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소탕 작전
엄청난 전쟁을 치른 산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결이 끝나자 사람들은 서서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목진은 산봉우리에 서서 점차 한산해지는 하늘을 바라보고는 뒤돌아섰다.
그곳에는 만봉령원의 세 소조가 한 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들의 모습에 서황 등은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실력이 이렇게 많이 늘다니, 대단한걸.”
화끈한 몸매를 가진 소녀가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목진 등이 학원 대회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만났던 당미아였다.
처음 만났을 때, 목진은 통천경 후기밖에 안 됐었는데 지금은 영력난을 건넌 데다 신백난 첫 단계의 고수마저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미아 언니, 전에 목진과 만난 적이 있어요?”
온청선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당미아는 목진과 아는 사이란 걸 말한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녀석이 언니를 괴롭히지는 않았죠?”
온청선이 목진을 흘겨보며 물었다. 이에 목진이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지만 소녀는 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
“낙리가 있는데 감히 그럴 수 있을까?”
당미아가 꺄르륵 웃으며 답하자 낙리는 피식 웃더니 목진을 쓰윽 흘겨봤다.
목진은 세 여인을 상대하는 것보다 막수 등과 싸우는 게 훨씬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이 답답해하는 모습에 여인들은 미소를 지었다.
“여인들한테 인기가 꽤 있는데? 혹시 만봉령원에서 가장 오만하고 아름다운 봉황을 탐내는 건 아니지?”
당미아가 조용히 목진한테 다가가 물었다.
“아마 쉽지 않을 거야. 청선은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쉽게 넘어가지 않아.”
목진은 순간 낙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온청선을 힐끗 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농담하지 마세요. 전 그런 생각 한적 한 번도 없어요.”
목진은 온청선이 자기가 아니라 낙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오히려 경계해야 했다.
“내 불쌍한 동생 천아는 만봉령원에서 매일 누군가만 생각하는데 그 누군가는 꽃밭에 빠져 편안하기 그지없구나.”
당미아가 목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
자신을 여동생의 마음을 짓밟고 천하의 몹쓸 짓을 한 나쁜 놈 취급하는 당미아의 눈빛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일은 해명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계획이 뭐야?”
이때, 온청선이 마침 낙리와 함께 다가왔다.
수많은 소조 중에서 결승전에 설 수 있는 것은 오직 8개 소조뿐이었다. 이제 순위권에 들기 위해서 소조 사이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희현이 막수 등을 보낸 것은 너한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인데 바로 찾아갈 거야?”
온청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희현은 술수를 참 잘 쓰는 사람이야. 현재 16위권 안에 그의 동맹이 꽤 있어.”
“그래?”
목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온청선을 바라봤다.
“일전에 찾아온 막수 등은 희현에게 빚진 것이 있었을 뿐이지만 이 또한 그 녀석이 계획한 일일 거야.”
목진은 온청선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희현이라면 이런 일을 하고도 남았다. 막수 등은 그저 이용당한 것 뿐이었다.
“그럼 희현과 손을 잡은 소조는 누가 있어?”
“10위인 여천(呂天)이 있어. 그는 천령원 출신으로 정예 학원 중 하나인데 유적 대륙에서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고 들었어.”
온청선이 목진을 힐끗 보며 물었다.
“혹시 골종(骨宗)이라고 알아?”
이에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골종은 원고 시기, 유적 대륙의 정예 세력으로 목신전 못지않아.”
옆에 서 있던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목진은 이내 어깨를 들썩였다. 온청선과 낙리는 성장 환경이 예사롭지 않아 목진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역시 낙리는 똑똑해.”
온청선이 생긋 웃으며 낙리를 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천령원의 여천이 바로 골종의 계승을 받았어. 그리고 8위인 만수령원(萬獸靈院) 출신 왕장(王將)은 마악전(魔鱷殿)의 계승을 받았고. 마악전도 원고 시기, 유적 대륙의 정예 세력이라 녀석들의 현재 실력이 상당해.”
이에 목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운이 좋은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 희현과 손을 잡았다는 말이야?”
목진은 희현이 자신을 상대하려고 참 애를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희현과 한배를 탄 사람 중 호락호락한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천과 왕장은 학원 대회에서 명성이 자자해. 그런데 그보다 더 엄청난 인물이 있어.”
온청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했다. 여천과 왕장도 각각 10위와 8위인데 이보다 더 엄청나다면 과연 누구일까?
“청천령원의 유청운으로 그는 풍령족의 천재야. 올해 청천령원에서 학원 대회를 위해 일부러 풍령족에서 사람을 구했대.”
온청선이 정색하며 말했다.
“유청운이라…….”
목진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희현이 같은 오대원 출신인 유청운까지 끌어들일 줄은 몰랐다.
유청운은 8위권에 들고도 남을 실력자로 희현과 손을 잡았으니 온청선과 협력하기로 한 목진 등에 못지않았다.
“평소에는 비록 따로 활동하지만 일단 누군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면 바로 연합해 적을 물리칠 거야. 내 생각에 저들은 결국 합심해서 널 공격할 거야.”
온청선이 나지막하게 말했고, 희현의 속내가 훤히 보였다.
“대단한 계획이야.”
목진은 몇 년 사이, 희현이 이런 방면의 수단에 더 능수능란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네가 당장 희현을 찾아가지 않았으면 해. 너한테 크게 좋을 게 없거든.”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도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희현의 동맹을 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이야?”
설명을 마친 온청선이 다시 한번 물었다.
이에 목진은 히쭉 웃더니 원패를 꺼내 손으로 위에 번쩍이는 이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생각해둔 건 없어. 그런데 희현이 나를 상대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과 손을 잡았다는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그럼?”
“다들 각자 점수 따기에 열중하고 있을 때…….”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온청선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녀석들을 다 제거해야지!”
온청선은 순간 흥미진진해져 목진을 바라봤는데 소년은 꼭 사냥을 시작하려는 사자 같았다.
“함께 점수 따러 갈래?”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묻자 온청선은 입을 삐쭉 내밀며 답했다.
“공격수가 필요하면 그렇다고 말해. 그렇게 돌려 말하면 뭐가 달라져?”
“각자 원하는 걸 얻어가는 것뿐이지.”
목진이 히쭉 웃으며 답했다.
이에 온청선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 진 빚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돕는 것으로 갚을게. 그리고 나도 희현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의 반대편에 서는 일이라면 다 좋아.”
온청선의 대답에 목진은 생긋 웃으며 느릿하게 기지개를 켜고 떠날 준비를 했다.
희현이 먼저 손을 썼으니 목진도 더는 봐줄 필요가 없었다.
그는 희현이 어렵게 구한 동맹을 전부 처리해 버리리라 다짐했다!
유적 대륙의 중심 구역인 서남쪽은 적황색을 띤 광활한 사막으로 무서운 광풍이 휘몰아쳐 황사가 하늘 끝까지 뻗어 있었다.
그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막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전 때문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싸움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사람들은 체내의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기의 회오리를 앞쪽 대지에 사정없이 쐈다.
쿵! 쿵!
이에 대지는 격렬하게 진동하며 커다란 균열이 일었고 황사 속 사람들은 공격을 피하느라 바빴다.
수비하는 쪽에는 사람이 백 명 정도 있었고 상대편 인원수는 몇 배 더 많았다.
그것은 대규모 토벌전이었다.
학원 대회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자 소조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규모가 방대한 연합 세력이 그보다 작은 세력을 토벌해 점수를 따내려는 것이었다.
사막의 광풍은 바로 이들이 치열하게 싸우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한편, 황사가 깃든 광풍이 휘몰아치는 곳에 회백색 도포를 입은 누군가가 가장 앞쪽에 서 있었는데 야윈 얼굴에 피부는 괴이하게 회백색을 띠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었고 그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히쭉 웃으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토벌전을 재미 삼아 즐기는 유희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바로 천령원 출신, 학원 대회 10위였다.
“조장, 저들이 녀석들을 쓰러뜨리면 우리는 아마 9위에 오를 수 있을 거야.”
그중 한 청년이 회백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회백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조장 여천으로 학원 대회에서 유명인사였다.
이에 여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있는 다른 이들을 봤는데 주위를 맴도는 강력한 영력 파동으로 보아 실력이 다들 신백난 첫 단계에 이른 듯했다.
그들은 그와 협력 관계지만 여기서 여천의 말이 가장 무게가 있어 다른 조장들은 모두 그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이 점수 중 대부분은 일단 우리가 가져갈게, 8위권을 다투고 있는 중요한 시기라 양해 부탁해.”
여천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다른 조장들은 애써 웃기만 했다. 여천처럼 막강한 상대와 손을 잡아 짧은 시간에 점수를 많이 벌긴 했지만 토벌할 때마다 가장 힘들고 피해도 많이 봤다.
비록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중상을 입은 조원이 적잖게 생겼다. 학원 대회가 마지막 단계라 이들이 완전히 회복하려면 대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더구나 힘은 다른 소조가 가장 많이 쓰는데 점수 중 절반은 여천이 가져가고 나머지 절반만을 나누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천의 실력을 잘 알고 있어 감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여천의 손을 놓으면 아마도 자신들이 토벌당하고 있는 사람들 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여천이 싫어도 참아야만 했다.
여천은 안색이 썩 좋지 않은 조장들을 힐끗 보더니 황사가 휘몰아치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애(周崖), 얼추 된 것 같으니까 반격이 가장 심한 사람을 해결해.”
“알겠어, 조장.”
뒤에 서 있던 한 청년이 씨익 웃더니 이내 정색하며 아래쪽을 바라봤다. 그중 한 소조는 이들의 공격을 전부 막아냈고 그 조장도 신백난 첫 단계에 이른 실력자인 것 같았다.
이에 주야는 바로 그쪽으로 향했는데 상대편 조원들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한데 모였다.
“조장, 이제 어떡해?”
조원들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들의 조장은 튼실하게 생긴 사내로 얼굴이 왠지 낯익었다. 만약 목진이 있었으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는 목진이 학원 대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났던 황령원 소조의 조장 임주였다.
목진은 목신전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임주 등한테서 얻었고 이들과 함께 목신전 지부에 들어갔었지만, 그 후로는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들의 실력도 부쩍 늘었고 다행히 중심 구역에 왔다.
임주는 주애를 잔뜩 경계하였다. 비록 같은 신백난 첫 단계였지만 금방 신백난을 건넌 임주와 달리 주애의 실력은 곧 두 번째 단계에 이르기 전이라 전혀 상대가 안 되었다.
위쪽에 더 강한 사람들이 이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특히 천령원의 조장 여천은 너무 무서운 상대였다.
“얼른 원패를 내놔. 우린 점수만 필요해. 다치게 할 마음이 없지만 계속 버틴다면 나라도 별수 없어.”
주애가 손을 내밀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우리가 어렵게 얻은 점수를 이렇게 내주면 조원들한테는 뭐라고 말해!”
임주는 결국 이를 악물고 거절했다. 여태껏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점수를 잃으면 지금껏 했던 노력이 수포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쿵!
이에 안색이 확 어두워진 주애는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더니 귀신같이 임주 앞에 나타났다.
“조원들한테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면 내가 알려주지.”
주애는 씨익 웃으며 손을 휘둘렀는데 백광을 발하는 손바닥에서 백골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