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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82화 (381/1,000)

382화. 심판지경(審判之鏡)

한편, 두 갈래의 웅장한 영력은 미친 듯이 부딪치며 선홍색과 짙은 노란색으로 커다란 석대를 반으로 선명하게 갈라놓았다.

혈천하와 무령은 웅장한 영력에 뒤덮여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무서운 영력 충격에 엄청난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서 두 사람의 대결이 고조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크으으으!

그때 석대에 갑자기 분노에 가득 찬 포효가 들려왔다. 이는 사람이 아니라 영수의 울부짖음 같았는데 난폭한 소리에 선홍빛 영력이 신속하게 물러났다.

이러한 광경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목진과 낙리도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짙은 노란색 영력에서 갑자기 수백 장 정도의 노란 원숭이가 나타나 검은색 장곤을 들고 혈안이 되어 서 있었다.

이에 천지의 영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저건…….”

목진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영수방 지방 15위인 전신원이잖아?”

옆에 서 있는 낙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무령이 전신원의 정백을 제련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무령원의 도움 없이 무령 혼자서는 절대 이토록 강력한 영수의 정백을 제련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령이 이런 필살기를 숨겼다니…….”

심창생 등도 이내 감탄하더니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토록 강한 영수의 정백은 일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운이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고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영수의 정백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심창생 등도 신백경 시기에 정백을 제련했었지만 제련한 영수의 정백이 평범해 실력이 향상되자 그 힘을 결국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이 만약 무령처럼 신백경 시기에 영수방 순위권 앞쪽에 있는 강대한 영수의 정백을 제련했었다면 지금의 무령처럼 엄청난 필살기를 손에 쥘 수 있었을 것이다.

“혈천하가 곧 무너질 것 같아.”

조용히 지켜보던 이현통이 입을 열었다. 무령이 전신원을 소환하자 전세는 바로 기울었고 선홍빛 영력은 맥없이 물러났다. 이대로라면 무령이 승리할 것이다.

이에 목진도 두 사람의 대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는 혈천하가 과연 어떤 필살기를 숨겨뒀을지 궁금했다. 무령을 상대로 녀석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퍽!

그때 전신원은 검은색 장곤을 휘둘러 선홍빛 영력을 가르며 그 속에 숨은 한 사람을 공격했는데 난폭한 영력 파동에 주위의 공간에마저 은은하게 흔적이 남았고 선홍빛 영력은 어느새 수십 장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검은색 장곤이 곧 선홍빛 영력을 전부 부숴버리려 할 때, 엄청난 변고가 생겼다.

쿵!

선홍색 비늘을 뒤집어쓴 주먹이 불쑥 나타나 검은색 장곤을 공격하자 아래쪽 지면에 순간 균열이 일었고 전신원은 바닥에 깊숙한 흔적을 남기며 뒤로 물러난 것이다.

“뭐지?”

다들 깜짝 놀라 얼마 남지 않은 선홍빛 영력을 쳐다봤다. 혈천하가 도대체 무슨 수로 전신원을 물리쳤단 말인가?

심창생 등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목진은 선홍빛 영력이 그윽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선홍색 비늘을 휘감은 주먹이 나타났을 때, 개자탁 속에 잠든 구유작의 검은 알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혈천하도 강대한 영수의 정백을 제련했단 말인가?”

목진은 한껏 정색한 채 중얼거렸다. 녀석은 역시 엄청난 필살기를 숨기고 있었다.

그때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자 다들 소름이 끼쳤다.

온몸이 선홍색 비늘로 뒤덮인 사람 모양의 영수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는데 두꺼운 혈갑을 입고 등에는 선홍색 뼈가시가 난 것이 상당히 무서워 보였다.

“저건 뭐지?”

“영수방 지방 13위인 혈마수야.”

낙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13위인 혈마수라고?”

목진은 흠칫 놀랐다. 혈마수는 영수 중에서 포악하기로 유명했고 11위인 구유작과 순위도 거의 비슷해 그 실력이 엄청났다. 다만, 녀석이 너무 흉악해 이를 제련하면 주인의 성격도 덩달아 사나워진다고 했다.

“혈신족은 혈해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수많은 사람의 정혈로 만들어진 거야. 그들은 이것으로 혈마수와 계약을 맺어 종족의 실력을 끌어올리지.”

낙리는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혈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혈신족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낙신족을 대거 침범하였고 우리 백성들을 잡아 혈해로 만들어 혈마수에게 먹이로 주곤 했어!”

이에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종족 사이의 전쟁이 잔인하다고 예상하긴 했지만 혈신족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줄은 몰랐다. 낙리가 혈신족을 그토록 미워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를 갈며 혈천하를 바라보는 낙리를 보니 목진은 마음이 아팠다. 소녀가 짊어져야 할 짐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거웠다. 그녀는 지금쯤 수많은 백성을 보살펴도 모자란 데 2년이란 시간을 들여 목진과 함께 하러 북창령원에 온 것이다.

낙리는 늘 목진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곤 했다.

목진은 조용히 소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아직 혈신족을 상대할만한 능력이 없었지만 언젠가 그녀를 위해 꼭 혈신족을 소멸하리라 마음먹었다.

낙리도 목진의 마음을 읽은 듯 손에 힘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대결은 무령이 졌어.”

낙리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혈마수의 힘을 빌린 혈천하의 실력은 무령을 훨씬 뛰어넘었고 전신원은 혈마수의 혈권에 꼼짝 못 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쿵!

마지막 일격에 혈마수는 뒤로 물러나며 팔뚝의 비늘이 한층 벗겨졌고 전신원은 멀리 튕겨 나가며 몸통이 빠르게 작아지더니 다시 무령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석대에 깊숙한 흔적을 남기며 간신히 멈춰선 무령은 옷이 어느새 갈기갈기 찢어졌고 피를 토하였는데 침울한 표정으로 혈마수를 노려봤다. 그는 혈천하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 몰랐다.

그때 혈마수도 작아지더니 다시 혈천하로 변했는데 그는 콧방귀를 뀌며 무령을 보더니 팔짱을 끼고 목진과 낙리한테 고개를 돌려 씨익 웃었다.

그 모습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엄지손가락을 천천히 내밀다가 아래로 힘껏 내리꽂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무덤덤한 표정에서 엄청난 패기가 느껴졌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석대가 조용해지자 치열한 싸움도 드디어 끝났는데 다들 예상치 못한 결과에 깜짝 놀랐다. 명성으로만 보면 무령은 3위권에 들고도 남았는데 결국 혈천하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잔인한 현실에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올해의 학원 대회는 역시나 치열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무령원 학생들은 시무룩해졌다. 무령의 패배는 이들한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광좌에 앉아있던 무령원의 원장 무천왕도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혈천하를 바라봤다.

“저 종족 사람들은 왜 무슨 일에나 참견하고 난리야.”

무천왕도 무령의 패배에 잔뜩 언짢은 듯했다. 그렇지만 무 원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혈천하의 참가 자격까지 박탈할 수는 없었다. 그럼 혈신족에서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었다.

“대결을 마쳤으니 다음 대결을 발표합시다.”

성령원의 천성 원장이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혈천하의 실력이 상당하긴 해도 그는 희현을 믿어 의심치 않아 올해의 학원 대회도 분명 성령원이 1위를 할 거라 여겼다.

이에 기타 원장들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천성 원장은 그제야 옷깃을 휘날리며 말했다.

“이렇게 첫 차례 대결은 끝났고 4강에 진출한 소조는 최정예 소조로 올해 학원 대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대결을 펼칠 것이다!”

“성령원!”

천성 원장의 말과 함께 눈부신 빛의 기둥이 희현 등을 비췄다.

“북창령원!”

그의 외침에 또 다른 빛의 기둥이 목진 등을 비추자 하늘이 떠나갈 듯한 환호가 들렸는데 북창령원 학생들의 소리가 가장 높았다.

“만봉령원!”

온청선은 장발을 드리운 채, 왼손으로 황금색 장창을 들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었는데 찰싹 들러붙는 황금 갑옷으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에는 오만한 표정이 한껏 드러났다.

그 뒤에 빈아, 낙아 등 나머지 소녀들도 활짝 웃었다.

“혈신원!”

마지막 빛의 기둥이 혈천하 등을 비췄는데 혈천하는 무덤덤하게 팔짱을 끼고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흘겨봤다.

네 갈래의 빛의 기둥에 비친 네 소조는 학원 대회의 최정예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반년이란 기나긴 탈락전을 거쳐 결승전에서 오른 이들은 그제야 사람들의 경외의 시선과 환호를 마음껏 누를 수 있었다.

“드디어 4강이 나타났으니 앞으로의 대결은 더 무서울 것 같아. 그런데 과연 누가 1위를 할까?”

“난 성령원의 희현이라고 봐. 그의 진정한 실력은 아무도 모른다잖아.”

“만봉령원의 온청선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야. 첫 결승전에서 큰 활약은 없었지만 아무리 희현이라도 그녀를 무시하지는 못해.”

“그건 그래, 나도 원장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어. 온청선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닐 거야.”

“그럼 유청운마저 쓰러뜨린 북창령원의 목진은 쉬울까? 유청운의 실력은 아마 무령 못지않을 거야.”

“혈천하도 만만치 않아. 무령을 꺾다니, 대단한 사람이야.”

“올해 학원 대회의 1위 싸움은 백 년 이래 가장 치열한 싸움이 될 것 같아.”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네 소조의 실력이 엄청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누가 1위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석대 위에 서 있는 네 소조는 너무 평온해 보였다.

역시 학원 대회의 최정예들이라 그런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대결은 어떤 방식으로 할지 모르겠군.”

심창생은 나머지 세 소조를 훑어보더니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하나같이 강력한 상대라 누구와 싸우든 치열한 싸움이 예상되었다.

“누구와 싸우게 되든 최선을 다하면 돼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와 낙리가 있으니 우리야 수월하지.”

이현통도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들에게는 핵심 인물이 둘이나 있었는데 한 사람은 목진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낙리였다. 이미 사람들 앞에 실력을 드러낸 목진과 달리 네 조장 못지않게 실력이 뛰어난 낙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았다.

목진은 이현통 등을 흘겨보더니 갑자기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낙리, 희현, 온청선, 혈천하 등도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위쪽 공간이 갑자기 격렬하게 일그러지더니 수천 장 크기의 거물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 정체에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수천 장 크기의 방대한 동경으로 주위에 오묘하기 그지없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고 난해하고 오래된 거울은 먼지가 잔뜩 쌓인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동경이 나타나자 이곳 공간은 이토록 엄청난 물건을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무질서해지기 시작했고 흐릿한 거울에는 대천세계 전체를 비출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저건…….”

목진은 체내의 대서미마주와 신비로운 종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건 오대원의 신기인 심판지경이야.”

낙리의 낙신검마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검광을 발하며 검음을 울려 동경과 싸우려 하는 것 같았다.

“심판지경이라…….”

목진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그가 영로에 들어가 낙리와 만나게 된 것도 심판지경 덕분이었고 영로에 들어간 사람은 전부 심판지경의 간택을 받았다.

“저건 무슨 등급의 신기야?”

목진이 낙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아마 상품을 초월했을 거야.”

낙리의 대답에 목진은 깜짝 놀랐다. 상품을 초월한 신기라니, 오대원에 실력이 막강한 오래된 종족도 갖추기 어려운 보물이 있다는 것이 상당히 놀라웠다.

“심판지경은 원고 시기에 전해진 거라고 들었는데 그 빛은 위면을 뚫고 하위면까지 비춰 아무도 그를 상대로 도망칠 수 없어. 원고 시기에 심판지경의 빛이 닿은 곳이면 아무리 지존급 강자라도 바로 소멸한다고 들었어.”

“그렇게 무서워?”

목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렇다면 심판지경으로 어머니가 있는 곳을 비출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목진은 바로 생각을 접었다. 그의 어머니는 목진을 감추려 애쓰고 있는데 함부로 심판지경을 사용했다가 정체를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는 아직 신비로운 종족과 상대하기에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전설일 뿐이야. 그런데 심판지경은 원고에 재앙을 겪어 상처가 났는지 위력이 그렇게까지는 안 돼.”

낙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원장님들께서는 왜 갑자기 심판지경을 소환하신 걸까?”

소훤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심판지경은 한 학원에 소속된 게 아니라 오대원의 공동 소유로 원장 다섯 명이 동시에 나서야 이를 소환해낼 수 있었다.

“혹시 두 번째 대결을 위해서일까?”

“아마 그럴 거예요.”

심창생의 말에 목진은 낙리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들은 이 엄청난 신기를 소환할 리 없었다.

그때 성령원의 천성 원장도 가볍게 웃으며 심판지경을 가리켰다.

“너희 예상대로 두 번째 대결은 심판지경에서 치를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떠들썩해졌고 목진 등도 잔뜩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갈수록 결승전이 흥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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