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신백난
목진은 손을 내밀어 낙리의 손을 꼭 잡고 조용히 웃으며 미안함을 전했다. 그러자 소녀는 괜찮다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내 것을 빼앗으려 하다니, 난 반대야.”
목진이 고개를 돌리며 한 말에 온청선은 바로 눈을 피하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누가 갖고 싶대?”
온청선이 투덜대다 바로 소년의 말뜻을 알아채고 그를 노려봤다.
“난 오늘 반드시 구양신지를 취할 거야.”
목진은 영보산 정상으로 손을 뻗더니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도전할 사람이 또 있을까?”
그때 백발노인이 다시 물었다.
“하하, 선배, 내가 도전할게요!”
목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나서자 그 말이 뇌명처럼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에 사람들은 흠칫 놀라 소년을 바라봤다.
하지만 목진은 사람들의 눈빛 따위를 무시하고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영보산 정상에 올랐다.
“겁도 없이 감히 9층에 올랐어!”
누군가의 말에 왕종이 깜짝 놀라 목진을 바라봤다. 그러다 실패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영영도 소년의 맑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나쁜 녀석, 함부로 나섰다가 영보산에 갇히면 나와의 원한은 어떻게 해결할 거야!”
슉!
목진은 어느덧 영보산 9층에 올랐고 눈부신 빛에 가려졌다.
백발노인은 여전히 허공에 서 있었고 영보산 9층에 오르는 목진을 보더니 초점을 잃었던 눈에서 파동이 일었다.
수많은 이들의 주시하에 목진은 영보산의 9층 석대에 내려앉아 고개를 들고 석대의 끝자락을 바라봤다. 옥석 연꽃대에 태양이 스며든 것처럼 눈부신 빛을 발하는 물건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옥석처럼 영롱한 줄기에 빛덩이 아홉 개가 한꺼번에 태양처럼 떠올랐는데 그 빛에 하늘마저 어두워졌고 무서운 영력 파동이 계속 뿜어져 나와 주위 공간마저 일그러졌다.
이것이 바로 구양신지로 목진이 꿈에도 그리던 영물이었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구양신지를 얻으려면 곧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는 전우와 대결을 해야 했다.
위잉.
이때, 널찍한 석대의 다른 한쪽 지면에서 백 장 정도의 빛줄기가 솟아올랐는데 영보산을 꿰뚫은 듯 백 리의 거리를 두고도 훤히 보였다.
이와 동시에 은은한 압박감이 주위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조금씩 파고들어 두려움을 심어주고 싸울 의지를 잃게 할 만큼 무서운 압박감이었다.
이에 목진은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검은색 뇌광을 온몸에 휘감았다. 무서운 상대 이니 만큼 목진도 절대 방심할 수 없어 바로 뇌신체를 소환하였다.
한편, 사람들은 그저 영보산 9층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들 9층의 전우는 어느 정도로 강할지 궁금했다.
이때, 눈부신 빛줄기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쿵!
곧 사라질 빛 속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녀석도 온몸이 까맣고 금속광택이 반짝거렸지만 인간과 거의 비슷한 체구를 가졌고, 몸 표면에 새겨진 암자색 부적에는 은은한 빛을 발했다. 게다가 그윽한 보랏빛이 비치는 두 눈은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색 장창은 창 끝자락에 선홍빛 혈조가 있는 것이 영락없는 살인 병기였다. 또한, 녀석은 다른 전우보다 작지만 얇고 길쭉한 몸에 아주 무서운 힘이 깃들어 있었다.
“저것이 9층의 전우란 말인가?”
누군가 안색이 조금 창백해진 채 중얼거렸다.
“영력 파동으로 보면 이 전우는 신백난을 건넌 고수와 실력이 비슷한 것 같은데…….”
“엄청나군! 과연 신백난 몇 단계일까?”
사람들은 수군대며 전우를 바라봤다.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목진도 전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녀석이 나타나자 위압감이 더 강력해졌기에 목진은 잔뜩 긴장하며 살기가 요동치는 서룡마창을 소환하였다.
전우는 확실히 신백난을 건넌 고수와 실력이 비슷했다.
신백난은 지존경에 이르기 전,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겁난으로 삼난 중 가장 위험한 단계이기도 했다. 육신난, 영력난과 달리, 신백난은 신백에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신백은 수련인의 정기와 정신이 모여 만들어진 것으로 일단 문제가 생기면 치명적이었다.
한편, 신백난은 피와 살에서 비롯된 혈화 수련(血火錘煉), 영력에서 비롯된 영화 수련(靈火錘煉)과 신백에서 비롯된 신화 수련(神火錘煉) 등 세 가지 단계로 나뉘는데 이는 신백이 전에 겪었던 육신난과 영력난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한 번 겪을 때마다 신백이 강해지고 세 단계를 무사히 마치면 비로소 지존경이 이르기 위한 준비가 끝난다.
그런데 목진이 상대할 전우는 신백난의 첫 단계를 건넌 실력자였다.
“신백난의 첫 단계를 건넌 고수라…….”
낙리, 온청선 등도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직접 확인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학원 대회가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다들 유적 대륙의 유적의 힘을 빌려 실력이 부쩍 늘었지만 신백난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왕종, 무영영만 봐도 이미 영력난의 정상에 섰고 신백난에 도전할 자격이 충분해 적당한 기회가 나타나면 신백난 첫 단계를 건널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여 이곳에 모인 사람 중 전우와 싸울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을 넘지 않았다.
“목신전에서 흥미로운 물건을 남겼네.”
온청선의 말에 낙리도 인정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패배하면 어떡해?”
온청선이 낙리를 보며 물었다.
목진은 육신난 밖에 건너지 못해 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아도 신백난 첫 단계를 건넌 상대를 꺾기란 쉽지 않았다. 또한, 목진이 패배하면 이곳에 반년 동안 갇혀있어야 했다.
“난 목진을 믿어.”
낙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목진이 패배한다고 해도 내가 직접 조원들을 이끌고 결승전에 가서 희현을 죽일 거야. 그리고 다시 돌아와 목진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그를 기다리면 돼.”
“반년 동안 하염없이 기다릴 거란 말이야?”
온청선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묻자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년쯤은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어. 나한테 그 정도 자유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너무 작게 말해 온청선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목진이 그렇게 좋아?”
온청선은 답답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낙리의 외모와 실력이라면 대천세계에서 빛을 발하고도 남을 텐데 모든 걸 감춘 채 소년의 곁에만 있겠다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갔다.
이에 낙리는 씨익 웃으며 먼 곳에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온청선은 현재의 낙리만 알지 영로에 들어가기 전, 또는 목진을 만나기 전의 그녀를 본 적은 없었다.
그때 소녀의 세계는 어두웠다. 어린 시절, 든든한 뒷배가 되어줘야 할 아버지께서 전사하셨고 어머니께서는 너무 마음이 아픈 나머지 몸이 날따라 쇠약해지셨으며 낙신족 황족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부패하여 결국 낙리가 모든 걸 떠안아야 했다.
지금은 비록 낙천신이 잠시 낙황의 자리를 맡고 있지만 곧 낙리한테 돌려줄 것이다.
소녀는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질 자신이 없어 언젠가 낙황의 자리를 물려받으면 무너질 거라 여겼는데 영로에서 목진을 만난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소녀는 소년한테서 자신감을 얻는 법을 배웠고 어두웠던 세계에 한 줄기 햇살이 드리웠다. 소년은 결국 소녀의 세상을 밝히는 태양이 되었다.
낙리의 변화는 낙천신도 깜짝 놀라게 했고 그 덕분에 2년간의 자유를 허락해준 것이다. 이 모든 건 목진 때문이었으니 소녀가 소년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목진은 아주 훌륭한 사내야. 함께 지내다 보면 너도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
낙리가 온청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난해? 하나도 안 웃겨. 그리고 난 천재들을 수도 없이 봐왔어. 너도 잘 알다시피 대천세계는 아주 크잖아?”
온청선이 멀리 떨어진 소년을 바라보며 무뚝뚝하게 한 말에 낙리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너도 뒷배가 상당하구나?”
이에 온청선은 딴청을 피우다가 영보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놀라운 영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드디어 시작한 건가?”
온청선은 늘씬한 청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목진, 네가 과연 낙리의 말처럼 대단한지 보자꾸나.”
석대에서 웅장한 영력이 돌풍처럼 휘몰아치자 마치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서룡마창을 들고 전우를 노려보는 목진의 몸에서 검은색 뇌광이 번쩍였고 탄탄한 근육에 강력한 힘이 깃들어 엄청난 위력이 폭발할 것 같았다.
한편, 몸 전체가 까만 전우의 두 눈에서는 보랏빛이 번쩍였고 주위에 무서운 압박감이 퍼졌다.
목진과 전우는 일시적인 대치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전우는 지능이 없어 상대방이 육신난을 건넌 사람이든 지존이든 상관하지 않았기에 먼저 정적을 깨고 공격을 개시했다.
쿵!
전우가 있는 힘껏 발을 구르자 대지가 미세하게 떨렸고 피부에 새겨진 오묘한 보라색 무늬가 눈부신 빛을 발하며 무서운 영력 파동이 일었다.
슉!
녀석이 순식간에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목진은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전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속도가 너무 빨라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크으으으!
목진 역시 전투 경험이 풍부한 편이라 바로 용등술을 소환하였다. 그는 용 울음소리와 함께 잔영만 남기고 뒤로 물러났다.
슉!
뒤로 물러나던 목진은 갑자기 뒤돌아서서 빠른 속도로 살기 가득한 서룡마창을 휘둘렀다.
퍽! 퍽!
목진의 공격에 공기마저 폭발하였고 허무한 공간에는 은은한 흔적이 남았다.
팅!
이와 동시에,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며 검은색 장창이 모습을 드러내 서룡마창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쿵!
그때 목진의 체내에서 검은색 뇌광이 폭발하며 체구가 한껏 커졌고 가슴팍에는 뇌문 다섯 갈래가 나타났으며 엄청난 힘이 홍수처럼 휘몰아쳤다.
슉! 슉!
목진이 팔을 떨자 서룡마창에서 창영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목진은 전우를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바로 뇌신체를 5문 뇌체까지 소환했고 서룡마창의 힘까지 빌려 공격을 개시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영력난을 건넜다고 해도 정면으로 맞서기는 힘들다.
그러나 목진의 상대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신백난 전우였다.
팅! 팅!
하여 이토록 무서운 공격에도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녀석은 앞으로 나아가며 수중의 장창을 휘둘러 상대방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렇게 두 사람의 창영이 부딪쳐 소리 없이 사라졌다.
대결을 지켜보던 온청선, 낙리 등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비록 목진이 먼저 공격을 했지만 전우가 전부 막아냈고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이번 싸움은 엄청나게 치열할 것이다.
팅! 팅!
사라지는 창영을 바라보는 목진의 눈빛은 점차 예리해졌고 서룡마창을 쥔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매번 상대방의 공격에 지극히 난폭한 힘이 몰려왔는데 서룡마창이 절품 영기가 아니고 목진이 뇌신체를 오문 뇌체까지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미 크게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신백난 첫 단계를 넘은 실력은 영력난에 비해 훨씬 뛰어났다!
팅!
수많은 창영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장창 두 개가 나타나 허공에서 부딪쳤다.
퍽!
무서운 돌풍이 휘몰아치며 기랑이 폭발한 흔적이 미세하게 보였다.
이때, 전우 눈동자의 보랏빛이 번쩍이더니 갑자기 장창을 버리고 귀신같이 목진의 앞에 나타나 가슴팍을 공격하자 공간에도 은은하게 파문이 일었다.
녀석이 드디어 주도권을 차지하고 공격을 개시했는데 목진의 폭우 같은 창영이 사라질 때를 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