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수집
끼익.
묵직한 대문이 천천히 열리자 원고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얼른 들어가자.”
장령원 대문을 쳐다보던 목진은 낙리와 온청선을 보며 방긋 웃더니 바로 대문 앞에 섰는데 그윽한 원고의 향기에 마치 과거의 원고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문은 어느새 완전히 열렸고 안에서 푸른빛을 발했는데 그 속에 엄청난 생기가 깃들어 있었다.
목진은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고 아무런 이상이 없자 마음 편히 앞으로 나아갔다. 낙리와 온청선도 영력을 끌어올린 채 목진의 뒤를 따랐다. 두 소녀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경계하였다.
대문을 지나자 푸른빛을 비추는 복도가 나왔다. 복도의 길이가 짧아 얼마 되지 않아 어느새 복도 끝자락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공에 푸른색 늪이 떠 있었는데 그윽한 생기와 무서운 영력 파동이 동시에 느껴졌다.
늪에서 갑자기 “퐁당”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푸른색 물고기가 뛰어올라 공기 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목진 등은 그윽한 푸른빛을 비추는 물고기에게서 아주 순수하고 강력한 영력 파동을 느꼈다.
“지존영액은 어디 있지?”
목진은 푸른색 늪을 멍하니 바라보다 흠칫하며 말했다.
“설마 늪에 있는 것이 전부 지존영액이란 말인가?”
목진의 말대로라면 지존영액이 도대체 얼마나 들어있단 말인가?
“꿈 깨.”
온청선이 목진을 흘겨보더니 공기를 누비며 다니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이야말로 지존영액이야.”
이에 목진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비록 지존영액을 처음 보긴 했지만 여태껏 액체라고 생각했었다. 물고기 모양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지존영액은 지존급 강자만 만들 수 있고 그 속에 깃든 영력은 순수하고 미약한 지혜를 갖춰. 이것도 영액을 만든 사람의 힘에 따라 다른데 질 좋은 지존영액은 일정한 물체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존영액의 질이 좋을수록 변환한 물체의 체적이 커지는데 내가 봤던 지존영액은 천지존께서 한 해 동안 만든 것으로 변환한 물체는 이곳 장령원보다도 컸어.”
목진은 이내 혀를 끌끌 찼다. 지존경은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 대천세계에서 지존경 이하는 취급조차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 지존영액은 수집하기가 쉽지 않아.”
온청선이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많이 어려워?”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장령원에 들어와서 손을 휘익 저으면 지존영액이 네 것이 될 줄 알았어?”
온청선은 무식한 목진을 사정없이 혼냈다.
“지존영액은 지혜가 있기도 하지만 강한 힘도 있어. 이 힘은 스스로 폭발하지는 않아도 본능적으로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려 하지. 그래서 지존영액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 거야.”
“역시 지존영액은 남다르네.”
목진은 이내 감탄하더니 흥미진진해진 얼굴로 바라봤다.
“내가 한번 해볼게!”
목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앞으로 나아갔다.
위잉.
느긋하게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화들짝 놀라 도망갔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 목진마저도 푸른빛이 휙 지나가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속도가 엄청 빨라.”
목진은 곧바로 용등술을 소환하였고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영력의 손을 만들어 푸른색 그림자를 낚아챘다.
쿵! 쿵!
목진한테 잡힌 물고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자 영력의 손이 파르르 떨다가 곧 부서질 것 같았다.
“힘도 엄청나.”
목진은 드디어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그제야 지존영액을 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만약 목진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았더라면 이미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목진은 부단히 흑, 백이 섞인 영력을 영력의 손에 불어넣었다.
그러다 1각 정도 지나 물고기가 점차 조용해지자 영력의 손을 철수했는데 푸른색 물고기가 어느새 맑고 영롱한 푸른색 액체 한 방울이 되었다.
자그마한 푸른색 액체에 전 세계가 들어있는 것처럼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때, 목진이 손을 내밀자 지존영액이 손에 들어왔는데 그 속에 깃든 무서운 영력은 온몸의 영력을 한데 모은 것보다 더했다. 다만, 지존영액의 영력은 공격성이 없고 순수하며 일정한 지혜까지 있어 신기할 뿐이었다.
“이것이 지존영액이란 말인가…….”
목진이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목진도 언젠가 그 경지에 이르리라 마음먹었다.
“어때?”
온청선이 다가와 생긋 웃으며 물었다.
“어렵긴 해.”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는 대전에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지존영액이 이렇게 많은데도 우리가 다 취할 수 없겠네…….”
“능력껏 해.”
낙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도 지존영액의 가치를 잘 알지만 집착하지 않았다. 집착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지존영액을 얼마 취하는지는 각자 능력에 달렸겠지?”
목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내 상대가 아니야.”
온청선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과연 그럴까?”
“겨뤄볼래?”
온청선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만약 네가 지면 앞으로 학원 대회에서 낙리와 신체 접촉 금지야.”
소녀의 이상한 요구에 목진과 낙리는 흠칫하였다.
“두 사람의 대결에 왜 나까지 끌어들이는 거야?”
낙리가 투덜댔다.
“내가 이기면 어떡할 거야?”
목진이 피식 웃으며 묻고는 온청선을 쓰윽 훑었다.
그런데 소년의 눈빛에도 온청선은 화내지 않고 씨익 웃으며 다가가 목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땐 네 마음대로 해. 내가 마음에 든다면 너와 한 침대에서 잘 수도 있어.”
이에 온청선을 흘겨보던 목진은 낙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낙리가 너보다 훨씬 예쁜데 내가 왜 너하고 그럴까?”
“죽을래!”
온청선은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목진의 어깨를 내리쳤다.
“하하하.”
목진은 호탕하게 웃으며 뒤로 신속하게 물러나더니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며 말했다.
“단순히 이기고 싶은 거면 상대해줄게. 너와 진짜로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날 절대 못 이길 거야.”
말을 마친 목진은 바로 허공에 내려앉아 흑, 백이 섞인 영력을 끌어올렸다.
“흥, 네가 무슨 수로 날 이기는지 두고 볼 거야!”
자존심이 강한 온청선은 매사에 목진과 비교하곤 했는데 소년의 말에 참고 있을 리 없었다. 소녀가 바로 허공에 뛰어올라 합장하자 주위에 눈부신 황금빛이 퍼졌다.
지존영액을 모으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던 낙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 앉아 낙신검을 무릎 위에 놓자 검의가 스며져 나왔다. 낙리도 드디어 지존영액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대전에 웅장하고 순수한 영력 파동이 일어 공간이 일그러질 것 같았다.
목진과 낙리, 온청선은 각자 다른 방향에 앉아 체내의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지존영액을 수집했다.
목진은 첫 시도 끝에 지존영액의 위력을 알게 됐다. 만약 지존영액이 공격성이 있었으면 목진은 절대 상대가 안 됐을 것이다.
이는 지존급 강자가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든 영물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목진은 천천히 백기를 내뿜으며 정색하더니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흑, 백이 섞인 영력이 흑백 영광 거수로 변해 빠르게 푸른색 물고기를 포획했다.
위잉.
목진은 물고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온청선이 있는 곳에서 봉황의 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봉황은 황금빛을 번쩍이며 우아하게 날개를 퍼덕거렸고 온청선은 봉황 위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잠시 후, 황금색 봉황이 갑자기 황금색 깃털을 발사하더니 십수 개의 작은 황금 봉황으로 변해 푸른색 물고기를 잡아 꿀꺽 삼키고 다시 깃털로 변해 봉황의 몸으로 돌아왔다. 잇따라 황금색 봉황은 눈부신 금광을 발하다가 서서히 빛이 사라졌고 어느새 지존영액 열 방울이 그녀의 수중에 나타났다.
온청선은 이토록 짧은 시간에 지존영액을 열 방울이나 수집했는데, 이는 목진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온청선은 흐뭇하게 자신이 수집한 지존영액을 보고는 목진을 힐끗 쳐다봤다. 목진이 아무리 빨라도 황금색 봉황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 모습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도 온청선의 수단에 조금 놀랐고 황금색 봉황에서 특수한 파동을 읽었는데 이는 익숙한 파동이었다.
위잉!
그때 맑은 검음이 들려 목진이 고개를 돌리자 낙리 주위에 예리한 검의가 스며져 나오며 무서운 파동이 퍼졌다.
위잉.
검음이 점차 급박해지더니 낙신검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검하를 이뤄 내리꽂자 한순간에 지존영액을 열 방울도 넘게 낚아챘다.
검하가 삼킨 지존영액은 낙리의 주위를 맴돌았는데 검광이 반항하는 지존영액을 제압하고 있었다. 낙신검은 역시 진정한 신기였다. 그것은 목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목진은 낙신검이 진정한 위력을 선보인 것을 본 적은 없지만 대서미마주의 봉인을 완전히 없애야만 겨우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낙리는 낙신검의 힘을 빌려 2각도 안 되는 사이에 지존영액 열 방울을 취하고 목진을 바라보며 생긋 웃더니 온청선을 가리키며 입 모양을 만들었다.
“절대 청선한테 지지 마.”
이에 목진은 어이없다는 듯 소녀를 노려봤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두 소녀보다 훨씬 뒤처질 것은 분명했고 온청선이 또 어떻게 놀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 옷깃을 휘날려 영력으로 만든 커다란 손을 없앴다. 이렇게 지존영액을 취하는 방법은 너무 비효율적이라 온청선과 낙리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때, 목진이 두 눈을 감으며 결인하자 주위의 영력 파동이 완만해졌다.
목진의 이러한 변화에 온청선과 낙리도 지존영액을 수집하며 소년을 힐끗거렸는데 소년의 피부 표면에 갑자기 흑광이 나타나더니 점차 짙어지면서 뒤에 탑 모양의 물체가 생겨났다.
흑광은 실체나 다름없는 검은색 부도탑을 만들어 냈는데 탑신에 오묘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층마다 수놓은 용이 포효하며 탑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목진 주위에 맴돌던 지존영액들은 목진이 풍기는 특이한 위압감에 황급히 도망갔다.
“저건 뭐지…….”
온청선은 목진이 부도탑을 소환하는 것을 처음 봤는데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
낙리도 부도탑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날, 북창대륙 성령산 밖에서 목진의 어머니가 똑같은 부도탑으로 황룡지존과 그의 지존 법신을 녹여버렸는데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비록 목진의 부도탑은 그 어머니의 것보다 못하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목진 뒤에 떠 있는 부도탑은 흑광을 내뿜었는데 이에 닿은 물고기는 맥없이 부도탑으로 빨려 들어갔고 오래된 금룡이 탑에서 내려와 황금빛 화염을 뿜으며 푸른색 물고기에 맞섰다.
황금빛 화염에는 아주 무서운 힘이 깃들었는데 푸른색 물고기가 금세 저항을 포기하자 지존영액 열 방울이 바로 부도탑에 나타났다.
목진은 지존영액을 수중에 넣고 흐뭇하게 웃었다. 완전한 대부도결을 수련한 뒤로 부도탑이 더 강력해졌다. 목진은 이를 사람들 앞에서 거의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주 강력한 무기인 것만은 확실했다.
지존영액을 거둔 목진이 온청선을 힐끗 봤는데 그녀도 목진의 속도에 놀란 것 같았다.
“흥.”
그러다 목진과 눈을 마주치자 온청선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휙 돌리고 황금색 봉황으로 지존영액을 수집하는 데 집중했다.
목진은 오만한 소녀의 기를 꺾었단 생각에 피식 웃고는 낙리한테 눈을 깜빡였다.
“여인을 괴롭힐 줄밖에 몰라.”
낙리는 피식 웃으며 목진을 흘겨보고는 다시 집중해 지존영액을 수집했다.
잇따라 목진도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곳은 다시 오기도 힘들고, 대천세계에서 지존영액이 많다 한들 목진 등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러니 기회가 될 때, 지존영액을 한 방울이라도 더 수집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게다가 지존경에 이르려면 지존영액이 많이 필요했다.
쿠쿵!
목진이 완전히 마음을 가라앉히자 뒤에 있던 부도탑에서 흑광을 방출해 주위에 있는 물고기를 모조리 흡수했다.
오래된 대전에는 영력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고 황금색 봉황, 검하, 흑탑이 각자 한쪽을 차지하여 지존영액을 계속 수집하였다.
이번 장령원 행에서 이들 셋의 수확이 가장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