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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86화 (385/1,000)

386화. 낙리와 혈천하의 대결

“혈신원의 혈천하는 북창령원과의 대결을 청한다!”

“성령원의 희현은 만봉령원과의 대결을 청한다!”

두 사람의 말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희현과 혈천하는 잠시 같은 편이 되려는 것이다.

희현과 온청선, 혈천하와 낙리의 싸움에 사람들은 흥미진진해졌다. 이들의 싸움이야말로 진정한 최정예들의 대결이었다.

“온 선배, 힘내요. 선배라면 희현을 이길 수 있을 거예요!”

“낙리, 힘내. 북창령원은 언제나 너희 편이야!”

“미녀들, 힘내! 구령령원(九嶺靈院)도 너희 편이야!”

“우리 춘천령원도 너희 편이야!”

* * *

낙리와 온청선은 희현과 혈천하보다 인기가 훨씬 좋았다. 관전하러 온 사람 중 성령원과 혈신족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두 여인을 지지했다.

이에 희현과 혈천하는 무덤덤하게 웃었다. 1위는 인기가 높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낙리와 온청선도 마주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상대한테 다가갔다.

각각 황금색 장창과 예리한 장검을 들고 석대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했다.

낙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선홍빛 도포를 입은 상대방을 바라보며 조용히 살기를 품었다.

“허허,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낙리의 살기를 느낀 혈천하는 흠칫 놀랐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어렵게 혈신족에서 나왔는데 다시는 돌아가지 마.”

낙리가 혈천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낙신족의 차기 황이라 그런지 말은 참 그럴듯하게 하는군.”

혈천하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를 혈신족으로 잡아가면 낙신족은 앞으로 우리한테 굽신거려야겠지?”

혈천하의 교묘한 말놀림에도 낙리는 아무렇지 않게 서 있더니 서서히 눈을 감았다.

위잉!

낙신검은 놀라운 검음과 함께 엄청난 검기를 발산하였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단단한 황금색 석대는 검기로 인해 깊이가 다른 흔적이 잔뜩 생겼다.

그러다 낙리가 손을 가볍게 들자 수중의 낙신검은 혈천하를 겨눴고 앞쪽 공간은 더는 검기를 견디지 못하고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혈천하 역시 정색하며 낙리 수중의 장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꽤 멀리 떨어졌는데도 검기에 피부가 찌릿했다.

혈신족의 황자인 혈천하는 낙신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낙신족의 대신기로 낙리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혈신족의 수많은 지존급 고수들이 낙신검에 죽었다.

“낙신검의 위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네 실력으로는 아직 그 힘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지 않아?”

혈천하가 피식 웃으며 묻자 낙리는 묵묵히 눈을 뜨고 결인하며 낙신검으로 상대방을 가볍게 찔렀다.

위잉!

낙리의 공격에 아무런 힘도 들어간 것 같지 않았지만 예리한 검기는 수백 장 정도의 방대한 검영으로 변해 공간을 가르며 혈천하에게 향했고 바닥에는 깊숙하고 반듯한 흔적이 남았다.

낙리의 공격에 혈천하도 이내 정색하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낙리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낙리는 낙신족 젊은이 중 최정예로 낙신족의 미래를 진정 떠안을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때가 되면 그녀는 한 종족의 여황이 될 것이다.

혈천하는 목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낙리만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혈령벽(血靈璧)!”

혈천하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인법을 바꾸더니 손으로 바닥을 가볍게 때렸다.

쿵!

선홍빛 영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녀석 앞쪽에 천 장 정도의 방대한 선홍색 광막을 형성했고 광막에 선홍색 영력이 난폭하게 요동쳤다.

슉!

선홍색 광막이 형태를 갖추자마자 예리하기 그지없는 검영이 힘껏 부딪쳤다.

쿵!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충격파에 주위의 공기가 전부 폭발하였다.

혈천하는 바닥에서 조금 떨어진 채 선홍색 광막을 지켜보더니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커다란 영력 광막에 균열이 놀라운 속도로 퍼지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영이 뚫고 지나가 혈천하의 몸을 때렸다.

쿵!

혈천하는 지면에 수십 장 정도의 흔적을 남기며 뒤로 물러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는데 앞을 가린 두 팔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 속에서 지극히 난폭한 힘을 발산했다.

그러다 두 팔에 깊숙한 검흔이 나타나더니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 사람의 대결은 순식간에 엄청난 힘을 폭발해 보는 사람마저 아찔하게 만들었다. 낙리의 일격은 신백난 세 번째 단계에 이른 고수도 막기 힘든 엄청난 위력이 깃든 공격이었다.

이에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실력이 뛰어난 고수들마저 멍하니 낙리를 바라봤다.

명성으로만 따지면 석대 위에 사람 중 낙리가 가장 하위였다. 목진이 조장이라 그녀는 늘 소년의 뒤나 옆에 서 있기만 했고, 4강 진출전에서도 사람들 눈에 크게 띄지 않았다. 그런데 감춰진 소녀의 실력은 실로 엄청났다.

낙리는 목진이 있으면 실력을 감추고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하지만 일단 소년이 자리를 비우면 수중의 낙신검처럼 봉인을 뚫고 나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엄청난 신기로 거듭나곤 했다.

지금 낙리는 가장 눈부신 빛을 발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역시 낙신검이야…….”

혈천하는 팔에 난 검흔을 보더니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낙리를 노려보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너를 상대하기 위해 나도 준비한 것이 있어!”

그는 말을 마치더니 손으로 검흔을 쓰윽 닦았는데 선홍빛이었던 두 팔이 어두워지며 혈색의 불씨가 나타났다. 그건 검흔을 태우며 놀라운 속도로 상처를 치유했다.

잇따라 혈천하의 두 팔에 선홍색의 오래된 부적이 나타나더니 팔이 순식간에 2배로 커졌고 핏줄이 불끈거리며 무서운 힘이 폭발하였다.

혈천하의 두 팔은 튼실해졌을 뿐만 아니라 길어지기까지 했고 손은 짐승의 손처럼 두껍고 날카로워졌다.

쿵!

그런 혈천하가 씨익 웃으며 주먹으로 바닥을 때리자 견고한 황금색 석대에 균열이 일더니 빠르게 낙리를 향해 돌진했다.

이에 낙리는 바로 낙신검을 바닥에 꽂아 검기로 균열을 막고 상대방의 괴이한 선홍색 팔을 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이건 혈신족의 하품 신기인 혈마비(血魔臂)지?”

보아하니 혈천하는 혈마비를 두 팔과 융합한 것 같았다. 이리되면 혈마비의 힘을 철저히 선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낙신검이 아무리 강해도 아직 완전히 다루지 못하는 너에 비해 난…….”

혈천하는 표정이 점차 사악해졌다.

“난 오늘 혈마비로 낙신족의 차기 여황을 완전히 쓰러뜨릴 거야!”

난폭한 영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낙리와 혈천하의 대결과는 다르게 희현과 온청선의 전장은 유난히 조용했다.

황금색 장창을 든 온청선은 낙리와 혈천하 쪽을 힐끗거리다가 놀라운 영력의 폭발에 흠칫 놀랐다. 낙리와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는 혈천하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허, 저쪽에 관심이 많은가 봐?”

희현도 뒷짐을 쥐고 낙리와 혈천하 쪽을 쳐다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이에 온청선은 느긋하게 상대방을 보더니 생긋 웃으며 답했다.

“왜? 아직 나를 상대할 생각이 없나 보지?”

“난 너와 맺힌 게 없어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우리가 일단 싸우면 누군가는 다칠 건데 그럴 바에는 저쪽 대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희현이 웃으며 되물었다.

“나와 싸우면 저쪽에서 누가 이기든 상대하기 버거워질까 봐 걱정되어 그러는 건 아니고?”

온청선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묻자 희현은 흠칫 놀라며 답했다.

“적어도 너한테도 그만큼 우승할 기회가 커지지 않나?”

“낙리가 왜 널 싫어하는지 알 것 같아. 넌 참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야.”

온청선이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네가 아무리 술수를 잘 부려도 결국 넌 목진보다 못해.”

그 말에 희현은 드디어 인상을 찌푸렸다.

“목진은 영로에서 나한테 졌고 이번에는 나와 싸울 자격조차 없는데 내가 그런 녀석보다 못하단 말이야?”

“그 결과가 떳떳하긴 해?”

온청선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해. 이 세상에서 실패자는 변명할 자격조차 없어.”

“말만 잘하지.”

말을 마친 온청선은 이내 정색하며 황금색 장창으로 그를 향해 겨눴다.

“탈락전에서 나를 이용해 목진을 유인한 빚을 여기서 갚아!”

쿵!

온청선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놀라운 영력 파동이 폭발했는데 신백난 세 번째 단계를 넘은 실력이었다.

“내 제안이 만족스럽지 않았나 보네.”

그때, 금광을 발하는 장창이 기의 회오리처럼 하늘을 가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희현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녀석은 몸을 파르르 떨더니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숨통을 내줬는데 장창이 지나간 자리에 피는커녕, 희현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잔영이라…….”

희현의 속도가 너무 빨라 아무도 그가 언제 움직였는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위쪽에 있어!”

누군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들어보니 희현이 뒷짐을 쥔 채 황금색 석대 위쪽에 나타났다.

그러나 온청선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 정도 공격은 녀석한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두 손을 모아 결인하였다.

잇따라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온청선의 뒤쪽에 수십 장 정도의 황금 날개가 펼쳐졌는데 진짜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눈이 부셨다.

슉!

온청선이 날개를 퍼덕이자 광풍이 일며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에 희현도 흠칫 놀랐는데 뒤쪽에서 갑자기 광풍이 일며 온청선이 그의 뒤에서 나타났다.

“네가 얼마나 빠른지 보자!”

온청선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황금색 장창은 신속하게 공격을 개시했다.

슉!

희현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한 손으로 결인했는데 창망이 다시 잔영을 찔렀다.

이에 희현이 다시 수백 장 밖에서 나타났는데 뒤에서 바로 창망이 날아왔다.

슉! 슉!

두 사람은 귀신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싸웠고 그 모습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도 두 사람의 이동 궤적을 파악할 수 없었고 온청선이 공격을 개시한 순간, 잔영을 본 것이 전부였다.

무령 등 정예들도 그들의 엄청난 속도에 깜짝 놀랐다. 희현이나 온청선을 상대로 지금처럼 싸웠다면 분명 호되게 당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은 조용히 이어졌다. 그들은 무서운 속도를 유지한 채 추격전을 계속했고 그 모습에 다들 심장이 쫄깃해졌다.

슉!

그때 희현이 다시 하늘의 어딘가에 나타났는데 안색이 조금 어두웠다. 그는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렸지만 온청선을 따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청선은 희현 못지않게 빨랐다.

슉!

황금색 창망은 지칠 줄 모르고 공격을 개시했다.

흥!

희현은 기합을 넣으며 장창을 소환해 휘둘렀는데 두 장창의 창끝이 부딪쳐 놀라운 기랑을 일으켜 하늘에 돌풍이 일었다.

속도가 빠른 온청선을 상대로 희현은 그녀를 따돌리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돌풍이 일며 두 사람은 각자 뒤로 튕겨 나갔다.

“드디어 도망가는 것을 포기한 거야?”

온청선이 황금색 장창을 쥔 채 피식 웃으며 묻자 희현은 묵묵히 웅장한 성광 영력을 끌어모아 뒤쪽에 커다란 태양을 만들었다.

이는 온불승과 싸울 때 선보였던 신술이었다.

다만, 희현은 온불승보다 온청선을 훨씬 경계했기에 다시 인법을 바꿨는데 커다란 태양 위쪽에 다시 눈부신 성광이 모이더니 똑같은 태양 두 개가 더 나타났다!

희현의 뒤쪽에 나타난 세 태양에 다들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희현의 숨겨진 실력이 드러난 것이다. 역시 녀석은 엄청난 실력자였다.

“공격하라!”

희현이 바로 손가락을 튕기자 세 개의 태양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려앉아 온청선을 감쌌는데 그 충격파에 아래쪽 황금색 석대에 균열이 잔뜩 생겼다.

그러나 온청선은 상대방의 공격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거나 피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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