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지존해(至尊海)
쿵!
천지의 영력은 곧 폭동을 일으킬 것 같았고 희현이 해와 달을 품은 것처럼 자신을 껴안자 뒤쪽 공간이 부단히 일그러지더니 부서질 기미가 보였다.
그 속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바다가 조금씩 보였는데 성광 같은 영력으로 가득 찬 웅장한 바다는 엄청 눈부셨고 산 한 채를 거뜬히 부술 만큼 강력해 보였다.
또한, 바다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위압감에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이는 신백난 고수가 아니라 지존급 강자 정도는 되어야 이룰 수 있는 위압감이었다!
“저건 지존해잖아…….”
누군가 파괴된 공간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물체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중얼거렸다.
진정한 지존급 강자에게는 그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존재가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지존 법신과 지존해다. 지존경에 이르면 체내의 기해가 부서지고 지존해가 생긴다!
기해는 사람이 체내에 영력을 모아두는 곳으로 영력으로만 승패를 가른다면 기해 속에 든 영력이 더 그윽하고 강한 사람의 실력이 더 강하다.
그런데 일단 지존경에 들어서면 기해가 부서지고 지존해가 생기는데 이는 기해보다 훨씬 강하고 완벽한 물체나 다름없었다.
인체에 존재한 기해가 중요하긴 하지만 상당히 취약해 일단 누군가 이를 망가뜨리면 더는 수련을 할 수 없게 되고 여태껏 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지존해는 인체 내부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묘한 공간을 만들어 보존하는 거라 기해보다 더 은밀하고 안전한 곳에 둘 수도 있고 그 위력도 더 강해진다.
또한, 지존해가 만들어지면 수련자는 신백을 그 속에 숨길 수 있어 육신이 파괴되어도 다시 육신을 만들어 살아날 수 있었다.
하여 지존해와 지존 법신을 지존급 강자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지존해와 전투력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는 지존 법신 때문에 다들 지존급에 이르기 위해 안달 난 것이다.
그런데 희현이 지존해를 만들었다는 건 녀석이 지존경에 이르렀단 말이 아닌가!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희현을 바라봤다.
이리되면 대결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아무리 낙리라도 지존급 강자와는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엽경령, 우희, 소령아 등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지존급 강자한테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녀석의 지존해가 완전하지 않아.”
물끄러미 석대를 지켜보던 영계가 갑자기 입을 열자 엽경령 등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벌써 지존경에 이르기 직전이라니, 희현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은 확실히 뛰어나. 그런데 녀석의 지존해 변두리 쪽이 조금 부서진 것 같지 않아? 이건 그가 강제로 지존해의 모양새를 흉내 냈다는 거야. 그리고 지존해 속의 영력도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외부의 힘을 빌렸을 가능성이 커.”
영계는 북창령원의 장로인지라 학생 신분인 엽경령 등과 달리 바로 희현의 지존해의 단점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 영계도 희현과 나이가 비슷했다. 녀석의 재능이 뛰어나다면 그녀는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천재 중의 천재라 불려야 마땅했다. 비록 목진의 어머니께서 직접 가르치셔서 영계가 지금의 실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었다.
천지존과 실력이 비슷한 존재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다는 것은 대천세계에서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건 정말 영광스러운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얼마 없을 것이다.
“그렇군…….”
엽경령 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어. 완전하지 않은 지존해일지라도 신백난이 상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 낙리한테 낙하지령이 있긴 하지만 아직 유년 단계의 영수일 뿐이라 큰 도움은 줄 수 없어.”
영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엽경령 등은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낙리가 희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라고 기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영계는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걸려있는 심판지경을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대로 포기할 거야?”
* * *
천지의 영력이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희현은 허공에 서 있었는데 뒤쪽 파괴된 공간에서 보이는 웅장한 바다로 인해 그는 더없이 강대해 보였다.
“낙리, 지금도 네가 내 상대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희현이 피식 웃으며 묻자 낙리는 가볍게 웃기만 하였다. 이에 희현은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소녀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낙리의 마음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이런 문제로 희현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 있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다들 목진은 나에게 졌다고 기억할 거야.”
말을 마친 희현은 앞으로 나아가며 장풍을 쐈다.
쿵!
그러자 천지의 영력이 폭동을 일으켰고 웅장한 바다에서 놀라운 영력이 휘몰아치며 성광 거수를 만들어 낙리에게 향했다.
쿠쿵!
희현은 아무런 신술도 부리지 않고 웅장한 영력으로만 공격을 개시했는데 견고한 황금색 석대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녀석의 공격은 상당히 강력했다.
이에 낙리가 낙신검을 꽉 쥐자 뒤쪽에서 천천히 흐르던 오래된 낙하에 서 있던 낙하지령도 주먹을 쥐고 더 큰 장검을 만들었다.
낙리와 낙하지령이 함께 검을 휘두르자 천 장 크기의 검광과 함께 예리하기 그지없는 검의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쿵!
검광과 성광 거수가 부딪쳐 충격파가 퍼지며 돌풍이 일었다.
“내 공격을 몇 번이나 막을 수 있나 보자!”
희현이 씨익 웃더니 하늘 높이 날아올라 두 손을 들자 천지가 흔들렸고 독립된 공간에 숨어있던 지존해에 파도가 일며 수많은 성광이 나타나 다시 성광 거수를 만들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아찔했다. 이는 영력 소모가 엄청난 일인데 희현은 아무렇지 않게 지존해의 힘을 빌려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하늘이 어두워지며 성광 거수들이 천지를 가르며 미친 듯이 낙리한테로 향했다.
이에 낙리는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낙하로 주위를 감싸 든든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퍽! 퍽! 퍽!
수많은 성광 거수가 낙하를 공격하자 영력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황금색 석대가 무너졌다.
그 모습에 다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성광 거수들의 무서운 공격에 낙리의 주위를 감싼 낙하가 점차 사라지자 북창령원 학생들은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고 낙리 쪽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영력이 무서울 정도로 강력해진 희현을 상대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쿠쿵!
낙하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청량한 소리를 내며 폭발하자 낙하지령도 빛줄기가 되어 다시 낙리한테 돌아갔다. 그녀는 미세한 신음을 내며 뒤로 물러났다.
“조심!”
그때 온청선이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져 외쳤다. 그녀는 낙리 뒤쪽에 갑자기 엄청난 혈광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는데 혈천하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낙리의 등을 공격하려고 한 것이다.
온청선은 얼마 남지 않은 영력을 전부 끌어올려 빠르게 낙리한테로 날아가 몸으로 녀석의 공격을 막으려 하였다.
“선배!”
만봉령원의 소녀들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혈천하, 넌 사람도 아니야!”
북창령원의 학생들도 이내 욕설을 퍼부었다. 비열한 수법을 몇 번이나 사용한 혈천하 때문에 잔뜩 화가 난 것이다.
“흥.”
그런데 혈천하는 씨익 웃더니 오히려 체내의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주먹을 휘둘렀다. 녀석이 살수를 둔 것이다.
이에 온청선은 이를 악물고 눈을 서서히 감았다. 그녀는 혈천하의 매서운 일격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죽어!”
혈천하는 포효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꽈르릉!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난폭하기 그지없는 뇌명이 들려왔다. 원장들이 깜짝 놀라 심판지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고요했던 거울 면에 파동이 일며 눈부신 뇌광이 솟아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온청선의 위쪽에 나타나 벼락으로 만든 주먹으로 혈천하를 내리쳤다.
퍽!
혈천하는 뒤로 멀리 튕겨 나가 황금색 석대에 깊숙하게 박혀 순간 피투성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다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는데 뇌광을 휘감은 늘씬한 누군가가 낙리와 온청선을 안고 내려앉았다.
뇌광이 가시자 드디어 소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뇌광이 사라지자 사람들 앞에 나타난 소년의 정체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저건 목진 아니야?”
“심판지경에 갇혔던 사람이 어떻게 나왔을까?”
“설마 심판지경의 엄청난 소용돌이를 뚫고 나왔단 말이야? 그럴 리 없어.”
“실력이 엄청나군…….”
* * *
다들 희현의 지존해를 봤을 때만큼 놀란 것 같았다.
북창령원 학생들도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화색이 되어 환호했다.
“야호, 목진 형이 드디어 나타났어!”
“하하, 역시 북창령원의 천방 패주다워!”
“목진 형, 녀석들을 처참하게 밟아줘요!”
북창령원 학생들이 잔뜩 흥분해서 외쳤다. 낙리의 실력도 놀랍긴 하지만 목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소년은 북창령원에 들어서서부터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며 학원의 가장 눈부신 샛별이 되었다.
그는 실력으로 북창령원의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받아 심창생한테서 천방 패주의 자리를 물려받았고 이에 불만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소년이 그 자리에 앉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북창령원 학생들은 다시 나타난 영웅의 모습에 하늘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녀석…….”
소령아는 황금색 석대 위에 나타난 소년을 보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목진 오라버니가 나타났네요. 난 오라버니가 심판지경에서 나올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우희는 경외하는 눈빛으로 소년을 쳐다보며 말했다.
엽경령도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의기양양해진 북창령원 학생들을 쓰윽 훑었다. 주눅이 들었던 학생들의 얼굴에는 다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들은 목진만 있으면 북창령원이 반드시 승리할 거라 확신했다.
목진은 북창령원에 들어와 단 한 번도 사람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존재만으로도 사람들한테 믿음을 주었다.
그는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워 마침내 기적을 만들어내곤 했다.
“나오자마자 두 여인을 끌어안기 바빠서야…….”
영계는 히쭉 웃으며 말하더니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 목진은 역시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황금색 석대에 내려앉은 목진은 품속에 안긴 두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낙리는 익숙한 소년의 얼굴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온청선은 멈칫하더니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소년의 팔을 뿌리치고 눈을 부릅떴다.
“감히 누구 허리를 만져!”
온청선의 반응에 목진은 괜히 무안했다.
“나도 안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쳇, 양쪽으로 끌어안으니까 좋아?”
그런데 온청선은 목진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보고 너를 대신해서 여태껏 싸우게 하다니, 너무한 것 아니야?”
이에 목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들어 한기 어린 눈빛으로 허공에 떠 있는 희현을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미안,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나한테 맡겨.”
“녀석을 상대할 수는 있어? 아직 진정한 지존급 강자는 아니어도 희현한테는 지존해가 있어. 이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
온청선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봤는데 걱정이 더 많이 섞여 있었다.
“내가 널 도울게. 난 아직 싸울 수 있어. 희현이 지존해를 만들었다고 해도 전력을 다해 싸우면 절대 뒤처지지 않을 거야.”
낙리의 말에 목진은 피식 웃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난 오늘의 싸움을 오래도록 기다려왔어.”
그 말에 낙리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부터 전장의 주인공은 목진이란 것을 깨달았다.
“조심해.”
낙리와 온청선은 서로 마주 보며 함께 뒤로 물러나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의 공격으로 석대에 박힌 혈천하를 쳐다봤다. 녀석은 완전히 전투력을 잃었지만 비열한 수단 때문에 쉽게 용서가 안 되었다.
그런데 목진은 혈천하 따위는 무시한 채 서서히 허공에 날아올라 희현한테 다가갔다.