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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26화 (325/1,000)

326화. 규칙

“목신전의 누군가가 남긴 령의 그림자일 수도 있어.”

낙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에 온청선은 시름을 놓았다. 만약 그림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들은 최대한 빨리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령의 그림자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 없는 건 마찬가지야.”

서황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영보산에 먼저 뛰어든 사람들 중 대부분은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고 나머지는 그 속에 갇혔는데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어.”

목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 규칙이 도대체 뭘까?”

낙리와 온청선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백발노인을 노려봤다.

“영산은 9개 층으로 나뉘는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진귀한 영물이 자라고 있고 그것을 지키는 전우가 있다. 전우와 싸워 이겨야만 영물을 취할 수 있다. 대신 패배하면 반년 동안 이곳에 갇히게 되지. 이건 영물의 힘을 빌려 게으름을 피우려는 사람한테 내리는 벌이다.”

“이게 규칙이었군.”

목진 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깜짝 놀랐다. 전우와 싸워 패배하기라도 하면 반년 동안 구속되어 앞으로의 학원 대회는 포기해야 했다.

“제자들이 더 열심히 수련하도록 이런 규칙을 만들었군. 그런데 저들은 절대 목신전이 이렇게 될 줄 몰랐을 거야. 여기 목신전 제자는 더는 없잖아.”

온청선이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그럼 영보산에 갇힌 사람들은 영물을 수호하는 전우를 이겨야지만 영물을 취할 수 있고 그게 아니면…….”

목진은 온청선의 말대로 먼저 나서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누가 그 속에서 싸우게 되든 영물을 수호하는 전우의 실력을 모르는 이상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일단 지켜보자.”

전우의 실력이 엄청나면 목진은 꿈에도 그리던 구양신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곳에 반년 동안 갇혀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이에 온청선 등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침입자가 서 있는 석대에서 갑자기 빛을 발하더니 빛줄기가 솟아오르며 전우가 나타났다.

흑철로 빚은 것처럼 까만 전우의 몸에는 오묘한 부적이 새겨져 있었는데 은은한 빛을 발하며 은밀하고 강력한 파동을 발산했다.

목진은 전우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파동을 숨긴 듯 실제 실력을 가늠하기가 힘들었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압박감은 더 심해졌다.

영보산은 9개의 층으로 되어 있는데 8층과 9층에는 오른 사람이 없어 전우가 나타나지 않았고, 7층에는 두 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침입자가 많아져 나타난 전우의 수도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이에 석대에 갇힌 사람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백발노인의 말대로 전우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면 이곳에 반년 동안 갇혀있어야 하는데 반년 뒤에는 학원 대회는 이미 끝났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괴로워했다.

“목신전이 몰락한 지가 언제인데 그 전우의 실력이 뛰어나 봐야 어디 갈까!”

이때 영보산 5층의 한 석대에 서 있던 학생 하나가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포효하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는 이미 통천경 후기에 이르렀고 육신난을 넘어서기 직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 장풍을 쐈고 붉은색 영력이 활활 타오르는 화염처럼 냉철한 검은색 전우에게로 향했다.

이에 전우도 앞으로 나아가 손을 휘둘렀다. 녀석은 상대방의 공격을 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퍽!

두 사람의 손이 부딪힌 곳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침입자가 미친 듯이 피를 토하며 멀리 튕겨 나갔다.

주위는 금새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전우를 바라봤다.

침입자가 한 방에 패했으니 전우의 실력은 적어도 육신난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겨우 5층일 뿐이었다.

“도전 실패, 반년 동안 구속.”

백발노인이 말을 마치고 옷깃을 휘날리자 빛의 사슬이 나타나 도전에 실패한 이의 몸을 신속하게 감싸더니 지면이 반으로 갈라졌다. 침입자는 비명을 지르며 틈새로 떨어졌고 지면은 눈 깜빡할 사이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전부 사색이 되었다.

“난 도전하지 않을래요!”

영보산에 갇힌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는데, 그중 일부는 처벌이 너무 무서워 포효하며 도망치려 하였다.

“도망가려는 자는 도전 실패로 인정하고 반년 더 구속한다.”

백발노인의 말과 함께 수많은 빛의 사슬이 도망자들을 묶어 산에 가뒀다.

이에 도망가려고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바로 멈춰 섰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반년 동안 갇혀있는 것은 죽기보다 못한 일이었다.

“덤벼!”

전우와 싸우는 것이 결국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은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하여 싸워보기로 했다.

쿵! 쿵!

사람들은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무서운 기세로 전우에게로 향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도전에 실패한 사람들은 처량한 비명과 함께 부단히 산속으로 끌려갔다. 반면, 적당한 층에 내려앉은 이들은 상대 전우의 실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 힘겹게 싸우긴 했지만 끝내 승리하였다.

잇따라 승자들이 서 있던 석대 주위를 감쌌던 빛이 사라지자 이들은 전리품은 뒤로 한 채 다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면서 곧바로 도망갔다.

목진은 오직 7층에만 집중했는데 그곳에 뛰어든 두 명 중 한 명은 육신난을 건넌 고수였지만 전우의 공격을 몇 번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영력난을 건넌 고수로 조장을 하고도 남을 실력자였다. 영력난을 건넜다고는 하나 7층 전우와의 싸움에서 큰 우세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전우는 신결을 사용할 줄 알아 엄청난 공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했다.

이 싸움은 반 시진 동안 계속됐는데 녀석은 영력을 전부 소모해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었지만 결국 승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우도 중상을 입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슴팍에 균열이 잔뜩 났고 비틀거리며 걷는 것이 곧 부서질 것 같았다.

“무승부, 승리하지 못해 영물을 얻을 수는 없으나 이곳에 갇힐 필요도 없다.”

허공에 서 있던 백발노인이 무덤덤하게 말을 내뱉자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비틀거리며 조원들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영보산 전쟁은 서막을 내렸고 그 속에 뛰어들었던 사람 중 대부분은 산속에 갇혔다.

영보산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영보산의 영물을 탐내던 사람들은 식은땀에 온몸이 흥건해졌으며 차마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들도 지금쯤 산속에 갇혔을 것이다.

목진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영력난을 건넌 고수를 저렇게 만들다니, 구양신지가 있는 9층은 도대체 어떤 괴물이 지키고 있단 말인가?

뛰어들어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도전에 성공하면 구양신지를 얻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이곳에 반년 동안 갇혀있어야 하니…….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보산 주위는 유난히 조용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안색은 대부분 창백했다. 탐욕스럽던 눈빛도 어느새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영보산의 영물이 아무리 탐나도 목숨보다 귀중한 것은 없었다.

도전에 실패하면 죽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반년 동안 갇혀있는 것는 죽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왕종, 무영영 등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들 실력으로는 영보산의 7층 이하는 충분히 정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7층 이하의 영물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7층 이상의 영물을 취하려면 더 강한 전우를 상대해야 하는데 이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때 낙리가 목진을 힐끗 쳐다봤다. 목진은 영보산 정상의 구양신지를 원했으나 전우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이곳에 발이 묶일까 봐 고민하고 있었다.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 또 있을까?”

백발노인이 영보산 허공에 서서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자 다들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실력이 괜찮은 소조들은 저층을 선택해 도전해도 되지만 처벌 때문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목진도 다급해져 주먹을 꽉 쥔 채 안절부절못했다. 이대로 포기하면 이렇게 진귀한 보물을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몰랐다. 구양신지는 목진한테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내가 9층에 도전할게.”

낙리가 생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9층 전우의 실력이 상당하겠지만 난 이길 자신이 있어. 내가 반드시 구양신지를 가져올게!”

이에 목진, 온청선, 서황 등은 깜짝 놀랐다.

“어때?”

낙리는 미소를 지은 채 목진의 의견을 물었다.

“안 돼.”

온청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내가 할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 중에서 내가 가는 것이 승산이 가장 커.”

온청선은 학원 대회 1위였던 소조의 조장으로 실력이 엄청났다. 비록 진정한 실력을 선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아무도 감히 그녀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냥 내가 할게. 나도 할 수 있어.”

낙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야!”

온청선은 조금 화가 난 듯 낙리를 바라봤다.

두 여인의 말다툼에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었다. 잠시 후 천천히 눈을 뜬 그는 고뇌 따위는 전부 털어내고 결연한 눈빛으로 영보산 정상을 바라봤다.

9층 전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의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고난에 맞설 용기와 자신마저 없으면 절대 강자가 될 수 없었다.

목진은 실력을 계속 키워 이미 천지존에 이른 어머니마저 두려워하는 신비로운 곳을 찾아가 그녀를 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절세의 강자가 되어 좋아하는 소녀를 보호해야만 했다.

그 길에 막 들어선 목진은 이제 물러날 곳이 없었다.

목진은 이곳에 반년 동안 갇혀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낙리가 직접 나서서 구양신지를 취하겠다는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낙리가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두려움이 많아졌을까? 우유부단하고 소심해지면 강자가 되어가는 길에 부딪힐 고난을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목진의 눈에서 밝은 신광이 요동쳤고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은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로운 신창 같았다.

온청선과 낙리는 잠시 말다툼을 멈추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을 바라봤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기운은 충분히 느껴졌다.

그 속에는 충분한 자신감과 불굴의 의지가 들어있었다.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여전히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매처럼 말이다.

낙리는 멍하니 목진을 바라보고 생긋 웃었다. 학원 대회가 시작한 뒤로 목진은 행동이 많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낙리는 그런 그의 모습보다 자신감 넘치는 소년이 더 좋았다. 그래서 그가 더는 불안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직접 나서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소년이 뭔가 눈치챈 것이다.

“나한테 전혀 기회를 안 주네.”

낙리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소년을 바라봤다.

옆에 서 있던 온청선도 목진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조금은 놀란 표정이었다. 낙리가 나서겠다고 했을 때, 목진이 조금은 얄미웠다. 목진이 진정 낙리를 좋아한다면 그녀가 이런 말을 하지 않게끔 그녀의 앞에 나서서 모든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진을 처음 봤을 때 그녀가 이런 사내를 좋아한다는 것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만사에 조심스러운 사람보다 고난에 닥쳤을 때, 결과와 상관없이 용감하게 헤쳐 나가려는 사람이 좋았다.

온청선은 ‘이 세상에서 내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좋았다.

그런데 지금의 목진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그제야 낙리가 소년을 좋아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영로에서의 목진이 바로 그런 사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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