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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31화 (330/1,000)

331화. 침입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야.”

목진이 주먹을 쥐며 고개를 돌리자 낙리가 담담하게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다. 이곳은 영로와 많이 닮았다. 그때도 이들은 영력을 사용할 수 없어 다른 방법으로 적을 물리쳐야 했다.

영로에서 목진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서인지, 낙리는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영로에서 썼던 수법을 다시 사용해야겠어.”

목진은 검은색 도포를 꺼내 낙리한테 건넸다. 주위가 어두워 검은색으로 몸을 감추는 것이 좋았다. 밖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지만 영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이곳에서는 적의 눈을 피하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느새 낙리가 검은색 도포를 입자 영롱한 몸매가 완벽하게 가려졌고 얼굴만 밖으로 드러났다.

“자.”

목진이 다른 검은색 도포를 온청선에게 건넸다.

“너무 칙칙해.”

온청선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성과 접촉하는 것을 혐오하는 그녀는 목진이 준 옷을 입으려니 고민되었다. 목진이 입었던 옷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움직이면 누구든 너를 한눈에 알아볼 거야.”

몸에 찰싹 달라붙은 황금색 갑옷을 입은 온청선의 아름다운 몸매에 눈길이 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쇠나무 숲처럼 단조로운 환경에서 금빛 찬란한 갑옷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온청선은 목진의 눈빛을 눈치채고 그를 노려보더니 바로 검은색 도포를 입었다. 그녀가 아무리 이성이 싫다고 해도 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앙탈을 부릴 사람이 아니었다.

이에 목진도 피식 웃더니 검은색 도포를 입었다. 그리고 낙리, 온청선과 함께 어두운 숲으로 들어갔다.

* * *

어두운 숲은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했고 가시 달린 쇠나무도 가득 자라고 있어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가 마치 악귀가 춤추는 것 같았다.

슉.

목진 등은 그림자 사이로 빠르게 나아갔다.

이들은 영로의 정예들로 그곳 환경은 이보다 훨씬 험악했기에 쇠나무 숲을 오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들은 그림자에 몸을 완전히 맡기고 주위를 훑다가 흠칫 놀라며 갑자기 나무 뒤로 숨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림자가 조금 일그러졌는데 그곳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이는 칼날의 광택이었다.

“여섯 명이 있어.”

목진이 조용히 말했다. 상대방은 아주 교묘하게 잘 숨었는데 검망을 거두는 것을 깜빡했다.

이에 목진이 손짓하자 낙리가 바로 오른쪽으로 달려갔다. 영로에서 목진과 호흡이 아주 잘 맞았던 낙리는 바로 소년의 손짓을 알아챘지만 온청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머리가 비상한 그녀는 바로 깨닫고 왼쪽으로 달려갔다.

잇따라 목진은 원숭이처럼 민첩하게 쇠나무 숲으로 기어올랐다.

그림자 속에 숨은 여섯 사람은 검을 꽉 쥔 채 부단히 주위를 훑었다. 보통 사람은 잠복 경험이 있는 이들을 절대 발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가장 중심에 서 있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고 손을 파르르 떨며 주위를 훑었는데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결국 긴장을 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목 주변에 한기가 느껴지더니 뒤통수에 엄청난 통증이 몰려오며 눈앞이 어두워지고 몸이 나른해졌다. 이렇게 그놈이 쓰러지려 할 때, 누군가 뒤에서 부축해 바로 세웠다.

“뭐지?”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래?”

이에 상대편에서 손을 흔들고 한쪽 손을 내밀었는데 어리둥절해서 보고만 있던 녀석은 결국 그 손에 목덜미를 잡혔다.

그 순간, 목진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목덜미를 잡힌 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소리도 내지 못하는 사내한테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목진의 한기 어린 눈빛에 화들짝 놀란 사내는 입을 꼭 닫았다. 자칫 잘못했다가 바로 죽을 수도 있었다.

목진은 그제야 미소 지으며 좌, 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자 나무가 조금씩 떨리더니 바로 안정을 되찾고 두 소녀가 달려 나왔다.

“해결했어.”

낙리가 속삭였다.

두 소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히쭉 웃으며 사색이 된 사내를 바라봤다.

“넌 중원맹 사람이지? 지금부터 중원맹에서 이곳에 파견한 인원수, 인원 배치도와 진풍, 유웅, 묵어의 위치를 알려줘.”

목진은 쇠나무가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서 목덜미를 잡고 있던 사내를 쓰러뜨리고 숲속 깊숙한 곳을 바라봤다.

사내한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묵어 등은 목신전 유적지에 들어오자마자 이곳으로 향했고 준비도 철저히 했다. 수십 소조를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단체 신결을 수련하여 육신이 일반 고수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았으니, 처음부터 이곳을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만약 쇠나무 숲이 아니라면 중원맹에서 사람을 아무리 많이 끌어모아도 전혀 두렵지 않았을 텐데 영력을 사용할 수 없는 특수한 환경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얻은 정보가 정확하다면 묵어 등은 이미 장령원에 도착했을 거야. 대신 장령원 주위에 봉인이 있어 이를 없애는 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거야.”

목진이 낙리와 온청선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들은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동원해 장령원으로 향하는 길을 전부 막고 있어. 우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그중 일부와 만나게 될 거야. 그럼 우리 셋이서 여러 명과 싸워야 할 텐데 계속 갈 거야?”

낙리와 온청선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떠나자.”

목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온청선의 성격에 포기할 리 없었고 낙리는 만사에 관심 없어 보이나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온청선 못지않았다.

이렇게 목진 등은 다시 그림자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목진 등이 떠나자 이곳은 다시 조용해졌다. 잠시 후, 쓰러진 사내의 옷 속에서 미세한 빛이 반짝이며 “위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한편, 쇠나무 숲 중심은 오래된 석전이 있는 광활한 구역으로 커다란 쇠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석전은 빈틈없이 봉해져 있었는데 외부에 난해한 무늬가 은은하게 빛을 발하며 감옥처럼 석전을 가뒀다.

현재, 석전 밖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중원맹의 삼대 우두머리인 묵어, 진풍, 유웅이 전부 함께 있었다.

묵어가 가장 앞쪽에 서서 빛의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나침반에서 빛을 발사해 석전 외부의 회색 무늬를 비추자 무늬가 조금씩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반 시진 정도면 봉인은 완전히 사라질 거야.”

진풍이 사라지는 봉인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 갑자기 정색하며 손을 휘두르자 숲속에서 미세한 빛이 날아왔다.

이건 온몸이 까맣고 손톱만큼 작지만 거울처럼 반듯하고 빛나는 신기한 벌레였다.

진풍은 인상을 찌푸리며 벌레를 보다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벌레의 거울 같은 등에서 빛을 발하다가 앞쪽에 어떤 장면을 비췄는데 바로 목진과 낙리, 온청선의 모습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진풍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곳 상황이 특수하고 중원맹에서 사람을 잔뜩 데려왔다는 것도 알 텐데 감히 뛰어들다니, 이들은 참 겁도 없어”

앞에 서 있던 묵어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한테 반 시진 정도 더 필요해.”

“걱정 마. 절대 여기까지 오게 하지 않을 거야.”

진풍은 미소를 지었으나 눈에는 한기가 가득 찼다.

“나한테 맡겨. 내가 세 사람을 제대로 혼내줄 거야. 밖에서 만나면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텐데 오늘은 하늘이 도왔어. 이곳에 들어온 이상, 저들한테 진정한 지옥의 맛을 보여주겠어.”

말을 마친 진풍은 바로 조원 수십 명을 거느리고 그곳을 떠났다.

진풍은 목진 등을 전혀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혼자 가게 둬도 돼?”

유웅이 진풍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묻자 묵어가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밖이었다면 그중 한 명을 상대하는 것조차 버거웠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까 목진 등은 진풍한테 맡기고 넌 나를 도와줘. 봉인을 없애는 데 절대 방심하면 안 돼.”

“그래.”

유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묵어는 멀리 떨어진 어두운 곳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목진 등은 진풍을 만나면 함부로 여기 뛰어든 것이 얼마나 멍청한 선택이었는지 깨달을 것이다.

* * *

세 사람은 어두운 숲의 그림자 사이를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다 목진은 다시 멈춰 섰는데 앞쪽에 서른 명도 넘는 사람들이 숨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령원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라 중원맹에서 이곳에 사람을 많이 배치한 것이다.

“몰래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아. 정면 돌파하자.”

목진이 주위를 훑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지형과 많은 인원 때문에 몰래 지나기란 불가능했다.

“알겠어.”

낙리와 온청선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도 잔뜩 긴장한 채로 몸을 조금 굽혀 사냥할 준비를 했다.

앞쪽에 난 길에 사람 수십 명이 흩어져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는데 하나같이 튼실하고 피부 표면에 자연스러운 빛이 맴돌았다. 이는 단체 신결을 수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장 앞쪽에 키가 유난히 크고 튼튼한 사내가 서서 주위를 훑었는데 무리 중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뭐지?”

갑자기 지면이 진동하는 것을 감지한 사내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어둠 속에서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

“침입자다, 체포하라!”

사내가 포효하며 발을 구르자 지면에 균열이 생겼고 그의 몸은 더 크고 튼실해졌으며 강력한 힘이 체내에서 솟구쳤다.

퍽!

육신에 대해 자신만만한 사내는 바로 상대방과 맞섰다. 중원맹에서 육신만 놓고 볼 때, 우두머리들 외에 그를 따라갈 사람은 없었다.

쿵!

그런데 사내는 상대방과 부딪치자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상대의 종잇장 같은 몸에 흉악한 영수처럼 무서운 힘이 깃들어 있었다.

주위에 나지막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내는 지면에 기다란 흔적을 남기며 멀리 튕겨 나갔고 저도 모르게 피를 토하였다.

이에 뒤에 서 있던 중원맹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사내의 육신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아는 이들은 그가 한 방에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간 것이 차마 믿기지 않았다.

목진은 사내를 보고는 육신이 꽤 단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목진에 비하면 훨씬 약했다.

“다 같이 공격하라!”

사내가 황급히 외쳤다. 눈앞에 서 있는 소년은 육신을 엄청난 단계까지 수련한 것이 분명했다.

슉!

중원맹의 조원 수십 명이 동시에 자신에게 향하자 목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뇌신체를 소환하였다. 목진의 피부 표면에 검은색 뇌광이 은은하게 번쩍였고 나지막한 뇌명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쿵!

목진은 있는 힘껏 발을 굴러 무리에 뛰어들어 주먹을 휘둘렀는데 권풍에 닿은 사람은 전부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그때 낙리와 온청선도 함께 나섰다. 두 소녀의 육신은 목진처럼 강력하지 않아도 일반 고수보다는 좋았다. 더구나 낙리의 낙신검은 신검이라 영력이 없어도 사람이 육신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1각도 안 되는 사이, 끊임없는 비명과 함께 중원맹 고수 수십 명은 전부 바닥에 드러누워 고통을 호소했다.

“영력을 사용할 수 없어서 일이 너무 귀찮아졌어!”

온청선이 이를 갈며 말했다. 밖이었다면 이들은 온청선을 가까이하기도 전에 이미 죽었을 것이다.

이에 목진이 피식 웃으며 뭔가를 말하려다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걸어 나와 이 구역을 완전히 포위하였고 진풍이 씨익 웃으며 맨 앞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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