야만 보물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구양신지를 얻지 못하면 또 언제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목진한테만 유리한 결정이었고, 목진은 그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온청선은 주장이 확실하고 성격이 강해 누군가와 협력할 때, 반드시 그녀의 뜻대로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온청선이 갑자기 생긋 웃으며 손을 휘익 저었다.
“네 선택이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일단 믿고 따를게. 대신 영보산에 갔는데 별로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돌변한 소녀의 태도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목신전 유적지가 엄청 큰데 영보산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 설마 무턱대고 찾아다니려던 건 아니지?”
낙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신전이 이렇게까지 클 줄 몰랐다.
“그래서야 무슨 보물을 찾겠다고…….”
온청선이 목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뾰족한 수라도 있어?”
“영보산에 천지 영보가 많다고 했으니까 원고 시기, 목신전의 영보원이었을 가능성이 커. 영보원은 천지 영보를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곳이란 뜻이야. 큰 세력이나 종족에 다 비슷한 곳이 있고 전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지.”
목진의 질문에 온청선이 우아하게 웃으며 답했다.
“다들 천지의 영기의 흐름이 가장 빠른 곳에서 재배해.”
이에 목진은 콧등을 쓸어내렸다. 목진의 아버지는 비록 목역의 주인이지만 북령경 같이 작은 곳에는 영보원을 세울 자격 따위는 없었다. 이는 역사가 유구하고 실력이 엄청난 세력만 추구할 수 있는 고상한 곳이었다.
“그럼 천지의 영기의 흐름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측정 영기를 사용해야지. 설마 우리 실력으로 그걸 측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온청선이 소년을 흘겨보며 물었다.
“나한테 그런 물건은 없어.”
목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뭘 믿고 너와 손을 잡은 걸까?”
온청선이 한숨을 쉬고 손을 내밀자 뒤에 조용히 서 있던 안아의 손에 빛덩이가 나타났는데, 그 속에 나침반처럼 생긴 영기가 들어있었다.
이를 건네받아 온청선이 영력을 불어넣자 나침반에 빛의 바늘이 빠르게 회전하다가 결국 멈춰 서북쪽을 가리켰다.
“서북쪽으로 가면 영보산이 나올 거야.”
온청선이 영기를 거두며 생긋 웃었다.
“어때?”
목진은 온청선한테 더없이 천대를 받아 기분이 가라앉았다.
“가자.”
목진이 입을 삐죽 내밀고 시무룩하게 말하자 낙리는 피식 웃으며 소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역시 우리 낙리 밖에 없어.”
그제야 웃음을 되찾은 목진이 소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낙리는 부끄러워 빨갛게 달아올랐다.
“뻔뻔하긴!”
온청선은 이를 갈며 목진을 노려봤다.
“하하하, 영보산에 보물 찾으러 갑시다!”
목진은 호탕하게 웃으며 낙리와 함께 앞장섰고 온청선도 씩씩거리며 따라나섰다. 서황 등도 바로 뒤따랐다.
슉!
우거진 산맥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부단히 들리며 아래쪽 숲에 깊숙한 흔적을 남겼다.
웅장한 영력으로 몸을 감싼 목진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산과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을 바라보며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목신산은 무서울 정도로 넓었다.
그때 다른 곳에서도 영력 파동이 일었는데 이는 목신산에 들어온 다른 소조들로 고요했던 목신산은 점차 떠들썩해졌고 사람 냄새가 더해졌다.
목진은 전력을 다해 영보산로 향하며 계속 온청선 수중의 빛의 나침반을 힐끗거렸는데 그 빛은 미세하게 움직이며 가장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었다.
목진은 신목비에서 영보산에 관한 정보를 얻었는데 신목비를 얻은 다른 다섯 사람도 자신과 똑같은 정보를 얻었을지 몰라 최대한 빨리 그곳으로 찾아가 구양신지를 얻고 싶었다.
목진이 아니면 구양신지를 얻어도 대일불멸신을 수련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아주 진귀한 물건으로 지극히 무서운 영력을 지녀 직접 제련해 흡수하거나 영단을 만들어도 좋아 지존급 강자마저 탐내는 물건이었다.
만약 누군가 이 정보를 알았다면 분명히 목진처럼 영보산을 찾으러 다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진은 절대 구양신지를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누구든 앞길을 막으면 바로 살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슉!
목진은 속도를 더 끌어올려 순간 백 장 밖에서 나타났고 낙리 등도 바로 뒤를 따랐다.
1각 정도 지나자 이들 앞에 적황색 평원이 펼쳐졌는데 그곳에서는 생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지는 균열이 잔뜩 나 있었고 만신창이가 된 채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것이 꼭 저승으로 가는 길 같았다.
목진 등은 속도를 늦추고는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봤다.
“원고 시기, 이곳에서 아주 무서운 전쟁이 일어났던 것 같아.”
목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도 예전에는 다른 숲처럼 생기가 넘쳤을 텐데 무서운 전쟁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황량하기가 그지없었다.
도대체 어떤 전쟁이었기에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 전쟁 때문에 목신전이 사라졌을 수도 있어.”
낙리가 적황색 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닥에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된 영기와 백골이 보였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멀리서 계속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보물을 찾으러 내려앉은 소조들이었다.
“가자.”
이곳에 보물이 있을지는 몰라도 목진 일행의 목표물은 아니었다.
“나침반이 가리킨 방향에 따르면 우린 곧 영보산에 도착할 거야.”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정신이 번쩍 들어 바로 속도를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