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화. 결승전
사람들은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역이라 할 수 있는 만봉령원에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오대원에서 남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바로 만봉령원이었다. 여인들 속에 파묻히는 것을 마다할 사내는 없었다.
“청선 선배가 역시 3위권에 들었어!”
“히히히, 역시 내 우상이야.”
“난 청선 언니가 1위를 할 줄 알았는데 올해 학원 대회에는 실력자가 정말 많나 봐.”
그러다 사람들은 두 번째 층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하얀색 도포를 입은 다섯 명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앞장선 사람의 안색이 잔뜩 어두워 보였다.
“탈락전의 2위는 성령원이다!”
“저들의 조장이 희현이지? 올해 1위 유망주라고 들었는데 왜 2위인 거지?”
“글쎄…….”
“희현도 2위 밖에 못 했다니, 1위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황금 계단의 정상으로 향했는데 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곳에서 금광이 서서히 사라지며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조장은 감색 도포를 입은 소년으로 늘씬한 몸매에 훤칠하게 생겼고 그윽한 눈에서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소년 옆에는 감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서 있었는데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에 다들 깜짝 놀랐다.
소녀는 바람에 휘날리는 장발마저도 아름다웠으니, 만봉령원의 학생들도 감히 그녀와 온청선을 비교하지 못했다. 그 옆에도 또 예쁘장하게 생긴 여인이 서 있었는데 앞선 소녀보다는 못해도 무척 단아해 보였다.
또한, 여인들 옆에는 늘씬한 청년 두 명이 서 있었다. 한 명은 훤칠하고 한 명은 기품이 남다른 것이 절대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이 소조에 속한 사람들은 모든 방면에서 놀라워 보였다.
사람들은 정상에 나타난 소조를 보더니 순간 조용해졌다.
“우리 북창령원 소조야!”
누군가 정적을 깨고 외치자 북창령원 학생들은 잔뜩 흥분해 환호했다.
그들은 순간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도 목진 등이 탈락전에서 1위를 따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목진 등은 무려 희현, 온청선, 무령, 유청운 등 기타 오대원의 정예들을 꺾고 1위를 차지했다.
“목진 형, 대단해!”
북창령원 학생들은 얼굴이 한껏 상기된 채 포효하였다. 이 성적은 북창령원이 오대원에 들은 이후로 처음 가져보는 성적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엽경령, 소령아, 우희 등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잠시 말문이 막혔다.
“목진 오라버니는 너,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우희는 너무 격동되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말까지 더듬었다. 목진 등이 이룬 성과는 북창령원 전체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변태 같은 녀석.”
엽경령도 몰래 중얼거렸고 옆에 있는 소령아도 너무 놀라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힘들었다.
“우와! 목진 오라버니는 역시 멋져요!”
이내 순아가 외쳤다.
영계는 한시름 놓았다. 반년 사이, 더 성숙해지고 부쩍 성장한 소년을 보니 괜히 뿌듯했다.
한편, 북창령원의 반응에 비해 다른 학원 사람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특히 성령원 사람들은 여태껏 1위는 희현이라고 확신했다가 1위를 빼앗긴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탈락전 1위가 진정한 1위인 것도 아닌데 우쭐대기는, 결승전은 지금부터 시작인걸.”
성령원의 일부 학생들은 괜히 투덜댔다.
만봉령원의 소녀들도 황금색 석대의 정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올해의 탈락전 1위가 북창령원일 줄은 몰랐어.”
“조장이 제법 잘생긴 것 같지 않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북창령원에 언제 저렇게 대단한 인물이 있었지?”
* * *
만봉령원의 소녀들은 목진이 무척 궁금했다.
“저 소년은 목진이라고 북창령원의 신생이야.”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에 소녀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푸른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복잡한 눈빛으로 황금 계단의 정상에 서 있는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소녀는 만봉령원의 수많은 여인 속에서도 유독 이목을 끌었는데 머리를 한데 묶어 발랄해 보였다.
“천아야, 혹시 저 소년을 알아?”
누군가 흠칫 놀라 물었다.
“천아와 목진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야.”
소녀의 옆에 서 있던 빨간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얼굴이 낯익은 그녀는 북령원 출신 홍비단이었고 그들이 말한 천아는 어릴 때부터 목진과 함께 자라다 만봉령원에 온 당천아였다.
2년 사이, 앳된 소녀는 어느덧 여인이 돼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소년한테서 차마 눈을 떼지 못했다. 목진은 북령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성장해 있었다.
“히히, 천아와 저 소년이 그런 관계라니! 결승전 때, 청선 언니와 맞서게 되면 좀 봐주라고 해봐. 그럼 원장님께서 그를 만봉령원에 들일지도 몰라.”
소녀들이 히쭉 웃으며 한 말에 당천아는 부끄러워 이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다시 눈길을 돌렸는데 온청선 못지않게 예쁜 낙리를 보고는 왠지 불안해졌고 만봉령원에 온 것이 처음으로 후회되었다.
그러나 역시 목진이 저토록 훌륭해진 모습을 보니 무척 기뻤다.
낙리의 존재에 잠시 마음이 아팠던 그녀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목진을 응원했다.
황금 계단에 여덟 소조가 전부 나타나자 사람들은 하늘이 떠나가라 환호했다. 비록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한 학원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곧 시작할 결승전을 기다렸다.
황금 계단에 서 있는 소조들은 수많은 대결을 거쳐 살아남은 소조로 학원 대회의 최고 전투력을 자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허공의 광좌에 앉아있는 원장들의 표정도 처음과 달라졌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태창 원장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북창령원 학생들의 등장에 그는 화들짝 놀라더니 그의 얼굴은 곧 희열로 가득 넘쳤다.
그는 목진 등이 결승전에 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탈락전 1위를 할 거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허허, 태창 원장, 올해 북창령원에 대단한 신인이 들어왔나 보네?”
무령원의 무 원장이 목진 등을 힐끗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을 뿐이네. 무령원의 무령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지 않나? 그는 진짜 실력을 감추려고 일부러 3위권을 포기한 것이 분명하네.”
태창 원장은 아닌 척했지만 무척 기뻤다. 이토록 훌륭한 성적을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몰랐다.
“북창령원의 실력이 확실히 늘었나 보군.”
여태껏 조용히 앉아있던 천성 원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태창 원장, 축하하네.”
천성 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희현이 탈락전의 1위를 하지 못한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탈락전일 뿐이지 않나? 축하는 너무 이르네.”
태창 원장은 여우 같은 천성 원장을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대가 얼마나 대단하든 우리 북창령원에서는 전력을 다해 상대할 걸세.”
“그럼 기대하겠네.”
천성 원장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머지 세 원장을 쓰윽 훑었다.
“8강이 정해졌으니 결승전을 시작하는 게 어떤가?”
이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천성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몸집에 비해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조용해졌고 황금 계단의 정상에 서 있던 목진도 고개를 들고 하얀색 도포를 입은 성령원 원장을 쳐다봤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자의 힘이었다.
“대결을 시작하기에 앞서 결승전에 진출한 여덟 소조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결과가 어떻든 너희는 이미 모든 학원을 대표하는 정예들이다.”
천성 원장의 목소리에 천지가 진동하였고 사람들 체내의 영력마저 파르르 떨렸다.
“탈락전은 끝났으니 지금부터 학원 대회의 마지막 결승전을 시작할 것이다. 결승전에서 승리한 자만이 최강자로 거듭날 것이고 모든 학원을 대표할만한 최정예가 될 것이다.”
그의 말에 학생들의 피가 끓어올랐다. 최정예란 모든 이들이 원하는 일인데 이를 이룰 수 있는 소조는 여덟 조뿐이었다.
“그중 최종 우승하는 소조에게는 조원마다 지존 영액 천 방울과 지존단(至尊丹)을 한 알씩 줄 것이다.”
이에 다들 눈이 이글거렸다. 지존 영액은 지존경을 돌파하는데 필요한 물건으로 천 방울은 일부 파벌한테도 엄청난 수량이었다.
그 외, 지존단은 더 희귀한 물건으로 지존 영액을 어느 정도 제련하여야 만들 수 있어 하품 신기 못지않게 진귀했다.
제아무리 신백난 세 번째 단계에 이르렀어도 대량의 지존 영액이 있어야 지존경에 이를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번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 일단 실패하면 열심히 모은 지존 영액을 한순간에 잃게 되는데 지존단을 확보하면 성공 확률이 몇 배는 오른다.
그렇기에 아직 지존경에 이르지 못한 사람한테 지존단은 신기보다 더 소중한 보물이었다.
“지존단이라…… 엄청나군.”
목진마저도 감탄했다. 그에게는 취영완이 있어 지존영액 천 방울이 그렇게까지 탐나지는 않았지만, 지존단이란 말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오대원에서 힘을 모았기에 저 정도 보상을 갖춘 것이 분명해. 볼만 한걸.”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존단이 진귀하긴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너는 낙신족의 차기 낙황이니 지존단 따위에 마음이 움직일 리 없지.”
그 말에 낙리는 목진을 힐끗 노려봤다. 그런데 그 모습마저 매력적이라 사람들은 가슴이 콩닥거렸다.
목진은 갑자기 음산한 눈빛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희현과 눈이 마주쳤다.
음침한 안색을 보아하니 이번 탈락전 순위 때문에 타격이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마지막에 갑자기 5만 점을 얻어 목진을 완전히 밟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소년은 더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와 다시 1위의 자리를 되찾았다.
희현이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있지 않았으면 아마 당장에라도 8위권 소조를 찾아 점수를 땄을 것이다.
그러나 목진은 희현한테 그럴 시간조차 주지 않았으니, 1위의 자리를 되찾자마자 탈락전을 종결시켰다.
하여 목진한테 꼼수를 쓰려던 희현은 결국 제 발등을 찍고 탈락전이 끝나 순위를 확정지었다.
비록 탈락전의 순위가 최종 순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누군가한테 짓밟히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여태껏 당해본 적 없었고 영로에서도 결국 목진을 내쫓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그때 목진이 희현의 음산한 눈빛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고마웠어.”
목진의 말에 희현은 숨이 턱 막혔다. 그는 다시 한기 어린 눈빛으로 소년을 쳐다봤다.
“벌써 우쭐대다니, 너무 이른 것 아니야?”
희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처음부터 날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 안 그러면 넌 4위권에 들지도 못할 거야.”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목진도 피식 웃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너와 제대로 싸워줄게.”
“지난번 싸움 때문에 괜히 자신만만해졌나 보네?”
희현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괜히 우쭐댔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너도 조심해.”
목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두 사람의 살기 넘치는 대화에 낙리는 한마디도 거들지 않았지만 목진 옆에 조용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모습만으로도 희현은 잔뜩 화가 났다.
“그럼 제비뽑기로 상대를 정하겠다!”
말을 마친 천성 원장이 옷깃을 휘날리자 광구 여덟 개가 황금색 석대 위쪽에 나타났다.
“임의로 광구를 선택하거라. 같은 색상을 선택한 소조가 각자의 상대가 될 것이다.”
이에 여덟 소조의 조장들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각자 광구를 하나씩 집었다. 목진은 낙리, 심창생 등을 힐끗 보더니 숨을 가볍게 내뱉고 광구를 가볍게 터뜨렸는데 빨간색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와 동시에 다른 소조 조장들도 광구를 터뜨려 일곱 갈래의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으니, 다들 잔뜩 긴장하며 이들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