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은발에서 흑발로
봉황의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황금색 봉황은 황금 날개를 퍼덕이며 눈부신 빛을 발했는데 그 우아하고 고귀한 모습에 다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온청선은 황금 봉황의 위에 서서 수중의 황금색 장창으로 희현을 가리켰다.
그런데 희현은 소녀의 신수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을 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눈치였다.
“무려 황금성황의 정백을 제련했다니, 너도 참 유복한 사람이군.”
희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온청선의 뒷배도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절대 황금성황의 정백을 얻어 제련에 성공할 수 없었다.
“피차일반 아닌가?”
온청선은 상대방을 흘겨보며 말을 이어갔다.
“넌 원고천용매를 소환하지 않을 거야?”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희현이 히쭉 웃으며 답했다.
“그래?”
이에 온청선이 바로 정색하며 수중의 장창을 휘두르자 봉황은 울부짖으며 날개를 떨쳤는데 수많은 황금 깃털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수백 장 정도의 방대한 금창으로 변했다.
슉!
깃털 금창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희현의 머리 위쪽에 나타났다.
슉!
그때 희현도 수중의 장창에 웅장한 영력을 실어 온청선의 공격에 맞섰다.
탕!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무서운 충격파가 일어 희현은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러나 그는 씨익 웃으며 결인했고 체내에서 무서운 영력 파동이 일었다.
“대성광술(大聖光術), 성령강림(聖靈降臨)!”
희현의 말이 끝나자 수천 장 크기의 성광 허상이 그의 위쪽 하늘에 나타나 온청선을 사정없이 내리쳤는데 산을 가르고 바다를 메울 만큼 엄청난 위력이 깃들어있었다.
“흥.”
그러나 온청선은 전혀 피할 마음이 없었다. 그녀가 기합을 넣으며 황금색 장창을 가볍게 흔들자 황금 봉황은 그녀와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눈부신 황금색 빛줄기가 되어 엄청난 속도로 성광 허상으로 향했다.
쿵!
이에 천지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성광과 금광이 퍼지며 공간이 일그러질 것 같은 기미가 보였다. 또 그 영력 충격파에 공기가 모조리 폭발하였다.
쿵!
성광 허상과 황금색 봉황의 무서운 힘은 서로를 헐뜯기 바빴는데 봉황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차 사라져가는 성광 허상에 희현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선홍빛이 섞여들자 다들 화들짝 놀랐고 만봉령원 학생들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황금색 봉황의 뒤쪽에 갑자기 혈광이 나타나더니 커다란 혈마수가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대결에 변고가 생겼다!
쿵!
금광과 성광으로 가득 찬 공간에 갑자기 혈광이 나타났는데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혈마수가 황금 봉황의 뒤쪽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사람들은 혈천하가 왜 자기 대결 장소가 아닌 곳에 갑자기 나타났는지 궁금했다.
“뭘 하려는 거지?”
사람들은 혈천하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크으으으!
그때 혈마수가 포효하며 주먹을 휘두르자 혈광이 요동치며 선홍색 빛줄기가 쏜살같이 황금 봉황을 공격했다.
녀석의 일격은 상당히 강력했다.
“비겁한 놈들!”
“젠장! 둘이서 한 사람을 상대하려 하다니!”
* * *
혈천하의 의도가 드러나자 다들 씩씩거리며 불만을 표현했다.
이번 대결에 아무리 규칙이 없다고 해도 각자의 대결 상대와 싸우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나 마찬가지다. 그래야 승패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그를 인정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혈천하가 그 공평한 대결 구도를 깨고 두 사내가 한 여인을 괴롭히는 꼴이 되었으니 모두 언짢아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열 받은 것은 당연히 만봉령원이었다. 그녀는 차마 욕설을 입에 담지 못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성령원 학생들을 쳐다봤다. 이에 성령원 학생들은 괜히 머쓱해서 어쩔 바를 몰랐다.
쿵!
온청선은 갑작스러운 혈천하의 공격에 깜짝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황금 봉황의 한쪽 날개로 뒤쪽에 황금 방패를 만들었다.
쿵!
선홍색 주먹과 황금 방패가 부딪치자 무서운 충격파가 일며 주위 공간은 순간 일그러졌고 황금 방패의 깃털이 우수수 떨어졌다.
혈천하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막아내긴 했으나 약간의 타격을 받아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쿵!
그때 앞쪽에 있던 희현이 씨익 웃자 거의 사라졌던 성령 허상이 다시 눈부시게 빛났고 허상의 커다란 손에 성광이 모이더니 성광 거창이 나타났다.
“대성광술, 성창강림(聖槍降臨)!”
희현이 허공에 가볍게 손을 찍자 성광 허상 수중의 성창은 눈 깜짝할 사이에 황금성황의 위쪽에 나타나 천지를 뚫을 것 같은 무서운 파동을 내뿜었다.
“혈마지인(血魔之印)!”
이와 동시에, 혈마수의 어깨에 서 있던 혈천하가 교활하게 웃으며 결인하자 커다란 혈마수도 똑같은 인법을 그렸다.
잇따라 혈광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두 갈래의 선홍색 광인이 허공에서 빠르게 모여 수백 장 정도로 커졌고 엄청난 피비린내를 풍기며 온청선과 황금성황을 향해 내려앉았다.
두 사람의 공격은 신백난 세 번째 단계에 이른 고수라도 차마 정면으로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로 지존급 강자의 공격과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온청선은 여전히 장창을 쥔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어도 그녀는 우아하고 고귀한 황금성황처럼 오만한 자태를 버리지 않았다.
그녀와 황금성황한테서 두려움이란 감성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이때, 온청선이 수중의 장창을 힘껏 내리찍자 황금성황의 체내에서 눈부신 금광을 발했는데 액체처럼 진득한 금광이 신속하게 모여 황금성황의 주위에 커다란 금구를 만들었다.
금구의 표면에는 봉황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더없이 견고해 이 세상의 어떤 무서운 충격에도 끄떡없을 것만 같았다.
“황금 수호!”
커다란 금구가 형태를 갖추자 온청선의 차가운 목소리가 주위에 퍼졌다.
온청선은 희현과 혈천하의 협동 작전에 대비해 황금성황의 정백의 힘을 소환했지만 가장 강력한 방어막으로 그들을 막아야만 했다.
쿵!
두 사람의 공격이 커다란 금구와 부딪치자 엄청난 소리와 함께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황금 충격파가 주위를 휩쓸어 구름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희현과 혈천하도 뒤로 멀리 물러났다.
성광 허상은 부서졌고 혈마수의 커다란 가슴팍마저도 움푹 파여 녀석은 애처롭게 울었다.
잇따라 다들 금광이 그윽한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금구는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구에 균열이 일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퍽!
어느덧 균열이 금구 전체로 퍼지자 커다란 금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폭발했다. 봉황의 처량한 울음소리와 함께 황금성황은 빠르게 사라졌고 가녀린 한 여인은 뒤로 튕겨 나갔다.
풉.
온청선은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토했다. 희현과 혈천하를 따로 상대하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덤비니 버거웠다.
“젠장!”
대결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다시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오대원의 원장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만봉령원의 당추 원장의 안색만 유난히 어두워졌다. 무슨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든 최후의 1인이 1위가 되는 것이 규칙이라 그녀라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혈천하가 갑자기 온청선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혼자서 낙리를 상대하기 버거워 일단 희현을 도와 온청선을 쓰러뜨리고 다시 함께 낙리를 상대하려는 것 같았다.
허공에 서서 무뚝뚝하게 중상을 입은 온청선을 바라보던 혈천하는 희현과 마주 보더니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온청선의 실력을 잘 알기에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공격하지 않으면 이들한테 불리할 것이 분명했다.
하여 두 사람은 사람들의 반응 따위는 전부 무시한 채 웅장한 영력이 깃든 두 갈래의 기의 회오리를 온청선에게 날렸다.
한편, 온청선도 상대방의 공격에 최선을 다해 방어하려 했지만 체내의 영력이 말처럼 움직이지 않아 한숨을 쉬며 절망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이에 만봉령원 학생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쿵!
그런데 그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예리하기 그지없는 검의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요동치는 혈해를 가르고 낙리가 나타났다. 그녀는 온청선 뒤에 나타나 소녀를 부축하고 낙신검을 휘둘렀는데 검광이 요동치며 두 갈래의 기의 회호리를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사람들은 멈칫하다 이내 환호하였고 만봉령원 학생들은 온청선을 부축한 절세의 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화색이 되었다.
“우와, 낙리가 구했어.”
“엄청난걸!”
“너무 멋있어, 낙리가 최고야!”
* * *
낙리는 온청선을 자리에 세우고 한기 어린 눈빛으로 앞쪽에서 있는 희현과 혈천하를 쳐다봤다.
“괜찮아?”
낙리가 고개를 돌려 안색이 창백해진 온청선에게 물었다.
“괜찮아, 우리 함께 싸우자.”
온청선은 이를 악물고 영력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무질서해진 체내의 영력이 말을 들을 리가 없어 순간 휘청거렸다.
“넌 크게 다쳤으니까 잠시 쉬어. 내가 저들을 막을게.”
“안 돼!”
온청선은 낙리를 말리고 싶었다. 희현과 혈천하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에 소녀가 위험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낙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기를 가득 품은 채 낙신검을 쥐고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날카로운 검의가 순간 주위를 휩쓸었다.
은빛 찬란했던 낙리의 장발이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흑발로 변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낙리의 은빛 머리카락이 칠흑같이 까만 흑발이 되었다.
변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전의 낙리는 차분하고 조용해 속세에 물들지 않은 아름다운 연꽃 같았다면 지금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한기를 내뿜었고 중생을 내려다보는 위대한 신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희현과 혈천하가 깜짝 놀라 낙리를 보고는 이내 정색하였다.
그들도 소녀한테서 위험한 파동을 느꼈지만 전혀 내색하지는 않았다. 낙리한테 필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엄청난 필살기가 있어도 절대 혈천하와 희현을 동시에 상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혼자서 우리 두 명을 상대할 예정이야?”
혈천하가 요상하게 웃으며 묻자 낙리는 녀석을 힐끗 보더니 묵묵히 합장하며 오래된 인법을 그렸다.
“낙하.”
쿵!
이 두 글자에 갑자기 돌풍이 일더니 천지의 영기가 폭동을 일으킬 것 같았다. 낙리의 뒤쪽 공간이 격렬하게 움직이더니 끝이 보이지 않는 하천이 나타났다.
눈부신 하천은 허상일 뿐이었지만 상고의 용처럼 기세등등하였고, 그 웅장함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광좌에 앉아있는 원장들마저 깜짝 놀라 잔뜩 정색하며 오래된 하천을 쳐다봤다.
쏴아아.
하천의 청량한 소리에 특이한 힘이 들어있어 사람들은 그 속에 저절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낙리는 태연하게 한 손으로 결인하고 가슴 앞쪽에 손을 두었다.
쿵!
이에 오래된 하천에서 엄청난 물기둥이 솟아오르더니 그 속에서 물로 만들어진 커다란 날개가 활짝 펼쳐졌고 천지의 영력 파동도 순간 폭동을 일으켰다.
그러다 물기둥이 물안개가 되어 주위에 퍼졌고 그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백 장 정도 되는 빛의 그림자는 오래된 하천 위에 서 있었는데 낙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생겼고 가볍게 날갯짓하는 것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고, 그녀한테서 지극히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져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