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영의 그림자
하늘에 뜬 방대한 청색 광진 위쪽에 커다란 청색 그림자가 서 있었는데 그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온 신령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한 위압감을 형성하며 주위를 쓰윽 훑었다.
청색 그림자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강력한 위압감만으로도 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저건 뭐지?”
“유청운의 말로는 풍령족의 풍조래.”
“풍조면 풍령족을 만든 절세의 강자잖아? 아직 살아계신단 말이야?”
“풍조 본인일 리 없지. 유청운이 풍령족의 밀술과 혈맥으로 영의 그림자를 소환한 것뿐이야.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위력은 엄청나.”
“유청운이 목진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무려 풍조까지 소환하다니!”
* * *
사람들은 유청운의 수법에 놀라 수군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청색 그림자는 신백난 세 번째 단계에 이른 고수도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다.
유청운이 탈락전 1위의 조장인 목진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데는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편, 북창령원 학생들은 목진이 자못 걱정되었다.
“유청운은 역시 대단해.”
엽경령이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8강에 들어 싸우고 있는 이들 중 호락호락한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탈락전은 몸풀기에 불과했고 다들 지금부터 숨겨뒀던 필살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목진 오라버니가 해낼 수 있겠죠?”
우희가 잔뜩 긴장하며 묻자 엽경령은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그녀가 뭐라 할 수 있는 정도의 대결이 아닌지라 목진한테도 엄청난 필살기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청운이 소환한 풍조의 영의 그림자의 위력이 상당하긴 해도 이대로 당할 목진이 아니야.”
영계가 미소를 지으며 소녀들을 위로했다. 풍령족이 강할지는 몰라도 절대 목진의 어머니가 속한 신비로운 종족보다 못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녀처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왜 그 종족을 그토록 두려워한단 말인가?
영계의 말에 엽경령 등은 조금이나마 시름이 놓였지만,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석대에 서 있는 목진도 거대한 청색 그림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목진, 네가 이 공격을 받아낸다면 내가 패배를 인정할게!”
말을 마친 유청운이 인법을 바꾸자 청색 그림자가 광진에서 나와 목진한테 장풍을 쐈다. 순간 천지의 영력이 흩어졌고 석대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났으며 목진의 옷도 그 여파에 몸에 찰싹 들러붙었다.
소년은 무서운 청색 그림자를 보며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내 정색하여 결인했다.
이에 뒤쪽의 흑백이 섞인 영력이 갑자기 놀라운 속도로 한데 모여 수백 장 정도의 거대한 흑탑을 만들었다. 오래된 흑탑에는 금룡이 누워있었고 나지막한 용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거대한 흑탑을 본 태창 원장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는 목진의 어머니가 똑같은 흑탑으로 손쉽게 황룡 지존을 없앤 장면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그런데 목진도 이제 그 무서운 수법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흑탑이 정녕 유청운이 소환한 풍조의 영의 그림자를 막을 수 있을까?
목진의 뒤쪽에 나타난 거대한 흑탑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내뿜은 영력 파동으로 보면 유청운이 소환한 영의 그림자에 못 미칠 것 같아 목진의 필살기가 과연 상대방을 꺾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반면, 실력이 막강한 원장들은 흑탑의 이상한 파동에 흠칫 놀라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결은 갈수록 흥미로워졌다.
두 청년 중 누구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없었다.
유청운도 목진 뒤쪽에 생긴 검은색 광탑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희현도 그가 소환한 영의 그림자를 버거워했으니 목진 따위는 절대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유청운이 피식 웃으며 인법을 바꾸자 목진을 향한 거수는 점차 빛났고 무서운 영력 파동으로 인해 단단한 황금색 석대에 커다란 자국이 생겼다.
목진은 고개를 들어 공간을 가르며 자신에게 향하는 지극히 난폭한 힘을 느꼈는데 현재의 육신으로 이 정도 압박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청색 영의 그림자의 공격만 주의하면 되었다.
후우.
목진은 백기를 서서히 내뱉더니 이내 정색하며 인법을 바꿨다.
위잉.
검은색 광탑이 진동하더니 표면의 황금색 용의 무늬가 눈부신 빛을 발했고 용 울음소리가 들리며 금룡이 날아올랐다.
녀석은 고개를 들고 포효하며 꼬리를 흔들더니 한 갈래 금광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는데 그 모습에 진정한 용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는 유청운이 청광 장검으로 만들어낸 풍룡보다도 더 강력한 위압감이었다.
이렇게 금광 한 줄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청광 거수와 부딪쳤다.
쿵!
금광과 청광이 부딪쳐 주위로 퍼지자 하늘은 두 가지 색으로 물들었고 지극히 난폭한 영력 충격을 동반했다. 두 사람의 공격이 부딪친 공간은 격렬하게 떨리며 일그러졌다.
“목진이 유청운의 공격을 막아냈어!”
누군가 깜짝 놀라 외쳤다. 금광이 휘몰아치자 청색 장인이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목진은 역시 실력이 상당해. 탈락전 1위를 할 만해.”
유청운도 인상을 찌푸리며 인법을 다시 바꿨는데 청색 영의 그림자가 포효하더니 청색 장인이 하늘을 가르며 신속하게 내리꽂혔다.
쿵! 쿵!
무서운 충격파가 휘몰아쳤는데 청색 장인이 아무리 공격해도 황금빛은 끄떡없었다.
이에 유청운의 안색이 드디어 어두워졌다.
“네 공격이 끝났으면 지금부터는 내가 공격할게.”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가 힘껏 발을 구르자 뒤쪽의 거대한 흑탑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슉!
검은색 광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장 정도로 커지더니 청색 영의 그림자를 가두려 했다.
“흥!”
이에 청색 영의 그림자는 입을 쩍 벌리고 음파 공격을 개시했다. 음파 공격에 흑탑은 격하게 진동하더니 음파를 전부 삼켜 탑 내에서 없애 버렸다.
“들어가!”
목진의 말에 흑탑은 청색 영의 그림자를 탑 속으로 빨아들였다.
“감히 저분을 삼키다니, 겁도 없이!”
유청운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인법을 바꾸자 청색 영의 그림자에서 난폭한 영력 파동을 내뿜으며 무서운 장풍을 쐈다.
쿵! 쿵!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장풍에 맞은 흑탑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네 능력에 비해 흑탑이 과분하긴 해. 그러니까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워.”
목진은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제자리에 앉아 결인하였다.
“대부도결, 부도지염(浮屠之炎), 연화천지(煉化天地)!”
목진은 신속하게 인법을 바꾸더니 서서히 눈을 감고 속으로 외쳤다.
크으으으!
그때 대부도탑에서 엄청난 용 울음소리가 들리며 1층부터 3층에 새겨졌던 금룡이 부활해 탑 속으로 날아들어 가더니 황금빛 화염으로 변해 활활 타올랐다.
이는 목진의 어머니가 황룡지존을 태울 때와 거의 비슷했지만 위력은 많이 차이가 났다.
목진의 어머니가 나섰을 때는 수백 마리의 금룡이 부도지염으로 변했는데 아직 목진은 그 정도 실력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청운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한편, 황금색 화염이 나타나자 청색 영의 그림자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지한 것처럼 온몸을 움츠렸고 밖에 있는 유청운의 안색도 한껏 어두워졌다. 그마저도 엄청난 위험을 감지했다.
“공격하라.”
그러나 목진은 그들의 반응은 무시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황금색 화염이 순식간에 청색 영의 그림자를 감쌌다.
이에 청색 영의 그림자는 눈부신 푸른빛을 내뿜어 방어벽을 형성했고 황금색 화염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황금색 화염의 파괴력이 엄청나 푸른빛으로 만들어진 방어벽이 빠르게 무너졌다.
사람들은 탑 사이사이로 탑 속 상황을 살피더니 화들짝 놀랐다. 유청운이 소환한 영의 그림자마저 황금색 화염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유청운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깊게 숨을 들이켜며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진을 노려보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는데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슈슉!
그가 자신의 피로 앞쪽 공간에 오래된 부적을 그리자 탑 속의 청색 영의 그림자의 청광이 짙어졌고 흐릿했던 얼굴이 점차 또렷해지며 놀라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유청운이 영의 그림자를 이 정도까지 소환할 수 있다니, 제법이군.”
원장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청운이 소환한 영의 그림자의 얼굴이 뚜렷해질수록 실력이 점차 강해졌는데 어느덧 풍조의 진정한 영의 그림자가 강림한 것처럼 막강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주위의 청광이 한껏 짙어진 청색 영의 그림자는 황금색 화염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고 두 사람의 무서운 힘은 서로를 공격하느라 바빴다.
비록 황금색 화염이 아직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전처럼 완벽하지는 않았다. 이러다 목진의 영력이 모두 소진되면 유청운이 역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백난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유청운에 비해 막 신백난을 건넌 목진은 영력에서 큰 우세를 차지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잔뜩 긴장하며 목진과 유청운을 바라봤다.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 일단 열세에 처하면 바로 승패가 갈릴 것이다.
그런데 그때, 목진이 서서히 눈을 뜨더니 태연하게 다시 인법을 바꿨다.
위잉!
어두웠던 대부도탑 4층에서 황금빛이 나타나더니 빠르게 퍼져 황금색 용의 무늬를 이뤘다.
이에 유청운은 화들짝 놀랐다.
크으으으!
용 울음소리와 함께 황금색 용의 무늬는 탑 벽에서 벗어나 황금색 화염으로 변해 다시 청색 영의 그림자로 향했다.
활활!
네 번째 금룡에서 비롯된 화염의 가세에 황금색 화염은 훨씬 밝아졌고 위력도 몇 배는 거세졌다.
“부도지염, 연화!”
목진이 흑탑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고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외치자 황금색 화염은 활활 타오르며 청색 영의 그림자를 완벽히 휘감았다.
* * *
허공에 떠 있는 희현은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뒤쪽에 커다란 태양을 만들었는데 이는 놀라운 영력 위압감을 형성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정도 공격은 신백난 세 번째 단계에 이른 고수라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희현이 여덟 명의 조장 중에서 유명한 것은 역시 그럴만한 능력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었다.
희현은 어두운 황금빛을 띤 온불승의 오른손을 바라봤는데 순금으로 만든 것 같은 손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지존의 손이라…….”
희현은 온불승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엄청난 걸 얻었군.”
희현은 그제야 온불승이 수수한 조원들을 이끌고 8강에 진출한 이유를 알았다. 평범해 보이는 녀석이 엄청난 필살기를 들고 있었다.
“지존의 손이라니!”
주위에 있던 학생들은 깜짝 놀라 온불승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녀석의 손이 지존의 손이란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이에 온불승도 가볍게 웃으며 희현을 바라봤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유적 대륙의 오래된 유적지에서 한 선배님이 정혈로 남기신 뼈를 얻었는데 마침 나와 잘 맞았고 이식술에 대해 알았던지라 성공했어.”
“운이 너무 좋았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지존급 강자가 별세하면 육신이 천 년간 남아있어 누군가 이를 얻는다고 해도 체내에 이식할 수가 없었다. 자기 물건이 아닌 것을 이식하면 탈이 날 것이 분명했고 엄청나게 잘 맞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온불승은 그 어려운 걸 해냈으니 엄청난 행운아였다.
“그런데 영력 위압감으로 보면 그 주인은 생전에 기껏해야 5급 지존이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 손의 힘으로 나를 이기기란 쉽지 않을 거야.”
“시도해보지도 않고 결과를 단정 지으면 안 되지.”
희현의 무덤덤한 말에 온불승은 가볍게 웃었다. 그는 희현 같은 강적을 만나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럼 지존급 강자가 별세한 후, 손에 얼마나 많은 힘을 남겼는지 한번 볼까?”
희현은 온불승을 힐끗 보더니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뒤쪽에 있던 태양도 점차 또렷해지며 커졌다.
이에 천지의 영력이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희현이 만든 태양이 빛을 발하자 주위의 영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희현은 살수를 둬 대결을 끝낼 작정인 듯했다.
후우.
온불승도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황금으로 만든 것 같은 손을 꽉 잡았는데 옷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고 온몸의 피는 불끈 튀어 오른 핏줄을 거쳐 오른손에 모여들었다.
이에 오른손은 더 어두워졌고 위압감도 점차 강해졌다.
두 사람의 최후의 일격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들 숨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