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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33화 (332/1,000)

333화. 옥반

쿵!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은 움푹 파였다. 목진은 그대로 서 있었으나 진풍의 주위를 감쌌던 웅장한 영력은 바로 무너졌으며 한쪽 팔은 뼈마저 부서진 듯 비틀렸다.

퍽!

진풍은 멀리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기다란 흔적을 남기면서 서서히 멈춰 섰다.

그 모습에 떠들썩했던 숲속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중원맹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진풍을 바라봤다.

“내가 뭐랬어?”

낙리는 가볍게 웃으며 온청선을 바라봤다.

이에 온청선은 피범벅이 된 목진을 보고 여느 때처럼 비웃으려다 자신을 구하다 다친 것이 생각나 참았다.

떠들썩했던 숲속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살기 가득했던 중원맹 고수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났다.

정작 목진은 멀지 않은 곳에 피범벅이 된 채로 누워있는 진풍을 무덤덤하게 바라봤다.

“너…….”

진풍은 애써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영력으로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목진의 공격에 바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그가 두려웠고 그의 몸에서 갑자기 폭발한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그는 절대 영력을 사용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진풍을 바라봤다. 목진이 사용한 것은 영력이 아니라 흑신뢰의 힘이었다. 흑신뢰를 수없이 맞으며 육신을 단련한 목진의 체내에 흑신뢰가 남아 있는 것은 정상이었으나 평소에는 영력을 사용해 흑신뢰의 힘을 알아채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력을 사용할 수 없어 체내에 숨은 흑신뢰의 힘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평소였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텐데 이곳에서는 쓸모가 있었다.

그러나 흑신뢰의 힘을 모으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목진은 진풍이 자신을 공격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었고, 영력의 사용으로 진풍의 속도가 엄청나 목진은 절묘한 시기를 노려 한방에 녀석을 쓰러뜨려야 했다.

목진은 처음부터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고 진풍은 그것도 모르고 마냥 웃으며 좋아했던 것이다.

최후의 승자는 역시나 목진이었다.

“반항할 힘이 남아 있어?”

목진이 상냥하게 웃으며 묻자 진풍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는데 목진의 권풍으로 찢어진 옷에서 미세한 빛을 발하는 물건이 떨어졌다.

그것은 손바닥 정도 크기의 옥반으로 그윽한 빛을 비췄는데 진풍은 이를 보자 순간 안색이 어두워져 물건을 잡으려 하였다.

쾅!

그때 목진도 갑자기 발을 굴러 살기 가득한 얼굴로 진풍한테 다가갔다. 당장에라도 녀석을 죽일 것만 같았다.

진풍은 화들짝 놀라 바로 손을 거두고 얼마 남지 않은 영력을 끌어올려 도망갔다. 그가 도망가자 싸울 의지가 사라진 중원맹 고수들도 진풍을 따라 함께 도망갔다.

떠들썩했던 공간은 곧바로 조용해졌다.

목진은 진풍의 뒤를 쫓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옥반을 주워 자세히 관찰했다. 진풍이 이곳에서 영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왠지 이 물건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진풍이 사색이 되었을 리 없었다.

표면이 매끈한 옥반은 손바닥 크기로 안에 미세하고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특이한 파동을 발산했다.

“이건 뭐야?”

낙리와 온청선이 다가와 목진 수중의 옥반을 가리키며 물었다.

보통 사람은 옥반에 새겨진 복잡한 무늬를 절대 알아볼 수 없을 텐데 목진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옥반에 영진을 새겼어.”

잠시 사색에 잠겼던 목진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렇군.”

낙리와 온청선은 영진사가 아니라서 옥반에 영진을 새긴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런데 목진이 무언가 알아챈 듯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왜 그래?”

낙리와 온청선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때 목진이 몸을 파르르 떨자 흑과 백이 섞인 웅장한 영력이 목진의 체내에서 솟구쳤다.

“영력을 소환할 수 있어?”

목진이 가볍게 웃더니 흥미진진하게 옥반을 바라봤다.

“진풍은 옥반에 새긴 영진 덕분에 영력을 소환할 수 있었던 거였어. 내 추측이 정확하다면 옥반에 새겨진 영진은 금령진의 간섭을 막을 수 있어. 영진을 누가 그렸는지는 몰라도 중원맹에 실력이 상당한 영진사가 있는 게 분명해.”

목진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영진사는 과연 누굴까?

묵어, 진풍과 유웅은 영진에 조예가 깊어 보이지 않았는데 남은 건 중원맹의 첫째 우두머리뿐이었다.

“역시 학원 대회에는 숨은 인재가 많아.”

목진이 감개무량하여 말했다.

“너도 영진사라고 하지 않았어? 그럼 너도 이런 영진을 그릴 수 있어?”

온청선이 물었다. 영력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그녀한테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만약 영력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일전에 목진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에 목진은 옥반에 새겨진 복잡한 영진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 영진이 교묘하긴 하지만 어려운 건 아니야. 진도만 파악하면 치는 것은 간단해. 그리고 영진이 완벽하지 않아서 진풍이 금령진을 완벽히 막지 못한 것 같아.”

“그럼 넌 이 영진을 보완할 수 있어?”

온청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목진이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그는 영진에 관해서라면 자신 있었다. 목진의 어머니가 대종사급 인물로 대천세계에서 최정예에 속하는데 그 아들인 목진이 평범할 리 없었다.

“진풍이 좋은 선물을 주고 갔네. 우리가 이대로 장령원에 찾아갔다가는 큰 어려움을 겪을 뻔했어.”

낙리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진풍에게 이런 물건이 있을 줄 몰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최대한 대가를 적게 치르는 것이 나았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옥반을 쥐고 자리에 앉았다.

“나한테 시간을 좀 줘.”

말을 마친 목진은 눈을 감고 마음속에 교묘하고 복잡한 진도를 빠르게 그려나갔고, 낙리는 그 옆에 앉아 물끄러미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온청선은 그런 낙리를 쳐다봤다.

온청선은 목진보다 낙리가 훨씬 좋았다. 비록 목진이 자신을 구했지만 낙리의 자리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낙리야…….”

온청선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낙리가 온청선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낙신족 사람이지? 곧 낙신족 차기 여황이 될 거지?”

온청선이 낙리의 얼굴을 쳐다보며 묻자 소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멍하니 목진을 바라봤다. 이번에 낙신족에 돌아가면 또 언제 목진을 볼 수 있을까? 그때 목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낙신족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다며?”

온청선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아는 눈치였다.

“아마 낙신족 역사상 가장 쇠약한 때일 거야. 그런데 괜찮아, 내가 애써볼 거야.”

낙리의 대답에 청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대서천계의 서천전황(西天戰皇)이라고 들어봤어?”

낙리는 순간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온청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경의 무조, 무한의 화역의 염제 등 대천세계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서천전황을 모를 리가 있을까…….”

“서천전황이 낙신족을 지켜줄 거라고 하던데…….”

온청선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신 내가 대서천계에 가야 하겠지.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말해준 적 있어. 그런데 난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비굴하게 살아남을 바에 낙신족을 멸망시키려는 자와 함께 죽을 거라고 말했어. 대신 그전까지 최선을 다해 낙신족을 살려볼 거야. 전황의 명성이 자자하고 나를 왜 대서천계로 부르는지는 몰라도 난 전혀 가고 싶지 않아.”

“왜?”

“누군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거든. 언젠가 절세의 강자가 될 거라고, 그래서 난 그를 기다릴 거야.”

낙리가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 소년을 보며 생긋 웃자 온청선도 자연스레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소년의 포부가 참 원대했다.

“이 일은 목진한테 비밀로 해줬으면 해.”

낙리의 말에 온청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천전황은 대천세계에서 엄청난 인물인 데다 낙신족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낙리는 목진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온청선은 엄청난 실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낙리가 주저하지 않고 목진을 선택한 것이 조금 질투가 났다. 목진은 참 복 받은 소년이었다.

목진은 두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강력한 영력으로 옥반을 감쌌는데 복잡한 무늬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영진을 완성해갔다.

그는 영진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 심안을 연 상태에서 옥반에 새겨진 영진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 결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이렇게 1각 정도 지나자 목진은 서서히 눈을 뜨고 전보다 밝아진 옥반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된 거야?”

옆에 있던 낙리와 온청선이 바로 다가와 묻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낙리한테 물건을 건넸다.

“금령진을 완벽히 차단했어. 이것만 있으면 우리도 여기서 마음껏 영력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옥반을 건네받은 낙리가 이내 화색이 되어 말했다.

“두 개 더 만들 수 있어?”

온청선이 황급히 물었다. 영력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당연하지. 그런데 급하게 만들면 효과가 안 좋을 수밖에 없어.”

“괜찮아. 영력만 사용할 수 있으면 나한테 안 당할 사람은 거의 없어.”

온청선의 말에 한기가 깃들었다. 진풍이 한 짓 때문에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다.

이에 목진은 피식 웃었다. 온청선을 건드렸으니 진풍 등은 이제 큰코다치게 생겼다.

잇따라 목진은 두 눈을 감고 영력을 끌어올려 다른 두 옥반을 보완하였다.

다시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목진이 눈을 떴다. 그는 낙리와 온청선한테 옥반을 건네주며 말했다.

“급하게 만들어서 처음처럼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했는데 영력의 7할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충분해.”

온청선이 옥반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그럼 빨리 장령원에 가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나한테 맡겨.”

말을 마친 온청선은 목진이 답을 하기도 전에 바로 떠났다.

영력을 사용할 수 없을 때와는 완전히 천지 차이였는데 그 엄청난 속도에 목진은 흠칫 놀라더니 히쭉 웃으며 낙리와 함께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묵어는 초라한 차림새로 돌아온 진풍 등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목진한테 졌어.”

진풍이 입가의 피를 닦으며 사색이 되어 말했다.

“영력을 사용할 수 없는 데도 상대가 안 된단 말이야?”

묵어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녀석의 육신은 아주 강했고 체내에 영력을 제외한 다른 힘이 있는 것 같았어.”

진풍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녀석이 내 호령옥반(護靈玉盤)을 뺏어갔어.”

“뭐?”

옆에 서 있던 유웅과 묵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목진, 온청선 등을 만나도 전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영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풍이 호령옥반을 잃어버렸으니 이건 엄청난 일이었다.

“이제 어떡해?”

유웅이 묵어한테 물었다.

“목진은 지금쯤 이곳을 향하고 있을 거야.”

“괜찮아.”

잠시 눈빛이 흔들리던 묵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네 호령옥반은 시간이 촉박해서 영력의 5할밖에 되돌릴 수 없잖아. 그러니까 목진 등한테 빼앗겼어도 두려워할 거 없어. 그리고 봉인도 곧 사라질 거야. 큰형님 말대로만 하면 여기 영진을 조종해서 목진 등을 물리칠 수 있어.”

묵어의 말에 유웅과 진풍은 조금이나마 시름을 놓았다.

“사람들을 전부 여기 모이라고 해.”

말을 마친 묵어는 수중의 광반을 조종해 장령원 외부의 봉인을 계속 비췄고, 진풍과 유웅은 사람들을 전부 한곳에 모아 잔뜩 경계하며 어두운 숲을 바라봤다.

그 구역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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