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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89화 (388/1,000)

389화. 진정한 필살기

희현과 혈천하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인상을 찌푸린 채 서 있기만 한 희현과 달리 혈천하는 뭔가 생각난 듯 중얼댔다.

“저건 낙하지령이잖아…….”

“낙하지령이라니…….”

희현도 흠칫 놀랐다.

“설마 만수록 지방 5위로 가장 신비로운 영수라 불리는 낙하지령을 말하는 거야?”

대천세계의 만수록은 천방과 지방으로 나뉘고 지방은 영수만 다뤄 영수방으로도 불리는데 그중 가장 신비로운 영수가 바로 5위인 낙하지령이었다.

낙하지령은 혈맥의 계승으로 대를 잇는 것이 아니라 낙하를 모체로 태어나 가장 신기한 존재이기도 했다.

대천세계의 원고 시대에 낙하라 불리는 신기한 하천이 있었는데 이는 세상이 존재했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세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고, 오묘하기 그지없는 데다 무궁무진한 힘까지 깃들어있었다.

다만, 역외 사족의 침략으로 대천세계에 엄청난 재앙이 닥친 뒤, 낙하가 망가져 낙하지령이 거의 태어나지 않았다.

낙하지령은 낙하를 모체로 하는 조건 외에도 태어날 때, 그와 완벽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숙주도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낙하지령은 태어나자마자 허무하게 소멸해 다시 낙하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외, 낙하지령은 숙주에 기생하고 있지만 숙주한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을뿐더러 수련에 도움까지 주어 수련자라면 탐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원고 시기, 낙하가 파괴되기 전에는 낙하지령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강자가 적잖게 존재했고 역외 사족과의 전쟁에 큰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낙하가 파괴되어 지난해의 영광을 되찾기란 불가능해졌다. 하여 낙하지령은 자연스럽게 영수방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가 되었다.

영수방 4위권은 각각 청룡, 백호, 주작과 현무 등 사상지령인데 이건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었다. 이 네 갈래의 혈맥을 담기에 영수방은 부족했다. 이들은 만수록 천방, 즉 신수방에서도 앞쪽 순위권을 차지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영수방 4위권을 차지한 이유는 유년기를 거쳐야 진정한 신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수방 1위는 사실 낙하지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혈맥의 힘이 없는 낙하지령도 진화할 수 있는데 일단 진화에 성공하면 진정한 낙하의 신이 되어 오랜 세월 살면서 정상까지 수련한 엄청난 신수라야 대충 그와 상대할 수 있었다.

이토록 엄청난 존재가 있을 거라 여기지 못한 이들은 낙리가 소환한 허상에 깜짝 놀랐다.

“낙리가 낙하지령의 숙주라니, 이럴 수는 없어!”

희현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낙하가 전부 파괴된 것은 아니었어. 낙신족에는 자그마한 낙하가 흐르는데 그런 곳에서 낙하지령이 태어났다니, 운도 참 좋아!”

혈천하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렇군.”

희현은 그제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흥, 하지만 낙하지령은 아직 유년기라 두려워할 거 없어.”

혈천하가 콧방귀를 뀌며 한 말에 희현도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네가 혼자서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온청선이 이미 패배했으니 낙리한테 낙하지령이 있어도 혼자서 혈천하와 희현을 상대하기는 버거울 것이다.

이에 혈천하는 씨익 웃으며 울부짖더니 선홍색 팔을 혈마수의 머리에 꽂았다. 그러자 피가 부단히 녀석의 체내에 들어갔다.

혈마수는 점점 더 빨개졌고 등에 자란 빨간 뼈가시도 한껏 자라 더 무서워 보였다.

크으으으!

혈마수는 포효하며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

“혈마종(血魔鐘)!”

혈천하의 포효와 함께 혈마수의 커다란 입에서 혈광 한 갈래를 내뿜더니 거대한 선홍색 종으로 변했는데 피를 뚝뚝 흘리며 한껏 일그러진 표정을 한 얼굴이 나타나 고함을 질렀다.

이는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 석대 주의의 학생들은 체내의 영력이 자기의 생각과 달리 움직이고 혈액이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쿵!

그러다 혈마수가 주먹을 휘둘러 혈마종을 때리자 백 장 크기의 혈광을 내뿜어 살기를 가득 싣고 괴이한 소리를 내며 낙리에게 향했다.

이에 낙리는 무덤덤하게 손을 들었는데 뒤쪽에 서 있는 거대한 그림자도 똑같이 움직였다.

쿵!

맑고 부드러운 물결이 솟구쳐 혈광과 부딪치자 아무런 영력 충격파도 형성되지 않았고 혈광도 맥없이 무너졌다.

상고의 낙하는 세상 만물을 녹이는 힘을 가져 혈천하의 공격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낙리가 바로 결인하자 맑은 물결은 한데 모여 엄청난 파도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혈마종의 위쪽에 나타나 물건을 휘감았다.

혈마종이 바로 녹아 없어지자 혈천하는 안색이 한껏 어두워져 다시 공격할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주위 공간이 무질서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위의 공간이 찢어지며 맑은 물이 쏟아져나와 그를 완벽히 감쌌다.

혈천하는 부드러운 물결에서 치명적인 위협을 느꼈다.

부드러워 보이는 물줄기에 무서운 힘이 느껴지자 학생들은 아찔함을 느꼈다.

혈천하는 안색이 잔뜩 어두워진 채 자신을 감싼 맑은 물줄기를 바라보더니 바로 인법을 바꿨는데 혈마수가 입을 쩍 벌리고 포효하며 엄청난 혈광을 내뿜었다.

그런데 웅장한 영력 파동이 일며 난폭하게 휘몰아치던 혈광은 물줄기에 부딪히자마자 빠르게 사라졌다.

조용히 주위를 감싸기만 하던 물줄기는 견고한 감옥이 되어 혈천하를 꼼짝 못 하게 했다.

허공에 서 있던 낙리는 애써 반항하는 혈천하를 무덤덤하게 쳐다보더니 길쭉한 손가락으로 가볍게 물줄기를 찔렀다.

쿵!

이에 부드러웠던 물줄기가 갑자기 난폭해지며 파도가 일었고 특이한 파동을 내뿜으며 사정없이 혈마수의 방대한 몸을 내리쳤다.

처량한 포효가 들리더니 혈마수의 몸에서 안개가 일며 피와 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혈천하가 타고 있는 혈마수는 정백의 힘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라 녹아내리는 것은 그의 진짜 피와 살이 아니라 순수한 영력과 정백의 힘이었다.

하여 무궁무진한 물줄기의 세례에 정백의 힘으로 만들어진 혈마수는 영력 소모로 인해 빠르게 작아졌고 혈천하의 안색도 창백해졌다. 제아무리 낙리의 공격을 막으려고 애를 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영수가 당하는 꼴을 그대로 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혈마수는 절반 정도 작아졌고 난폭하기 그지없던 영력 파동도 한껏 사그라들었다.

“낙하지사(洛河之蛇)!”

낙리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한 채 한 손으로 결인하였다.

그때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물줄기 속에서 커다란 물 보아뱀 십수 마리가 튀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혈마수한테 날아가 녀석을 휘감았는데 그 무서운 힘에 혈마수는 곧 부서질 것 같았다.

혈천하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두 팔을 혈마수의 몸에 꽂아 부단히 정혈을 내주었는데 겨우 버티기만 할 뿐이었다. 보아뱀의 힘이 점차 거세지자 그의 방어는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만물을 녹이는 낙하의 힘은 역시나 대단했다!

황금색 석대 외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이내 혀를 끌끌 찼다. 아무도 낙리의 필살기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바로 혈천하를 제압했다.

“낙리 선배, 힘내요!”

북창령원 학생들은 낙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응원했다. 그들은 비록 목진이란 최강의 전투력을 잃었지만 낙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아직 1위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실력으로 보아 북창령원이야말로 강력한 1위 후보였다.

그때 혈마수의 몸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녀석의 몸이 곧 부러질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혈마수는 결국 죽을 것이고 혈천하도 중상을 입어 더는 낙리와 싸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오래된 매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매의 허상이 공간을 뛰어넘으며 물줄기 속으로 들어가 혈천하의 몸을 때렸다.

퍽! 퍽!

허상이 지나가자 커다란 물보아뱀들은 순식간에 폭발하였다.

쿵!

혈천하는 황급히 혈마수와 함께 물줄기의 구속에서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잔뜩 경계하며 낙리를 쳐다봤다. 그녀가 낙하지령을 소환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강해질 줄 몰랐다. 그는 잠깐의 불찰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이에 낙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드디어 원고천룡매를 소환한 거야?”

낙리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허공에 서 있는 희현 주위에 웅장한 영력 파동이 일며 커다란 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온몸이 암자색으로 물든 녀석은 산 한 채를 덮을 수 있을 만큼 큰 날개를 가졌고 머리는 매가 아닌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발도 마찬가지로 날카롭기 그지없는 용의 발이었다.

용과 매의 모습을 갖춘 녀석은 바로 영수방 8위인 원고천룡매로 아주 포악했는데, 불순한 용족 혈맥 때문에 생김새가 그러했다.

그런데 이 불순한 혈맥 덕분에 원고천룡매는 엄청난 힘을 얻게 되었고 완전히 수련을 마친 원고천룡매는 용족을 먹이로 삼는다는 말도 있었다. 비록 녀석들의 먹이는 용족 혈맥을 지닌 강대한 영수일 뿐이지만 그 잔혹함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원고천룡매의 순위가 높긴 하지만 그따위 정백의 힘으로 낙하지령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건 아니지?”

낙리는 유리알같이 맑은 눈으로 커다란 원고천룡매를 쳐다보며 물었다.

“허허, 낙하지령은 무려 영수방 1위인데 원고천룡매의 정백의 힘만으로 상대할 수야 없지.”

희현은 피식 웃더니 소녀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낙하지령을 소환하면서 네 실력은 지존경과 비슷해졌지?”

이에 사람들은 흠칫하더니 경외의 눈빛으로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봤다. 지존경은 환골탈태하는 것과 다름없는 경지로 그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강자라 불릴 수 있다.

신백난 다음이 곧 지존경이지만 그 사이의 차이는 엄청나 절대 보통의 수단으로는 보완할 수 없었다.

그런데 현재, 낙리의 실력이 지존경과 비슷하다면 지존경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정도는 학원의 장로를 해도 되는 실력이었다.

혈천하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전부 신백난 세 번째 단계에 이르렀지만, 지금의 낙리는 그들에 비해 훨씬 강했다. 역시 그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너는 목진한테 남겨주려 했는데 갑자기 네가 그의 상대가 될 자격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낙리가 느긋하게 한 말에 희현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고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무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희현이라 해도 그런 말에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와 싸워 수도 없이 패배한 녀석이 나보다 낫단 말이야?”

희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말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목진이 정말 실력이 뛰어나다면 심판지경에서 벌써 나왔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지금 이 자리에 없네?”

그런데 낙리는 화도 내지 않고 생긋 웃으며 낙신검을 들었다.

“넌 목진을 입에 담을 자격도 없어. 그러니까 진짜 실력이나 보여줘. 대신 원고천룡매의 정백이 너희 최종 필살기라면 정말 실망일 거야.”

마음을 가까스로 가라앉힌 희현은 낙리를 한참 보더니 서서히 눈을 감고 팔을 벌렸다.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나와 목진 중 과연 누가 자격이 없는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주겠어!”

쿵!

희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체내에서 신백난 실력을 훨씬 뛰어넘은 무서운 실력을 끌어올렸다.

이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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