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장령원(藏靈院)
목진은 떠나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무영영이 싫지 않았지만 소녀는 그한테 감정이 많은 것 같았다.
“왜 그래? 떠나보내려니까 아쉬워?”
온청선이 생긋 웃으며 물었다.
“무영영의 오라버니가 누군지는 알아?”
“무영영의 오라버니면…….”
목진이 흠칫하더니 조금 놀란 듯 물었다.
“설마 무령이야?”
목진은 영로에서 무령과 상대한 적 있어 녀석이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희현 못지않은 상대로 최대한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여 목진은 무령과 몇 번 싸운 적은 있어도 희현처럼 죽고 못 사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무령이 무영영의 오라버니일 줄은 몰랐다. 만약 목진이 무영영한테 한 짓을 무영이 알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영로에서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가 전부 네 적이 되었다니, 너도 참 운이 없어.”
온청선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영로에서 가장 빛난 영관자야말로 내 최대의 상대가 아닐까?”
목진이 피식 웃더니 온청선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 말은 온청선이 낙리에 대해 품은 이상한 마음과 결승전에서 두 사람은 결국 적이 될 거란 걸 의미했다. 온청선에 대한 견제는 희현, 무령 등 영로의 최정예들 못지않았다.
“참 유감이야. 기회만 되면 난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온청선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답했다.
“그럼 이제 어떡할까?”
낙리가 두 사람의 말을 끊고 물었다.
이에 목진은 미간을 만졌는데 그곳에는 백발노인이 남긴 나무 무늬가 들어있었다. 나무 무늬에는 목신전에 관한 정보가 있었는데 그는 이미 이곳 목신전 유적지를 꿰뚫었다.
목진은 고개를 들어 끝없이 펼쳐진 푸른빛이 하늘과 아울러진 서남쪽을 바라봤다.
나무 무늬 속 정보에 의하면 서남쪽에 목신전 유적지 중 특별한 곳이 있었는데 목신전의 지존영액은 전부 그곳에 보관한다고 적혀 있었다.
원고의 세력이 남긴 지존영액은 그 누구라고 탐낼만한 것이었고 목진도 마찬가지였다.
* * *
슉.
빛줄기 열 갈래가 우거진 숲 위쪽 하늘을 지나가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들은 영보산을 떠난 목진 소조와 온청선 소조였다. 백발노인한테서 얻은 목신전 유적지에 관한 정보 덕분에 목진은 바로 조원들과 함께 중요한 보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장령원이었다.
장령원은 영보산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었다. 그 속에 목신전의 지존영액이 대량으로 들어있었고, 이는 방대한 세력에서 가장 탐내는 보물이기도 했다.
지존영액은 드넓은 대천세계에서도 한 세력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었고 지존급 강자만 제련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지존 한 명이 한 달 동안 수련해야 겨우 지존영액 한 방울이 생겨 아주 진귀했다.
삼난을 건넌 사람이 지존경에 이르려면 대량의 지존영액이 필요한데, 지존영액의 순수하고 방대한 힘만이 완벽한 탈바꿈을 마치고 지존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존경의 경지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 단계로 이 단계에 이르러야만 대천세계에서 수련할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진정한 강자로 인정받고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여 다들 지존경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수련하는데 수많은 천재가 그 직전에서 멈춰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는 천부적 재능과 방대한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그중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지존영액이었다.
그렇기에 보통 세력은 절대 지존급 강자를 키울 수 없고, 실력이 막강한 세력만이 지존을 만들어 대천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것이다.
이에 대천세계에서 일부 지존급 강자들은 지존영액을 위해 강대한 세력으로 들어가 충성을 맹세하고 수련에 필요한 자원을 얻는다.
또한, 지존 강자의 지존 법신도 엄청난 양의 지존영액을 필요로 하고 지존 법신이 강할수록 필요한 영액의 양이 더 많아진다. 지존 법신 99위권 중 99위를 수련하는 데마저 지존영액이 수천 방울이나 필요하니 다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품 지존 한 명이 수천 방울의 지존영액을 만들려면 10년은 꼬박 만들어야 하니, 지존급 강자한테는 금전만큼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목진은 목신전에서 남긴 지존영액이 장령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찾아가려 한 것이다. 그는 이미 육신난을 건넜고 지존경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지만 지존영액이 한 방울도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강력한 뒷배도 없고 어머니는 대단한 인물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갇힌 신비로운 곳에 찾아가면 강자가 되기도 전에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 천지존과 실력이 비슷한 어머니께서 자신의 곁을 떠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목진은 앞으로 나아가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결국 믿을 건 자신밖에 없었다.
낙리와 온청선도 목진의 뒤를 바짝 따랐다. 온청선은 영보산보다 지존영액이 더 끌렸다. 이 물건이 이들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목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영액을 취하고 싶었다.
이들은 속도를 더 끌어올려 장령원으로 갔다.
가는 길에 이들은 영광이 나타난 것을 적잖게 발견했는데 누군가 보물을 발견하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 목진 등은 한눈팔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지존영액에 비하면 다른 물건은 크게 끌리지 않았다.
2각 정도 지나 목진 등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한 산봉우리에 내렸다. 이들 앞쪽에는 무성한 쇠나무가 가득 자라 있었는데 가시가 잔뜩 박힌 검은색 나무는 음산한 기운을 풍겼고 어두운 보랏빛을 발하는 가시에는 독이 들어있었다.
목진은 수십 장 크기의 쇠나무를 넘어 가장 깊숙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오래된 전각이 흐릿하게나마 보였지만 가시가 잔뜩 난 쇠나무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었다.
“장령원은 쇠나무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것 같아요.”
목진이 숲속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바로 가자.”
서황 등은 바로 숲 위를 날아가려고 했다.
“잠시만요.”
그런데 목진이 갑자기 막아 나서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뭔가 이상해요.”
광활한 쇠나무 숲에서 특수한 파동이 느껴졌는데 아주 익숙한 파동이었다.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고 한참 고민하더니 장검을 소환해 영력을 불어넣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영력 장검은 쇠나무 숲의 상공으로 향했다.
슉.
장검이 쇠나무 숲에 들어가자마자 영력이 순식간에 사라져 바닥에 떨어지며 쇠나무 가시에 구멍이 뚫렸다.
서황 등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장검이 아무리 하품 영기일 뿐이라지만 영기인데 쇠가시에 바로 뚫릴 줄은 몰랐다. 그리고 영기의 영력은 갑자기 왜 사라졌단 말인가?
“뭐지?”
온청선도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때, 목진이 주위를 살피다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이곳을 살피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중 한 사람을 잡아 왔다.
“여긴 뭐야?”
목진의 질문에 청년은 바로 두 손을 들며 답했다.
“우린 그저 상황을 살피고 있었을 뿐이야. 그리고 이 구역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 일단 들어가면 체내의 영력이 사라져.”
이에 목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뭔가 알아챈 듯 중얼거렸다.
“이 구역은 금령진(禁靈陣)을 쳐서 영력이 사라지는 거였어.”
그 익숙한 파동은 영진이었다.
“금령진이라…….”
낙리가 흠칫하며 말했다.
“이 정도 영진이면 아마 목신전에서 남긴 것일 거야.”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토록 광범위한 금령진은 영진 대가 여러 명이 함께 쳐야 하는데 학원 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절대 그만큼의 실력이 없었다.
“그럼 날지 못하겠군. 영력이 사라져 추락하면 영기와 같은 꼴이 될 수도 있어.”
“우리가 들어가도 영력을 사용할 수 없어.”
온청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웅장한 영력을 지닌 그녀는 영력이 사라지면 실력의 대부분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리되면 이 구역은 영로와 비슷해지는데 영로보다 훨씬 안전했다.
“저기……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청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왜?”
“중원맹에서 이 구역을 차지했어. 그들은 인원도 많고 들어가 봐야 절대 못 이겨.”
청년이 온청선과 낙리를 힐끗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밖에서는 너희를 감히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들어가면 알 수 없는 일이야. 너희들이 오기 전에 들어간 소조가 꽤 있었는데 전부 패배했어. 중원맹에서 육신을 단련한 사람들만 골라 들어가 영력이 사라져도 실력은 강해.”
이에 목진 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황 등은 육신을 제대로 단련한 적 없어 영력이 사라지면 큰 낭패를 볼 것이 분명했다.
이곳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중원맹의 꾀에 넘어가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너흰 밖에 있어, 나 혼자 들어갈게.”
목진이 어두운 쇠나무 숲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혼자 가려고?”
목진의 말에 서황 등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원맹 사람이 많이 몰려있어 밖에서 만났다고 해도 피하는 것이 상책인데 금령진 때문에 영력의 힘까지 잃어 영력난은 물론이고 신백난을 건넌 고수라고 해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안 돼.”
낙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도 함께 가. 내 육신이 너보다 못해도 보통 사람보다는 강해.”
낙리는 목진이 영력을 봉인한 구역을 홀로 뛰어드는 것이 걱정되었다.
“나도 함께 가. 그러다 네가 지존영액을 혼자서 꿀꺽하면 우린 뭐가 돼?”
온청선이 옆에서 조용히 덧붙였다.
두 여인의 말에 목진은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낙리는 걱정되어 한 말이지만 온청선은 목진이 애써 취한 지존영액을 손쉽게 얻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온청선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데는 그만큼 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어디서든 자신만만하게 말을 내뱉는 소녀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든 두 여인은 절대 목진을 혼자 떠나보내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우리 셋이 함께 가자.”
인원수로는 많이 밀리지만 다들 보통 사람이 아니니 중원맹 사람들 몰래 쇠나무 숲을 오가는 것쯤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낙리는 목진의 생각이 바뀌자 그제야 웃음을 되찾았다.
“이곳에서 우릴 기다려요.”
목진이 한 말에 서황 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도 목진만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함께 들어갔다가 되려 짐이 될까 봐 감히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빈아, 낙아, 안아 역시 온청선의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중원맹이 도대체 무슨 수로 장령원을 독차지하려는지 어디 보죠.”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쇠나무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원맹에 호감이 없는 그는 장령원의 보물이 그들 손에 들어가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목진은 먼저 산봉우리에서 내려가 어두운 쇠나무 숲으로 다가갔는데 음산한 기운이 풍기는 것이 소름이 끼쳤지만 주저하지 않고 바로 뛰어들었다.
순간, 목진 체내의 웅장한 영력이 응고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이에 흠칫 놀란 목진은 영력을 끌어올리려고 애썼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피부 표면의 은은한 영광도 어두워졌고 한 주먹에 산을 부술 만큼 엄청난 힘마저 빠르게 사라졌다. 몸이 갑자기 허약해진 느낌은 아주 괴로웠다.
“금령진은 역시 대단해.”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때, 뒤따라 나선 낙리와 온청선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들도 체내의 영력 변화를 느낀 것이다.
이곳에서 영력은 전혀 작용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