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368화 (367/1,000)

368화. 깊이를 알 수 없는 희현

“무령, 온불승, 오늘 정말 고마웠어.”

목진은 수려하게 생긴 청년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희현과의 대결에서 쌍방의 진영은 상당히 중요했다. 목진이 무령과 온불승을 영입하지 않았다면 오늘 싸움에는 희현이 영입한 사람이 전부 참전했을 것이다.

녀석들은 힘을 합쳐 목진 등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판단하면 바로 나설 교활한 여우들이었다.

다행히 무령과 온불승이 나타나 목진 등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줬기 때문에 그들은 오늘 나서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지켜만 본 것이다.

“괜찮아. 그런데 영영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나라도 도울지 말지 한참 고민했을 거야.”

무령이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어리둥절해서 무영영을 바라봤다. 자신을 미워할 거라고 여겼던 소녀 덕분에 무령이 나섰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런데 무영영은 목진을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고마워.”

목진이 진심을 담아 인사하자 무영영은 입을 삐쭉 내밀며 안 좋은 소리를 하려고 했는데 소년의 따뜻한 눈빛과 웃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희현 같은 악당이 하는 짓을 두고만 보면 우리한테도 좋을 게 없어. 난 우리 무령원을 위해 오라버니를 설득했던 거지. 절대 너 따위 변태 때문이 아니야.”

무영영의 말에 목진은 괜히 어색해졌다. 특히 무령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소년은 이내 헛기침했는데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무영영은 얼굴이 더 빨개진 채 고개를 휙 돌리고는 차마 무령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우리야 서 있기만 했지 도와준 건 없어. 그런데 목진 너야말로 대단하던데? 역시 영로의 혈화자란 남다르더라.”

온불승이 흥미진진하게 목진을 훑어보며 말했다.

“불승, 너도 만만치 않지.”

목진은 생긋 웃더니 온불승을 쓰윽 훑었는데 길쭉하고 하얀 오른손에 눈길이 멈췄다. 정석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는 오른손에서 목진은 아주 위험한 파동을 읽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온불승은 가볍게 웃더니 오른손을 감추고 더는 해명하지 않았다.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는 법이라 목진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 대회는 곧 결승전을 맞이할 거야.”

무령이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수많은 사람이 8위권에 들기 위해 애를 쓸 거야. 그리고 희현이 오늘 잠시 물러났다고 해서 앞으로도 잠잠할 거란 보장도 없으니까 지금부터라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

이에 온불승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로 그들은 희현을 제대로 건드렸기에 주의하는 편이 좋았다. 비록 무령과 온불승은 쉽게 당할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단계에서 희현 같은 사람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목진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가 한 명이라도 느는 건 좋은 일이었다.

무령이 은은한 빛이 도는 암홍색 옥패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전달옥(傳訊玉)으로 유적지에서 얻은 거야. 문제가 생겼을 때, 전달옥을 소환하면 다른 옥패의 주인이 바로 알 수 있어. 그리고 우리가 준비를 마치면 옥패로 연락해서 원패를 태워 결승전을 시작할 수도 있어.”

결승전을 시작하려면 16위권에 든 소조 중에서 원패를 적어도 절반은 태워야 8위권에 든 소조가 마지막 결승전에 참가하게 된다.

이에 목진은 뒤에 서 있는 온청선을 힐끗 보더니 무령한테서 옥패를 받았고 온불승도 나머지 옥패를 가져갔다.

“허허, 오늘 일은 무사히 마쳤으니 우리도 이만 떠나야겠어.”

무령은 호탕하게 웃으며 목진 등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직 부끄러워하는 여동생과 조원들들 데리고 그곳을 떠났고 온불승도 돌아갔다.

그제야 완전히 긴장을 푼 목진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순간 몸을 휘청였는데 낙리가 바로 와서 부축해서야 가까스로 설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온청선도 손을 뻗었다가 바로 거두며 생긋 웃었다.

“겨우 참고 있었던 거였어?”

“역시 희현이야.”

목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계속 싸웠다가는 큰일 날 뻔했어.”

목진은 영력 소모가 상당했기에 계속 싸우려면 정말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희현의 실력은 역시 막강했다.

“너무 그러지 마. 희현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을 거야. 네 마지막 일격에 그도 한 번도 선보인 적 없었던 비밀 병기를 사용했잖아?”

온청선의 말에 낙리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목진의 두 차례 공격은 완벽에 가까웠다. 위력이 엄청난 선공격을 하며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가 적당한 때를 맞춰 벼락을 날렸다. 마지막의 오래된 매의 울음소리만 아니었으면 희현은 분명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희현은 아직 진정한 필살기를 보여주지 않았어.”

목진도 오래된 매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그 속에서 상당한 위협감을 느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오래된 매의 울음소리는 영수방 지방 8위인 원고천룡매의 울음소리일 거야.”

낙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원고천룡매라…….”

목진은 순간 흠칫하였다. 역시 구유작의 검은 알이 반응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원고천룡매는 영수방 지방 8위로 11위인 구유작보다도 순위가 높았고 대천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영수 중에서 실력이 막강한 편에 속해 지존급 강자가 만나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희현이 설마 원고천룡매의 정백을 제련했단 말인가?”

목진이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누구든 신백경에만 이르면 영수의 정백을 제련할 수 있는데 정백의 힘에 한계가 있어 주인의 실력이 강해질수록 그 작용이 미약해진다. 하여 대부분은 실력이 강해지면 더는 전에 제련했던 영수의 정백의 힘을 사용하지 않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만약 신백경 시기에 제련한 영수의 정백의 힘이 엄청나다면 그것은 계속 남아 수련자의 필살기가 되기도 한다.

목진의 구유작처럼 말이다.

희현은 분명 신백경이었을 때, 상당히 강한 영수의 정백을 제련한 것이 틀림없다.

다만, 신백경이었던 희현의 실력으로는 절대 원고천룡매를 제련할 수 없었을 텐데, 실력이 막강한 누군가가 녀석을 도왔을 것이다.

희현의 뒷배도 역시 심상치 않았다.

“그럴 수도 있어.”

낙리와 온청선은 이내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희현을 상대하기는 더 버거워질 것이다.

그런데 목진은 가볍게 숨을 내뱉었을 뿐, 별로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희현의 체내에 원고천룡매의 정백이 있다면 목진한테는 구유작의 힘이 있었다.

또한, 그와 구유작은 혈맥을 연결한 사이라 양자의 힘의 융합이 더 완벽했다.

그리고 원고천용매의 순위가 구유작보다 높긴 하지만 실력이 훨씬 뛰어나단 것은 아니었다. 해당 단계의 영수들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더구나 구유작은 더는 영수가 아니라 곧 구유명작으로 진화해 신수가 될 몸이이었다. 일단 잠에서 깨어나면 지존경에 맞설 힘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흥미롭군.”

목진은 피식 웃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희현이 사라진 곳을 보다가 다른 쪽을 향했고 아래쪽에 서 있던 심창생, 이현통 등도 바로 뒤를 따랐다.

“희현, 결승전에서 네가 숨겨뒀던 필살기가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보여줘. 이번에는 어떻게든 반드시 널 이길 거야! 영로에서 맺은 원한은 이곳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자!”

목진과 희현의 대결은 며칠 사이에 학원 대회에 쫙 퍼졌고 다들 잔뜩 놀란 눈치였다.

특히, 학원 대회 1위를 오랜 시간 차지한 희현이 먼저 물러났다는 사실을 다들 쉽게 믿지 못했다.

다들 희현이 잠시 물러났다고 해서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었고, 목진을 충분히 경계한다는 의미라고 파악했다. 하여 현재, 학원 대회에서 더 이상 목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학원 대회가 가장 치열한 단계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대결의 여파는 금세 사라졌다.

학원 대회는 끝나는 시간을 정해두지 않았지만 일단 16위권에 든 소조 중 8소조 이상이 원패를 태우면 8위권에 든 소조가 자연스레 결승 진출하게 된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

학원 대회의 엄청난 탈락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소조가 순위권에 들려고 애를 썼지만 결승전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여덟 소조뿐이라 사람들은 점수를 따기 위해 모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부서진 유적 대륙의 중심 구역 곳곳에서 피 튀기는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사냥감을 찾느라 바빴는데 그들은 어느샌가 또 다른 이의 사냥감이 되기도 했다.

사냥꾼과 사냥감이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 학원 대회의 순위권도 많은 변동이 있었고 점수 역시 미친 듯이 요동쳤다.

현재 학원 대회 8위권은 전부 익숙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1위, 성령원, 조장 희현, 점수 10만 8천 점.

2위, 만봉령원, 조장 온청선, 점수 9만 점.

3위, 무령원, 조장 무령, 점수 8만 3천 점.

4위, 청천령원, 조장 유청운, 점수 7만 8천 점.

5위, 혈령원, 조장 혈천하, 점수 7만.

6위, 구정령원, 조장 방운, 점수 6만 5천 점.

7위, 불패령원, 조장 온불승, 점수 6만 2천 점.

8위, 북창령원, 조장 목진, 점수 6만 점.

* * *

현재 8위권은 학원 대회의 최정예 소조의 몫이 되었고 그 뒤로 수많은 소조가 애를 쓰고 있었지만 잠시 얼굴을 비췄다가 바로 순위권에서 밀려나곤 했다.

심창생이 이끄는 소조도 어느덧 10위까지 올랐는데 더 오르기는 무리였다. 이들의 실력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8위권에 들기에는 부족했다. 갑자기 나타난 강적이 너무 많았다.

그들이 만약 목진 등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학원 대회에서 탈락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이니만큼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 대부분 아무리 노력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점수 따기에 전력을 다했고 유적 대륙 곳곳에서는 여전히 싸움이 벌어졌다.

* * *

퍽!

한 평원에 난폭한 영력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혈안이 된 사람 십수 명이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공격을 개시했다.

쿵!

그런데 이들의 공격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상대편의 늘씬한 소년이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체내에서 검은색 뇌광을 발사하자 눈부신 벼락에 맞은 사람들은 피를 토하며 수십 장 가량 튕겨 나갔다.

어느덧 뇌광이 가시자 소년은 훤칠한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로 목진이었다. 그는 배시시 웃으며 녀석들의 원패를 거둬 점수를 빼앗더니 원패에 더해진 수천 점을 보고 입을 삐쭉 내밀며 원패를 돌려줬다.

잇따라 목진은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고 있는 낙리, 온청선 등에 고개를 돌렸는데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두 여인은 실력으로 압승을 거뒀다.

상대편도 괜찮은 실력을 지녔지만 두 소녀에 비하면 훨씬 뒤처져 얼마 안 되어 싸움이 끝났고 원패를 거둬 점수를 나눠 가졌다.

“희현은 참 빨라.”

온청선이 다가와 원패를 확인하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희현이 이끈 소조의 점수는 어느새 12만 점을 넘어갔고, 점수를 따는 속도도 이들보다 훨씬 빨랐다.

심창생 등도 1위의 점수를 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 무서운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했다.

그런데 목진은 희현의 이름을 한참 보더니 히쭉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돼.”

이에 온청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진을 보며 말했다.

“앞으로 점수를 얻으면 너희가 더 많이 가져.”

“뭐?”

목진은 어리둥절했다.

“나를 다시 1위로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넌 지금 희현을 뛰어넘는 것이 우선이야.”

온청선은 얇은 손가락으로 원패 1위에 적힌 이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