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점수 창고
사람들이 수군대는 말에 심창생 등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어렵게 따낸 1위를 한순간에 빼앗겨 언짢아진 것이다.
그들은 희현이 도대체 5만 점을 어떻게 얻었는지 알고 싶었다.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점수를 얻으려면 8위권에 든 소조를 공략해야 하는데 16위권 중 점수 파동이 큰 소조는 단 한 조도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낙리와 온청선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는데 목진은 원패를 만지작거리며 사색에 잠겼다.
“또 원패를 두 개나 태웠어!”
누군가의 말에 원패를 확인해보니 16위와 14위인 소조가 원패를 태웠다. 이들은 원패를 태우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결승전에 들 기회까지 포기하면서 왜 원패를 태운 걸까?
희현이 몰래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지 않은 이상, 갑자기 이렇게 많은 소조가 원패를 태울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중심 구역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다들 가여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마지막 순간에 목진은 또 희현의 꼼수에 걸려들었다.
이제 원패를 두 개만 더 태우면 결승전은 열릴 것이다. 목진 등이 다시 8위권에 든 소조를 쓰러뜨리지 않는 이상 절대 5만 점을 얻어 1위의 자리를 되찾을 수 없다.
그러나 희현, 혈천하, 유청운, 방운이 원패를 태웠기에 그들을 공격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럼 남은 건 온청선, 무령, 온불승인데 목진이 그중 누구를 사냥감으로 정하든 타격이 엄청날 것이다.
희현은 역시 꼼수를 잘 부리는 교활한 여우였다.
“젠장!”
심창생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도 희현의 의도를 파악하고 잔뜩 화가 났다.
“이제 어떡해?”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이현통이 목진과 낙리한테 물었다.
이에 낙리는 주먹을 꽉 쥐더니 걱정 어린 눈빛으로 조용히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목진은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원패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때 온청선이 목진을 힐끗 보더니 자기 원패를 꺼내며 말했다.
“우리 점수를 가져. 우리는 반을 잃는다고 해도 8위권에 들 수 있어. 그리고 점수가 대단한 걸 의미하는 건 아니야. 진정한 1위는 결승전에서 싸워봐야 알잖아?”
심창생 등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청선이 지금 상황에서 점수를 나눠주려 할 줄은 몰랐다.
“흠…….”
심창생 등은 차마 온청선의 점수를 가질 수 없었다. 그건 생각보다 너무 귀한 선물이었다.
이에 낙리도 이를 악물며 목진을 바라봤는데 소년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고 온청선을 쳐다봤다.
“지금 상황에서 우유부단한 것이 과연 좋을까?”
온청선은 인상을 찌푸리며 목진을 쏘아봤다.
“내 점수를 가져가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겠지만 내가 먼저 주겠다고 한 것도 네 능력이야. 학원 대회에서 나에게 이런 결정을 내리게 할 사람은 더는 없어. 그러니까 그따위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려는 거면 실망이야. 그리고 난 우유부단한 친구는 싫어.”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감동했고 코도 찡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서서 목진의 결정만을 기다렸다. 목진만 동의하면 이들은 바로 1위의 자리를 되찾고 희현의 뒤통수를 칠 수 있었다.
그런데 소년은 결국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온청선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목진을 쏘아봤다.
“미안, 자존심 때문에 네 점수를 받지 않으려는 게 아니야. 단지 그 정도로 궁핍한 상황이 아니라서 그래.”
목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에 온청선은 팔짱을 끼고 얼굴을 휙 돌렸다. 지금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수로 5만 점이나 벌어들인단 말인가?
더구나 목진이 점수를 따러 가면 16위권 사람들은 바로 원패를 태워 탈락전을 종결지을 것이다.
“희현이 그 점수를 어떻게 얻었는지 알 것 같아.”
온청선의 모습에 목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낙리 등은 바로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고 온청선마저 소년을 힐끗 쳐다봤다.
“그들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위협해 점수 창고를 만들었을 거야. 그게 마지막 순간에 희현한테 대량의 점수를 준 것이 분명해. 그는 그걸 여태껏 드러내지 않고 잘 숨겼던 거지.”
점수 창고란 사람들을 적당하게 키운 뒤, 도살해 금전을 버는 것으로 희현 등이 얻는 건 금전이 아니라 점수였다.
“점수 창고라…….”
낙리 등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희현이 그토록 더러운 수법으로 점수를 얻을 줄 몰랐다. 학원 대회에서 점수 창고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은 점수라면 큰 작용을 못 하고 대량이라면 반격을 항상 조심해야만 했다. 일단 수백 소조가 동시에 미친 듯이 반격하면 아무리 희현이라도 막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죽음이 계속 발생하면 바로 학원 대회 자격이 박탈당할 것이다.
“넌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온청선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철두철미한 희현이 정말 이런 수법을 사용했다면 이를 목진이 알 리 없었다.
“난 희현을 너무 잘 알아. 무슨 일을 하든 한 수를 더 생각하는 편이지. 그래서 몰래 그쪽에 사람을 붙였는데 마침 나한테 들켰지 뭐야.”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쪽에서 그따위 방법으로 점수를 딴 걸 알아도…….”
심창생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이런 상황에서 역전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너도 뭔가를 준비했구나?”
이때, 낙리가 유리알 같은 눈으로 소년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에 온청선도 조금 놀란 듯 목진을 바라봤다. 그가 이런 상황마저도 예상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 셈이지.”
목진은 히쭉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손가락을 튕겼는데 영력 한 줄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거대한 영력의 빛을 발했다.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목진을 쳐다봤다.
1각 정도가 지나자 대량의 빛줄기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슉! 슉!
빛줄기는 목진의 위쪽 하늘에 멈춰 섰는데 수백 조도 넘는 사람들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무언가 눈치챈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을 쳐다봤다.
그때 누군가 걸어 나왔는데 얼굴이 낯이 익었다. 바로 황령원의 조장 임주였다.
“허허, 목진아,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네 은혜를 입었으니 오늘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 거야.”
임주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꼼수는 희현만 부린 것이 아니었다. 목진도 판을 뒤엎을 엄청난 수를 준비했다!
하늘에 수백 소조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잔뜩 놀랐다.
심창생 등은 물론이고 낙리와 온청선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임주 등에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이야?”
온청선이 목진한테 물었다.
“희현이 꼼수를 부리면 나도 그에 알맞게 준비해야지.”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임주 등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들이 바로 내가 준비한 최후의 수단이야.”
“너도 점수 창고를 만든 거야?”
심창생은 자못 놀랐다.
“저들은 한때, 내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에요. 그 뒤로 난 임주에게 혹시라도 변고가 생기면 나를 위해 나서줄 수 있는 소조를 모으라고 했어요. 만약 희현이 저따위 수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임주 등도 지금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겠죠.”
목진의 말에 심창생 등은 혀를 끌끌 찼다. 소년의 완벽한 준비에 적잖게 놀란 것이다.
“그렇게 보지 말아요. 희현과 많이 싸워 그 수법을 잘 알아 미리 대응할 수 있었던 거예요. 영로에서 한번 당한 적이 있었지만, 더는 그의 꼼수에 넘어가지 않아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아무리 저들을 구해줬다고 해도 다들 점수를 선뜻 내준대?”
낙리는 쉽게 믿지 않는 눈치였다.
결승전에 들 수 있는 소조는 여덟 조밖에 없고 그 외에 다른 소조는 탈락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점수가 너무 낮으면 다음번 학원 대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서 한 소조에 지존 영액을 다섯 방울씩 나눠준다고 했어.”
낙리와 온청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진을 흘겨봤다. 지존 영액은 지금 그들에게 엄청난 물건이라 사실 저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지존 영액이나 마찬가지였다.
목진이 은혜를 베푼 데다 지존 영액까지 준다는데 점수를 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지존 영액은 어디서 그렇게 많이 얻었어?”
낙리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들이 장령원에서 취한 지존 영액은 절대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다.
“설마 취령완의 봉인을 뚫었어?”
이에 목진은 히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조금 오른 뒤, 다른 방법을 시도하던 중 우연히 취령완의 봉인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만들었어. 아직 봉인을 완전히 뚫은 건 아니지만 800방울 정도의 지존 영액을 확보했어.”
낙리는 그제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역시 믿는 구석이 있어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지존 영액 부자가 따로 없군.”
심창생 등은 혀를 끌끌 차며 목진을 바라봤다. 500방울도 넘는 지존 영액은 보통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수량이 아니었고 지존급 강자한테도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아직 지존경에 이르지 않은 이들한테는 엄청나게 귀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목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리 목진한테 취령완이 있어도 500방울도 넘는 지존 영액을 내놓는 일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 외에 별다른 수가 없었다.
교활한 희현을 상대하려면 목진 역시 특수한 수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난 네가 미리 준비한 줄도 모르고 점수를 주겠다고 했구나.”
온청선이 목진을 노려보며 투덜댔다.
온청선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목진 등이 걱정되었지만 소년의 처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점수를 내주겠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인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목진은 온청선을 한참 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준비한 것들은 희현을 상대하기 위해서지만 떳떳한 일은 아니라 알려주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정말 고마워, 청선아.”
그 말에 온청선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괜히 센 척했다.
“감히 누구더러 청선이래? 그리고 이런 일은 낙리한테 해명하면 되지 나한테까지 알릴 필요는 없어. 네가 머나먼 길을 걸어 나를 도와주러 왔었고 내가 희현을 극도로 미워하기도 해서 도와주려고 했던 거지.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왜 너희 일에 관여할까?”
소녀의 말에 낙리는 입을 가리고 피식 웃었고 목진도 히쭉 웃더니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임주 등한테 고개를 돌렸다.
“임주 조장, 이번엔 고마웠어.”
“하하, 목진아, 그런 말은 하지도 마. 받은 것이 있는데 당연히 보답해야지.”
임주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휘익 젓자 수백 소조의 조장이 원패를 꺼내어 점수를 목진한테 건넸다.
이에 목진 수중의 원패가 번쩍이며 점수가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였다.
18만…… 20만…… 23만…… 26만……
원패는 점수가 26만 점이 되었을 때, 드디어 움직임을 멈췄는데 사람들은 엄청난 점수에 소름이 끼쳤다.
목진의 점수는 한꺼번에 10만 점 가까이 상승했다.
이와 동시에 목진이 이끄는 소조는 다시 희현의 소조를 초월해 1위에 올랐다. 이렇게 2각도 안 되는 사이에 다시 1위의 주인이 바뀌었다!
목진은 폭등한 점수를 확인하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임주 등을 향해 다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약속했던 대가를 지불했다.
이에 임주 등 조장들한테 한 줄기 빛이 되돌아갔다. 그것은 옥병으로 그 속에는 놀라운 영력 파동을 내뿜는 지존 영액 다섯 방울씩이 들어있었다.
임주 등은 옥병 속의 지존 영액을 확인하더니 이내 화색이 되어 목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주위에서 목진 등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벼랑 끝에 몰렸던 목진이 한순간에 역전해 다시 1위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참 대단해.”
누군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리고 아무도 목진의 수법을 나무라지 않았다. 목진은 그저 희현이 한 것 그대로 갚아준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