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폭풍전야
10위였던 여천이 갑자기 순위권에서 사라지자 중심 구역은 떠들썩해졌다. 그는 상당한 실력자라 이렇게 빨리 누군가의 손에 패배할 줄 몰랐지만 학원 대회에는 숨은 실력자가 많았다.
그때 한 산봉우리에 서 있던 희현이 원패를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천이 싸움에서 졌군.”
이에 뒤에 서 있던 모풍이 물었다.
“혹시 누군가 우리를 노리고 일부러 녀석을 쓰러뜨린 건 아닐까?”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순위권에서 빨리도 물러났네.”
희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에서 순위가 변하는 것은 더없이 정상이었다.
하여 모풍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두 사람은 여천 사건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하루 만에 바뀌었다.
희현처럼 감정을 잘 숨기는 사람도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튿날, 드넓은 중심 구역에 다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마악전의 계승을 받은 만수령원 왕장이 이끈 소조도 패배했는데 그 상대가 바로 목진이라는 것이었다.
모풍과 안색이 어두워진 희현은 이제야 목진이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음을 알아챘다.
학원 대회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자 강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났고 순위권도 계속 바뀌어 실력이 막강한 소조 몇몇만 제외하고 다른 소조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은 갑자기 실력이 막강한 소조가 나타나 자신을 꺾고 점수를 빼앗아 자리를 차지할까 봐 무서웠다.
그런데도 10위였던 여천과 8위였던 왕장이 순위권에서 물러난 사건은 학원 대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두 소조를 쓰러뜨린 소조가 모두 목진이 이끈 북창령원 소조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천과 왕장은 희현과 협력 관계로 목진은 그와 관계를 맺은 소조만 찾아다니고 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학원 대회에서 명성이 자자한 희현은 영로에서도 유명했었다. 대부분의 소조는 희현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그들이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디딤돌이 되었고, 감히 그들한테 도전장을 내밀만 한 소조는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이에 목진이 희현을 상대하려 한다고 하자 깜짝 놀란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희현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는데 여천과 왕장 사건 이후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꼭 목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늘 상대한테 배로 갚아주던 희현의 예상 밖의 반응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이는 전혀 희현답지 않은 처사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뭐라 하든 희현은 조용히 점수를 따며 1위를 확고히 하는 데만 집중했다.
얼마 후, 또 주의를 기울일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16위권에 새로운 소조가 나타났는데 보통은 조금 놀라다가 흥미를 잃곤 했지만 이번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의 등장과 출신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생각했다.
그 소조는 바로 북창령원의 또 다른 소조로 조장은 심창생이었다. 이들까지 더하면 북창령원에서 파견한 두 소조는 전부 16권 안에 들었다.
왕장 등을 쓰러뜨린 뒤, 목진이 이끄는 소조는 어느새 10위로 올라섰다.
* * *
“희현이 잘도 참네.”
목진은 한 산봉우리에 서서 앞쪽 작은 마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은 무역진으로 인기가 상당해 사람들이 부단히 드나들었고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
“희현은 왜 우리를 치러 오지 않는 걸까? 우리도 이제 16위권에 들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서황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는 희현이 찾아올까 봐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씩씩거리며 찾아와야 할 희현은 꿈쩍도 안 했다.
“희현도 경계하고 있어서 그래요.”
낙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희 조장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지 마.”
온청선도 히쭉 웃으며 말했다.
“영로에서 목진과 희현은 오래된 상대였고 희현은 전혀 우세를 차지하지 못했어.”
이에 서황 등은 어색하게 웃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희현이 유명해질수록 그 무서운 실력을 실감하였고 보통 존재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토록 엄청난 사람이 목진을 상대로 전혀 우세를 차지하지 못했었다는 것이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건 목진도 희현 못지않게 능력과 수단이 뛰어나다는 말이었다.
“목진이 북창령원에 들어와서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군. 엄청난 인물이었어.”
조청삼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북창령원에 있을 때, 그는 자기가 선배란 이유만으로 목진을 꺼렸는데 이쯤 되니 진심으로 소년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칭찬은 그만 해요.”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희현이 아직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 셋 때문이에요.”
목진은 자신과 낙리, 온청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긴 아름다운 두 소녀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영로에서 희현은 낙리 때문에 영관자가 될 기회를 놓쳤고 온청선은 무려 영관자가 되었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온청선은 희현 못지않게 유명해 대부분은 그녀야말로 희현과 상대할만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낙리 역시 진정한 실력은 목진도 잘 몰랐다. 목진이 물어보면 소녀는 늘 웃기만 했다.
실력이 어마어마한 두 여인을 곁에 둔 이상, 희현이 아무리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도 함부로 나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희현이 일단 목진 등과 싸우면 엄청난 전쟁이 일어날 텐데 결과가 어떻게 되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에 학원 대회에 다른 강자들도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절대 주위에 얼씬 거리지 못할 소조들도 희현이 목진과 싸워 크게 다치면 분명 혈안이 되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아무리 목진이 여천, 왕장 등을 쓰러트려도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역시 희현은 인내심이 엄청났다.
이에 서황 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나마 학원 대회의 최강 소조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요.”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희현은 절대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거예요. 아직 절대적인 승산이 없어 가만히 있는 것뿐이에요. 희현은 아주 신중한 사람이라 일단 나서면 분명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진은 고개를 들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봤다.
“지금은 폭풍전야일 뿐이에요. 일단 희현이 나서면 엄청난 피바람이 불 거예요.”
목진의 무덤덤한 말투에서 서황 등은 엄청난 한기를 느꼈다.
“우리한테는 너희 셋이 있으니까 정말 희현이 찾아온다고 해도 무서울 게 없어.”
서황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원패를 보며 히쭉 웃었다.
“심창생 등도 순위권에 들었네? 역시 대단해.”
이에 목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창생 등이 16위권에 들었다는 것은 실력이 폭등하였음을 의미했다. 그들도 유적 대륙에서 엄청난 기회를 잡았단 생각에 목진은 기분이 좋았다.
“안 본 지 꽤 됐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심창생, 이현통, 소훤 등이 그리웠다.
“그들을 찾으러 갈래?”
서황의 물음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희현을 상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찾아가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어요.”
“뭐지?”
옆에 있던 온청선이 흠칫 놀라더니 원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희현의 위치가 바뀌고 있어.”
목진이 확인해보니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설마 우리한테 오고 있는 건가?”
낙리가 조금 놀란 듯 묻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하더니 갑자기 정색하며 답했다.
“우리한테 오는 게 아니야.”
목진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살기를 품고 말을 이어갔다.
“저들은 심창생을 노리는 거야!”
이에 서황 등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목진의 말에 주위가 순간 숙연해졌다. 희현이 자신들이 아니라 심창생 등을 노릴 줄은 몰랐다.
“받은 대로 갚아주겠다는 거지.”
온청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진이 희현과 협력 관계를 맺은 사람을 쓰러뜨리고 다니자 그 또한 같은 방식으로 본때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네가 움직일 것을 알면서 그가 심창생 등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거야.”
낙리의 말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사에 신중한 희현은 승산이 없는 일에는 절대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나섰다는 것은 뭔가 확신이 있다는 말인데 목진은 녀석이 갑자기 그러는 이유가 궁금했다.
희현은 영로에 있었을 때나 지금이나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럼 이제 어떡해?”
서황 등이 목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희현 등이 자신만만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섣불리 행동했다가 정말 싸움이라도 나면 학원 대회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잔혹한 전쟁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목진이라도 절대적인 승산을 보장할 수 없었다.
소년은 여천 등을 상대할 때부터 희현이 함부로 반격하지 않고 조용히 기회를 노릴 것을 예상했다. 그만큼 그 일은 그들한테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심창생 등이 마침 16위권에 진입해 희현 등의 목표물이 될 줄은 몰랐다. 희현은 그들을 이용해 분명히 명성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사람들은 목진이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과연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지, 미리 덫을 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희현을 찾아갈 것인지를 말이다.
만약 전자라면 목진의 명성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목진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에 희현이 심창생 등한테 화를 내는 것이 정상이었고 나 몰라라 하면 다들 소년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라면 희현은 절대 그들한테 판을 엎을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한기 어린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목진은 서서히 눈을 감다가 다시 두 눈을 번쩍 떴다.
“갑시다.”
이에 서황 등은 화들짝 놀랐다.
“희현이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뭘 준비했든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내가 짊어져야 해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말이에요.”
목진은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희현이 이번에는 또 어떤 덫을 준비했을지 궁금하기도 해요. 그게 무엇이든 이번에는 나를 쓰러뜨리는 게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제대로 알려줄 거예요. 영로에서도 그렇듯 여기서도 마찬가지예요.”
소년의 두 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그는 학원 대회에서 가장 유명하고 실력이 제일 강한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서황 등도 어느새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낙리는 목진을 한참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었다. 소년의 자신감은 무식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기 실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희현이 아무리 상대하기 어렵다 해도 목진 역시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것이다.
온청선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목진을 힐끗 쳐다봤다. 아마 학원 대회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두 괴물급 신인이 싸우게 되면 과연 누가 승리할까?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심창생 등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낙리, 온청선, 서황 등도 바로 뒤를 따랐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속에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 * *
이와 동시에, 중심 구역 사람들도 떠들썩해졌다.
현재 중심 구역에서 희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학원 대회 1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막강한 소조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 사람은 없었고 다들 이들이야말로 최종 승리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목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그가 소황이 친 박천진을 뚫고 단숨에 막수 등을 쓰러뜨리고 희현의 동맹인 여천, 왕장을 꺾은 일로 소년 역시 유명해졌다.
특히, 그가 여천과 왕장을 쓰러뜨렸는데도 희현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목진의 이름은 더 널리 알려졌다.
희현 같은 괴물마저 참고 기회를 노리게 할 인물이라니 절대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다들 두 사람의 대결에 기대를 걸었다.
슈슉!
주위에서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실력이 막강한 소조들이 하늘을 가르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들 때문에 학원 대회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