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화. 원패를 태우다
“혹시 낙리가 한 거야?”
목진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그래.”
온청선은 생긋 웃더니 손으로 턱을 괴고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낙리가 방운을 쓰러뜨리고 그 점수의 절반을 얻어 바로 희현의 1위의 자리를 차지했어. 지금 낙리는 학원 대회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됐어. 아마 너와 희현보다 더 유명할 거야.”
온청선이 히쭉 웃으며 물었다.
“네가 해내지 못한 일을 낙리가 해낸 것을 보니까 기분이 어때? 괴로워?”
목진은 원패를 잠시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괴로울 것까지는 없지. 낙리는 원래 눈부신 존재이고 난 그 눈부신 빛을 거두라고 한 적이 없어. 하지만 낙리는 자기가 범상치 않은 존재란 걸 잘 알기에 북창령원에 들어온 뒤로 숨어 지냈던 것 같아. 난 가끔 그녀가 자기 실력을 있는 그대로 뽐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한껏 부드러워진 목진의 눈빛에서 낙리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낙리는 너를 위해 그런 거야. 너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
이에 목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무들 사이로 스며 나온 빛줄기를 느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난 낙리가 얼마나 눈부신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 앞으로는 더 엄청난 사람이 되겠지. 하지만 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언젠가 절세의 강자가 되겠다고 그녀와 약속했거든. 그때가 되면 아무도 그녀의 손을 잡으려는 나를 막을 수 없을 거야.”
“절세의 강자라…….”
온청선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수많은 천재가 있지만, 절세의 강자가 되어 대천세계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소년의 결연한 눈빛에 잠시 넋이 나간 온청선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절세의 강자가 되기 전에 희현부터 쓰러뜨려. 그 녀석을 상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거야.”
이에 목진은 히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희현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긴 하지만 나 역시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마음에 드네.”
온청선은 자리에서 우아하게 일어나더니 목진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네가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할 때도 있어?”
목진이 깜짝 놀라며 묻더니 괜히 말했다 싶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나 다를까, 온청선은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소년의 멱살을 잡더니 이를 갈며 물었다.
“뭐라고?”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난 싫어하는 사내와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할 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절대 그러지 않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어색하게 콧등을 쓰윽 훑었다.
“내가 잘못했어.”
적잖게 당황한 온청선의 모습에 목진은 사과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내를 좋아하면 어떻게 변할지 자못 궁금했다.
“흥.”
온청선은 콧방귀를 뀌더니 정신을 차렸는데 목진의 멱살을 잡다가 두 사람의 몸이 닿을 듯 말 듯 하자 바로 소년을 밀쳐버렸다. 그녀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우리도 이만 가자.”
목진은 더는 온청선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서둘러 말했다. 이에 온청선은 다시 콧방귀를 뀌더니 먼저 쇠나무숲을 떠났다.
목진은 히쭉 웃으며 쇠나무숲 위쪽으로 날아올라 결인했는데 손바닥에서 방대한 광권이 나타나더니 주위에 퍼졌다.
슈슉!
푸른색 광권이 퍼지자 쇠나무숲의 쇠나무들이 흑광이 되어 하늘 높이 솟아올라 목진 수중의 광권에 스며들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쇠나무숲의 쇠나무가 반쯤 사라지자 목진은 광권을 거두고 길게 숨을 내뱉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서북쪽을 바라봤다.
학원 대회의 결승전이 곧 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꼭 희현과 제대로 싸우리라 결심했다!
대지에는 우뚝 솟은 산맥이 가득했고 주위는 떠들썩했다. 그중 일부는 한곳에 모이더니 자리를 떠났고 일부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내려왔다. 이곳은 바로 휴식을 취하는 구역이었다.
학원 대회에서 완벽하게 안전한 구역은 없었으나 규칙이 존재하는 법, 일단 휴식 구역에 발을 들이면 잠시 싸움을 멈추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휴식 구역의 산봉우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쉬고 있었는데 쉬면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무리를 힐끗거렸다.
그중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사람은 감색 치마를 입고 은색 장발을 드리운 절세의 미녀였다. 유리알 같이 맑고 투명한 눈동자는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고 한 번 보면 다시 헤어나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소녀는 주위의 시선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꼭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소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내였고, 훌륭한 여인의 모습에 모두 마음이 동했지만 아무도 감히 그녀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그녀는 현재 학원 대회의 1위를 따낸 장본인으로 방운을 꺾고 희현이 이끄는 소조의 순위를 앞질러버린 낙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며칠 안 되는 사이에 학원 대회에서 가장 유명해졌다.
며칠 동안, 낙리를 마주친 소조들이 적잖게 존재했고 힘겹게 얻은 점수를 내줘야만 했지만 다들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를 마주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웠고 그녀가 자신을 눈여겨보지 않을 걸 알면서도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낙리는 사람들을 전부 무시한 채 눈을 감고 산봉우리에 앉아 미풍에 몸을 맡겼다.
“낙리야, 희현이 또 2천 점이나 얻었어.”
심창생이 원패를 보며 말했다.
“녀석, 참 빨리도 쫓아오네.”
이현통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들이 희현을 초월한 뒤로 녀석은 최선을 다해 점수를 따고 있었다.
이에 낙리 등도 부지런히 점수를 따러 다녔는데 방운을 꺾은 뒤로는 너무 강력한 소조는 택하지 않았고 적당한 상대만 찾아다녔다. 점수를 얻는 속도가 느려도 목진이 9위부터 16위를 쓰러뜨리며 영력 소모가 엄청났던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며칠간의 대결을 통해 심창생 등의 실력도 높아졌다. 심창생과 이현통은 목진한테서 받은 지존 영액을 이용해 신백난 두 번째 단계를 건넜고 소훤과 서황은 신백난을 건너는 데 성공했다. 북창령원 소조의 전체 실력은 이제야 정예 수준에 이르렀다.
북창령원 출신은 조장이든 조원이든 실력이 다른 정예 소조 못지않았고 실력 차이가 엄청났던 상황도 많이 개선되었다.
그때 낙리가 눈을 번쩍 뜨고 원패를 확인했다. 목진이 이끄는 소조는 아직 1위로 점수는 16만 점이고 희현은 2위로 15만 3천 점이었다.
“바로 움직입시다.”
낙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늘씬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고 새하얀 피부도 햇빛에 비쳐 눈부신 빛을 발했다.
이에 심창생 등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다.
며칠 동안, 낙리의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들은 지금까지 소녀가 실력을 숨기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슉.
그런데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이 빠르게 다가왔다. 낙리는 멈춰서서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표정이 거의 변치 않는 여인이 갑자기 미소를 짓자 사람들은 자못 궁금하여 눈길을 돌렸다. 도대체 누가 소녀를 이토록 기쁘게 한단 말인가?
슉.
잠시 후, 사람들 눈앞에 한 소녀와 한 소년이 나타났는데 바로 온청선과 목진이었다.
목진은 낙리 앞쪽에 멈춰 서더니 미소를 지으며 아래쪽에 서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고, 옆에 서 있는 온청선은 황금색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낙리 못지않은 미모에 오만해 보였다.
“목진이야!”
다들 목진을 바로 알아봤지만, 그의 등장보다 낙리의 반응에 질투심을 드러냈다. 소녀의 웃음에 다들 푹 빠져든 것이다.
목진은 서둘러 낙리한테 다가가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소조의 조원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야.”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장님이 왔으니 이 자리는 다시 돌려줄게.”
낙리는 원패를 목진한테 돌려주며 눈을 찡긋하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방운 같은 고수를 상대할 때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소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목진이 아니면 절대 누릴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이에 목진은 방긋 웃으며 원패를 건네받았고 소녀의 손을 꽉 잡았다. 낙리는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소년을 노려만 볼 뿐, 그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목진은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다들 자신을 노려보고 있어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낙리의 관심을 모두 독차지한 자신을 질투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만 떠나자. 네가 애써 쟁취한 1위의 자리를 절대 빼앗기지 않을게.”
목진의 말에 낙리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잉.
그런데 그때, 목진의 원패가 갑자기 진동하며 빛을 발했고 그 구역에 있던 모든 조장의 원패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다들 원패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랐다.
2위였던 희현의 점수가 갑자기 폭등해 15만에서 20만이 된 것이다!
순식간에 점수가 순간 5만 점이나 올랐다.
“이럴 수가!”
누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외쳤다. 8위권에서 변동된 소조가 없는 것을 보면 희현은 이들을 꺾고 점수를 얻은 것이 아니란 말인데 도대체 무슨 수로 갑자기 5만 점이나 취했단 말인가?
주위는 순간 떠들썩해졌고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을 바라봤다.
한편,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원패를 보다가 뭐라 말하려고 했는데 다시 변한 희현의 상태에 깜짝 놀랐다.
1위인 희현의 이름이 불타오르는 것이었다.
이에 온청선과 낙리마저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희현이 원패를 불태웠다는 것은 바로 결승전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희현이 원패를 태우자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원패 중 1위에 적힌 이름을 쳐다봤다.
규칙에 따르면 16위권 중 절반 이상이 원패를 태우면 학원 대회 탈락전은 종결되고 8위권까지가 결승전에 들게 되어있었다.
이런 일은 자기 점수에 자신 있는 소조만이 할 수 있었다. 일단 원패를 태우면 다른 소조가 함께 원패를 태우지 않는 이상 점수는 그대로 확정되어 더는 딸 수 없게 된다. 그리되면 다른 소조에서 자신을 따라잡는 데 기회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잘못하면 8위권에서도 밀려날 수 있었다.
하여 절대적인 승산이 없고서야 아무도 함부로 원패를 태우지 않았다. 그런데 희현이 그리했다는 것은 아무도 그의 1위 자리를 위협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희현이 무슨 수로 갑자기 5만 점을 얻었는지 알지 못했고, 왜 이토록 자신만만해졌는지도 궁금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심창생 등도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낙리와 온청선은 계속 원패를 지켜봤는데 1각 정도가 지나자 혈천하, 유청운, 방운도 원패를 태웠다.
중심 구역은 다시 떠들썩해졌다.
“혈천하, 유청운과 방운도 원패를 태웠어!”
“벌써 원패를 네 개나 태웠으니 앞으로 16위권 중 네 소조만 원패를 태우면 결승전이 바로 시작돼!”
“희현이 잘도 참았네! 여태껏 어떻게 기다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