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엄청난 동맹들
드넓은 구역은 사람으로 가득 찼는데 다들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이 내뿜은 영력 파동 때문에 이곳 천지는 오색찬란해져 엄청 아름다웠는데 다들 대치 중인 두 소조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희현이 이끄는 소조는 현재 학원 대회에서 최강이었고 그의 실력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학원 대회가 시작되면서부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희현은 어떤 상대를 만나든 결국 싸움에서 이겨 무적의 신화를 써 내려갔다.
이러한 괴물급 신인을 감히 건드릴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목진이 이끄는 소조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현재 학원 대회 2위인 온청선과 손을 잡은 것을 막론하고라도 목진은 숨겨진 실력자였다.
그리고 목진 곁에 조용히 서 있는 낙리는 온청선 못지않은 외모에 실력도 상당히 무서웠다.
이런 세 사람이 힘을 합쳤으니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하여 목진과 희현의 대결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지 다들 궁금했다.
그때 희현이 손을 휘두르자 사람들은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목진은 여전히 태연하게 서 있었고 옆에 있는 온청선과 낙리는 서서히 수중의 영기를 꽉 잡았다.
휘익.
현재, 이 구역에는 학원 대회에서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조가 거의 다 모였는데 다들 조용해 바람 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
“허허, 사람이 참 많군.”
그때 누군가 갑자기 쾌활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슉!
고개를 돌려보니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에 영광이 번쩍이더니 사람들이 나타났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은 청색 도포를 입은 청년으로 장발을 드리운 채 서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주위에 광풍이 일다가 태풍으로 변했다.
“저 사람은…….”
청색 도포를 입은 청년은 가슴팍에 청색 휘장을 달고 있었는데 넓고 푸른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이는 오대원 중 하나인 청천령원의 휘장이었다.
“저 사람은 청천령원의 유청운이야!”
“학원 대회 4위인 유청운이라니!”
“희현이 과연 유청운까지 불렀구나.”
주위가 순간 떠들썩해졌다. 유청운은 학원 대회에서 최정예에 속했고 4위란 성적이 그 실력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그는 결승전에 들 자격이 충분했기에 희현이 유청운까지 영입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유청운!”
온청선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외쳤다.
“정녕 오늘 일에 참견할 셈이야?”
이에 유청운이 미소를 지으며 온청선을 바라봤다.
“청선아, 이번 일은 목진이 너무 했어. 그러니까 내 탓은 하지 마.”
“우리가 뭐 그렇게 가까운 사이라고 나를 청선이라고 불러? 당장 고쳐.”
“우리도 한때 협력했던 사이인데…….”
유청운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난 네가 누군가와 이렇게까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아.”
목진은 흠칫하더니 온청선을 힐끗 보며 피식 웃었다.
“이래서 너무 예쁜 것도 문제라니까.”
유청운은 온청선과 구면이었고 보아하니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희현을 도와주기로 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목진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다.
유청운은 그녀가 사내와의 접촉을 꺼리고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하는 경우 일단 각자의 목표만 달성하면 바로 헤어지곤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철벽을 치던 온청선이 목진과 여태껏 함께하고 그를 위해 희현처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진, 입을 함부로 놀리면 확 찢어버린다?”
온청선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년을 노려보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
“상대편에 유청운이 합세한 것이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야.”
낙리가 히쭉 웃는 목진을 보며 말했다. 유청운은 여천이나 왕장처럼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오대원 출신인 그는 풍령족의 천재로 천부적 재능이 뛰어났고 뒷배가 상당했다.
“희현이 절대 유청운만 불렀을 리 없어.”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운(方雲), 너도 얼른 나와.”
희현은 여전히 무덤덤한 목진을 바라보며 다시 손을 휘익 저었다.
방운은 학원 대회 6위인 구정령원(九鼎靈院) 출신이었다.
“오늘의 대결은 결승전을 제외하고 가장 흥미로운 싸움이 될 텐데 이곳에 자리하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
희현이 말을 마치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 사이로 한 무리가 걸어 나왔다.
그 우두머리는 하얀색 도포를 입은 청년으로 회백색 머리에 유난히 밝은 눈망울을 지녔고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쓰윽 훑었다.
그는 아홉 개의 정이 새겨져 있는 휘장을 달고 있었는데 이는 구정령원의 표식으로 백 년 전에는 오대원 중 하나였지만 몰락해 그 자격을 잃었다. 그러나 구정령원도 실력이 상당해 이번에 파견한 소조가 순위권 6위에 오를 수 있었다.
방운이 나타나자 주위는 다시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은 희현이 데려온 강자들에 흠칫 놀랐다. 유청운과 방운은 전부 결승전에 들고도 남을 인재들이었다.
희현은 역시 목진을 철저히 무너뜨릴 작정인 듯했다.
이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소년이 그들의 손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목진, 내가 준비한 것이 어때? 마음에 들어?”
희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희현은 또 손을 들더니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사람들은 희현의 동작에 화들짝 놀랐다.
슉!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갑자기 선홍빛을 발하더니 혈하가 하늘을 가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목진은 순간 움찔했고 옆에 서 있던 낙리도 금세 살기를 품었다.
어느덧 혈하가 사라지고 사람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선홍빛 도포를 입은 사람 중 한 사람은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목신전에서 목진의 공격에 부상을 입고 도망갔던 혈천도였다.
그런데 그 무리의 우두머리는 혈천도가 아니라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선홍색 장발을 드리운 청년으로 빨간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훑다가 낙리한테 눈길을 멈췄다.
“낙리, 오랜만이야.”
이에 낙리는 낙신검을 꽉 쥔 채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희현이 혈신족 셋째 황자인 혈천하(血天河)까지 모셔올 줄은 몰랐네?”
“낙신족 미래의 여황을 위해서라면 혈신족에서 누가 와도 마땅하지.”
혈천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혈천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의 이름은 비록 16위권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녀석이 형성한 영력 위압감은 유청운이나 방운 못지않았다.
세 사람은 엄청난 실력자였다.
희현은 목진을 상대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 유청운, 방운, 혈천하는 결승전에 들어가기 충분한 실력자들로 이들이야말로 학원 대회의 최정예들이었다.
“목진…….”
희현은 다시 상냥하게 웃더니 목진 주위를 감싼 세 소조를 쓰윽 훑으며 말했다.
“너를 위해 준비해봤어. 어때, 마음에 들어?”
사람들은 최정예들이 모이자 아무리 목진, 온청선, 낙리가 힘을 합쳐도 대결에서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목진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 목진은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무덤덤하게 웃으며 물었다.
“끝났어?”
짤막한 세 글자에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거렸다.
목진의 말에 주위는 다시금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이 전혀 당황하지 않은 모습에 다들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목진이 희현, 유청운, 방운, 혈천하 등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망상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목진과 낙리, 온청선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모두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목진이 이런 상황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다는 뜻인데 사람들은 그 가능성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목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희현 같은 괴물급 신인이 소년을 꺼리는 것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목진이 무식한 게 아니라면 그도 충분히 준비하고 왔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사람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졌다.
유청운, 방운, 혈천아 등 최정예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미간을 찌푸린 채 목진을 바라봤다.
“전혀 놀라지 않은 눈치네?”
“너를 상대한 지도 벌써 몇 년인데 그걸 모를까?”
목진도 희현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래? 그럼 넌 뭘 준비했어?”
“난 별거 없어. 학원 대회에 고수가 이렇게 많은데 최정예 고수가 다 네 편에 선다고는 말할 수 없잖아?”
말을 마친 목진이 먼 곳을 바라보며 히쭉 웃었다.
“무령, 온불승(溫不勝), 이만 나와.”
그때 사람들 속에서 한 무리가 걸어 나왔는데 앞장선 청년은 여인처럼 수려한 모양을 한 무령원의 무령이었고, 그 뒤에는 무영영이 따라 나왔다. 무영영은 목진을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야.”
그리고 무령 옆에는 아주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함께 걸어 나왔는데 한쪽 손이 유난히 하얀 것이 정석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저 사람은 학원 대회 3위인 무령이잖아?”
“그 옆에는 현재 학원 대회 8위인 온불승이야. 온불승은 8위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어. 아무도 그 자리를 빼앗지 못했다고 들었어.”
“저런 거물들을 불러왔다니, 목진도 역시 준비를 하고 왔네.”
* * *
무령과 온불승이 나타나자 주위는 순간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은 이내 감탄했다. 현재 이름을 밝힌 소조들은 앞으로 결승에 진출할 소조들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목진은 무령과 온불승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요즘 희현의 동맹을 쓰러뜨리러 다녔을 뿐만 아니라 몰래 협력할 수 있는 사람도 찾아다녔다. 목진은 희현도 분명 다른 소조를 영입하러 다녔을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희현은 유청, 방운, 혈천하를 영입했고 목진은 온청선, 무령, 온불승을 영입하여 낙리와 그까지 더하면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었다.
쌍방의 진영은 학원 대회 최강으로 다들 곧 일어날 세기의 대결에 피가 끓어올랐다. 이건 미리 결승전을 보는 거나 다름없었다.
“무령, 네가 목진의 편이 될 줄은 몰랐어.”
희현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무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로에서 목진과 무령은 그렇게까지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허, 나를 그렇게 보지 마. 난 그저 편을 들어주러 온 것뿐이야.”
무령은 피식 웃더니 옆에 서 있는 무영영을 힐끗 봤다. 무령은 그와 희현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는데 무영영이 너무 보채서 할 수 없이 나서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이 짧아요? 희현같이 야심만만한 사람이 목진을 쓰러뜨리면 우리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요. 그 녀석은 1위가 되기 위해 누구든 해칠 사람이에요.”
무령의 눈빛에 무영영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정녕 그것뿐이야?”
무령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뭘 더 원해요?”
무영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껏 상기된 얼굴로 두 눈을 부릅뜨고 무령을 노려봤다. 이에 무령은 머쓱하게 웃더니 다시 희현한테 고개를 돌렸다.
“희현,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것 같아. 이러다 정말 싸움이라도 나면 전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우리 모두 결승에 진출하지 못할 수도 있어.”
무령의 말에 목진과 희현이 불러온 최정예급 고수들이 흠칫했다. 상대방의 실력을 잘 아는 이들은 무령이 허튼 말을 한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희현과 목진 사이의 일을 도와줄 수는 있으나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