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수확
거대한 청목광륜이 푸른색 광점이 되어 쏟아져 내리며 아래쪽에 있는 소년을 감쌌다.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필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상황을 역전시켜 난폭한 전우를 반으로 가를 줄이야…….
그리고 청목광륜은 조금 전 분명 전우를 공격하는데 실패했는데 어떻게 다시 나타난 걸까?
사람들은 아직도 눈앞에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았다.
온청선도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일부러 청목광륜을 바닥에 숨긴 건가? 살수 뒤에 또 다른 살수가 숨어있었다니…….”
청목광륜이 바닥에 꽂혔을 때, 목진은 바로 이를 소환하지 않았다. 전우의 속도가 너무 빨라 바로 적중할 수 없어 적당한 시기를 노렸는데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전우가 공격을 개시할 때라야 목진한테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이는 결단력과 상당한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마 목진마저도 전우가 자신의 공격을 피할 줄 몰랐을 텐데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새로 살수를 두어 녀석을 쓰러뜨린 것이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다 목진은 한 수 더 생각해두는 습관이 있어.”
낙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몰래 숨을 고르는 것이 보였다. 목진이 전우와 혈투를 벌일 때, 낙리는 생각보다 더 소년이 걱정되었다.
“영로의 혈화자는 역시 대단해.”
온청선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만약 영로에서 방출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났을 거야. 그리고 영관자는 내가 아니었겠지.”
온청선은 목진의 실력보다 그 패기와 자신감에 자못 놀랐다.
뒤쪽에 서 있던 왕종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반전 있는 싸움이 흥미롭긴 했지만, 그는 목진이 전우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이곳에 갇히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왕종은 소년의 수단에 무척 놀랐다. 자신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녀석…….”
그는 희현이든, 목진이든 신생들은 왜들 다 이렇게 얄미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반면, 무영영은 표정이 복잡미묘했다. 이를 악물고 목진을 노려보던 소녀는 저도 모르게 소년한테 경외의 마음이 생겼다. 무영영은 목진이 한 짓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훌륭한 사내인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영로 시절, 무영영은 목진한테 수모를 당한 뒤 복수하려고 그를 찾으러 다녔는데 영로가 너무 커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소년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영로의 혈화자란 호칭을 얻고 쫓겨난 뒤였다.
그날의 혈화에 대해 알게 된 무영영은 쉽게 믿기지 않았다. 목진은 그토록 무서운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목진을 다시 만난 것이다. 몇 년 사이, 소년한테서는 그때의 앳된 모습을 더는 찾을 수 없었고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소녀의 마음이 설렜다.
무영영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바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녀석을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데 이상한 마음을 품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뒤에 서 있던 등통 등은 안색이 급변하는 소녀가 걱정되었지만 감히 건드리지는 못했다.
한편, 목진은 반으로 갈라진 전우를 보고는 한시름을 놓고 미간에 난 피를 닦았다. 전우의 실력이 막강하긴 했으나 지능이 없어 인간을 이기기란 어렵다. 그러나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겼으니 됐네.”
목진이 입을 삐쭉 내밀며 전우를 툭 차더니 고개를 들어 석대의 끝자락에 있는 옥석 연꽃대를 바라봤다. 그 속에서 구양신지가 영롱한 가지를 하늘거렸고 빛덩이 아홉 개가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발하며 지극히 무서운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목진은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구양신지를 얻게 되었다.
이에 목진이 다가가 구양신지를 취하려는데 옥석 연꽃대 옆에 갑자기 빛이 모여 깜짝 놀랐다. 전우를 이겼는데도 구양신지를 얻을 수 없단 말인가?
빛이 모이자 백발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선배님, 전 이미 전우를 이겼으니 구양신지를 취해도 되죠?”
목진이 경계하며 말을 건넸다. 백발노인은 아무런 지혜도 없는 령의 그림자일 뿐이었지만 예를 갖췄다.
이에 백발노인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노인을 바라봤는데 초점을 잃었던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달라졌다. 더는 전처럼 무뚝뚝하고 흐릿하지 않았다.
“누군가 우리 목신전의 신술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을 줄이야…….”
백발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자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산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백발노인한테 지능이 있었다니!
“긴장할 건 없다. 네가 목신전의 신술을 사용하여 령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내 의식이 흘러나왔을 뿐이야. 이것도 곧 사라질 거다.”
백발노인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혹시 존함을 알 수 있을까요?”
목진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물었다.
“목신전마저 사라졌는데 내 이름 따위가 중요할까?”
백발노인은 이내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넌 괜찮은 아이인데 목신전 제자가 아닌 것이 아쉽구나.”
목진이 천목신륜을 소환해 의식이 살아난 노인이 소년과 전우의 싸움을 목격한 것이었다. 목진은 노인의 말에 뭔가를 알아챈 듯 눈을 깜빡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만 괜찮다면 저를 목신전의 기명 제자(記名弟子)로 들여도 좋아요.”
이에 백발노인이 피식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영리한 녀석이로구나.”
노인의 말에 목진은 히쭉 웃었다. 백발노인은 목신전이 사라진 이상 기명 제자를 둔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소년이 마음에 들어 뭐라도 주고 싶었다.
그때 백발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손가락을 튕기자 푸른빛 한 줄기가 목진의 미간에 들어가 오래된 나무 무늬 모양을 반짝이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천목신륜은 아마 신목비에서 얻었을 텐데, 다른 신목비에도 비슷한 신술이 적혀 있단다.”
역시 목진이 예상한 대로였다.
“기회가 되면 다른 신목비에 있는 소신술도 익히거라. 내가 너한테 준 물건이 이들의 융합을 도울 것이고 그것은 결국 너한테 큰 선물이 될 거란다.”
백발노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선배님.”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어 인사를 올렸다.
이때, 백발노인이 옥석 연꽃대를 가볍게 두드리자 그것은 빛을 발하며 구양신지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손바닥만큼 작아졌다.
잇따라 노인이 옷깃을 휘날리자 옥석 연꽃대가 목진한테 날아갔다.
드디어 목진은 구양신지를 수중에 넣었다!
“진정한 목신전의 계승은 스스로 따내야 한다.”
백발노인은 두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그립구나.”
백발노인의 눈이 빠르게 어두워지더니 다시 흐릿해졌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목진은 옥석 연꽃대를 거두고 백발노인한테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후 석대에서 물러났다.
석대에서 물러난 목진은 바로 낙리, 온청선 등에게 돌아가 히쭉 웃으며 물었다.
“다행히 물건은 취했는데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지?”
이에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냥 그래. 만약 내가 출전했으면 전우는 절대 그렇게까지 우쭐대지 못했을 거야.”
온청선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비록 목진이 전우를 쓰러뜨린 것은 제법이긴 했지만 이를 목진 앞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온청선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목진도 영력난을 건넜으면 전우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럼 너희도 해봐.”
목진이 낙리와 온청선 등을 보며 말했다. 영보산의 규칙에 따라 목진은 구양신지를 취하는 데 성공해 다시 도전할 수 없었으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었다. 영보산에는 희귀한 보물이 많아 얻을 수만 있다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온청선과 낙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영보산 제일인 구양신지가 목진의 수중에 들어갔지만 나머지도 충분히 진귀한 것들이었다.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서황 등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실패하면 감당할 후과가 엄청났다.
“실력에 맞게 선택해요. 너무 높은 곳만 아니면 분명 성공할 거예요.”
목진이 생긋 웃으며 말하자 서황 등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청선 등 여인들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데 사내로서 물러난다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한편, 목진의 승리로 영보산은 다시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은 실력에 알맞은 단계에 도전해 보물을 취할 준비를 했다.
“가봐.”
목진의 말에 낙리와 온청선은 먼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영보산 8층에 올랐다. 이들한테 남은 건 8층뿐이었다.
잇따라 빈아, 낙아와 안아도 출동했는데 전부 6층에 올랐다. 그곳 전우는 영력난을 건넌 실력자지만 이들이 상대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들보다 실력이 조금 약한 서황 등은 5층에 올랐다. 육신난을 건넌실력의 전우를 상대하는 것이 알맞았다.
낙리 등이 나서자 다른 사람들도 잇따라 영보산에 뛰어들었는데 왕종과 무영영도 8층에 올랐다.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했다.
영보산의 분위기는 다시 끓어올랐다.
이번 대결은 지난번보다 훨씬 나았다. 전우의 실력을 가늠한 후, 출전했기에 승률이 꽤 높았다. 운이 안 좋아 실수해 패배한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우를 쓰러뜨리고 영물을 얻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대부분은 화색이 되어 석대에서 물러났고 일부 소조만 분위기가 안 좋았다. 이들은 보물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조원까지 잃었으니 올해, 학원 대회는 여기서 마쳐야 했다.
낙리와 온청선도 예외 없이 보물을 취하고 돌아왔다. 이들이 상대한 전우는 실력이 막강했으나 신백난 첫 단계까지는 아니어서 목진에 비하면 아주 쉽게 승리한 편이었다.
“너흰 어떤 영물을 취했어?”
목진이 흥미진진하게 묻자 낙리가 생긋 웃으며 주먹을 쥐었는데 옥석 연꽃대 안에 붉은색 덩굴이 있었다. 적룡처럼 생긴 물건의 표면에는 미세한 비늘이 돋아나 있었고 덩굴 안에는 암장이 흐르는 것처럼 뜨거운 파동이 느껴졌다.
“이건 적룡등(赤龍藤)이야. 암장 속에서 태어났는데 녀석의 암장액은 신백을 제련하는 효과가 있어. 신백난을 성공적으로 건너도록 도와줄 거야.”
낙리가 말을 마치자 온청선이 수중의 영물을 선보였다.
“이건 빙산 설령과(冰山雪靈果)로 낙리의 적룡등과 정반대 속성인데 신백에 대한 작용은 비슷해. 신백난을 건너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물건이지.”
설령과는 백옥처럼 하얀 열매로 백설로 감싼 듯 극한의 파동을 내뿜었다.
“제법이군.”
목진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보물은 이들한테 마침 필요하고 딱 맞는 보물이었다.
잇따라 빈아, 서황 등도 무사히 도전을 통과하고 흐뭇한 얼굴로 돌아왔다. 얻은 물건이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목진은 영보산에 와서 다들 영물을 하나씩 얻었단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슉.
영보산의 치열한 싸움은 어느새 마무리되었고 왕종 등도 도전을 마치고 나왔다. 치열한 싸움을 벌였는지 몸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가자!”
왕종은 나오자마자 잔뜩 경계하면서 목진을 노려보더니 조원들과 함께 영보산을 떠났다. 그들이 얻은 수확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전우와 혈투를 벌여 상태가 안 좋은 틈을 타 목진이 나설까 봐 두려웠다. 영보산에 들어갈 기회는 한 사람당 한 번뿐이라 다른 소조의 영물을 빼앗지 않는 한 소조에서 얻을 수 있는 영물의 수는 다섯 개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목진은 왕종 등이 떠나가는 것을 보며 담담하게 웃기만 했다. 이곳에는 사람이 워낙 많은 데다 구양신지를 탐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일단 기회가 생기면 분명 달려들 텐데 구양신지 때문에라도 목진은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무영영도 무사히 빠져나왔는데 목진을 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무령원 사람들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